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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본색] (19) '대배우' 오달수, '명품조연'의 연기법 "그냥 한 번 해봐" (인터뷰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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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본색] (19) '대배우' 오달수, '명품조연'의 연기법 "그냥 한 번 해봐" (인터뷰Q)
  • 원호성 기자
  • 승인 2016.06.03 12: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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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자 Tip!] 한국에서 출연한 영화로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배우가 누구일까? '명량'으로 한국영화 최고 흥행기록을 보유한 최민식? '국제시장'과 '베테랑'으로 사상 처음 한 해 '쌍천만' 기록을 쓴 황정민? 아니면 '변호인'의 송강호? 정답은 의외의 곳에 있었다. 아마도 한국에서 자신이 출연한 영화로 누적관객 1억 명을 넘긴 유일한 배우. 바로 '천만요정' 오달수다.

[스포츠Q(큐) 원호성 기자] 최근 한국영화에서는 '오달수'라는 배우의 존재감을 빼놓고는 영화를 설명하기가 힘들 정도로 오달수는 관객들에게 익숙한 배우다.

오달수는 봉준호 감독의 '괴물'을 시작으로,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과 '암살', 윤제균 감독의 '국제시장', 양우석 감독의 '변호인',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 그리고 이환경 감독의 '7번방의 선물'까지 하늘이 내려주신다는 '천만영화'를 일곱 편이나 경험했고, 그 외에도 '해적 : 바다로 간 산적', '조선명탐정',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올드보이' 등 수많은 히트작에 출연해 왔다.

오달수가 이처럼 누적 최다관객을 보유한 배우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그가 주인공이 아닌 '명품조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연이라고 해도 오달수는 언제나 그가 출연한 영화에서 확실히 '오달수'라는 배우의 이미지를 관객들에게 새겨넣을 정도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오달수는 어떻게 '오달수'라는 이미지를 한국 관객들에게 만들어준 것일까?

▲ '대배우' 오달수 [사진 = 카라멜 제공]

◆ 연기인생 26년, 영화인생 14년 만의 첫 주연작 '대배우'…"나는 연기 못하는 배우"

오달수의 연기인생은 1990년부터 시작된다. 오달수는 1990년 이윤택 연출가가 이끄는 극단 연희단거리패의 연극 '오구'에서 단역을 맡으며 처음 연기를 시작하게 된다. 사실 오달수의 연기인생은 그조차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배우를 하겠다는 생각을 딱히 했던 것도 아니고 우연히 연극일을 돕다가 무대에 서게 됐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본격적으로 배우를 시작하게 됐으니 말이다.

우연히 시작했던 연극무대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발하며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아가던 오달수는 2002년 영화 '해적, 디스코왕이 되다'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처음으로 영화에 출연하게 됐다. 그리고 오달수는 2003년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에서 최민식을 15년 동안 감금해 둔 사설감옥의 관리인으로 나와 처음으로 관객들에게 빛나는 존재감을 알렸다.

그렇게 '올드보이'를 시작으로 빛나는 '명품조연' 활동을 이어오던 오달수는 2016년 영화 '대배우'로 드디어 첫 주연을 맡게 됐다. 영화는 '대배우'라는 거창한 제목과 달리 20년 동안 대학로에서 아동극 '플란다스의 개'에서 사람도 아닌 개 '파트라슈'를 연기해 온 무명배우 장성필(오달수 분)이 세계적인 거장 깐느박(이경영 분)의 영화에 출연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리고 있다. 그러니까 엄밀하게 말하면 '대배우'라는 제목은 '무명배우'의 삶을 의미하는 역설적인 제목인 것이다.

"그래도 연기 잘하는 역할이 아니라 다행이에요. 전 제가 연기를 잘 한다고 생각을 안 해 봐서, 연기 잘 하는 역할을 연기하라고 했으면 정말 끔찍했을 거예요. '대배우'에서 '장성필'의 캐릭터는 제가 연기를 하며 지나온 시간들하고 많이 닮아 있어서 캐릭터를 입기가 부담스러웠죠. 순간순간 '장성필'이 아닌 '오달수'가 막 튀어나오니까. 차라리 음악가나 화가 같은 역할이면 제 분야가 아니니 뭔가 새롭게 만들 텐데, 이건 어떻게 보면 저같이 연극하는 사람들 이야기니 캐릭터를 입기가 까다롭더라고요."

