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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 '10년 걸린 극일' 바이킹스, 한국 미식축구의 도전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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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 '10년 걸린 극일' 바이킹스, 한국 미식축구의 도전은 아름답다
  • 민기홍 기자
  • 승인 2016.06.27 11: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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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바이킹스, J-스타스 제압 한일교류전 '프라이드볼' 9전10기 첫승...박정일 감독-류호상 "큰 성과"

[200자 Tips!] 극일(克日). 스포츠에서 흔한 일이 됐지만 미식축구에선 아니다. 일본은 풋볼 강국이다. 호주, 독일 등 외국팀을 무난히 꺾고 풋볼 종주국인 미국 클럽도 이따금씩 잡을 정도의 수준이다. 일본 사회인리그 챔피언이 세계선수권대회에 나가도 미국, 캐나다, 멕시코를 제외한 나라들은 얼마든지 물리칠 수 있다. 그런데 서울 바이킹스라는 국내 사회인 미식축구클럽이 일본의 1부리그 클럽을 잡았다. 사회인 미식축구 한일교류 10년 만에 맛보는 황홀한 첫승이었다.

[스포츠Q 글 민기홍·사진 최대성 강진화 기자] 박정일 감독이 이끄는 서울 바이킹스가 큰일을 냈다. 26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대운동장에서 열린 한일 사회인 미식축구 교류전 2016 프라이드볼(Pride Bowl)에서 일본 후지제록스 J-스타스를 13-7로 꺾었다. 지난 9년간 전패 끝에 거둔 '9전 10기' 첫승이다.

▲ 류호상이 J-스타스 수비 라인을 무너뜨리고 질주하고 있다.

경기 종료 24초 전, J-스타스의 4번째 공격을 막아내자 바이킹스 선수들과 본부석을 가득 메운 관중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내질렀다. 한국 풋볼이 X-리그(일본 사회인리그) 1부 클럽을 잡을 만큼 성장했다는 사실에 감격해하지 않을 미식축구인들이 누가 있으랴.

바이킹스 초대 사령탑인 남성남 전 감독은 “이번 대회를 위해 자료를 정리하다보니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한일 교류전 첫 해인 2007년 65-6을 시작으로 23-0, 17-0, 17-3, 46-7, 28-7로 완패했던 팀이 2013년 14-7, 2014년 14-6, 2015년 13-6로 간극을 좁히는 접전을 벌이고 나서 비로소 극일을 일궜으니 그럴 만도 했다.

▲ 바이킹스 박정일 감독(왼쪽)이 하프타임을 활용, 와이드리시버 김태형에게 작전 지시를 내리고 있다.

◆ 극일, 10년의 기다림

10년 만에 홈에서 치르는 첫 한일교류전이었다. 회사원, 경찰, 교사, 연구원 등으로 구성된 바이킹스 선수단은 “한 수 배우겠다”는 일념으로 지난 9년간 사비를 털어 일본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10주년이라 이번엔 어렵사리 J-스타스를 한국으로 초청했다. 그래서 꼭 이겨야 했다.

박정일 감독은 “이제는 거의 대등한 수준의 경기를 할 수 있다. 그들을 뛰어넘고자 힘쓰겠다”고 의지를 다졌고 이를 현실로 만들었다. 선후배의 격려를 받느라 정신이 없는 가운데 그는 “2골차 승부라 내다봤다”며 “예상한 대로 풀렸다”고 미소를 머금었다.

강력한 디펜스가 승리의 원동력이었다. 한 수 위의 피지컬을 바탕으로 탄탄한 수비벽을 쌓은 뒤 ‘야수’를 연상케 하는 러닝백 류호상을 활용해 주도권을 잡았다. 막판 J-스타스의 베테랑 쿼터백 겐타 수기타니의 현란한 패싱플레이에 다소 고전했지만 결코 역전은 허용하지 않았다.

▲ 26일 서울대 대운동장 본부석은 바이킹스의 승리를 기원하는 풋볼 관계자들로 가득 찼다.

박정일 감독은 “3년 전부터 프로그램을 전면적으로 바꿨다. 외국인 코치도 대거 영입해 선진 시스템을 구축하려 노력했다”며 “아시아 톱10 클럽을 목표로 했다. 그동안 성장세가 뚜렷했는데 X-리그 하위권 팀을 잡는 성과를 올렸다”고 기뻐했다.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된 류호상은 “취업준비생, 직장인들이 늘 일본에 가서 모든 것을 쏟아 부었는데 마침내 결과로 나타나 기쁘다”며 “내년엔 ‘홈이라 이겼다’는 소리가 나오지 않게끔 일본에 가서도 이겨보겠다”고 눈을 반짝였다.

▲ 디펜시브 라인 조성민이 J-스타스 선수를 거칠게 막아서고 있다.

◆ 고마운 J-스타스, 너그러운 시미즈 감독

바이킹스가 처음부터 J-스타스와 파트너십을 맺은 건 아니다. 2007년 상반기, 보다 나은 클럽으로 도약하기 위해 일본 클럽을 파트너로 물색했고 한큐 브루인스와 교류전을 성사시켰다. 그런데 일회성 행사가 됐다. 한큐는 두 수 아래인 한국 클럽과 맞설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어려울 때 손을 내민 이들이 J-스타스다. 한국 국가대표로 활약한 재일교포 강신박, 강효박 형제가 J-스타스 소속이었고 이들이 적극적으로 나선 덕에 맥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맺은 인연이 9년째 지속되고 있다. 남성남 전 감독은 “아무도 우리를 찾지 않았다. J-스타스가 유일했다”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박정일 감독은 “J-스타스는 상대가 안 됐는데도 우리를 받아준 고마운 팀이다. 김치볼(한국 미식축구챔피언전)을 넘어 그들을 잡겠다는 확실한 목표가 있으니 우리도 매년 성장할 수밖에 없다”며 “회식 자리에서 '고마움에 보답하는 게 너희들을 잡는 것'이라 말했고 그걸 이뤘다”고 설명했다.

