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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본색] (20) '우리들' 윤가은 감독이 그려낸 아이들의 이야기 "어린시절 내가 다 하지 못한 이야기들" (인터뷰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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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본색] (20) '우리들' 윤가은 감독이 그려낸 아이들의 이야기 "어린시절 내가 다 하지 못한 이야기들" (인터뷰Q)
  • 원호성 기자
  • 승인 2016.06.22 14: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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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자 Tip!] 2016년 6월 1일, 서울 CGV 왕십리에서 윤가은 감독의 영화 '우리들'의 언론시사회가 열렸다. '우리들'은 저예산으로 제작된 신인감독의 데뷔작에 내로라하는 톱스타 한 명 출연하지 않고 연기경험이 전무한 10대 초반의 소녀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은 영화에 불과했지만, 영화의 엔딩크레딧이 올라오자 객석에서는 잔잔하게 박수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영화제 상영도 아닌 언론시사회에서 영화가 끝나자 기자와 평론가들이 박수를 치다니. 한국에서는 정말 보기 드문 기현상이 아닐 수 없었다.

[스포츠Q 글 원호성·사진 최대성 기자] 2014년 한국영화계를 강타한 놀라운 데뷔작이 이수진 감독의 '한공주'였다면, 2016년 한국영화계를 강타할 놀라운 데뷔작은 단언컨대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이 될 것이다.

'우리들'은 어른들은 알 수 없는 복잡하면서도 슬프고 가슴 아픈 초등학교 4학년, 이제 겨우 11살 여자아이들의 세계를 담담하게 관조하며 영화를 보고 나면 마음 속 깊이 쉽게 잊혀지지 않는 생채기를 남긴다.

▲ 영화 '우리들' 윤가은 감독 [사진 = 스포츠Q 최대성 기자]

◆ 아이들의 목소리를 스크린에 담아내는 이유 "어린 시절의 아쉬움과 상처"

윤가은 감독은 독특하다. 첫 장편영화인 '우리들'은 물론, 2012년 '단편영화계의 칸영화제'로 불리는 프랑스 끌레르몽 페랑 단편영화제에서 국제경쟁 대상을 수상한 단편 '손님'과 2014년 베를린국제영화제 제네레이션 K플러스 단편경쟁 부문에서 특별상을 수상한 단편 '콩나물'까지 그동안 만든 모든 영화들이 '아이들'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 그러하다.

윤가은 감독의 단편 '손님'은 아버지의 불륜상대를 만나러 갔다가 불륜상대의 어린 남매들을 만나게 된 10대 여고생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고, 단편 '콩나물'은 할아버지의 제삿날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콩나물을 사오는 심부름을 떠나는 일곱살 아이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리고 '우리들'은 방학식날 전학 온 전학생 '지아'(설혜인 분)와 친구가 되어 친하게 지내지만 개학 후 갑자기 서먹해진 사이에 고민하는 선(최수인 분) 등 초등학교 4학년, 11살 소녀들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안 그래도 요즘 왜 이렇게 어린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만 만드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이런 질문을 받다 보니 저조차도 '그러게, 내가 왜 이렇게 자꾸 어린이들이 주인공인 영화를 하려고 하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 영화 '우리들' 선(최수인 분)과 지아(설혜인 분)

"그냥 제 속에 제가 아이였을 때 충분히 이해받지 못했다는, 아니면 제 마음을 충분히 털어놓지 못했다는 그런 아쉬운 마음들이 있는 것 같아요. 시나리오를 쓸 때 어떤 이야기를 쓸까 고민하다 보면 제가 어린 시절 받았던 아쉬운 마음들과 상처들을 꺼내놓고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일까? '우리들'에 등장하는 어른들은 아이들의 이런 속마음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한다. 아이들의 세계도 나름 복잡하고 슬프지만, 어른들이 바라보기에 아이들의 세계는 그저 부모님 말 잘 듣고 공부만 열심히 하면 무조건 행복한 것처럼 그려진다.

