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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청춘에 건네는 '자성과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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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청춘에 건네는 '자성과 위로'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09.03 1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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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 4편 '야간비행' '60만번의 트라이' '족구왕' '숫호구'

[스포츠Q 용원중기자] 10대와 20대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기다. 하지만 이 시대 청춘은 버겁다. 사교육 광풍과 입시지옥을 벗어나자마자 스펙쌓기와 취업경쟁으로 내몰린다. 학교에는 기성세대가 물려준 무한 경쟁과 차별, 폭력이 창궐한다. 이런 폐단은 군대로까지 이어진다. 청춘의 푸른 꿈은 자리할 공간이 없다. 아까운 생명이 지는 참혹한 일들이 꼬리를 문다.

▲ 안재홍 이재준 곽시양 황승언(사진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사진=스포츠Q 최대성 이상민기자]

이들의 아픔에 저예산 독립영화들이 자성과 위로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올해 상반기 ‘한공주’ ‘셔틀콕’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에 이어 하반기에 ‘숫호구’ ‘족구왕’ ‘야간비행’ ‘60만번의 트라이’가 관객의 마음을 파고드는 중이다. 관습의 틀을 훌쩍 뛰어넘는 거침없는 상상력과 유쾌한 장르 조합은 공감대를 든든히 구축한다. 묵직한 메시지는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날카로운 시선의 젊은 감독들과 호응하는 배우들의 연기 연금술은 눈부실 정도다.

 

◆ 10대들의 투쟁기 ‘야간비행’ ‘60만번의 트라이’

올해 상반기 한국영화계에 ‘한공주’가 있었다면 하반기엔 ‘야간비행’(8월28일 개봉)이 존재한다.

내신 1등급 고교 2학년 용주(곽시양)는 성적과 경쟁만을 요구하는 학교 때문에 쓸쓸함을 느낀다. 왕따인 친구 기철을 보호하기 위해 애쓰는 한편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지 못한다. 용주와 중학교 절친이었던 기웅(이재준)은 교내 일진으로 불량 친구들과 어울리지만 해고노동자 아버지를 찾아 떠돌고, 방과후엔 배달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 역시 상처받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닫고 살아간다. 고교 진학 후 소원해졌음에도 용주는 늘 기웅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다. 외로운 용주는 기웅에게 손을 내밀지만 다른 삶을 사는 기웅은 선뜻 용주의 손을 잡아주려 하지 않는다.

열여덟 모범생 용주와 문제아 기웅에게 지우는 사회의 짐은 무겁다. 공부 외엔 아무런 가치도 두지 않은 채 성적 경쟁만 부추기는 학교는 왕따, 낙오자, 동성애자 등 소수자를 스스럼없이 짓밟는다. ‘야간비행’은 기성세대가 구축해 놓은 약육강식의 정글에서 어떻게 우정이 부서지고, 서로를 배신하고, 소수자들이 배척되는지를 잔인하게 보여준다.

▲ '야간비행'의 용주(곽시양. 왼쪽)과 기웅(이재준)

이송희일 감독은 청소년들이 직면한 고민을 섬세한 감성과 완급조절로 그려낸다. 힘겨운 상황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으려는 두 주인공을 통해 ‘가만히 있어라’ 세대인 10대들을 향한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를 보낸다.

다큐멘터리 ‘60만번의 트라이’(감독 박사유 박돈사)는 60만 재일동포의 꿈을 안고 전국 제패에 나선 오사카 조선고등학교 럭비부 선수들의 도전을 그린다.

럭비부 주장 관태의 부상과 선수들 사이의 오해, 오사카시의 학교 보조금 지급 중지 등 예기치 못한 일들이 끊임없이 발생하지만 럭비부 선수들은 ‘하나, 믿음, 승리!’라는 구호를 외치며 럭비 전국대회인 ‘하나조노’ 우승을 목표로 구슬땀을 흘린다.

전국대회 출전 19년 만에 일본 내 1000여 개 럭비부들이 선망하는 4강의 벽을 넘어 3위를 차지하는 과정에서 열아홉 청춘들은 조금씩 성장해 나간다. 그라운드에서는 치열하게 싸우고, 때로는 의견 충돌 속에 흔들리기도 하며, 이성 앞에서 두근대는 마음을 감추지 못하지만 자긍심과 동포애를 마음속에 켜켜이 쌓는다.

▲ '60만번의 트라이'

재일동포를 둘러싼 일본 내 현실은 여전히 어두운 부분이 많다. 이런 불합리와 부조리를 통쾌하게 격파하듯 아이들의 럭비 승리 행보는 이어진다. 그리고 ‘노사이드 정신’을 소리 높여 외친다. 주장 관태가 고교 무상화를 조선학교에만 적용하지 않는 일본을 향해 “노사이드 정신은 시합이 끝나면 니 편, 내 편이 없어지며 모두 친구가 되는 것”이라고 외치는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다. 9월18일 개봉.

