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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 저니맨 최익성의 '도전 중독', 이번엔 공포의 외인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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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 저니맨 최익성의 '도전 중독', 이번엔 공포의 외인구단
  • 민기홍 기자
  • 승인 2016.07.04 11: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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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구단 창단 선언, "원더스, 미라클과 다른 모델 자신... 스포츠인 성공 사례될 것"

[200자 Tips!] 이적 6회, 몸담은 구단만 6팀. ‘저니맨’ 최익성(44)이 또 일을 벌였다. 청바지, 소주방 사장에서 배우, 작가, 강사로 변신하더니 4년 전 자신의 별명을 간판으로 내세운 저니맨야구육성사관학교를 설립했다. 사업이 안정화됐다 싶으니 이번엔 독립야구단을 만들겠단다. “도전이 내 기질이자 내 길”이라 말하는 그는 “기필코 자생력을 갖춘 팀을 만들어 내겠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스포츠Q 글 민기홍·사진 최대성 기자] 지난 5월 9일. 저니맨야구육성사관학교 관계자는 “저니맨 외인구단 창단을 위한 준비를 마쳤다”고 기자에게 알렸다. 야구인들이 직접 운영하는 자립형 독립구단을 바라온 최익성 대표가 마침내 꿈을 이루는 순간이었다.

▲ 독립구단 창단을 선언한 최익성 대표가 자신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판매하는 커피컵을 들고 웃고 있다.

'잡초 인생'이었다.

최익성은 신고선수로 1994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해 한화 이글스, LG 트윈스, 해태(KIA) 타이거즈, 현대 유니콘스를 거쳤다. 2003년 방출 뒤 삼성에 재입단했고 2005년 SK 와이번스에서 현역 생활을 마감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온 국민의 관심이 축구로 쏠려 있을 땐 심판도, 상대팀 포수인 홍성흔도 현대로 이적한 사실을 몰랐다니, 참으로 웃프다.

외인구단 창단 배경을 묻자 최익성 대표는 “고양 원더스, 연천 미라클의 사례를 유심히 지켜보며 시행착오를 덜 겪을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며 “망하지 않는 시스템을 만들 자신이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몇 년간 조용하다 싶었던 최익성이 구단주이자 감독이란 타이틀을 추가했다. ‘도전의 아이콘’ 저니맨의 새로운 플랜은 뭘까.

▲ 5월 출범한 저니맨 외인구단. 현재는 10명 안팎이지만 향후 20명 이상으로 인원을 늘려나갈 예정이다.

◆ 고양 원더스, 연천 미라클과 어떻게 다른가

고양 원더스, 연천 미라클과 차이점을 물었다.

“원더스는 기업인 개인에 의존했죠. 지원이 끊기니 더 이상 안 되는 겁니다. 미라클도 근근이 유지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스폰서인 경기도 연천군이 마음을 돌린다고 생각해 보세요. 위태로워지겠죠. 외인구단은 자생할 수 있습니다. 저니맨사관학교, 카페, 출판업 등 제 사업이 잘 돼야 하는 이유입니다. 물론 야구를 사랑하는 기업인들과 접촉하는 노력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2011년 9월 15일 닻을 올린 최초의 독립구단 원더스는 2014년 9월 11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직접 너클볼을 배우러 미국으로 떠났던 허민 구단주의 야구 사랑이 아니었다면 애초에 생길 수도 없는 독립구단이었다. 매년 사비 30억원 이상을 투자했지만 독립리그 창설도 실패했고 비즈니스 모델을 마련하지도 못했다. 한계가 뚜렷했다.

▲ 서울 광진구에 자리한 저니맨야구육성사관학교 전경. 최익성 대표는 오직 야구 매니지먼트를 위해 건물 전체를 매입했다.

미라클의 경우 메인 스폰서인 연천군과 외 기업들의 후원으로 운영된다. 창단을 주도한 인터내셔널스포츠그룹(ISG)이 직접 투자할 여력은 없어 늘 자금줄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선수들이 매달 회비를 내는데 허민 구단주같은 이가 등장하지 않는다면 최익성 대표의 말대로 존속이 위태로워진다. 그래서 미라클은 스폰서 확보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최익성 대표는 “사관학교 회원수가 늘면서 안정적인 수입이 생겼다”며 “4년 전부터 내가 해왔던 게 결국 독립구단의 전초전인 셈”이라고 했다. 서울 광진구에 자리한 저니맨육성사관학교는 카페, 실내연습장, 숙소, 트레이닝 시설, 숙소까지 갖춘 야구 매니지먼트 전문회사다. 감독인 최익성 대표가 외인구단의 가장 큰 스폰서인 셈이다.

