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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현장Q] 스포츠 콘텐츠의 홍수, 어떻게 읽고 보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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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현장Q] 스포츠 콘텐츠의 홍수, 어떻게 읽고 보고 있나요?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6.06.06 09: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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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국제스포츠미디어학술대회...한국스포츠미디어학회-북미스포츠사회학회 공동 학술 세미나

[200자 Tip!] 스포츠 경기를 보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 직접 경기장을 찾아가거나 신문이나 방송, 인터넷뉴스, 중계 방송 등을 통한 것이다. 직접 경기를 관전했어도 되짚어보기 위해 신문, 방송, 인터넷뉴스를 찾게 된다. 이처럼 스포츠 콘텐츠를 제공하는 신문, 방송, 인터넷매체를 보통 스포츠 미디어라고 한다. 스포츠를 좋아한다면 스포츠 미디어가 제공하는 콘텐츠를 찾아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워낙 많은 콘텐츠가 쏟아지다보니 어떤 것이 '양질'이고 '저질'인지 분간하기 힘들다. 스포츠 콘텐츠를 제대로 보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스포츠Q(큐) 글 박상현·사진 이상민 기자] 1990년대만 하더라도 경기 결과를 알려면 스포츠 신문이나 저녁에 방송되는 스포츠 뉴스를 봐야만 했다. 박찬호의 투구와 박세리의 골프 경기를 직접 보려면 TV를 통해서만 가능했고 이를 놓치면 저녁 TV 뉴스와 다음날 신문 보도를 기다려야 했다.

▲ 한국스포츠미디어학회와 북미스포츠사회학회는 3일 서울 한양대학교 백남학술정보관에서 공동 주최로 '스포츠 미디어 콘텐츠 및 스포츠 저널리즘의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주제로 국제스포츠미디어학술대회를 열었다. 이번 세미나는 스포츠 미디어와 관련한 첫 국제 학술 세미나여서 스포츠 저널리즘에 대한 진지한 토론의 장이 됐다.

인터넷의 발달로 많은 것이 바뀌었다. TV뿐 아니라 컴퓨터, 스마트폰을 통해서도 국내외 중계를 지켜볼 수 있게 됐다. 또 경기가 끝난 후 저녁 TV 뉴스나 다음날 신문을 기다릴 것 없이 인터넷만 접속하면 곧바로 결과를 알 수 있다. 불과 20년 사이에 생겨난 놀라운 변화다.

하지만 스포츠 미디어의 발달만큼이나 스포츠 저널리즘이 발전을 이뤘는지는 의구심이 든다. 많은 언론학자들은 현재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스포츠 저널리즘이 확립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와 함께 그동안 스포츠 저널리즘에 대한 연구와 현재 스포츠 미디어에 대한 비판이 너무 소홀했다는 반성론도 고개를 든다.

한국스포츠미디어학회는 북미스포츠사회학회와 공동으로 3일 서울 한양대학교 백남학술정보관에서 '스포츠 미디어 콘텐츠 및 스포츠 저널리즘의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주제로 국제스포츠미디어학술 대회를 열었다. 스포츠 미디어와 관련한 첫 국제 학술 세미나라는 점에서 스포츠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스포츠 저널리즘의 진지한 연구가 시작됐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세미나였다.

◆ 귀화선수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 한국과 미국의 차이는?

이번 학술세미나에서는 윤천석 아주대 교수의 '귀화선수 사례로 본 국가주의를 향한 미디어의 역할'을 비롯해 셰릴 쿠키 미국 퍼듀대 교수 겸 북미스포츠사회학회 회장 등 국내외 9명의 학자들이 다양한 연구 발표를 했다.

윤천석 교수는 "올림픽과 월드컵은 국가 위상을 높이는 양대 축으로 스포츠 대회에서의 성공은 한 나라의 성공처럼 인식되고 있다"며 "결국 미디어의 효과도 내셔널리즘의 구축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귀화선수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국내에서 쇼트트랙 1인자로 꼽혔던 안현수는 러시아로 건너가 빅토르 안이 됐지만 우리나라 역시 아이스하키와 바이애슬론, 루지 등에서 캐나다, 러시아, 독일 출신 선수를 우수선수 추천으로 특별귀화 작업을 완료했거나 진행 중이다.

