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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간막후](14) 연극 '킬 미 나우' 배우 윤나무, 17살 소년 조이를 만나다 (인터뷰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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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간막후](14) 연극 '킬 미 나우' 배우 윤나무, 17살 소년 조이를 만나다 (인터뷰Q)
  • 이은혜 기자
  • 승인 2016.06.08 1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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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자 Tip!] 최근에는 ‘안락사’, ‘존엄사’, ‘웰다잉’ 등의 개념을 이용한 영화나 공연이 늘고 있다. 특히 지난 2004년 개봉한 영화 ‘씨 인사이드’는 ‘장애’와 ‘안락사’, ‘자살’ 등의 개념을 이용해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던져 눈길을 끌기도 했다.

조이의 ‘킬 미 나우’(Kill Me Now)가 ‘힐 미 나우’(Heal Me Now)로 들린다는 제이크의 아이러니한 대사는 연극 ‘킬 미 나우’를 관람하는 관객들에게 ‘인간의 존엄’과 ‘삶’에 대한 물음표를 던진다.

[스포츠Q(큐) 글 이은혜·사진 최대성 기자] ‘연극열전’의 6번째 작품인 연극 ‘킬 미 나우’(Kill Me Now)는 선천적 장애를 가졌지만 ‘어른’이 되고 싶은 17세 소년 조이와 아들 조이를 위해 평생을 헌신한 아빠 제이크의 이야기다.

이와 동시에 두 사람의 주변 인물들을 조명하고 ‘장애’와 ‘안락사’, ‘성’(性) 등을 전면에 배치해 ‘삶’에 대한 이야기를 대범하게 풀어낸다.

캐나다 극작가 브래드 프레이저(Brad Fraser)가 발표한 작품을 조금 더 유연하게 각색한 한국형 ‘킬 미 나우’에 출연하는 배우 윤나무는 특유의 섬세한 연기로 17세 소년 조이를 연기하고 있다.

◆ 조이의 ‘삶’과 아버지 제이크의 ‘죽음’

▲ 배우 윤나무는 한국형 ‘킬 미 나우’에서 17세 소년 조이를 통해 섬세한 연기를 펼쳐 호평을 받고 있다. .

연극 ‘킬 미 나우’ 속 조이는 17세 소년이다. 선천적인 장애를 가지고 있어 몸을 씻고, 문을 여는 것조차 혼자 할 수 없다.

사실 소년 조이에게 ‘삶’은 투쟁의 연속이다. 세상의 편견과 싸워야 하고 변화하는 자신과도 싸워야 한다. 이 과정에서 조이는 수많은 좌절을 겪어야 했고, 실패를 맛 봐야 했지만 포기 하지 않는다. 그는 ‘어른으로서 성장’하기 위한 과정으로 ‘독립’을 생각하기도 하고, 아빠의 고통을 지켜보며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기도 한다.

어쩌면 조이는 그 누구보다 ‘삶의 무게’를 빠르게 인식하게 됐을지도 모른다. 조이를 연기하는 윤나무는 그의 삶을 ‘좌절’과 ‘인정’이’라는 단어로 설명했다.

“아마 조이는 ‘나에게 장애가 있다’는 걸 인식한 순간 한 번 무너졌을 거예요. 그리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장애 때문에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없을 때가 많았을 거예요. 장애 때문에 막히고, 막히고, 막히고… 그렇지만 조이는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자신이 장애가 있다는 걸 ‘인정’했을 거고, 자신이 가진 범위 안에서 해결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을 거예요. 계속 살아가야 하니까. 조이의 삶은 그런 과정의 연속이었을 거예요”

“아버지 제이크의 죽음 역시 조이의 삶에는 또 하나의 면역제가 됐을 거라고 생각해요. 너무 슬프고, 아프지만 그리고 또 정말 힘들지만 스스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인정하고 전보다 더 성장했겠죠?”

 

연극 ‘킬 미 나우’는 선천적인 장애를 가진 조이의 아버지 제이크가 불치병에 걸리며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그리고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조이는 제이크의 병이 깊어짐과 동시에 성장한다.

극 중반부, 본인 위주로 돌아가던 조이의 세상은 철저하게 제이크를 중심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철없고 이기적이던 17살 소년이 성장하는 과정은 ‘아버지의 아픔’과 함께여서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특히 극 말미 조이가 아빠 제이크의 죽음을 지켜봐야하는 상황은 무섭도록 무겁고, 날카롭게 다가오는 장면 중 하나다.

