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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예술](5) 오페라 코치 신영주, '좋아서 하는 오페라' (인터뷰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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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예술](5) 오페라 코치 신영주, '좋아서 하는 오페라' (인터뷰Q)
  • 이은혜 기자
  • 승인 2016.06.15 12: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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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자 Tip!] ‘오페라 코치’라는 직업은 생소하다. 오페라 코치란 오페라를 무대 위에 올리기 위해 작품 분석과 음악 분석은 물론, 배우들의 상태까지 컨트롤하는 직업이다. 생소한 직업인만큼‘오페라코치’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도 찾아보기 힘들지만, 무엇보다도, 언어와 피아노 연주, 지휘, 노래 실력, 감성 등 오페라의 어느 한 요소라도 부족하면 맡을 수 없는 직업이 바로 ‘오페라 코치’다.

[스포츠Q(큐) 글 이은혜·사진 최대성 기자] 신영주는 한국에서도 단연 독보적인 '오페라 코치'로 불린다. '오페라 코치'는 직접 무대에 올라 연기를 하는 사람도 아니고,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도, 무대를 연출하는 사람도 아니다. 하지만 한 편의 오페라를 무대에 올리는 과정에서 신영주는 분명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그것이 '오페라 코치'다.

◆ “슬럼프? ‘이겨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

 

대학 재학 시절 성악 반주를 유독 많이 했던 신영주는 오페라 앙상블 수업에 선발 됐다. 그 뒤로 오페라의 매력에 빠지기 시작했다. 이 계기를 바탕으로 신영주는 피아노과를 졸업한 뒤 곧바로 국립오페라단 피아니스트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피아노를 전공하려면 최소 10년은 해야 해요. 왜 힘든 일이 없었겠어요. 내가 어떤 경지에 오르기 까지 ‘대가’가 필요하잖아요. 어릴 때는 그게 힘들었죠. 그리고 전공 코스는 완전히 엘리트 코스를 밟기 때문에 ‘재미’가 덜 하죠.”

오랜 시간 피아노를 전공했던 신영주. 대학 졸업 이후 국립 오페라단 피아니스트로 활약하기 시작한 신영주에게 ‘힘든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국립 오페라단에 들어가고 나서야 오페라 전곡을 연주하고 이해하기 시작한 그는 너무나 당연한 과정처럼 어려움을 겪었다.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신영주가 피아노를 전공할 때도, 과감하게 오페라단 피아니스트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을 때도 인식하고 있던 말이었다.

“‘슬럼프’를 심하게 느낀 건 대학을 졸업하고 난 뒤였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원하던 대학에 입학했고, 졸업도 무난하게 했죠. 그런데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오페라를 시작했을 때 가장 힘들었어요. 아무래도 기술적으로나 이론적으로 다른 부분이 많으니까요.”

신영주는 ‘슬럼프를 극복 했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극복’ 대신 ‘이겨 낸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신영주는 자신의 출신 학교, 스승의 이름이 평생 꼬리표처럼 달리게 되는 현실을 언급하며 “이걸 이겨내지 못하면 아무것도 해낼 수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그러한 슬럼프를 ‘이겨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이라고 설명하며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 ‘오페라’ 선택은 ‘자연스러운 흐름’

 

이번 인터뷰를 통해 신영주는 ‘오페라’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내가 선택한 게 아니라 그렇게 흐른 것 같다”고 표현했다. 그는 대학 시절 성악 반주를 하던 때를 떠올리며 모든 게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신영주는 대중들에게 낯선 ‘오페라 코치’에 대해 쉽게 설명해 주기도 했다. 오페라 코치는 오페라 작품의 모든 배역과 내용을 분석해야 하고, ‘대본’ 뿐 아니라 ‘음악적 언어’까지 모두 완벽하게 해석할 줄 알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오페라 코치는 작품의 전반적인 내용과 분위기를 책임지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저는 오페라 번역도 같이 해요. 번역하고 그 작품들이 어떤 방식의 음악으로 표현됐는지, 어떤 악기들이 쓰였는지, 배우에게는 어떤 호흡을 이끌어내야 하는지 꼼꼼하게 체크 하죠. 굉장히 섬세한 작업 일 수밖에 없어요.”

신영주의 말처럼 오페라 코치라는 직업은 ‘섬세함’과 ‘집중’이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오페라 코치에게는 음악과 작품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 언어적 능력, 좋은 귀 등이 요구된다. 말 그대로 오페라 한 작품을 올리기 위해 오페라 코치의 손길이 안 닿는 곳이 없는 것이다.

