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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포인트] 영화는 되고, 코미디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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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포인트] 영화는 되고, 코미디는 안 된다?
  • 오소영 기자
  • 승인 2014.09.06 10: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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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오소영 기자] 입에 테이프를 붙인 남자가 사람들을 웃긴다. 영국에서 온 코미디언 샘 윌스(Sam Wills)의 공연 제목은 말 그대로 ‘테이프 페이스(Tape Face)’다. 공연 내내 입에서 테이프를 떼지 않기 때문에 영어를 못 알아들을 걱정은 없다. 대신 제스처나 표정,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배경음악들로 의도를 전달했다. 그에게 지목받은 관객은 마법에 이끌리듯 망설임없이 무대로 나섰다. 그와 함께 한 팀이 되어 공연을 펼쳤다. 사전에 미리 얘기가 된 게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자연스러운 참여였다. 물론 논의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무대다.

국가와 언어, 나이가 달라도 통하는 것, 이것이 코미디의 매력이다.

▲ '제2회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의 '테이프 페이스' 중 한 장면. 관객을 불러내 함께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사진=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조직위원회 제공]

◆ 영화는 되고, 코미디는 안 된다?

위 공연은 지난 1일 종료된 ‘제2회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에서 있었던 ‘테이프 페이스’ 공연 중의 장면이다. 올해 2회를 맞은 이 축제는 부산 전역에서 나흘간 진행됐다.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부코페)’엔 ‘부산국제영화제(부국제)’에 대한 패러디 요소들이 있다. 같은 장소인 부산을 장소로 삼은 것이 그렇다. 또한 배우들이 레드카펫을 밟는 대신 블루카펫을 밟는다. 우아한 포즈 대신 자신들의 우스꽝스러운 포즈나 개인기를 펼쳐 보인다.

7개국 12개의 코미디언 팀들이 함께 했다. 해외 공연을 이해하지 못할 거란 걱정은 없었다. 관계자에 따르면 “최대한 한국인의 정서에 맞는 공연팀을 섭외했기 때문”이다. ‘테이프 페이스’처럼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는 논 버벌(non-verbal) 퍼포먼스, 몸을 이용하는 아크로바틱 장르 공연팀 등을 섭외했다.

때문에 유치원생부터 머리가 희끗한 노년층까지 공연에 공감하며 반응했다. 어린이들의 까르르거리는 웃음과 함께 중년의 웃음소리가 번갈아 들렸다. 외국에서 초청받은 코미디언들의 공연이라 언어가 다름에도 웃음은 이들을 한 데 묶어줬다.

국내외 영화들을 한 데 모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부국제’는 볼거리가 풍성하다. ‘부코페’ 또한 알찬 프로그램으로 가득했다. 특히 ‘테이프 페이스’의 경우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부코페 관계자의 말을 빌리면 “다른 해외 출연진들이 ‘2회밖에 안됐는데 벌써 테이프 페이스가 올 정도냐’고 물을 정도”다.

하지만 객석 중 빈 자리가 드문드문하게 보였다. 아직은 이 축제에 대한 관심이 그리 크지 않다는 걸 뜻했다. 여기에는 크게 방송 위주의 한국 코미디 시장, 관객 의식의 부족으로 크게 이유를 나눠볼 수 있었다.

▲ '부코페'의 블루카펫. 레드카펫 아닌 파란 카펫 위에서 참석 코미디언들은 저마다 재밌는 포즈나 개인기를 선보였다.[사진=스포츠Q DB]

◆ ‘방송 코미디’ 위주의 한국 코미디

‘부코페’엔 ‘테이프 페이스’, ‘돈 익스플레인(Don't Explain)’, ‘몽트뢰 코미디’ 등 볼거리가 풍성하고 관객이 참여하는 해외 공연이 많았다. 반면 한국 공연 코미디의 부족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대중에게 보다 친숙하게 다가가기 위한 ‘코미디 오픈 콘서트’ 등을 야외에서 무료로 진행하는 등 노력이 있었으나 대부분 국내 공연은 ‘개그콘서트’나 ‘웃찾사’의 코너를 그대로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코미디는 방송과 공연으로 나뉘어진다. 한국 관객들은 텔레비전에서 하는 방송 코미디에 익숙해져 있다. 대표적 프로그램이 KBS '개그콘서트‘다. ‘황금어장’, ‘비틀즈 코드’ 등 유명 예능 프로그램에서 작업한 최대웅 작가는 “‘개그콘서트’는 방송에서 공연 코미디를 하는 형식”이라고 말했다.