“사실 그 장면 정말 힘들어요. 극 전개에서 아빠가 아픈 걸 알게 되고 조이가 ‘아빠한테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옆에 있겠다’고 말하잖아요. 얘는 이 말을 지키려고 했던 것 같아요. 사실 어떤 자식이 아빠가 스스로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싶겠어요. 어쩌면 조이는 아빠의 죽음이 반대로 아빠가 영원히 살 수 있는 방법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것 같기도 해요. ‘현재’가 너무 고통스러우니까”

“사실 이 작품이 ‘안락사’나 ‘장애’를 다루고 있다는 건 정말 표면적인 것 같아요. 오히려 조이가 성장하고 자유를 찾는 과정은 어떤 걸까, 아빠 제이크의 ‘존엄성’은 어떻게 지켜질 수 있을까. 그런 면에서 바라본다면 아빠의 ‘자살하고 싶다’는 말을 듣게 된 조이가 그런 선택을 할 때까지 정말 많이 고민했을 거예요. 정말 아빠가 괴로워 보이니까요”

◆ ‘킬 미 나우’를 선택한 이유? “‘장애’와 ‘어리다’는 설정은 문제 아냐”

 

‘킬 미 나우’ 공연 전 윤나무는 뮤지컬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이하 ‘한밤개’)를 통해 자폐아인 크리스토퍼를 연기했고, ‘로기수’를 통해서는 전쟁 포로 로기수를 연기했다.

‘한밤개’와 ‘로기수’를 연속으로 공연하며 고도의 집중력과 체력, 섬세한 감정선을 유지해야 했던 윤나무의 ‘킬 미 나우’ 선택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섬세한 감정의 소모가 심한 극들을 연속으로 공연한다는 것이 부담스럽지는 않았냐는 질문에 윤나무는 “처음에는 거절하려 했었다”고 밝혔다.

“원문은 훨씬 더 강했어요. 제가 원문을 작년 카포네가 막 시작했을 무렵에 받았는데, 다 읽고 나서 펑펑 울었어요. 그리고 겁이 났고, 두려웠죠. 사실 ‘블랙메리포핀스’(요나스 역), ‘한밤개’를 통해 보여줬던 ‘어리고 장애를 가진 역할’은 이제 그만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다들 그렇게 말했어요. 그런데 사실 ‘장애’나 ‘어리다’가 문제가 아니잖아요.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마음이나 생각이 어떤 건지 호기심이 생기면 할 수도 있는 거니까. 그래서 마음속으로 ‘너 준비 됐지?’라고 물어 보고 참여 한 거죠. 물론, 대본이 가진 힘도 좋았고요.”

스스로에게 준비가 됐냐고 물으며 돌입한 ‘킬 미 나우’ 연습은 어느 하나 쉬운 부분이 없었다. ‘조이의 언어’로 말하는 방법부터 연출의 도움을 받아야 했고, 조이의 장애와 생활에 대한 이해는 테이블 리딩을 통해 이뤄졌다.

오히려 윤나무가 가장 어렵게 생각 했던 것은 조이의 ‘마음’이었다. 과거 ‘블랙메리포핀스’ 무대에 오를 때도, ‘한밤개’를 통해 무대에 오를 때도 ‘어디가 불편한 캐릭터인가’, ‘어느 부분이 가장 힘들까’보다 캐릭터의 ‘생각’과 ‘마음’에 집중했다. 의외로 답은 간단했다.

“조이의 마음에 대한 의문이 쉽게 풀리지는 않았어요. ‘얘가 어떤 마음으로 장면을 넘기고 있을까’ 그게 풀리지 않았어요. 공연을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조이는 정신지체장애가 아니거든요. 라우디의 ‘아저씨한테는 돈, 조이에게는 머리, 나에게는 힘’이라는 말처럼 조이는 굉장히 똑똑한 아이잖아요. 어쩌면 이기적일수도 있는 17살의 사춘기 소년. 우리랑 크게 다르지 않은 친구라고 생각했어요.”

◆ ‘태어나는 모든 아이는 완벽한 존재다’

 

윤나무는 연극 ‘킬 미 나우’ 속 조이를 연기하며 마음이 많이 가는 장면을 꼽아달라는 질문을 듣고 난 뒤 ‘한 장면’만 꼽을 수 없다는 듯 여러 장면을 언급했다.

윤나무는 조이가 제이크에게 ‘아빠가 어디를 가든 아빠 옆에 있겠다’고 말 한 장면을 가장 먼저 꼽으며 “아버지에 대한 조이의 사랑이 뭉클하게 다가오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조이가 제이크 소설을 접하게 되는 순간이요. 그 순간도 굉장히 뭉클해요. ‘태어나는 모든 아이는 완벽한 존재다’로 시작하는 서문. 조이는 아마 그 서문을 들으면서 ‘아빠 소설 내용처럼 그런 사람이 됐어야 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됐을까’에 대한 생각을 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아빠는 그런 아이랑 고무 오리로 장난 치고 싶었을 텐데’라는 생각. 서문에서 울컥하는 부분들이 많아요.”

극중 제이크가 쓴 책 ‘춤추는 강’의 서문은 지이선 작가의 손에서 다시 태어났다. 서문은 ‘태어나는 모든 아이는 완벽한 존재다. 태어나는 그 순간, 그 존재 자체만으로 모든 것을 완벽하게 만든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서문은 조이와 반대되는 아이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 같지만 ‘킬 미 나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관통한다. 바로 ‘인간의 존엄성’이다.