이에 대해 윤 교수는 "많은 선수들이 경기 경험 축적과 출전에 대한 기회 보장, 금전, 자신의 능력을 테스트받는 것에 대한 갈망, 정치적인 문제 등으로 귀화를 선택한다"며 "하지만 귀화선수에 대한 일반인의 반응은 국내선수보다 훨씬 떨어진 것으로 분석됐다"고 밝혔다.

▲ 셰릴 쿠키 퍼듀대 교수 겸 북미스포츠사회학회 현 회장이 스포츠 미디어의 남녀 성차별에 대한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또 테레사 월튼-피셋 미국 켄트주립대 교수 겸 북미스포츠사회학회 차기 회장은 2014년 보스턴 마라톤에서 우승을 차지한 멥 케플레지기에 대해 주목했다. 케플레지기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마라톤 은메달리스트로 2013년 보스턴 마라톤 테러 이후 미국인의 눈물을 닦아준 마라토너로 유명하다.

월튼-피셋 교수는 "에티오피아 독립전쟁 과정에서 난민이 돼 이탈리아를 거쳐 1987년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 출신인 케플레지기는 1983년 이후 보스턴 마라톤에서 31년 만에 보스턴 마라톤 우승을 차지한 미국인 선수가 됐다"며 "나이가 많다는 점 때문에 아테네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고도 언더독으로 분류됐지만 보스턴 마라톤 우승으로 미국의 영웅이 됐고 미디어의 집중 관심을 받았다"고 소개했다.

◆ 스포츠 미디어에서 나타나는 남녀 성차별과 성 상품화 문제는?

이날 세미나에서 가장 관심있게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은 스포츠 미디어에서 남녀 성차별 문제였다. 쿠키 교수는 미국 스포츠 미디어가 여성스포츠에 대해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여러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쿠키 교수는 1989년부터 2014년까지 5년마다 데이터를 분석해 TV 뉴스와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을 통해 남성스포츠와 여성스포츠가 어떻게 보도되고 있는가를 분석했다. 결과는 남성스포츠에 편중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스포츠 현장에서 남녀 차별은 비단 한국의 문제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쿠키 교수는 "1989년 데이터를 조사해보니 남성스포츠의 경우 전체 92.0%를 차지하고 있었던데 비해 여성스포츠는 5.0%에 그쳤다. 나머지 3.0%는 혼성스포츠였다"며 "2014년 데이터를 조사해보니 차별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남성스포츠는 94.4%, 여성스포츠 3.2%, 혼성스포츠 2.4%로 여전히 남성스포츠에 대한 비중이 컸다"고 결과를 공개했다.

▲ 여성 스포츠 스타들이 각종 미디어를 통해 섹시한 모습을 선보이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성 상품화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셰릴 쿠키 교수는 이를 성 상품화의 시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의 스포츠 참여 욕구 증대를 위한 또 다른 방편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한다.[사진=스포츠일러스트레이트 캡처]

TV 중계에서 나오는 아나운서와 해설자의 말투 역시 남녀 차별을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로 지목됐다. 쿠키 교수는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나 프로농구 NBA 등 남성스포츠에서는 '대단하네요(incredible)', '믿을 수 없네요(unbelievable)' 등 감탄사가 자주 들어가지만 여성스포츠에서는 매우 담담한 어조로 얘기한다"며 "또 남자 선수와 여자 선수에 대한 인터뷰 질문에서도 차이가 극명하다"고 설명했다.

이번 학술 세미나는 스포츠 미디어와 관련해 국내외 저명한 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 의견을 나누기도 해 스포츠 미디어에 관심을 갖고 참가한 청중들에게는 연구 발표 이상의 지식을 습득하는 계기가 됐다. 남녀 차별과 관련해 스포츠의 여성 선수 성(性) 상품화에 대해 쿠키 교수에게 질문할 기회가 주어졌다.