▲ 히로시 시미즈 감독. J-스타스는 한 수 위의 기량에도 바이킹스와 교류전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히로시 시미즈 J-스타스 감독은 ‘9년째 연을 잇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질문에 “처음엔 우리가 계속 이겼지만 남성남 감독, 박정일 감독의 공부 열정이 강하게 느껴져 응답해주고 싶었다”며 “코칭 철학이 통해 이렇게 계속 연을 맺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9번이나 일본을 찾아주셨고 이번엔 우리가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원정 일정을 소화해보니 바이킹스가 정말 힘들었겠구나 느꼈다”며 “개인 기량은 훌륭했지만 조직으로 강하지 않았던 이들이 몰라보게 성장했다”고 패배를 깨끗이 인정했다.

이어 “J-스타스도 바이킹스의 크고 강한 선수들을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배운다”며 “X-리그의 우수한 선수들, 더 높은 레벨의 선수들을 만나기 전 피지컬이 우수한 한국 선수들과 경쟁할 수 있는 부분이 좋다”고 성과를 평가했다.

▲ 바이킹스 선수단은 10년 만에 처음으로 홈에서 치러지는 프라이드볼에서 승리하기 위해 기량을 갈고 닦았다.

◆ 일본 잡은 기세, 김치볼로 잇는다

바이킹스는 지난해 사회인리그(광개토볼) 4강에서 주저앉았지만 김치볼 챔피언 골든이글스에 유일한 패를 안긴 다크호스다. 일본 X-리그 1부 소속 클럽까지 잡았으니 ‘경계대상 1호’가 돼 버렸다. 선수층도 45명으로 탄탄해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힌다.

박정일 감독은 “잘 가다가 내 판단이 잘못돼 마지막 5분간 상대에 공격 모멘텀을 줬다”, “스페셜팀이 훌륭하다 생각해 소홀히 했더니 킥에서 준비 안한 게 티가 났다”, “아직 부상자가 많다” 등 문제점을 나열하며 “전력을 가다듬어 올 시즌 김치볼 제패까지 전진하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 바이킹스는 일본 클럽을 잡은 기세를 김치볼로 잇겠다는 각오다. 4년 만의 우승 도전이다.

류호상은 “10년 만에 일본 클럽을 꺾은 것은 만족하지만 홈 이점에도 불구하고 힘겹게 이긴 건 만족할 수 없는 부분”이라며 “그간 주력으로만 풋볼을 했는데 많은 노력을 했고 시야가 넓어진 것을 느낀다. 이젠 김치볼을 향해 달리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바이킹스의 마지막 김치볼 제패는 2012년. 당시 한양대를 23-0으로 따돌렸다. 2연패를 노렸던 2013년엔 부산대에 14-6으로 졌고 지난 2년간 광개토볼 4강에서 연속으로 쓴맛을 봤다.

통산 승률 71.4%(35승 14패), 김치볼 우승 2회에 빛나는 명문 클럽 바이킹스가 J-스타스를 무찌른 기세를 국내 무대에서도 이어갈지 이 초여름부터 관심이 쏠린다.

▲ MVP 류호상이 트로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러닝백인 그는 "이제 경기를 보는 시야가 생겼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 [WHAT Q] 일본 X-리그와 한국 미식축구

일본 사회인미식축구 'X-리그'의 X는 Xcellence(excellence), Xpert(expert), Xciting(exciting)을 의미한다. 우수하고 숙달된 플레이로 팬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경기를 제공하려는 의지를 나타냈다. 정식 명칭은 'Japan American Football League Xcellence'로 일본사회인미식축구협회(NFA)의 주도로 1996년 발족했다. 결승전에 진출하는 팀은 단일 시즌 기준으로 대체로 10경기를 치른다.

1,2,3,4부리그에 50여 개 팀이 참가하며 매년 승강제로 운영된다. 톱 레벨의 1부리그는 이스트, 센트럴, 웨스트 등 3개 디비전으로 분류돼 있으며 한 지역당 6개 팀씩 18개의 팀이 각 지역 리그를 치른다. 2부리그 팀 수가 한국의 전체 풋볼 팀 수와 비슷하다.

지난해 기준 대한미식축구협회(KAFA)에 등록된 팀은 대학팀 40개, 고교팀 3개, 사회인팀 8개 등 총 51개 팀이다.

□ 프라이드볼(Pride Bowl)이란?

지난해부터 서울 바이킹스가 참여하는 한일 미식축구 교류전을 '프라이드볼'로 네이밍해 위상을 높였다. 스스로 또는 자신과 관련된 모든 능력에 가치를 부여하고 당당히 여기는 마음이란 뜻으로 붙인 명칭이다. 현재는 일본미식축구협회와 외무성의 한일교류 인증사업으로 공인되고 있다.

[취재 후기] 지난 3월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와일드 판다가 골든이글스에 한 수 배우려 한국을 찾았다. 이번엔 이례적으로 일본 클럽이 한국을 방문했다. 최근 몇년간 미식축구 현장을 지켜보면서 가장 뿌듯한 점. 경기력만큼이나 행정력이 함께 발전한다는 사실이다. 활발한 국제 교류전을 통해 한국 풋볼이 무럭무럭 커 나가길 바란다. 불모지에서 열정 하나로 뭉친 미식축구선수들의 도전을 응원한다.

▲ 9전 전패 끝에 마침내 일본 클럽을 잡은 바이킹스 선수단. 승리 후 한데 모여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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