동시에 서문의 끝자락에서 ‘백조가 되지 않더라도 나는 이 오리를 영원히 사랑할 것이다. 이 이야기를 사랑하는 나의 아들 조이 스터디에게 바친다’ 라는 문장을 통해 장애를 가진 아들에 대한 제이크의 존중과 사랑을 전한다.

제이크의 사랑이 담뿍 담겨 있지만 로빈이 알려주고, 읽어주기 전 까지 조이는 몰랐던 책. 조이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을 향한 제이크의 사랑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맨 첫 장면에서 조이가 목욕을 하면서 자기는 더 이상 애가 아니라고 ‘고무 오리’를 거부하거든요. 그런데 나중에 조이가 제이크의 소설을 접하잖아요. 그때 조이는 생각했을 거예요. ‘내가 이렇게 자라오면서, 이런 상황을 지켜본 우리 아빠 마음은 어땠을까’.”

“조이는 아빠 제이크를 정말 사랑했을 거예요. 사실 지이선 작가님이 각색을 통해서 제이크를 향한 조이의 마음을 조금 더 부각시켰다고 생각해요. 지금 공연에서는 마지막 장면에 ‘내가 아빠만큼 아팠다면 아빠도 이런 선택을 했을 거야’라고 말하지만 원작에서는 ‘나도 몸이 불편한데 아빠의 몸이 더 불편해지면 나를 죽일 것 같으니까 아빠가 죽었으면 좋겠어’라는 뉘앙스거든요. 이건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강한 표현이에요. 각색이 없었다면 조이가 제이크를 사랑하는 마음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을 수도 있고, 관객들이 보기에 ‘우리 주변의 일’이라고 쉽게 공감하지 못했을 수도 있겠죠.”

◆ ‘배우로서의 목표’는 ‘좋은 사람’이 되는 것

 

2011년 연극 ‘삼등병’을 통해 데뷔한 윤나무는 다양한 창작극들에 출연했다. 특히 올 해는 벌써 다섯 작품에 출연하며 ‘쉴 틈 없이’ 일 하고 있다.

틈 없이 달려오며 빠른 성장 속도를 자랑하는 윤나무가 꿈꾸는 미래는 어떨까, 그의 목표가 궁금했다. 윤나무에게 ‘배우로서의 목표’를 묻자 “마지막 질문일 것 같아서 어제 생각해 봤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요즘 생각하는 건 한 가지예요. ‘좋은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제가 ‘좋은 사람’이 되면 저와 같이 공연하는 사람들, 앞으로 만나게 될 사람들, 전에 만났던 사람들이 무대 위에서든 밖에서든 자연스럽게 함께 행복해 질 수 있잖아요. 그리고 관객들에게 거짓되지 않고 진정성 있는 연기를 보여줄 수 있을 것 같고, 그분들이 내 진심을 봐 줄 수 있을 것 같고. 그렇게 교감하다 보면 ‘또 만나고 싶은 배우’가 될 수도 있고요.”

배우에게 ‘다음에 또 함께 작품을 하고 싶은 배우’가 되는 것은 꽤 중요한 일이다. 윤나무 역시 이에 공감했고, 그렇기 때문에 ‘좋은 사람’, ‘진심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는 말을 더했다.

이날 대학에서 연기를 공부하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흥미’를 느낄 수 없었다고 밝혔던 윤나무는 인터뷰 말미 그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그땐 ‘나눈다’는 것에 대해 익숙하지 않았어요. 불행했던 건 아니지만 ‘나 지금 행복한데 이 행복을 누구와 나눌 수 있을까’가 어색했어요. 제가 하는 일은 ‘진심을 교감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좋은 사람’은 자신이 이런 사람이라고 어필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충분하다. 윤나무 역시 이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관객과 동료 배우들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 끝없이 교감하고, 자신의 진심을 솔직하게 무대에서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고 싶어 했다.

[취재후기] “기자님에게도 제가 좋은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인터뷰를 갈무리하던 순간 윤나무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문득 윤나무는 ‘로기수’의 기수와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날 인터뷰에서 윤나무는 ‘로기수’의 기수를 ‘사점을 넘어 서는 애’로 표현했다.

공연 중 찾아오는 수많은 사점을 묵묵히 넘기고 한 계단씩 밟고 올라서 화려한 탭댄스를 추던 기수의 모습이 떠올랐다. 윤나무의 연기 인생에도 기수의 ‘사점’과 같은 순간들이 있었을 거다. 그리고 그 ‘사점’들을 넘어 소박하고 따뜻한 무대 위 조이를 만나고 있겠지.

연극 ‘킬 미 나우’ 윤나무의 '연기'를 접한 독자 여러분의 소감도 궁금하다. 기자와 다른 시각과 생각을 갖고 있다면 언제든 댓글을…. 관객의 따스한 격려와 응원의 말 한마디가 그에게는 큰 힘이 될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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