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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① 영웅은 태어나지 않는다, 화성에서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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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① 영웅은 태어나지 않는다, 화성에서 만들어진다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4.09.04 10: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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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센 2군' 화성 히어로즈, 차세대 1군 주전 양성소 자리매김…주전 선수 배출하는 화수분 역할 톡톡

[300자 Tip!] 한국 프로야구에서 유일하게 1군과 2군의 명칭이 다른 팀이 있다. 바로 넥센 히어로즈와 화성 히어로즈다. 모든 팀은 1군과 2군의 팀명이 동일하지만 오직 넥센의 2군만이 화성 히어로즈로 활동한다. 이 때문에 유니폼도 1군과 2군의 것이 다르다. 2군 유니폼에는 화성시의 마스코트인 공룡이 박혀있다. 이처럼 넥센 2군인 화성 히어로즈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그 속내는 더 특별하다.

[화성=스포츠Q 글 박상현·사진 이상민 기자] 화성 히어로즈의 홈구장인 화성 히어로즈 베이스볼파크까지 가는 길은 꽤나 멀었다. 안산에서 대부도 방향으로 길을 틀어 10여분을 들어가야 했다. 비봉습지공원이라는 다소 낯선 곳에 야구장이 있다. 그러나 야구장이 보인다고 해서 곧바로 내리면 안된다. 아직 포장되지 않은 울퉁불퉁한 길을 더 들어가야만 비로소 화성 히어로즈 베이스볼파크가 나온다.

선수들에게 이 정도 길은 아무렇지도 않다. 지난해 상황과 비교하면 화성은 그야말로 천국이다.

그동안 넥센 2군은 한 지역에 정착하지 못했다. 경기도 원당구장에서 훈련했던 넥센 2군은 2009년부터 전남 강진으로 내려갔다. 1군의 연고지는 서울이지만 2군은 전남 강진에서 뛰다보니 어려움이 많았다. 다른 팀의 2군들은 대부분 1군 연고지 부근에 자리하고 있지만 넥센만큼은 1군과 2군의 거리가 까마득하게 멀었다.

그러나 화성으로 오면서 선수들은 저절로 흥이 난다. 2군과 1군의 거리가 강진과 서울만큼이나 멀어보였지만 이제는 1군의 거리가 가까워졌다며 자신감이 붙은 모습이다.

▲ 김지수(왼쪽)와 장시윤이 퓨처스리그 경기에서 이닝 교체 때 수비 훈련을 하고 있다.

◆ 넥센의 진정한 힘은 2군에서 나온다

영웅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얘기가 있다. 올시즌 정규리그에서 2위를 달리고 있는 넥센의 영웅들도 우연히 또는 갑자기 태어난 것이 아니다.

2000년대 초반 한국 프로야구의 강호로 군림했지만 해체된 현대 유니콘스의 선수들이 모여 2008년 우리 히어로즈로 출범한 것이 현재 넥센의 시초다. 그러나 출범 초기 영웅들은 지난해 4위를 차지하며 준플레이오프에 오를 때까지 다섯 시즌 연속 포스트시즌에 오르지 못했을 정도로 약팀이었다. '현대의 챔피언 DNA' 같은 것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현대가 팀이 어려워지면서 주전 선수들을 대거 트레이드시켰기 때문이다. 현대에서 '포도대장'이라는 별명을 들으며 주전 포수로 자리를 확고히 했던 박경완도, 주전 유격수 박진만도 모두 팀을 떠났다. 현대 유니콘스의 과거 화려했던 모습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 넥센을 약체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넥센이 강팀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스타급 선수를 사모았기 때문이 아니다. 2군에서 기량을 갈고 닦은 선수들이 발전을 거듭해 주전이 되고 스타로 만들어졌다.

올시즌 41개의 홈런을 치며 3년 연속 홈런왕에 도전하고 있는 박병호(28)만 하더라도 처음부터 스타가 아니었다. 2005년 1차 드래프트로 LG의 지명을 받아 3억3000만원의 계약금을 받고 프로에 데뷔했지만 제대로 빛을 보지 못했다.

2011년 넥센으로 건너간 뒤에도 그는 주전이 되지 못했다. 2군에 있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러나 2012년부터 타격에서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하면서 넥센의 거포가 됐고 이제는 한국 프로야구의 대표 4번 타자가 됐다.

▲ 화성 히어로즈 선수들이 화성 히어로즈 볼파크에서 열린 2014 한국야쿠르트 세븐 프로야구 퓨처스리그 경기를 앞두고 덕아웃 앞에 모여 전의를 다지고 있다.

서건창(25)도 마찬가지. 그는 두번이나 신고선수로 프로 유니폼을 입었다. 2008년 LG의 신고선수로 프로에 데뷔한 서건창은 방출된 뒤 2011년 다시 한번 신고선수로 넥센에 입단했다.

지금 서건창은 넥센 최고의 리드오프다. 110경기를 치르면서 170개의 안타를 쳐내며 타율 0.366을 기록 중이다. 3일 현재 타율 2위, 득점 1위(111), 최다안타 1위, 도루 2위(42) 등으로 대부분 공격부문 상위권에 랭크돼 있다. 이쯤 되면 넥센의 진정한 힘은 2군에서 나온다고 해도 결코 과장이 아니다.

