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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싱어](7) '잊지는 말아야지' 백영규, "장르 구분의 개념이 없어요" (인터뷰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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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싱어](7) '잊지는 말아야지' 백영규, "장르 구분의 개념이 없어요" (인터뷰Q)
  • 연나경 기자
  • 승인 2016.06.01 0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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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자 Tip!] 어떤 것을 이루기 위해 계획하고 행동하는 것은 올바른 일이다. 어떤 것의 물꼬를 틀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런 시도는 한 분야에서의 장인, 또는 전설을 탄생시키는 시작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보통 한 길을 꾸준히 걸어가고, 자신의 뚝심이 있는 사람은 외로움을 감수하고 모든 것을 해 나간다.

[스포츠Q(큐) 글 연나경 · 사진 이상민 기자] '슬픈계절에 만나요' '잊지는 말아야지'를 부른 포크가수 백영규는 자신의 대부분의 행보를 단독으로 해 온 인물이다.

1978년 혼성 듀엣 물레방아 멤버로 데뷔한 그는 소리창조 대표로서 가수 김세화의 기획과 제작을 맡았고, 그 후 도시의 그림자·우리세상·박정수 2집 등의 제작자로 나섰다.  지난 5월 17일 경인방송에서 백영규와 만나 그의 음악 인생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 '선두주자'의 타이틀이 많은 가수, "내 음악을 하는 데 도움이 돼요"

▲ 백영규는 포크가수들 중 제작 분야에 있어도 선구자적인 인물이고, 장르 설정에도 구애받지 않는 음악인이다. [사진= 스포츠Q 이상민 기자]

백영규는 1978년 혼성 듀엣 물레방아의 멤버로 데뷔하기도 했으나, 80년대에 직접 제작에 뛰어든 몇 안되는 가수들 중 하나다. 포크가수들 중 제작 분야에 있어서는 '선두주자'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포크가수들 중에 제작을 꽤 빨리 시작한 것은 맞아요. 90년대 중반쯤 그만두기는 했지만, 제작이나 음악 외에 여러가지 것들이 내 음악에 모두 도움이 됐어요. 그렇다고 최근에 제작을 안 한 건 아니었고요, 제가 진행하는 라디오에서 '노랫말 한 번 써 보실래요'라는 경연이 있어서 그 경연을 통해 포크음악에 트로트를 가미시켜서 노래를 만들었었죠. 색다른 트로트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백영규의 대표곡 '잊지는 말아야지'는 트로트 장르에 속하는 곡이나, 트로트 가수들은 그들만의 해석으로 '잊지는 말아야지'를 트로트로 정의하지 않는다. 백영규는 이를 '포크 트로트'라고 이름 붙였다. 이는 곧 장르 설정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장르를 구분하는 것에 대한 개념이 없어요. 트로트 가수들과 내가 생각하는 트로트의 개념이 다른 것 뿐이에요. 트로트 말고도 프로그레시브 록 장르 음악을 시도하기도 했었는데, 작품을 만들 땐 장르 설정을 잘 하지 않아요.  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을 속 시원하게 한 번 해 보자고 생각하면 그걸 해내는 편이에요."

그가 '선두주자'로 나선 것은 제작뿐만이 아니었다. 백영규는 현재 DJ로 활약중인 경인방송 라디오 '백영규의 가고 싶은 마을' 공개방송을 TV로도 송출했다. 기존의 보이는 라디오처럼 인터넷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이 아닌, TV로 안방에서 라이브를 시청할 수 있기에 신선하다는 평을 얻었다.

"'동창회' 콘셉트를 변형시켜서 만든 것이었어요. 평소에 반응이 좋았기 때문에, 이를 극대화시켜서 만들어 보자고 해서 방송으로 만든 것이었죠. 사정이 있어서 재정비한 뒤에 방송을 다시 만들려고 해요. 아이디어 자체가 참 좋았기 때문이죠."

◆ 평범한 시작, 비범한 행보 "그 당시엔 저 같은 사람이 많았어요"

▲ 백영규의 음악 인생은 평범하게 시작했지만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사진= 스포츠Q 이상민 기자]

백영규가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한 해는 1978년으로, '대학가요제' '강변가요제' 등이 시작되면서 포크음악이 전성기로 접어든 시기였다. 그 당시 대학생들은 기타를 들고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보는 행동들이 잦았다. 주변에서 모두 해 오던 행동들이었다. 백영규의 음악 인생 시작도 평범하게 시작됐다.

