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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천사의 악기'로 대중에게 다가가는 하피스트 박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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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천사의 악기'로 대중에게 다가가는 하피스트 박은상
  • 오소영 기자
  • 승인 2014.09.12 10: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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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자 tip!] 187cm에 40kg. 사람의 키와 몸무게가 아니다. 이는 박은상이 연주하는 하프의 스펙이다. 거대한 외양을 가지고 있지만 그 앞에 앉아 하프를 뜯으면 금세 우아함을 주는 아이러니한 악기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국내 하프 연주자는 현재 200명 정도. 다른 클래식 악기에 비해 잘 볼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음악대학에 ‘하프’ 전공은 잘 없을뿐더러 있다 해도 한 학년에 1명꼴이다.

[스포츠Q 글 오소영 · 사진 최대성 기자] 박은상 하피스트는 18년째 하프와 함께 하고 있다. 음악과 관련된 이야기들과 바람들, 또 아직은 우리에게 친숙하지 않은 악기 하프에 대한 궁금증도 풀었다.

▲ 그랜드 하프와 함께한 모습. [사진=박은상 제공]

◆ 하프와의 첫 만남, 천사의 악기 같았죠

박은상 하피스트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하프 연주를 시작했다. 어머니가 성악을 전공하기도 했고 음악에 소질이 있어 막연하게 음악을 진로로 결정해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흔히들 하는 피아노엔 별 흥미를 못 느끼고 있던 때였다.

그러던 중 텔레비전에 나오는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던 어머니 덕분에 하프를 접하게 됐다.

“오케스트라 공연 중에 하프가 클로즈업됐는데, 어머니 눈에 아름다워 보이셨나 봐요, 소리도 우아하고요. 어린 제 눈에도 하프 연주자가 천사처럼 보였어요.”

TV속 천사같던 하피스트는 알고보니 발레리나 강수진과 자매로도 유명한 강여진이었다. 어머니의 지인 중 하프 연주자가 있어 소개를 받아 레슨을 시작했다. 직접 해보니 양 손으로 줄을 튕기는 게 신선하고 재밌었다.

“하프는 손끝으로 튕기는 악기잖아요. 좌우 뇌에 골고루 자극을 줘서 아이들에게도 좋은 악기예요. 처음 음악을 시작할 때 흔히들 피아노만 생각하는데 하프도 음계 배우기에 좋아요. 악보가 피아노 악보와 똑같기도 하고요. 단지 피아노는 열 손가락을 쓰는데 하프는 새끼손가락을 뺀 여덟 손가락으로 연주해서 손가락 번호만 다를 뿐이죠.”

그 때문인지 별 흥미를 못 느꼈던 피아노와는 달리 하프 연주는 신선한 재미가 있었다. 박은상 하피스트는 이를 시작으로 예술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까지 하프를 전공하게 된다.

 

◆ 1년간의 방황에서 얻은 거리공연의 즐거움

이렇듯 함께 해 온 하프지만 대학을 졸업한 후 하프 연주를 그만뒀던 적도 있다. 갑자기 찾아온 회의감 때문이었다.

“음악을 전공한 사람들은 다들 느꼈을 거예요. 예고를 거쳐 음대를 나오면 꿈이 다들 획일화돼요. 좋은 음악대학에 가서 좋은 오케스트라에 들어가거나, 좋은 학교의 교수가 되고 싶어하는 모두 같은 꿈을 꾸죠. 그런데 목표를 이루고 나니 스스로에게 의문이 들더라고요. 내가 이 악기를 정말 좋아해서 연주하는 건가, 무엇을 위해 연주를 하나 싶었어요.”

1년 정도 방황의 시간이 있었다. 하프를 손에서 놓고 다른 일들을 했다. 대학원에 가 유아음악교육을 배우고 사회생활도 해보면서 음악 비전공자들을 많이 만났다. 직접 대중과 얘기하다 보니 깨달음이 왔다.

“제가 대중들을 위해 큰 즐거움을 줄 수 있는 활동을 하고 있던 건데 지금껏 그런 것들을 몰랐었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부터 하프 연주를 다시 시작했어요.”

지금은 보다 대중들과 가까이서 호흡하고 공연하는 기회를 많이 갖는다. 그동안은 관객과 먼 무대 위에서 공연했지만 이젠 좀더 가까운 위치에서 공연하는 것이다. 무대 위에서 오케스트라와 협연할 때도 있지만 직접 현장에 가 공연할 때가 많아졌다. 관객과 직접 소통하니 관객의 반응을 좀더 빠르게 받고 피드백하기도 한다.

“예전엔 유명한 클래식 곡을 주로 연주했어요. 이젠 어른이나 어린이 관객들 모두가 좋아할 수 있는 친숙한 곡도 준비해요.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렛 잇 고(Let It Go)’나 영화 OST를 준비하는 식이에요.”

대중 앞에서의 공연은 늘 감동으로 다가온다. 특별히 기억되는 날은 ‘사랑의 집’ 시설의 장애인 어린이들 앞에서 했던 공연이다. 초반엔 산만하고 집중을 잘 안 했지만 공연이 진행되며 아이들의 태도는 달라졌다.