또 김성갑(53) 화성 히어로즈 감독이 가장 모범사례로 드는 선수는 문우람(22)이다. 2011년 신고선수로 입단한 문우람은 지난해 1군으로 올라간 이후 아직까지 화성 히어로즈로 내려오지 않으며 당당한 1군 선수로 자리를 굳혔다. 넥센이 치른 110경기 가운데 105경기에 나와 295타수 84안타, 타율 0.285를 기록하며 알토란 같은 활약을 해주고 있다.

이 때문에 화성 히어로즈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은 '제2의 박병호', '제2의 서건창', '제2의 문우람'이 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릴 수밖에 없다. 넥센의 홈구장인 목동구장과 거리가 가까워진만큼 열심히만 하면 1군에 올라갈 수 있다는 동기부여가 있기 때문에 더욱 비지땀을 쏟는다. 이로 인해 화성 히어로즈는 넥센의 확실한 화수분으로 자리하고 있다.

▲ 화성 히어로즈의 선발 투수 장시환이 역동적인 동작으로 공을 뿌리고 있다. 장시환은 2007년 2차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2순위로 지명을 받았을 정도로 기대를 모으는 파이어볼러였지만 아직까지 1군 무대에서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 '선수가 곧 재산' 쉽게 내치지 않는다

화성 히어로즈의 또 다른 특징은 선수들을 쉽게 내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른 팀 같았으면 벌써 방출됐을 선수라도 화성 히어로즈에서는 기회를 더 준다.

넥센이라는 팀이 성장했던 과정을 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박병호나 서건창 등 주전들의 대부분이 다른 팀에서 기회를 잡지 못했던 경험이 있다. 서건창만 해도 신고선수로 LG에 입단했다가 방출된 뒤 다시 신고선수로 넥센에 입단한 경우다. 이런 독특한 팀 분위기가 선수에게 한번이라도 더 기회를 주는 문화가 됐다.

그래서인지 화성 히어로즈에는 유난히 20대 중반, 후반의 선수가 많다. 보통 2군에는 기량을 더 쌓아야 하는 신인 선수나 나이 어린 유망주들이 자리하지만 화성 히어로즈에는 다양한 연령층이 섞여 있다. 은퇴를 앞둔 송지만(42)도 있고 20대 중반, 후반의 선수도 있으며 신인 선수도 있다.

김성갑 감독은 20대 중후반 선수가 많고 쉽게 선수를 방출시키지 않는 분위기에 대해 "선수들이 꾸준한 기량을 보여주는 것도 있지만 1년 동안 가르치고 손봤는데 실력이 오르지 않는다고 해서 방출한다는 것은 손해라는 인식을 구단과 지도자 모두 함께 하고 있다"며 "새로운 선수들로 물갈이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1년 또는 2년 동안 함께 한 선수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믿고 지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화성 히어로즈는 방출되는 선수 숫자가 다른 팀에 비해 적다"고 설명한다.

가장 좋은 예가 바로 장시환(27)이다. 야구명문 천안북일고를 졸업하고 2007년 2차 드래프트 1라운드 2순위로 현대의 지명을 받은 그는 1억8000만원의 계약금을 받은 특급 유망주였다.

당시 1라운드 1순위로 KIA의 지명을 받았던 선수가 바로 양현종(26)이었으니 현대, 지금의 넥센이 얼마나 큰 기대를 걸었는지 알 수 있다.

▲ 화성 히어로즈를 이끌고 있는 김성갑 감독이 퓨처스리그 경기 도중 기록지를 살펴보고 있다. 화성 히어로즈의 가장 큰 특징은 선수들에게 한번이라도 더 기회를 주고 끝까지 믿고 나가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장시환은 아직까지 1군 무대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다. 1군 무대에서 모두 37차례 등판했지만 6패 1세이브에 7.30의 평균자책점에 그치고 있다. 시속 150km를 던지는 파이어볼러여서 시즌 초면 언제나 주목을 받는 그였지만 언제나 기대 밖이었다. 지난해 말부터는 무릎 부상 때문에 재활을 거듭했다.

이쯤 되면 웬만한 팀이라면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넥센은 장시환에게 기회를 줬다. 빠른 공을 던질 줄 아는 그에게 기대를 계속 걸고 있다는 반증이라고는 하지만 7년째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투수에게 계속 기회를 준다는 것은 여간 인내심이 있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이다.

이에 대해 장시환은 "넥센이라는 팀 자체가 어렵게 시작해서인지 선수나 코칭스태프 모두 끈끈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다. 이 때문에 더 선수들을 아끼고 기회를 주는지도 모르겠다"며 "나 역시 더이상 미완의 대기로만 남을 수 없다. 그만큼 절박하다. 1군에 올라가게 되면 이번이 마지막 기회로 알고 있는 힘껏 던지겠다"고 말했다.