그렇지 않아도 여성 선수에 대한 성 상품화는 논란이 되고 있다.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2연속 금메달리스트 이상화처럼 튼튼한 허벅지를 갖고 있는 선수들을 향해 '꿀벅지'라는 수식어를 붙이기도 한다. 미국에서도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 같은 스포츠 전문지의 모델로 종종 여성 스타가 등장해 반라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쿠키 교수는 이를 성 상품화의 시선으로 보는 것은 곤란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쿠키 교수는 "세계적인 여성스포츠 스타들이 스포츠 전문지의 모델로 나서는 것은 '열심히 운동하면 다른 여성들도 튼튼하고 건강한 신체를 가질 수 있다'는 일종의 자극제 역할을 한다. 여성들의 스포츠 참여 욕구 증대라는 시선으로 봐야지, 성 상품화라는 시선에는 동의할 수 없다"며 "또 여성 선수들은 남성에 비해 수입이 적기 때문에 모델로 나서는 방법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고 밝혔다.

▲ 제프리 몬테스 데 오카 미국 콜로라도대 교수가 NFL 마케팅과 관련한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 아직은 걸음마 단계인 한국의 스포츠 저널리즘, 더욱 발전하려면

이밖에 이종성 한양대 교수의 '일제 시대 한국 스포츠 이벤트와 관련한 언론의 역할', 박진경 한국외국어대 교수의 '건강과 몸에 관련한 일제시대 인쇄 매체의 보도 현황', 조슈아 뉴먼 미국 프롤리다주립대 교수 겸 북미스포츠사회학회 차차기 회장의 'E스포츠', 제프리 몬테스 데 오카 미국 콜로라도대 교수의 'NFL(북미프로미식축구) 마케팅'에 대한 주제 발표도 이어졌다.

세미나에 참석한 교수들과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몇몇 예비학자들은 일부 스포츠 미디어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어 아직 걸음마 단계인 한국의 스포츠 저널리즘의 확립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세미나에 참석한 한 대학원생은 "현재 포털 사이트에 나오는 스포츠 미디어에 대한 콘텐츠를 연구하고 있는데 정말 한숨이 나올 지경"이라며 "최근 인터넷 언론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어뷰징이 만연되어 있어 개선책이 시급한데 문제점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학원생은 "어뷰징을 일삼는 저질 언론들의 폐해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독자들이 먼저 올바른 스포츠 콘텐츠를 찾는 노력이 중요하다. 어뷰징 기사에 관심을 두지 말고 클릭을 하지 않는 것도 한 방법"이라며 "또 포털 사이트에서도 이런 어뷰징 기사를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는 새로운 알고리즘을 개발해야 한다. 빅데이터를 활용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는 의견을 내놨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철저하게 흥미 위주로 구성된 한국의 스포츠 저널리즘은 스포츠 현장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부족하다. 지금은 그나마 나아졌지만 독자들의 시선을 끌기 위한 자극적인 제목 달기 등 폐해가 현재 인터넷 언론의 어뷰징처럼 심각했다"며 "스포츠 저널리즘의 재확립을 위해 학계와 현장이 함께 연구하고 토론할 때가 오지 않았나 싶다. 지금대로라면 한국 스포츠 저널리즘의 발전이 요원하다"고 지적했다.

▲ 한양대 백남학술정보관에서 3일 열린 국제스포츠미디어학술대회에 참석한 국내외 언론학자들이 행사가 끝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취재후기] 이번 세미나는 스포츠 현장을 뛰어다니는 기자로서 한번쯤 곱씹을 것이 많은 기회였다. 스포츠 기사를 어떻게 쓰고 있는가, 그리고 스포츠 콘텐츠를 어떻게 구성하고 있는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됐다.  또 스포츠 미디어에 종사하고 있는 다른 언론인들은 지금 이 순간 기사를 쓰거나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진지한 고민과 연구를 하고 있는지를 되묻게 만드는 세미나이기도 했다. 하지만 스포츠 저널리즘 관련 학술세미나에 스포츠 미디어에 종사하는 언론인이 거의 참석하지 않았다는 점은 마음 한구석을 어둡게 만든다. 한국스포츠미디어학회는 앞으로도 공동 주최 학술 세미나를 정례화한다고 하니 언론인들이 관심을 갖고 진지한 연구와 고민을 함께 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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