“연기 동선은 연출자가 체크하지만 감정은 그렇지 않아요. 배우의 감정이 변하지 않으면 ‘여기서 왜 그렇게 하냐’고 짚어줘야 해요. 또 음악적으로 ‘음정’도 체크해 줘야 해요. 연기나 노래에 대한 모든 내용을 체크하고 있으니 배우들이 어떤 식으로 연기하는지 다 알아요. 그렇다 보니 ‘지적’을 많이 할 수 밖에 없는 위치에 있죠.”

“학생들을 가르칠 때는 이렇게 많은 부분을 지적하지만 프로들과 할 때는 달라요. 프로들은 다 알고 오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고난도의 이야기를 해 줘야 하고, 소리의 색도 아이들과는 달라요. 그렇기 때문에 짚어줘야 하는 부분들도 다른 거죠. 상대에 따라 다른 디렉팅을 내리지만 기본은 ‘존중’이에요.”

◆ “공연 후 공허함, ‘공연 리뷰’ 작성하며 조용히 정리”

 

피아노 전공자에서 오페라코치가 된 뒤 신영주가 처음 맡은 작품은 ‘로미오와 줄리엣’이었다. 1986년 국립오페라단 구노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신영주에게 ‘음악적 충격’을 안겨 준 작품이다.

과거 신영주는 한 인터뷰를 통해 ‘로미오와 줄리엣’, ‘팔스타프’, ‘라보엠’을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꼽았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에게 또 다른 소중한 작품이 생기지 않았을지 궁금했다. 신영주의 답은 “모든 작품이 기억에 남고 애착이 남는다”였다.

“성격상 작품을 할 때는 완전히 쏟아 붓고 막을 내리면 빨리 다 잊으려고 노력해요. 그래야 다음 작품에 집중할 수 있잖아요. 물론 처음에는 공연이 끝나고 한동안 아무것도 못했어요. ‘이제 뭐하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젠 그렇지 않아요. 그리고 어떤 작품이 애착이 간다는 것 보단 ‘공연을 올리는 것’ 자체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늘 마인드 컨트롤을 하려고 노력하죠.”

‘공연을 올리는 것’ 자체에 무게를 싣고 있는 신영주는 작품마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모두 다르다고 밝히기도 했다. 학생들이 꾸미는 무대의 경우 끝까지 전반적인 부분을 컨트롤해야 하는 입장이고, 프로들과 함께하는 무대에서는 자신이 맡은 파트를 완벽하게 소화해야 한다.

또한 무대 위로 올라가는 배우들만큼 스태프로 참여하는 사람들과 신영주는 더욱 세심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신영주는 자신이 보는 무대는 ‘전쟁터’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공연 하나가 무사히 끝나고 나면 신영주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무엇일까. 그는 홀로 조용히 ‘공연 리뷰’를 작성하며 여운을 즐기고, 다음을 대비하고 있었다.

“사실 공연이 끝난 뒤 ‘마무리’가 약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끝났다’가 중요하지 ‘다음에 뭘 어떻게 하지’라는 걸 정리하는 게 부족하죠. 그래서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시끌벅적하고 떠들썩하게 뒤풀이를 즐기는 것 보다 혼자 리뷰를 쓰면서 작품에 대해 정리하는 게 좋아요.”

◆ “오페라를 계속 하는 이유? 좋은 것 뿐”

 

음악으로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오페라. 사실 우리나라 오페라 분야의 환경은 ‘좋다’라고 표현되기에는 무리가 있다. 점차 발전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열악한 환경 속에서 배우들은 노래와 연기를 선보이고, 스태프들 역시 보이지 않는 노력을 한다.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오페라를 계속 하는 이유를 묻자 신영주는 “좋으니까”라는 짧고 명쾌한 답변을 내 놓았다.

“여기에는 굉장히 많은 게 내포돼 있어요. 오페라 속에는 사랑, 문학, 미술, 건축, 의상, 철학, 역사 등 다 들어 있어요. 작품에 따라 들어 있는 내용이 다 다르거든요. 들어 있는 내용들이 많고 다양한 것. 그게 매력이에요. 굉장히 매력 있어요.”

신영주는 약 30여 년 간 오페라 세계에 몸 담아 왔다. 오랜 시간 동안 한 분야에서 일한 만큼 쌓인 노하우도 있고, 그 노하우를 바탕으로 무대를 꾸미고 글을 쓰기도 한다. 한 작품을 준비할 때마다 다양한 각도의 물밑 작업을 거치기도 한다.

신영주는 다양한 작품 활동과 현장 노하우를 바탕으로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일반 대중들이 오페라를 쉽게 이해 할 수 있게 책을 출간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취재후기] 오랜 시간 오페라 코치 일을 해 오며 자신이 느낀 것을 솔직하게 모두 털어 놓는 신영주는 그 누구보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애정이 깊어 보였다.

‘좋아서’ 오페라를 하고, 앞으로도 ‘즐기면서’ 오페라를 하고 싶다는 신영주가 앞으로 어떤 무대를 완성해 나갈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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