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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바다에서 산으로 가는 남자, '해적' 이석훈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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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바다에서 산으로 가는 남자, '해적' 이석훈 감독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09.08 10: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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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최대성기자] 지난 여름 한국영화 블록버스터 4편의 격렬한 경쟁은 ‘명량’의 한판승으로 판가름이 났다. 젖은 박에 깨 달라붙듯 1700만 관객을 모은 ‘명량’에 이어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의 2위 역시 화제가 됐다. 개봉 전 ‘군도’의 하정우-강동원, ‘해무’의 봉준호 감독-김윤석 박유천이라는 쟁쟁한 라인업과 화제성에서 밀렸기 때문이다.

 

조선 건국 보름 전 고래의 습격을 받아 국새가 사라진 전대미문의 사건을 둘러싸고 이를 찾는 해적과 산적, 개국세력이 벌이는 바다 위 통쾌한 대격전을 그린 해양 액션 어드벤처 ‘해적’은 남녀노소 전 세대를 사로잡는 웃음 폭탄을 선사하며 749만4050명의 관객(7일 현재 영진위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집계)을 모으고 있다. 개봉(8월6일) 한 달이 지났음에도 박스오피스 1위를 거쳐 추석 겨냥 신작들 공세에도 4위를 굳건히 지키는 중이다. 저력을 발휘하는 ‘해적’의 선장 이석훈(42) 감독과 인터뷰를 나눴다.

- 소감을 들려 달라.

▲ 아직도 잘 안 믿어진다. 고생한 스태프들 때문에 하루만이라도 ‘명량’을 이겨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를 이루고, 관객과의 약속인 700만 돌파 땡큐 이벤트까지 했으니 기분 좋을 따름이다. ‘해적’을 찾아주신 관객들에게 감사하다.

- 170억원의 총제작비를 들인 이 영화가 손익분기점(550만)을 넘어 롱런 흥행하는 이유를 뭐라고 보나.

▲ 올해 상반기에 잔인하거나 심각한 영화가 쏟아졌는데 관객들이 유쾌하게 볼 수 있는 영화에 관심을 나타낸 것 같다. 온가족이 즐길 수 있는 여름에 보기 좋은 영화다. 실재 역사에 상상력을 가미해 우리 정서에 맞는 코미디와 유머를 갖춘 점을 좋아해주신 것 같아 기쁘다.

▲ 지난 3일 롯데시네마 건대입구관에서 열린 '해적-700만 돌파 땡큐 이벤트'에 참석한 김남길, 이석훈 감독, 손예진, 이경영, 김원해, 이이경(왼쪽부터)

- '해적’은 바로 휘발되는 코미디 영화는 아니다. 감독 입장에서 관객이 ‘해적’을 보며 느꼈으면 했던 대목이 있다면.

▲ 지나간 역사를 돌이켜 보며 생각해볼 부분을 담아보고 싶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대형 고래의 모성, 고래와 인간의 교감에서 감동을 느꼈으면 했다. 깊이 있는 유머와 주제가 있는 영화를 추구했다고 감히 자부한다.

- 해적이라는 소재는 국내 영화계에서 생소했다. 조니 뎁 주연의 ‘캐러비안의 해적’ 시리즈로 각인된 장르에 도전했을 때 고민이 많지 않았나.

▲ 과거에도 할리우드에는 해적 영화 많았는데 ‘캐러비안의 해적’이 1990~2000년대에 워낙 유명한 시리즈물이라 관객에게는 ‘해적=캐러비안의 해적’으로 인식돼 있는 것 같다. ‘해적’은 바다와 산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산적과 해적을 두 축으로 삼아 거기서 오는 재미를 많이 살리려고 했다. 지금은 ‘캐러비안의 해적’과 비교될 테지만 관객의 사랑을 받으면 시리즈물로도 제작될 수 있지 않겠다. 한국의 대표적인 해적 영화로 자리매김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시 감독을 맡는다면 가문의 영광이지 않을까.

- 해적 두목 여월 역에 손예진을 캐스팅했다. 의외의 캐스팅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 관객 입장에서 최적의 캐스팅은 아니었을 거다. 청순했던 손예진이 사극에 그것도 해적 여두목이라니 하는. 그런데 이런 역할을 해본 여배우들이 별반 없었다. 하지원씨는 많이 했어서 일단 제외했다. 1순위가 손예진씨였다. 10년 넘게 활발하게 활동해왔고 다양한 장르에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검증된, 신뢰가 가는 여배우이기 때문이다. 액션과 사극연연기에서 충분히 능력을 보여줄 거라 생각했다. 힘든 상황에서도 빼거나 대역 요구를 하는 법 없이 시원시원하게 다 해냈다.

 

- 산적 두목 장사정 역의 김남길은 어땠나. 영화에서 장사정은 고려 무사에서 산적단 두목으로 직업의 변천뿐만이 아니라 진지함, 바람둥이 기질, 허당스러움 등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 그가 출연한 드라마 ‘상어’ ‘나쁜 남자’에서 장사정 캐릭터가 보이진 않았다. 배우 김남길의 이미지 때문에 의문이 들었는데 그를 아는 주변 사람들이 “실제 성격이 장사정 같다. 걱정할 필요 없다”고 적극 추천했다. 또 일부 남자배우 경우 “이거 여배우 위주의 영화가 아니냐”며 꺼리기도 했다. 하지만 남길씨는 작품에 매력을 느끼고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임했다. 촬영 이후 남길씨의 코미디 욕심이 과해서 적당히 말렸다.(웃음)

- '해적’ 역시 멀티캐스팅 영화인데 산적단, 해적단, 개국세력 안배가 잘 이뤄졌다. 배우들의 앙상블은 조화롭다.