"그 당시에 기타치고 노래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똑같이 그렇게 해 보고 싶었던 것이었어요. 단순히 제 목소리를 들어보기 위해 만든 것이었는데, 아세아레코드 회사에서 가져오라고 했었죠. 단순한 시작이지만 이것 때문에 파트너였던 이춘분과 노래를 하게 됐어요. 목소리가 참 좋았죠."

하지만 그 당시에는 혼성듀오가 결혼을 하지 않으면 금방 해체된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물레방아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혼성듀오는 남성 싱어보다 여성 싱어가 더욱 돋보이는 일이 많기에 홀로서기가 쉽지 않았다.

"남성 싱어는 혼성듀오 시절에 보통 메인보컬을 한 적이 거의 없으니까, 잘 안된다는 인식이 많았어요. 저 역시 이춘분이라는 싱어가 컸기에 가려져 있었고요. 선뜻 누가 제작을 하겠다고 나서지도 않았고요. 그런데 작곡가 엄진 씨가 회사에 저를 강력하게 추천해 줘서, 솔로 앨범을 발표할 수 있었어요."

당시 포크 가수들은 그룹을 형성해 함께 노래를 하고 곡을 쓰며 앨범을 내는 경우가 많았지만, 백영규의 행보는 달랐다. 대학시절 가요제를 통해, 또는 라이브 카페에서의 활동으로 데뷔를 했던 보통의 포크가수들과 달리 백영규의 앨범은 직장생활 중 직접 제작해 발매됐다. 남들과 비교했을 때 달랐다.

"음악에 대해 이야기할 사람이 없었죠. 가수는 음반을 내면 무조건 히트하는 줄 알 정도로 무지했어요. 그 당시에 쉽게 음원을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을 하고 수정을 받으면서 만들었다면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최근에는 수정작업을 너무 재미있게 생각하고 있는데, 내 작품에 대해 내가 다른 시각으로 보기 시작하니까 길이 보여서 그런 것 같아요."

◆ 백영규가 생각하는 포크 음악은? "가감이 없어요"

▲ '자연스러움과 솔직함, 그리고 공감' 백영규는 통기타와 함께하는 포크음악의 매력을 이렇게 꼽았다. [사진= 스포츠Q 이상민 기자]

오랜시간 한 일에 열중하는 이유는 부수적인 이유도 있으나, '매력'에 대한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평범한 계기로 시작했으나, 매력이 없다면 꾸준히 한 길을 걸어가기는 쉽지 않다.

"원초적인 음악이죠. 자연스러운 게 포크음악이 아닐까 싶어요. 일렉기타가 들어가면 힘이 들어가는데, 통기타로 하는 음악은 자연스러워요. 특히 포크음악은 가감이 없고 솔직해서, 단어를 고르는 작업들이 매력적이에요. 공감할 수 있는 이미지를 곡에 채워내는 것도 좋고. 대중에게 끌려가기보다는 그들을 끌고가는 것 같아요."

2016년, 현재 무대에 서는 아티스트들의 음악은 다양하다. 그 속에서 포크음악은 다른 음악에 녹아나면서 대중음악 역사의 한 켠을 지키고 있다. 백영규는 수요에 대한 기대보단 선배들의 노력을 강조했다.

"문제는 뮤지션들이 음악을 만들지 않고 다른 장르로 전향할 때 생기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젊은 친구들이 인디신에서 포크 음악을 기반으로 자기 음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음악은 없어지지 않을 건데, 음악다운 음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포크 음악을 통해서 '바쁘셔서 멀리 두셨던' 감성을 찾아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노력을 강요할 수 없고, 강요해서 되는 것도 아니지만. 선배들이 창작을 하고 후배들을 이끌어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백영규 소개

1978년 '순이생각'으로 데뷔. '순이생각' '잊지는 말아야지' '가신님 그리워' '슬픈계절에 만나요' 등
의 잇따라 히트곡 발표. 현재 경인방송 라디오 '백영규의 가고 싶은 마을' DJ로 활약 중.

[취재후기] 삶을 살다 보면, 남들의 간섭 없이 내 길을 걸어가는 '마이 웨이(My way)' 정신이 필요할 때가 있다. 백영규는 이 마이웨이 정신을 아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인물로, 자신의 작업물들을 '작품'이라고 표현해 모든 작업물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는 느낌을 심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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