◆ 자생 모델 구축해도 공짜는 없다, 왜?

외인구단이 원더스처럼 공짜로 운영되는 건 아니다. 미라클처럼 회비를 받는다.

“사관학교 유지비만 한달에 4000~5000만 원이 들어가요. 당연히 비용은 부담해야죠. 운동하는 친구들이 공짜에 익숙합니다. 고마워할 줄도 모르고 셈도 밝지 않아요. 안에서 돈이 도는 구조를 만들고 이를 주지시킬 거예요. 인원이 늘어나면 경쟁구도를 만들 겁니다. 독립팀 밑에 육성팀을 둬 강등 제도를 두는 거죠. 향후 20명이 장학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 중입니다.”

▲ 4층 트레이닝장에서 운동 중인 저니맨육성사관학교 멤버.

최익성 대표는 인터뷰 도중 화분에 물을 주는 선수들을 가리키며 설명을 이었다.

“사관학교에 입학하면 시장 가서 직접 화분부터 사오라 합니다. 졸업할 때까지 안 죽게 노력하라고 강조해요. 나무 하나도 못 살리면서 너희들 인생을 어떻게 사냐고. 물주고 신경 쓰고 살리라고. 살아가는 원리부터 깨우치라고. 청소도 하고 단체 생활도 익히고 야구만 배우러 오는 곳이 아닙니다. 여긴 프로가 아니잖아요. 스스로 해내는 법부터 배워야 합니다.”

인생의 쓴맛을 본 선수들이 저니맨사관학교를 찾는다. 개인육성시스템을 통해 민경수(SK), 윤동건, 이원재(이상 kt), 최우석(한화) 등 4명이 프로 무대로 돌아간 전례가 있다.

최익성 대표는 “팀 속에 숨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시련을 극복하는 과정이 중요한 것”이라며 “이 레벨의 선수들에겐 정신력도 정신력이지만 실력을 연마하는 게 배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개인 육성시스템의 중요성, "팀 속에 숨지 마라"

당장 교류전은 갖지 않는다. 현재 구성원은 10명 안팎. 열정을 가진 자라면 누구든 환영이다. 상시 모집 중. 최익성 대표는 “9월 이후면 자원이 쏟아져 나온다. 팀이 만들어지면 경기를 하겠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라며 “팀 타령할 때가 아니다. 개인 실력이 없어 못 했던 친구들이다. 실전을 치를 수 있는 준비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 최익성 대표는 "프로야구 선수를 목표로 불꽃을 태웠으면 한다"며 "혹시 실패하더라도 사용한 구성원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두 달간 몸을 만든 친구들은 이미 상태가 월등히 좋아졌다. 동네 덩치 큰 형에서 야구선수로 변모한 친구도 있다”고 설명을 이어간 최 대표는 “프로야구 선수를 목표로 적게는 6개월, 많게는 1년 간 불꽃을 태우길 바란다. 혹시 실패하더라도 인생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 훌륭한 멘탈을 갖춰 사회의 유용한 구성원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고 눈을 반짝였다.

경기고를 졸업하고 LG 트윈스, kt 위즈를 거친 유틸리티 내야 자원 안준(22)은 “개인 훈련에 최적화된 프로그램 덕을 봤다. 파워, 기술이 몰라보게 좋아졌다”며 “안 다치고 다시 프로 유니폼을 입는 게 꿈이다. 모두가 나를 알아볼 수 있도록 성장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세광고, 송원대 출신의 문병승(27)은 미국, 일본 무대를 노크했다가 팔꿈치 통증으로 쓴맛을 보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문병승은 “아픈데 참고 던지다 폼이 망가졌는데 학교의 재활을 통해 몸이 회복됐다”며 “구단이 생겼다. 다시 기회가 왔다.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인생을 걸겠다”고 전의를 불태웠다.

▲ 문병승(왼쪽)과 안준. 둘은 프로 입문을 위해 인생을 걸었다.

◆ 스포츠인 성공 사례 절실, 저니맨이 하겠습니다

최 대표는 4층짜리 저니맨사관학교 건물 옥탑방에 터를 잡았다. “화장실도 없어 불편하지만 이동 시간도 아끼려 한다. 다른 생각하면 답이 나오질 않는다”며 “앞만 보고 달려야 외인구단이 궤도에 오른다”고 미소짓는다. 현역 때도 은퇴 후에도 참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성공할 때까지 몰아붙이는 게 내 기질, 시련이 닥쳐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히는 게 내 길”이란다.