▲ 대작일수록 연기파와 유명 배우들을 다수 캐스팅하는데 의미 없는 배역을 드릴 순 없다. 한 번 등장하고 퇴장할 때 의미가 충분히 있게끔 시나리오상에서 배려를 많이 했다. 이는 관객을 위한 배려이기도 하다. 그들의 화려하고 재밌는 연기를 기대하고 오시는데 실망을 줄 순 없으니까. 코믹연기 감각이 탁월한 신정근 배우가 욕심을 내지 않으며 “나까지 그러면 안된다. 중심을 잡아야하지 않느냐”고 했던 말이 맞는 것 같다.

- 특히 해적과 산적을 오가는 철봉 역 유해진의 코미디 연기는 발군이다.

▲ 처음엔 철봉의 비중이 지금 만큼은 아니었다. 과정이 생략된 채 해적에서 산적으로 갈아타는 설정이었다. 그런데 산적단에 입단할 때 지금의 신입사원 면접과정 같은 게 있지 않았겠느냔 생각에 스펙을 과장해서 임하는 장면을 삽입하고 산적들에게 바다 경험을 설명하는 장면에서의 대사와 리액션을 찾다보니 산적신 비중이 늘어났다. 유해진씨의 연기력은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다.

 

- 개봉 전부터 CG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많았다. 심해 속 고래의 구현, 벽란도의 재현 등 영화에서 필수적인 요소였기 때문이다. 뚜껑을 연 뒤 평가는 매우 좋은 편이다.

▲ 호평이 많아 다행이다. 가장 큰 모험이자 도전이었다. 잘 안되면 눈에 확 들어오고, 잘 되도 CG인 줄 잘 모른다. 하하. 새로운 도전을 칭찬받고 싶었는데 그런 시도를 관객들이 높이 사주는 것 같아 기쁘다. 고래나 상어는 관객들이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통해 주로 보니까 그런 느낌이 나도록 다큐멘터리 장면을 많이 분석했다. 고래 박사가 됐을 만큼 정말 공부를 많이 했다. 고려시대 국제무역항이었던 벽란도 장면은 최대한 다이내믹하고 유쾌하게 찍고 싶었다. 100회 촬영 중 30회차를 벽란도에 할애했을 정도다. 5회 찍어야 한 장면이 나오니까. 시간과 공을 가장 많이 들였다. 더욱이 시각적 고증자료가 남아있는 게 없어서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했다. 외국인 보조출연자들, CG로 구현한 코끼리와 기린, 고릴라 ‘링링’ 등을 총동원했다.

- 올 여름 한국영화 블록버스터 대전 한복판에서 피를 말리는 마음고생을 했을 것 같다.

▲ 보통은 2주 이상 간격을 두고 경쟁하는데 올해는 1주 간격이었다. 더군다나 할리우드 대작과 경쟁해야 하는데 한국영화끼리 경쟁체제가 갖춰져 안타까웠다. 대신 한정된 관객파이가 올해 이런 경쟁을 통해 커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상하게 난 학창시절 학생들이 많아서 오전반, 오후반으로 다녔고 이후 대학 입학도, 군입대도 치열한 경쟁 속에 했다. IMF 탓에 취업도 마찬가지였고. 이번에 개봉도 그래서 고개를 내저었다. 하하.

- '역린’부터 ‘해적’에 이르기까지 올해 유달리 사극영화가 많다.

▲ 제작자와 감독 모두 동시대를 살아가다보니 비슷한 생각으로 인해 사극이 많이 나오는 것 같다. 현실 세태를 반영하는 면도 있지만 영화적으로도 한 흐름이라고 여긴다. 사극은 대작이 많고, 참여하는 스태프도 많다. 소품과 의상이 보완 발전되고, 노하우가 축적되니 만큼 재활용 차원에서라도 꾸준히 만들어졌으면 한다.

 

- 차기작으로 실화를 바탕으로 한 황정민 주연의 ‘히말라야’를 연출한다. 지리산 전지훈련에 이어 11월부터 네팔 크랭크 인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강행군이 예상되는데 쉴 틈도 없이 참여해 내심 놀랐다.

▲ 바다 영화를 했다가 생각지도 않게 산 영화를 찍게 됐다. 추위, 지형과 촬영의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영화가 다양해야 관객들이 좋아하지 않나. 기술력이 발전해서 새로운 볼거리 제공이 가능하므로 보람이 있을 것 같다. 상대적으로 많이 나온 로맨틱 코미디, 멜로, 드라마보다 여러 요소를 갖춘 영화를 하면 보람이 더 크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감독은 누군가 항상 찾아주는 직업군이 아니다. 3~4년 동안 일 없이 지낸 적도 있다. 누군가 찾아주고, 기회를 주면 감사히 임해야 한다. 특히 ‘히말라야’는 어려울 때 많은 도움을 준 윤제균 감독이 제작하고, '댄싱퀸'으로 인연을 맺은 황정민 배우가 출연하는 작품이라 함께하는 게 영광이다.

[취재후기] 이석훈 감독은 한양대 연영과 출신으로 ‘방과후 옥상’(2006)과 ‘댄싱퀸’(2012)의 각본·연출, ‘두얼굴의 여친’(2007)의 연출을 맡으며 역량을 인정받았다. 부드러운 벽면서생 이미지이나 강단 있는 감독이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는 과거 청각장애인 야구부 실화를 시나리오로 쓴 적이 있는데 내공과 철학이 뒷받침되면 삶의 희망을 찾는 인물 이야기를 다시 시도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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