▲ 영화 '대배우'

"연기자는 캐릭터의 가면을 써야 하는데, 이걸 흔히 '유리가면'을 쓴다고 말해요. 근데 이게 자꾸 내가 튀어나오면서 깨지니까 방해가 되고 몰입이 안 돼요. 그래서 나는 연기를 못 하는 배우예요. 몰입을 해야 하는데 몰입을 하지 못하고, '오달수'가 기어나오면 안 되는데 자꾸 스물스물 기어 나오는 거죠."

첫 주연 뿐 아니라 연극무대에서 10년 넘게 배우활동을 했기에 처음 영화에 와서도 오달수는 상당히 고생을 많이 했다. 그냥 쉽게 같이 '연기'라고 말하지만 관객들을 앞에 두고 무대에서 하는 연극의 '연기'와 관객이 없이 카메라 앞에서 촬영을 하는 영화의 '연기'가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오달수의 시련은 영화 '대배우'에서 무명배우 '장성필'이 처음 영화에 출연하며 겪는 소동들하고도 고스란히 연결된다.

"처음 영화에 와서 방식이 달라서 적응 못한 것은 사실이에요. 물론 '대배우' 속 '장성필'처럼 반사판을 발로 찬다거나 할 정도는 아니었죠. 첫 영화인 '해적, 디스코왕이 되다' 할 때는 정말 욕을 많이 먹었어요. 촬영감독님이 일흔도 넘으신 노감독님이셨는데 제가 자꾸 카메라로 찍는데 앵글 밖으로 나간다고 하면서 어디서 저런 애를 데려왔냐고 욕도 먹고 했었죠."

"지금 딱히 주연 시나리오가 들어오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에 고생을 너무 많이 해서 앞으로는 기회가 와도 주연은 좀 신중하게 하려고 해요. 사실 몸으로 하는 고생은 그리 크지 않은데, 내가 영화를 이끌어가야 한다는 압박? 그런 부분에 있어서 노심초사를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앞으로는 주연이라고 해도 한 번 더 생각해 보려고요. 주연, 그거 아무나 하는 게 아니더라고요."

▲ '대배우' 오달수 [사진 = 카라멜 제공]

◆ '명품조연' 오달수의 연기법 "그냥 한 번 해봐. 해보면 알게 되거든"

개성 넘치는 연기로 '신스틸러'라고 불리며 인기를 얻은 배우들이 한번쯤 거치는 과정이 있다. 한 영화에서 개성있는 연기로 '신스틸러'에 오르면 이후 한동안 계속 비슷한 역할만 맡게 되는 경우가 많게 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결국 인정받는 배우들도 있지만, 이 과정에서 의외로 많은 배우들이 자신이 가진 매력을 순간적으로 재미는 있지만 비슷비슷한 이미지로 소비한 채 대중의 기억에서 슬그머니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오달수는 참으로 질기고 강한 생명력을 지닌 '명품조연'이다. '올드보이'로 주목받은 후 비슷비슷한 코믹 이미지로 영화에 출연하던 오달수는 한재림 감독의 '우아한 세계'의 '현수'로 조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우아한 세계'에서 오달수가 연기한 '현수'는 조직의 No.2인 송강호와 적대조직의 No.2로 서로 칼을 겨눈 사이지만, 정작 두 사람은 만나면 같이 국밥을 먹으며 친하게 지내는 사이였다. 이를 통해 오달수는 단순히 코믹연기나 건달연기만이 아니라 페이소스 짙은 코믹연기가 가능한 배우라는 것을 보여줬고, 이런 흐름은 '박쥐'나 '변호인', '국제시장'과 같은 작품들에서 오달수가 보여준 모습으로 연결된다. 물론 그 사이 오달수는 '조선명탐정'이나 '도둑들'처럼 그의 장기인 코믹연기가 돋보이는 '신스틸러'도 계속 해 왔고 말이다.

"이상하게 들릴지는 모르지만 배우로서 어떤 배역을 하고 싶다는 욕심은 딱히 없어요. 제가 직접 시나리오를 쓰지 않는 이상은 그냥 들어오는 작품, 시나리오 보고 내 마음을 흔드는 작품을 할 뿐이에요. 전 작품만 좋다면 역할까지 골라가면서 연기를 하고 싶진 않아요."

"골라가면서 연기를 하지는 않는다고 해도 한 번은 징글징글하고 독한 악역을 해 보고 싶긴 하네요. 지금까지 선한 역할을 해 본 적도 별로 없지만, 선하지는 않아도 연민이 가는 그런 역할이 많았거든요. 나의 악마성을 드러내 줘서 감사하다는 수상소감을 하신 배우분이 계셨는데, 저도 내 안에 있는 악마성을 한 번 끌어내보고 싶긴 해요. 징글징글할 정도의 악역을 내가 소화해 낼 수 있을지."