물론 '우리들'에 등장하는 어른들은 다른 많은 영화의 어른들처럼 아이들을 학대하거나 괴롭히는 못된 어른들은 아니다. 아버지는 기술자에 어머니는 분식집을 하면서도 아이들을 챙겨주기 위해 노력하는 '선'(최수인 분)의 부모님이나, 바쁘게 살면서도 딸을 생각하는 마음을 보이는 '지아'(설혜인 분)의 아버지와 할머니 모두 그들 나름대로 아이들을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저는 '우리들'에 나오는 부모님들이 나쁜 어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어른들의 기준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챙겨주기에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마음을 몰라준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런 것까지 챙겨주기에는 어른들도 삶이 쉽지는 않잖아요."

▲ 영화 '우리들' 윤가은 감독 [사진 = 스포츠Q 최대성 기자]

◆ 영화를 통해 어린 시절을 뒤돌아보기 "'왜 그랬을까?'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어요"

'우리들'은 윤가은 감독에게도 의미가 있는 영화다.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라고 생각한 친구에게 어느날 갑자기 배신당한 '선'의 이야기는 바로 윤가은 감독이 '우리들'의 주인공인 '선'과 비슷한 나이였을 때 직접 겪었던 개인적인 경험이었다.

"제가 '선'과 비슷한 나이였을 때 전학을 갔는데 너무 친한 친구가 한 명 있었어요. 새로운 곳에 왔는데 이렇게 좋은 친구를 만났구나 싶을 정도로 마음이 잘 통하던 친구였죠.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친구와 멀어지게 됐어요. 전학생인 저는 교실 안에서 여전히 이방인이었고, 그 친구는 원래 같이 놀던 친구들에게 돌아갔어요. 그렇게 외톨이가 되어 너무나 힘든 한 해를 보내야 했죠."

"지금도 그 친구와 왜 그렇게 됐는지 이유를 몰라요. 그래서 그 해답을 찾으려고 노력도 많이 했고,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왜 그랬을까?'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어요. 어린 시절에는 친구를 되찾으려고 안간힘을 썼는데, 나이가 들수록 관계가 틀어져도 그런 노력을 안 하게 되더라고요. 어릴 때는 내가 설령 다치게 되더라도 다가가려는 노력을 했는데, 어른이 되니 귀찮아지는 거죠."

어른이 되면서 가장 먼저 잃어버리는 것은 바로 어린아이였을 때의 순수함이다. 어릴 때는 친구 한 명을 잃게 되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잃은 것만 같은 충격을 느끼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런 이별에 무덤덤해진다. 이것은 어린시절의 순수성을 나이가 들수록 잃어버리는 결과인 동시에, 인간관계라는 것이 어른이 되면서 어떻게 변하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씁쓸한 결과이기도 하다.

"영화를 하게 되면서 그런 것들을 좀 들춰 보고 싶어지는 것 같아요. 어린 시절 많이 아팠던 기억, 많이 슬펐던 기억. 그때 다 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있다는 생각이 들고, 내가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 누군가는 '나도 그랬어'라고 응답을 해 주거나 위로를 해 줄 것 같은 생각들. 이런 경험들이 사실 저만 가진 특별한 경험이 아니라 누구나 어른이 되면서 한 번은 겪는 성장통이라고 생각하거든요."

▲ 영화 '우리들' 윤가은 감독 [사진 = 스포츠Q 최대성 기자]

◆ 정연주부터 김수안, 최수인까지, 아역배우를 발굴하는 뛰어난 시선

윤가은 감독의 영화는 항상 아이들이 주인공이기에 이름난 스타가 출연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윤가은 감독의 영화에 출연한 아역배우들은 결국은 스타로 성장하고 만다.

단편 '손님'에 출연한 정연주는 출연 당시에는 무명의 배우 지망생이었지만 지금은 '드림하이2', '마녀의 연애', '오로라 공주', '선암여고 탐정단' 등의 드라마와 윤성호 감독의 단편 '백역사', 허은희 감독의 '앨리스 : 원더랜드에서 온 소년' 등을 거쳐 지금은 tvN 'SNL코리아'의 크루로 매력을 과시하고 있다.