“제가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던 거죠. 그렇게까지 음악을 즐겨줄 줄 몰랐어요. 잔잔한 곡을 연주했는데 아이들이 정말 조용히 감상하고, 연주가 끝나고 나선 하프의 소리가 정말 좋고 공연에 감사하다고 하더라고요. 많이 감동했어요.”

▲ 야외 공연 모습. [사진= 박은상 제공]

◆ ‘까탈스런’ 하프, 이것만은 알아주세요

하프가 아직 대중과 가깝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점차 비전공자들도 취미로 배우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전공자들이 다루는 거대한 하프는 아니지만 무릎 위에 놓을 수 있을 정도의 취미용 하프도 있다. 하프는 일반적으로 페달로 반음 조절을 하는데, 이 경우는 페달이 아닌 핀으로 조절하는 형식이다.

“취미로 배워도 충분히 아름다운 연주를 할 수 있어요. 하프의 모양과 소리가 예쁘고, 남들이 하지 않는 악기를 취미로 한다는 것에서 오는 자부심에 관심을 가지는 분들도 많은 것 같아요.”

이렇듯 취미 연주로서의 관심은 많아지는 데 비해 여전히 하프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도는 높지 않은 편이다. 하프는 악기 특성상 다루기가 까다롭다. 하프 운반을 따로 하는 직원이 있을 정도로 운반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그래서 공연비 외에 ‘운반비’의 개념이 있는데 여기에 대해 미처 모르고 “내가 직접 옮기겠다”고 막무가내식으로 의견을 표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직사광선을 쐬면 망가지는데 해가 쨍한 땡볕 아래 연주할 자리를 마련할 때도 있다. 야외공연을 할 때는 지붕과 턱이 있어야 하는데 미처 하프의 특성을 몰라 주최 측에서 준비에 미숙한 경우다. 이때는 파라솔을 급하게 구해 지붕을 만들기도 했다. 그래도 박은상 하피스트는 긍정적인 대답을 했다.

“연주자 입장에선 악기가 망가지는 거니까 좋지 않지만, 그래도 사람들과 다같이 바닥에서 무대 없이 즐겼던 공연이라 특별하게 기억될 것 같아요.”

 

[취재후기] 지금껏 계속해왔던 길을 포기하려다 다시 시작한 만큼 박은상과 하프는 뗄 수 없는 사이인 것처럼 보였다.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을 묻자 그는 젊은 하피스트들에게 마련된 자리가 없다는 아쉬움을 전했다. “오케스트라에서도 하프 단원을 뽑는 일이 잘 없고 연주에 필요하더라도 파트타임처럼 단발적으로 공연하는 형식이에요.” 다른 악기 단원들은 소규모의 오케스트라에서도 뽑지만 하프의 경우 수요가 적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동시에 또다른 꿈을 꾼다. 하프연주자들이 보다 대중들에게 좀더 가까워지길 하는 바람이다. “아직도 ‘하프를 처음 본다’는 분들이 많이 계세요. 이제 그런 분들이 없을 만큼 하프와의 낯섬을 줄이도록 대중에게 다가가는 연주를 하고 싶어요.”

박은상은 누구?

1987년생. 선화예중·고를 거쳐 연세대학교 음악대학 기악과를 졸업했다. 숙명여대 사회교육대학원 유아음악교육 수료.

2015년 유망신인으로 선정돼 2015유망신인음악회 참가, Kumo 오케스트라 협연, 총신대학교 오케스트라 초청연주, 단독 리사이틀, 문화예술나눔터 ‘아이원’ 초청공연 등 다양한 오케스트라 정기공연과 오페라에 참여했다.

 

 하프, 진실 혹은 오해

아직까지 국내에 하피스트는 흔하지 않다. 박은상 하피스트의 도움으로 하프에 대한 오해를 풀어봤다.

- 하프는 부드러운 소리만을 낸다? No.

▲ 흔히 그렇게 생각하지만 하프에도 다양한 주법들이 있다. 손가락으로 튕기는 것 외에 손톱으로 줄을 세게 긋거나 울림통을 때리기도 하고 강렬한 느낌도 줄 수 있다. 하프의 현대음악 연주를 들어보길 추천.

- 남자 하피스트는 별로 없다? No.

▲ 한국엔 극소수다. 외국엔 남자 하피스트도 많다. 특히 전자 하프를 연주하는 남자들이 많다. 유튜브에서도 남성들이 연습용 작은 하프를 연주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박은상 하피스트의 말에 따르면 현재 취미 레슨을 받고 있는 수강생 중 남성의 비율도 꽤 된다고 하니 걱정 말고 도전해보길.

- 하프는 다른 악기보다 훨씬 비싸다? No.

▲ 전공자가 쓰는 악기로 따지자면 오히려 바이올린보다 가격이 저렴하다. 바이올린의 경우 오래된 ‘고악기’일수록 가격이 오르지만 하프는 10년 정도 지나면 가격이 거꾸로 떨어지는 소모 악기이기 때문. 참고로 전공자의 경우는 6000~7000만원 정도. 취미로 배우는 경우는 악기사에서 한 달에 10만원 정도에 대여할 수 있다.

- 하프를 가지고 있으면 대학은 무조건 간다? No.

▲ 하프 전공학과가 많지 않고 한 학년에 하프 전공자는 1명이 정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모집 인원 자체가 적어 이 안에서도 경쟁은 치열하다.

ohsoy@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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