▲ '대배우' 오달수 [사진 = 카라멜 제공]

역할은 망가지고 웃겨도 오달수는 항상 진지하게 연기를 대한다. 비록 어린 시절부터 배우가 꿈이었고 그래서 연극학과에 진학해 체계적으로 연극을 배우지는 않았지만, 연희단거리패에서 명연출가인 이윤택 연출에게 가르침을 받고 쟁쟁한 선배들과 연극을 하며 오달수는 자연스럽게 연기를 진지하게 대하고, 고민하는 법을 배워 왔다. 이런 자세가 아마도 오달수라는 배우의 긴 생명력을 만들어낸 원천일 것이다.

"제 연기의 롤모델은 주진모 선배님이에요. 연기보다도 배우로서 살아가는 삶의 태도에서. 2002년에 '인류 최초의 키스' 때도 물론 연기도 훌륭하시지만, 무대 밖에서도 노가다하시다 모래 잔뜩 묻혀서 공연시간 직전에 오셔도 정말 뛰어난 연기를 하셨어요. 주진모 선배를 보며 배우란 어떤 것인지를 배웠죠."

"후배들이 저한테 어떻게 연기하면 좋으냐는 질문들을 해요. 그럼 저는 주진모 선배한테 들은 대로 대답해요. 그냥 한 번 해 봐. 제가 어릴 때 주진모 선배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이제 그게 조금 이해가 되더라고요. 해 봐야 돼요. 내가 아무리 이야기를 해 봐야 못 알아들어요. 근데 한 번 해 보면 그게 무슨 말인지 알게 되거든요. 그렇게 스스로 깨달아 가는 거죠. 그래서 저는 지금도 영화를 보며 제 연기 중 어색한 부분을 찾아내 왜 어색한지 분석을 해요. 그럼 다음부터는 같은 실수를 안 해요. 그게 연기를 깨닫는 거예요. 찾아내서 깨닫는 것."

▲ '대배우' 오달수 [사진 = 카라멜 제공]

◆ 오달수, 배우로서의 목표 "100년, 그리고 죽기 10분 전"

배우들이라면 각자 나름의 목표가 있다. 무명일 때는 어서 나도 주목받는 역할을 맡아서 연기를 하고 싶고, 주목받기 시작하면 스타가 되고 싶어진다. 스타가 되고 나면 이번에는 톱스타, 아니 할리우드 같은 더 큰 시장에 진출하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오달수에게는 그런 거창한 목표가 존재하지 않는다. 첫 주연작인 '대배우'에 출연한 후에도 앞으로도 주연만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연을 맡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겠다고 겸양하는 배우니 그런 거창한 목표가 없는 것도 이해가 가긴 한다.

"제가 2000년에 '신기루만화경'이라는 극단을 만들어서 지금 종신제 대표예요. 근데 저는 극단에 바라는 것이 없어요. 그냥 딱 하나. 대표를 내가 종신제로 하는 것은 좋은데, 만약 내가 죽고 나면 다른 사람이 이어서 하라는 거예요. 일본에 '문학좌(文學座))'라는 극단이 2002년도에 80주년을 맞아서 합동공연을 한 경험이 있어요. 이제 곧 100주년이 되잖아요. 대대손손 후배들이 종신제로 대표를 이어가면서 적어도 한 세기는 가봐야 된다는 거죠."

사실 오달수의 목표는 엄청나게 거창한 목표이기도 하다. 그나마 자라나던 자생적인 토양마저 철저히 상업논리에 지배당한 지금의 연극계에서 100년, 한 세기 동안 살아 숨쉬는 극단을 만들겠다니. 하지만 그렇다고 오달수가 '신기루만화경'에서 한국 연극사에 길이 남을 대박 작품을 만들겠다거나, 연극의 패러다임을 바꿀 새로운 도전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그저 가늘고 길게 오래 살아 숨쉬는 극단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것 역시 오달수의 '깨달음'이라면 '깨달음'일 것이다.

"깨닫는 과정은 자신이 깨지면서도 앞으로 나가야지만 가능해요. 그런데 그래도 그건 자기만 깨닫는 거잖아요. 내 마음 깊숙한 그런 것들은 관객들은 알 수가 없고, 누구에게 말로 이해를 시킬 수도 없어요. 그래서 제 삶의 진정한 목표는 이거예요. 죽기 10분 정도 전에 촌철살인처럼 '난 이런 것들을 깨달았다'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러고 가는거죠.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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