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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포인트] 여자, 여자에 꽂히다...'워맨스' 부상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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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포인트] 여자, 여자에 꽂히다...'워맨스' 부상하는 이유는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09.11 12: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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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용원중기자] 여성 버전 브로맨스인 ‘워맨스’가 최근 TV와 영화에서 두드러지게 눈에 띄고 있다. 워맨스는 '우먼(Woman)'과 '로맨스(Romance)'의 합성어로 성적 관계가 없는 여자들의 돈독한 관계를 의미한다. 동성 간이지만 사랑에 가까운 깊은 우정이 특징이다.

◆ 드라마 속 여자들의 우정이 한층 진해졌다

MBC 주말극 '마마'는 본격적으로 워맨스를 다룬 드라마다. 싱글맘 화가 한승희(송윤아)와 전업주부 서지은(문정희)의 우정이 극을 이끌어 나간다. 초반에 밀당을 하던 승희와 지은이 점점 서로를 깊이 이해하며 우정을 키워나가는 과정이 관전 포인트가 됐다.

▲ '왔다! 장보리'의 이유리 오연서(왼쪽)와 '마마'의 송윤아 문정희(오른쪽) [사진=MBC 방송화면 캡처]

유일한 가족인 아들을 두고 세상을 떠나야 하는 한승희가 차갑고 이성적이라면, 남편의 옛여자와 친구가 돼 남편의 혈육을 받아들여야할 처지인 서지은은 따뜻하고 감정적이다. 서로 다른 캐릭터가 이루는 케미스트리는 시너지 효과를 톡톡히 낸다. 송윤아는 방영 전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여자들의 잊혀진 우정을 다룬다고 하는데 요즘 표현처럼 정희씨와 썸타듯이 촬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정희 역시 “케미가 남자 배우들과 생길 줄 알았는데 미모의 송윤아 선배와 돋는 것도 독특하다”고 화답했다.

KBS 2TV 월화드라마 ‘연애의 발견’에서 가구공방 '여름&소나무'를 함께 운영하는 밀당고수 한여름(정유미)과 모태솔로 윤솔(김슬기)은 단짝 친구이자 하우스 메이트 그리고 동업자다. 이 정도면 애인, 남편보다 더 가까운 사이다. 티격태격하면서도 서로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는 두 여자의 관계는 그야말로 솔 메이트다. 드라마 제목은 ‘연애의 발견’이지만 남녀의 사랑 못지않은 끈끈한 우정의 발견으로 깨알 재미를 듬뿍 안겨준다.

▲ '연애의 발견'의 김슬기 정유미
▲ '잉여공주'의 김슬기 조보아

tvN 로맨틱 판타지 드라마 '잉여공주'에서 조보아는 한 눈에 반한 자신의 왕자님을 찾아 인간이 된 ‘전 인어 현 잉여’ 하니 역할을 맡아 열연하고 있으며, 김슬기는 인기 먹방 BJ 혜영으로 출연하고 있다. 혜영은 하니가 인어라는 사실을 아는 유일한 사람으로, 비밀이 발각될 위기마다 나서 하니를 지켜주는 친언니같은 존재다. 하니가 첫눈에 반한 셰프 시경(송재림)과의 사랑을 이어주기 위해 기회를 만드는가 하면 연애 코칭을 아끼지 않는다. 이런 혜영을 친언니처럼 믿고 따르는 하니가 만들어내는 케미스트리도 두드러진다.

세 드라마의 우정과 달리 애증의 결이긴 하나 MBC 주말극 ‘왔다! 장보리’는 의자매 연민정(이유리)과 장보리(오연서)의 엎치락뒷치락 날선 공방이 극을 주도하는 요인이다. 연민정에게는 이재희(오창석), 장보리에게는 이재화(김지훈)라는 러브라인이 있으나 두 여자 사이의 욕망과 복수가 이를 압도한다.

◆ 스크린에 고개 내미는 ‘여성들의 화학반응'

스크린의 워맨스 역시 주목할 만하다. 11일 개봉한 ‘마녀’(감독 유영선)는 오피스 호러를 표방한 공포영화다. 마성의 신입사원 세영(박주희)이 자신을 갈구는 깐깐한 팀장 이선(나수윤)에 대한 응징을 감행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쫓고 쫓기는 두 여성 캐릭터의 심리대결은 극 전반에 걸쳐 아슬아슬한 긴장을 조성한다.

현재 촬영에 한창인 ‘코인로커 걸’(감독 한준희)은 태어나자마자 지하철 보관함 10호에 버려졌던 일영(김고은)이 인천 차이나타운의 실질적 지배자이자 ‘엄마’라 불리는 조직폭력배 보스(김혜수)에 의해 조직원으로 성장하며 만나게 되는 세상을 그린다. 독보적인 카리스마의 김혜수와 충무로의 기대주 김고은의 만남으로 화제가 된 이 영화는 내년 개봉 예정이다.