배우 곽시양은 “공부에만 목을 매느라 하고 싶은 걸 찾지 못하는 게 가장 안타깝고 불행하다. 10대는 자신이 꿈을 찾아야 하는 시기가 아닌가”, 이재준은 “학생과 학생 사이에, 교사와 학생 사이에 여전히 이뤄지는 폭력이 사라져야 한다. 아울러 입시경쟁, 일명 '취업 뽀개기' 경쟁은 학생, 교사 그리고 우리 사회 성인들이 다함께 변해야 해결될 문제다”라고 언급했다.

◆ ‘3포세대’ 20대의 웃픈 연애성장담 ‘숫호구’ ‘족구왕’

‘숫호구’와 ‘족구왕’은 사랑과 청춘을 쟁취하기 위한 잉여들의 도전기다. 두 영화는 3포세대(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로 불리는 젊은 세대의 눈높이에서 그들의 삶을 리얼하게 그려내 공감을 이끌어낸다. ‘숫호구’는 연애와 인생 모두 무기력한 20대 청춘의 단면을, ‘족구왕’은 토익·학점만이 중시되는 스펙주의의 삭막한 현실을 유쾌발랄하게 직시한다.

감성코믹 SF 연애판타지 '숫호구'(감독 백승기)는 서른 살이 되도록 연애도 취직도 못해본 청년 원준(백승기)의 이야기다. 안타까운 외모와 스펙 0%의 숫호구(숫총각+호구) 원준은 성경험은커녕 여자들에게 맞고 다닌다. 그런데 한 생명공학 박사가 섹시한 매력의 '아바타'를 개발했다며 실험대상으로 원준을 유혹한다. 그는 신체를 바꿔치기해 온갖 여성을 유혹한다.

▲ '숫호구'

지난 8월3일 개봉한 ‘숫호구’는 웃기면서 슬프다. 암울한 청춘일지언정 진심과 사랑은 소중할 터다. 하지만 그 사랑을 위해 자신의 존재조차 부정하는 선택을 하는 모습은 처연하기까지 하다.

8월21일 개봉한 ‘족구왕’(감독 우문기)은 취업, 스펙, 학교생활, 연애 등 고민에 파묻혀 살아가는 대학생들의 오늘을 족구라는 소재로 그려냈다. 영화는 현실은 비록 남루하고 찌질할 지라도 청춘의 꿈과 사랑이 얼마나 눈부신 지를 웅변한다.

제대 후 5일 만에 복학한 만섭(안재홍)은 교내에 족구장이 사라졌다는 사실에 아연실색한다. 동기들은 취업 준비와 학점 관리에 부산하건만 족구사랑 충만한 만섭은 친구 창호(강봉성)와 족구장 재건립 서명운동에 나선다. 캠퍼스 퀸 안나(황승언)를 짝사랑하게 된 만섭은 안나의 남친인 전직 국가대표 축구선수 강민(정우식)과 벌인 족구시합에서 이기고, 이 대결이 전교에 퍼지면서 때 아닌 족구 열풍이 캠퍼스를 휩쓸게 된다.

‘족구왕’에서 드러나는 청춘의 실상은 혹독하다. 취업과 스펙쌓기 경쟁, 학자금 대출 상환을 위한 아르바이트에 매달리느라 정작 중요한 꿈과 미래를 포기한 채 살아간다. 만섭이 안나를 향해 “남들이 싫어한다고 자기가 좋아하는 걸 숨기고 사는 것도 바보 같다고 생각해요”란 말은 서글픈 청춘의 지친 어깨를 감싸는 위로다.

▲ '족구왕'

배우 안재홍은 “나 역시 대학생 시절에 고난의 시기가 훌쩍 지나갔으면 했다. 그런데 만섭이는 이 시간을 즐긴다. 고난이 아니라 행복한 시간이라고 역설한다. 만섭을 연기하면서 위로받았다. 많은 청춘들이 인생에서 설레는 이 시기를 뛰어넘으려고 하는 게 안타깝다”라고 전했다.

◆ "리얼리티 강조하는 독립영화, 청춘 소재에 관심"

상업영화가 뒷짐을 진 반면 독립영화들이 청춘의 실상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무얼까. CJ CGV 다양성영화 전문 브랜드 무비꼴라쥬의 박혜정 과장은 “상업영화는 판타지를 통한 재미에 천착한다. 팍팍한 현실을 굳이 극장에서까지 접하고 싶지 않다는 관객의 니즈를 수렴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반면 독립영화는 리얼리티를 통한 메시지를 강조한다. 자연스레 현실의 청춘은 공감가는 훌륭한 영화 소재일 수밖에 없다. 독립영화 감독들이 이들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인 점도 한몫 한다”고 분석했다.

추락과 비상의 청춘백서를 펼쳐든 독립영화는 지친 젊은 세대에게 어깨를 내주며 "힘내라"고 응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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