일곱 살의 나이로 윤가은 감독의 단편 '콩나물'에 출연한 김수안은 이제 11살의 나이지만 벌써부터 한국영화계가 주목하는 슈퍼 아역스타다. '콩나물' 이후 '숨바꼭질'에서 손현주의 딸을 비롯해 '차이나타운'에서 김고은의 아역으로, '해어화'에서 한효주의 아역으로 등장했고,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과 김용화 감독의 '신과 함께', 류승완 감독의 '군함도' 등 주목받고 있는 한국영화 대작에 연이어 캐스팅된 아역배우계의 최고 스타배우다.

윤가은 감독이 발굴해 낸 정연주와 김수안의 뒤를 이제는 '우리들'의 세 10대 소녀, 최수인과 설혜인, 그리고 이서연(보라 역)이 이어받게 됐다. 이 세 배우는 모두 '우리들'이 첫 연기지만 연기경험이 없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을 만큼 뛰어난 감정연기로 관객의 마음을 흔든다.

"연기경험이 없는 아이를 특별히 뽑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에요. 그렇다고 이런 이미지를 뽑아야겠다고 특별히 생각한 것도 없어요. 그냥 정말 많은 아이들을 오디션을 통해 만났는데, 그 중에 눈에 꽂히는 친구들이 있었어요. 예를 들어 '선' 같은 경우 시나리오에 '천진하고 앳된 인상의 아이 같은 얼굴'이라고 써놨는데, 또래보다 조금 더 어려보이는 친구를 원했죠. 그런데 오디션에서 최수인 배우를 만났는데 그냥 최수인 배우 그 자체가 좋았어요."

▲ 영화 '우리들' 지아(설혜인 분)와 선(최수인 분)

'우리들'에서 주인공인 아역배우들은 단순히 윤가은 감독의 지시에 따라 연기하는 '배우'로서의 역할만 한 것이 아니었다. 어른이 된 윤가은 감독은 쉽게 알 수 없는 지금의 11살 소녀들의 모습에 대해 최수인과 설혜인, 이서연 등 세 배우들로부터 적극적으로 의견을 들었고, 그 의견들은 시나리오에 디테일과 생명력을 부여해 줬다.

게다가 윤가은 감독은 배우들의 연기에 있어서도 최대한 자율성을 보장해 줬다. 대본을 주고 대본대로 연기하라고 강요하기보다는 어느 정도 필요한 정보들과 상황만 남겨둔 채 그 안에서의 행동이나 대화는 영화 속 주인공들과 같은 나이인 세 배우에게 자율적으로 연기하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우리들'은 어른들의 눈에서는 결코 상상할 수 없는 진짜 11세 소녀들의 이야기로 태어나게 됐다.

"아무래도 전문 성인배우가 아닌 아이들이다 보니 연기를 시키면 테이크마다 다 연기가 달라요. 그래서 카메라를 두 대 놓고 최대한 한 번에 많은 것을 담으려고 노력했죠. 그런데 막상 찍고 나서 비교해보면 대본이 있을 때보다 대본이 없을 때의 연기들이 더 좋았어요. 리허설부터 즉흥극식으로 많은 연습을 했고, 어린 친구들이지만 촬영하는 신의 목표를 정확히 알고 연기를 하더라고요."

[취재후기]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계속 영화를 찍어온 윤가은 감독에 대해 역시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아무도 모른다'와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을 연출한 일본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을 비교하는 이야기도 있다. 이 말을 들은 윤가은 감독은 "그냥 아이들이 나오는 영화를 만든다는 점에서 묶이는 거지, 감히 비교될 레벨이 아니다"며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소박하면서도 10대 소녀들의 속마음을 깊숙히 엿본 것 같은 진실함을 그려낸 놀라운 데뷔작 '우리들'을 보고 나니 언젠가는 윤가은 감독이 정말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어깨를 나란히 할 때가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마 그때쯤이면 굳이 윤가은 감독에게 '한국의 고레에다 히로카즈'라는 수식어를 달아주지 않고 그저 '윤가은 감독'이라고만 해도 충분할 것 같다는 생각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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