장시환은 9월 로스터 확대 때 1군으로 승격됐다. 올시즌 4경기에서 2⅔이닝만 던지며 16.88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던 그가 남은 정규리그에서 데뷔 첫 승을 거둘 수 있을지 기대된다.

▲ 화성 히어로즈의 김지수가 퓨처스리그 경기에서 힘차게 스윙하고 있다. 지난해 두산과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끝내기 안타를 치기도 했던 김지수는 강정호가 외국으로 진출할 경우 넥센의 주전 유격수 1순위로 꼽히는 선수다.

◆ 주전 빠져나가도 걱정없는 넥센, 화성에 답이 있다

지금 넥센의 부동의 유격수는 단연 강정호(27)다. 올시즌 무려 38개의 홈런을 터뜨리며 박병호와 함께 넥센의 화끈한 공격력을 이끄는 그의 포지션을 위협할 선수는 아무도 없다.

시즌이 끝나면 구단 동의 아래 해외 진출을 할 수 있는 강정호를 보기 위해 벌써 일본과 미국에서 스카우트를 파견해 일거수일투족을 분석하고 있다.

그래도 넥센은 눈 하나 깜짝 안한다. 염경엽 감독도 사실상 강정호의 해외진출을 인정한다.

강정호가 빠져나간다면 넥센의 전력이 크게 약화될 것은 불보듯 뻔하다. 그러나 넥센은 '포스트 강정호'를 일찌감치 생각해놓고 있다.

강정호보다 한 살 많은 김지수(28)가 그의 뒤를 이을 주전 유격수 1순위로 꼽힌다. 동국대를 졸업하고 2009년 2차 5라운드의 지명을 받아 프로에 데뷔한 김지수는 지난 시즌 '대형 사고'를 하나 쳤다.

지난해 10월 두산과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2-2로 맞선 연장 10회말 1사 3루 상황에서 끝내기 안타로 팀의 승리를 이끈 것. 비록 넥센은 이후 두산에 3연패를 당해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했지만 김지수에 대한 가치가 재조명되는 계기가 됐다.

김지수는 내야 전 포지션이 가능하다. 서건창이 부상으로 잠시 빠졌던 지난해 그 자리를 훌륭하게 메웠고 지금은 강정호가 자리를 비울 유격수 자리를 노린다.

강정호에 비하면 김지수는 펀치력은 부족하다. 1군 무대에서 73경기에 나서 14개의 안타를 때렸지만 아직까지 홈런은 단 하나도 없다. 올시즌 퓨처스리그에서도 55경기에서 172타수 54안타를 기록했지만 홈런은 9개 뿐이다.

▲ 화성 히어로즈 선수들이 퓨처스리그 경기를 승리로 이끈 뒤 한 곳에 모여 기쁨을 나누고 있다. 현재 넥센을 정규리그 2위로 이끄는 주전들이 대부분 2군에서 나왔듯 화성 히어로즈 선수들도 내일의 1군 주전을 꿈꾸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하지만 정교한 타격감과 수비력만큼은 강정호에게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다. 올시즌 퓨처스리그에서 간간히 타석에 들어섰으면서도 3할대(0.314)의 타율을 유지하고 있다.

또 지난 시즌 두산과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도 드러났듯 찬스에 강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주로 1, 2번 타자로 나오지만 55경기에서 25타점을 기록했다는 것은 기회에 강하다는 반증이다.

김지수 역시 9월 확대 엔트리 때 1군으로 올라갔다. 수비 능력이 좋은 김지수는 2루수, 유격수 뿐 아니라 외야 수비까지 볼 예정이다. 특히 김지수는 지난 시즌 포스트시즌을 경험했기 때문에 더더욱 빼놓을 수 없는 자원이다.

김지수는 "아직 강정호를 대체할만한 실력을 갖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강정호가 해외로 진출했을 때 그 자리를 당장 메울 수 있도록 준비를 하고 있다"며 "그런 점에서 화성 히어로즈에서 뛰는 것은 경기력을 유지하는데 가장 적합하다.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다짐했다.

[취재후기] 화성 히어로즈의 올시즌 퓨처스리그 성적은 지난 시즌보다 나빠졌다. 지난 시즌 강진에서 뛰었을 때 55승 6무 39패로 남부리그 2위를 차지했지만 올시즌 화성에서는 3일 현재 40승 7무 42패로 북부리그 4위에 그치고 있다. 하지만 화성 히어로즈에는 긍정의 분위기가 가득하다. 넥센이 플레이오프 직행을 눈앞에 두는 등 1군 분위기가 좋으니 자연스럽게 화성 히어로즈 선수들도 흥이 난다. 아직 화성 히어로즈 볼파크는 공사 중이다. 보조구장과 실내연습장, 선수단 숙소, 각종 편의시설 등이 갖춰져야 진정한 화성 히어로즈 볼파크가 탄생한다. 이때가 되면 화성 히어로즈는 지역밀착형 팀으로 거듭나 전력이 더 강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화성 히어로즈가 강해지면 넥센은 더 강해진다. 화성 히어로즈의 올시즌보다 내년, 또는 내후년이 더 기대되는 이유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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