‘개콘’은 특이한 형태다. 처음엔 대학로 코미디 공연을 방송으로 옮겨 온 형태였다. 공연 코미디지만 엄밀히 말해서 ‘공연 코미디’는 아니다. 관객은 출연자들과 소통하기보다 이들의 공연을 수동적으로 시청하는 것에 그치기 때문이다. 공연 코미디라고 하기엔 아쉬운 측면이 있다.

한국은 방송 코미디가 위주이기 때문에 한국에선 방송을 해야만 성공한 코미디언으로 평가받는다. 이는 해외와는 다른 모습이다. 국내에서도 대학로 등지에서 공연 코미디를 올리고 있으나 관객들의 관심은 크지 않다.

▲ '몽트뢰 코미디' 중 한 장면. 이들은 사다리를 이용해 아슬아슬한 슬랩스틱 코미디를 선보였다. [사진=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조직위원회 제공]

◆ ‘무료 코미디’에 익숙해진 관객들

코미디를 바라보는 시각에도 이유가 있다. 웃음을 위해 자신을 낮추는 것과 장르적 위치가 낮다는 것은 다른 문제임에도 많은 사람들은 둘을 동일시한다.

‘부코페’에서 만난 데뷔 15년차의 한 베테랑 코미디언은 “영화의 경우는 해석하기 나름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는 반면, 코미디는 개인이 웃기지 않다고 생각하면 안 웃긴 내용이라고 단정지어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영화의 경우 어떤 평이 내려지든 관객들이 폭넓게 이해하는 것과 달리 코미디에는 편협한 시각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는 코미디 공연 티켓 구매가 적어지는 문제로까지 이어진다. 가수의 콘서트 티켓 구매나 영화 관람엔 돈을 아끼지 않지만 아직까진 코미디 공연에 돈을 주고 본다는 의식이 확산되지 않은 상태다.

코미디를 안방극장에서 접할 수 있게 했단 점에서 ‘개콘’ 등 방송 코미디는 순기능을 했다. 그러나 거꾸로 부정적인 측면 또한 생겼다. 돈을 지불하지 않고도 코미디 공연을 TV로 볼 수 있다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최대웅 작가는 “앞으로 공연 코미디가 활성화돼야 한다”는 뜻을 전했다. TV를 벗어나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다가가야 코미디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달라질 것이란 의미다. 그는 “재밌으면 먹히기 마련이다. 재밌으면 관객은 무조건 온다”고 소신을 얘기했다.

▲ '부코페' 중 '개그콘서트' 공연. 방송을 공연장으로 옮겨온 만큼 이날 공연에서는 관객들의 직접 참여도 있었다. [사진=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조직위원회 제공]

코미디는 언어적, 국가적 장벽을 뛰어넘는 장르이며 웃음은 모두를 한 데 묶어주는 강력한 수단이다. 최대웅 작가의 말처럼 재미는 먹히기 마련이다. 기발하고 성숙한 콘텐츠를 기반으로 한다면 관객들의 의식도 자연스럽게 변화할 것으로 보인다.

코미디 관계자는 “앞으로는 한 달 정도 축제 기간을 가지고 극장 공연뿐 아니라 길거리에서 공연을 하는 식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싶다”며 “사람들의 환호만 있다면 대가를 받지 않고도 거리에서 공연할 코미디언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런 열정을 가지고 일하는 이들이 있는 한 ‘영화는 되고 코미디는 안 된다’는 시각들은 머지않아 없어지지 않을까.

ohsoy@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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