▲ 공포영화 '마녀'의 나수윤 박주희

‘천하장사 마돈나’ ‘페스티벌’의 이해영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소녀’는 1938년 경성의 요양기숙학교에 한 소녀가 전학을 오면서 겪게 되는 기이한 일들을 그린 미스터리 영화다. 여학생 주란 역에 박보영, 기숙학교 교장 역에 엄지원이 캐스팅돼 내년 개봉을 목표로 촬영 중이다. 박보영과 엄지원은 극중 기숙사에 얽힌 비밀을 둘러싸고 맞서며 팽팽한 스릴과 서스펜스를 안겨준다.

◆ 여성소비자 주도의 TV·스크린 휩쓰는 ‘브로맨스’ 이어 ‘워맨스’ 등장

워맨스는 브로맨스와 이란성 쌍둥이다. '브라더(Brother)'와 '로맨스(Romance)'의 합성어인 브로맨스는 남자들 사이의 돈독한 관계를 뜻하는 속어다. 동성애는 아니나 우정보다는 훨씬 더 애틋하고 진하다. 이렇듯 남자가 남자한테 꽂힌 듯한 관계의 영화와 드라마는 전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다.

특히 국내에선 지난해 영화 황정민-이정재의 ‘신세계’, 김수현-이현우의 ‘은밀하게 위대하게’부터 최근 관객과 만난 곽시양-이재준의 ‘야간비행’, 오는 10월2일 개봉되는 박해일-유연석의 ‘제보자’, 제작 단계에 있는 황정민-유아인의 ‘베테랑’, 여진구-이민기 주연의 ‘내 심장을 쏴라’, 이병헌-조승우의 ‘내부자들’, 송강호-유아인의 ‘사도’에 이르기까지 남성 투톱 영화 붐과 동행하며 대중을 파고드는 강력한 코드로 자리매김했다.

▲ 브로맨스 영화 '야간비행'의 곽시양 이재준

이런 인기의 배경에는 소비자층이 존재한다. 한국 대중문화 시장은 여성 주도가 뚜렷하다. 영화는 20~30대, 지상파 드라마는 40~50대 여성들이 핵심 소비자다. 이들은 대리만족할 수 있는 남녀의 사랑이나 볼거리가 풍부한 ‘남자들의 로맨스’에 열광한다. 이렇듯 견고한 장벽을 뚫고 새순을 틔우는 워맨스가 미드 ‘섹스 앤 더 시티’ ‘위험한 주부들’처럼 국내 방송·영화계에서도 확고히 자리잡을 수 있을까. 전문가들의 시선은 엇갈린다.

◆ “워맨스, 이슈성으로 존재” vs “작품 정서에 따라 워맨스 각광받을 수 있어”

드라마 홍보사 틱톡의 권영주 대표는 “본격적인 워맨스는 아닌 것 같다. ‘마마’의 시청률이 오르는 것도 두 여성의 우정과 사랑보다는 시한부 인생이 먹혔기 때문이다. 아직은 워맨스 소재가 시청률에 영향을 주지 않는 이슈성으로만 존재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 영화 '코인로커 걸'의 김혜수 김고은

반면 안은영 드라마 칼럼니스트는 “드라마가 표방하는 정서가 무엇이냐에 따라 남주인공보다 여주인공이 시청자에게 훨씬 더 각광받기도 한다. 이럴 경우 여자가 만들어가는 드라마다보니 상대역으로 여자를 붙여서 주제의식을 선명하게 하는 장점이 있다”며 “공감코드 하나만 잘 찍으면 워맨스라도 불특정 다수의 시청자를 충분히 끌어들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송윤아, 정유미와 같이 여자들이 좋아하는 배우가 캐스팅됐을 경우 시청자의 공감대를 강력하게 자극한다는 주장이다.

영화쪽은 셈법이 조금 더 복잡하다. 드라마와 달리 1만원에 가까운 입장료를 지불하고 관람하는 관객의 기호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선 드라마틱한 스토리, 강력하고 매력적인 캐릭터, 티켓파워를 지닌 배우가 필수적이다.

◆ 여성의 능력·지휘 향상과 맞물려 우정 짙어진 현실 반영

하혜령 영화프로듀서는 “여자 원톱 혹은 투톱을 내세우는 건 여전히 불안하다는 게 충무로의 정서다. 하지만 새로운 소재의 다양성영화에 투자하는 CJ 무비꼴라쥬 등 투자배급사들의 움직임, ‘유행은 돌고 돈다’는 말처럼 한동안 남남 케미(스트리) 영화가 득세를 했기에 여여 케미의 시점이 오지 않겠느냐는 예상으로 서서히 워맨스 영화가 제작되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 워맨스의 고전 '델마와 루이스'의 수잔 서랜든과 지나 데이비스

지난 1993년 미국 영화 ‘델마와 루이스’는 가부장적 남편과 폭력적인 남성 등 남성 위주의 사회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자유를 향한 질주를 벌이는 두 여성의 이야기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20여 년이 흐른 현재, 사회 곳곳에서 여풍을 일으킬 만큼 진화하고 지위가 향상된 여성들은 더 이상 남성에 맞서 연대할 필요는 사라졌다. 여성들끼리 각자의 개성을 인정하고, 서로를 보완하며 동등한 시선으로 같이 갈 뿐이다.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우정과 의리는 찌질한 남성들보다 오히려 알파걸 및 여성들 사이에서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상황이다. 현실의 투사체인 영화·드라마가 이를 반영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보인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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