사서 고생하는 이유가 있다. 최익성 대표의 한이 서린 꿈이다.

“세상에 나와 떠돌면서 느꼈어요. 돌아다니다 보니 발붙일 곳이 없는 겁니다. 과감히 덤볐어요. 하다보니 탤런트에, 작가에, 출판사 사장에, 강연에, 사업도 합니다. 운동선수 하다가 탤런트 할 수 있는데, 그 반대는 안 되잖아요. 후배들이 다음 삶을 걱정하지 말라고, 두려움에서 벗어나라고 말하고 싶어요. 스포츠가 높은 곳이라는 걸. 물이 흐를 수 있다는 걸 알게 해주고 싶어요.”

▲ 실내연습장 전경. 저니맨사관학교는 개인 매니지먼트 시스템이 잘 구축돼 있다. [사진=저니맨야구육성사관학교 제공]

열변이 이어진다.

“2010년에 ‘저니맨’이란 책을 썼어요. 그 때마다 주변에서 ‘박찬호야? 이승엽이야? 네가 뭔데 책을 써?’ 했단 말입니다. 성공한 사람만 책을 쓰나요? 스토리를 가진 사람이면 되는 거예요. 해보니 됩니다. 강연도 그래서 나갔고요. 저는 제가 말솜씨, 글솜씨가 있는지 모르고 살았어요. 각자 숨은 재능들이 있어요. 야구만 하니까 모르는 거죠. 나와 보니 이게 진짜 제 길입니다.”

연기 생초보였던 그는 데뷔작인 ‘2009 외인구단’에서 조연을 맡는 행운을 누렸다. 야구가 배경인 드라마라 가능했던, 운으로 딴 배역이니 더 이상 일이 들어오지 않았다. 결국 매니지먼트사에 계약 해지를 통보하고 21년간 야구에 인생을 건 이야기를 글로 정리하기로 했다. A4용지 75장에 달하는 이야기가 나왔다. 출판사 RJ(Real Journeyman)컴퍼니를 설립, 책을 냈다.

마지막 메시지.

“스포츠인들이요. 정직, 신뢰, 존중, 배려 등 사회가 원하는 가치들을 충분히 갖고 있는데 스스로 인지도 못해요. 운동만 하니까. 그래서 전 선수협, 은퇴선수협회 출범 때 발벗고 나섰어요. 권익은 우리가 찾아야죠. SM 이수만, YG 양현석 사장처럼 연예인 했던 분들이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모범적인 모델을 만들지 않았습니까. 우리도 존경받을 사례를 만들어야 해요. 제가 하겠습니다. 지켜봐 주세요.”

'대기업 7곳 다닌 남자', 최익성이 이끄는 외인구단은 어떤 미래를 그릴까.

입단 3년째던 1997년, 삼성의 붙박이 주전으로 발돋움해 20홈런-20도루 클럽에 가입했다. KBO 통산 14번째 대기록이었다. '공포의 1번타자'로 이름을 떨쳤으나 전성기는 오지 않았다. 1회 선두타자 홈런만 9개를 날렸다.

당시만 해도 흔치 않았던 웨이트트레이닝을 홀로 즐기다 코칭스태프의 눈밖에 났고 선수협 활동으로 구단들로부터 미운털이 단단히 박혔다. 해태의 마지막 타자이자 KIA의 1호 홈런 타자이기도 하다.

6번의 이적 후 미국, 일본, 멕시코의 독립리그 등에서 현역생활을 연장했다. 2007년 그라운드를 떠나 다채로운 경험을 했고 2012년 저니맨야구육성사관학교를 설립, 대표가 됐다.

KBO 통산 기록은 621경기, 타율 0.267(1686타수 450안타), 60홈런 216타점 85도루 309득점.

[취재 후기] 역대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눈 인물이었다.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를 만큼 신나는 대화였다. 최익성 대표는 "선수가 포기하지 않으면 내가 포기할 일은 절대 없다"며 "안되는 친구들을 만들었을 때 뿌듯함은 이루 말할수 없다"고 귀띔했다. 연천 미라클과 저니맨 외인구단이 함께 발전해 독립리그의 초석을 다지길 바란다. 갈곳을 잃은 야구인들이 한번 더 희망을 품을 수 있도록 기자도 열심히 응원하겠다.

▲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조성원 코치, 안준, 문병승, 정세현, 최영민, 이재홍, 황유찬, 서시원.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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