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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역사저널 그날' 이자겸의 난,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시대초월 역사교훈 줘(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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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역사저널 그날' 이자겸의 난,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시대초월 역사교훈 줘(예고)
  • 류수근 기자
  • 승인 2016.06.12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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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류수근 기자] 고인물은 썩기 마련이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일부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권력은 부패하고 영원할 것 같던 그 부패권력도 반드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역사가 수없이 증명한 불변의 진리이자 권력자가 명심해야 할 교훈이다.

고려 인종 4년(1126년)에 발생한 ‘이자겸(李資謙)의 난’도 마찬가지였다. 이자겸의 난은 당시 왕실의 외척이었던 이자겸이 왕위를 찬탈하려고 일으킨 일련의 정치적 사건을 일컫는다.

12일 밤 9시 40분에 방송되는 KBS 1TV ‘역사저널 그날’은 ‘이자겸, 외손자에게 기습을 당하다’ 편을 통해 이자겸의 난의 실체에 접근하는 시간을 갖는다.

▲ 12일 밤 방송될 KBS 1TV '역사저널 그날'은 고려 제17대 왕 인종 4년에 벌어졌던 '이자겸의 난'의 실체를 파악한다. [사진= KBS 1TV '역사저널 그날' 제공]

고려 전기의 지배 계층은 음서제(蔭敍制)와 공음전(功蔭田)의 권리를 누리던 문벌귀족(門閥貴族)이 장악하고 있었다. 고려의 개국 공신, 신라 말에 등장한 호족과 6두품 등으로 이뤄진 문벌귀족은 황실과 혼인 관계를 맺고 외척으로서 지위를 이용해 정치 권력과 경제력을 독점하다시피 했다.

(* 음서제는 공신이나 전·현직 고관의 자제를 과거에 의하지 않고 관리로 채용하던 제도이고, 공음전은 고려 시대에 공신과 오품 이상의 벼슬아치에게 공을 따져 지급하던 토지를 일컫는다. 공음전은 세습이 인정됐다.)

인주 이씨(仁州 李氏)는 대표적인 문벌귀족이었다. 인주 이씨는 고려 제11대왕 문종 (재위 1046~1083)부터 제17대왕 인종(재위 1122~1146)까지 일곱 왕이 재위한 80여 년동안 외척으로 무소불위의 권세를 휘둘렀고, 이자겸의 대에 이르러 그 정점에 이르렀다.

고려시대 전반기는 폐쇄적인 통혼권(通婚圈)으로 지배 권력층을 유지했다. 지금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황실에도 복잡한 근친혼이 이뤄졌다. 이자겸은 고려 제16대 왕에게 둘째 딸을 시집보내 장인이 됐고, 그의 아들이자 외손자인 인종에게는 셋째 딸과 넷째 딸을 출가시켜 다른 문벌의 외척 유입을 막으며 통혼을 강화했다. ‘삼겹 장인’이 된 것이다. 인종에게 이자겸은 외할아버지이자 장인이었고, 이자겸의 셋째 딸과 넷째 딸은 인종에게 이모이자 아내였다.

얽히고 설킨 통혼으로 왕실을 장악한 이자겸은 때마침 나돌던 ‘십팔자 도참설(十八字 圖讖設·왕(王) 씨가 아닌 이(李) 씨가 왕이 된다는 설)’을 신봉하며 왕권 찬탈에 대한 야심을 불태웠다. 스스로 국공(國公·오등작(五等爵)의 첫째 등급)에 올라 황태자와 동등한 예우를 받았다.

무서울 게 없는 권세는 점차 썩어 문들어졌다. 이자겸은 갖은 횡포에 백성들의 원성이 높아졌고, 외손자인 인종마저 외조부 이자겸을 제거하기로 한다. 1126년 2월 밤 인종의 은밀한 지시를 받은 군사들이 이자겸 일파를 기습한다. ‘이자겸의 난’은 정작 이자겸이 아니라 외손자 인종 일으킨 것이다.

하지만 왕으로서 권위를 되찾으려던 인종의 작전은 실패하고 말았다. 오히려 인종은 왕궁마저 잃고 이자겸의 사저에 들어가 사실상의 유폐 상황에 처한다.

하지만 썩은 권력은 그 내부에서 균열이 생기기 마련. 여러 차례 목숨의 위협을 받으면서 와신상담하던 인종은 이자겸과 그의 오른팔인 척준경 사이에 불화가 일어나자 그 틈을 노려, 척준경(拓俊京·고려시대 무신)을 포섭하는데 성공한다. 결국 같은 해 5월, 척준경의 손에 이자겸과 그의 가족들이 체포되면서 이자겸의 천하도 막을 내리게 됐다.

이자겸의 정치적 몰락은 고려 정치 체계에 일대 변화를 가져온다. 고려 조정을 좌지우지했던 최대 세력의 외척이 몰락했다는 사실 이외에도, 고려 개국 이후 문벌귀족 간에 유지되던 세력균형이 깨지는 결정적인 이정표였다. 이를 계기로 문신에 억눌려 지내던 무신들이 들고 일어나는 반란의 시대를 예고한다. 9년 후 서경천도를 주장한 묘청의 난(인종 13년·1135년)이 발생하고, 정중부 이의민 최충헌 등의 무신정권(1170~1270·명종 원년~원종 11년)으로 이어진다.

이자겸의 난은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역사적 교훈을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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