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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포인트] 드라마 '막장' 넘어 '힐링'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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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포인트] 드라마 '막장' 넘어 '힐링'을 말하다
  • 오소영 기자
  • 승인 2014.09.13 11: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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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오소영 기자] 2011년 유행 키워드는 ‘힐링’이었다. 아픈 현대인의 마음을 치료해 준다는 의미의 ‘힐링’은 다양한 측면에서 유행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로 대표되는 힐링 에세이집이 등장했고 SBS는 출연자의 삶의 굴곡을 돌아보며 시청자와 출연자에게 감동을 주는 토크쇼 프로그램의 제목에 ‘힐링’을 넣어 ‘힐링캠프’를 제작했다. 그러다 ‘힐링’은 갑자기 유행했던 것처럼 어느 순간 잦아들었다. 그런데 3년 후인 2014년 현재, 다시금 ‘힐링’ 키워드가 떠오르고 있다. 드라마에서다.

▲ KBS2 '아이언맨'은 늘 분노에 차 있어 심지어 몸에 칼이 돋는 남자와 한없이 밝은 여자와의 만남을 담는다. [사진=KBS2 제공]

◆ 결핍을 채워주는 힐링 드라마

이 모습은 특히 지상파 수목드라마에서 두드러진다. 10일부터 KBS2는 ‘아이언맨’을, MBC는 ‘내 생애 봄날’을 방영 중이다. SBS의 경우 지난 11일 ‘괜찮아, 사랑이야’가 종영했다. 이들 드라마는 모두 ‘힐링’을 키워드로 한다.

이들 드라마에는 뭔가에 결핍된 인물들이 등장한다. 어린 시절의 좋지 않은 기억, 혹은 살면서 얻은 마음의 상처, 연인과의 결별 등 저마다 상처를 가지고 살아간다. 그러다 상대를 만나며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 간다.

KBS2의 ‘아이언맨’에는 아버지에 대한 분노로 항상 화가 나 있고 날이 서 있어, 심지어 몸에서 칼이 돋는 남자가 등장한다. 거친 남자 주홍빈(이동욱 분)은 한없이 밝은 손세동(신세경 분)을 만나 변화해 나간다.

SBS의 ‘괜찮아, 사랑이야’는 겉으로는 완벽해 보이지만 상처를 지닌 이들의 모습을 다뤘다. 장재열(조인성 분)에겐 지워버리고 싶은 어린 시절이 있고 지해수(공효진 분)는 연인으로부터 상처를 입어 콤플렉스를 갖게 된 인물이다. 결핍을 가진 둘은 사랑 속에서 서로를 치유해 나간다. 또한 두 인물 외에 주변 인물들이 안고 살아가는 상처와 문제들도 다뤘다.

MBC의 ‘내 생애 봄날’은 시한부 인생을 살다 장기 이식으로 새 심장을 얻은 이봄이(최수영 분)와 심장을 기증한 여인의 남편인 강동하(감우성)가 만나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다. 각자 시한부 과거와 아내를 잃었다는 결핍을 안고 있다. '내 생애 봄날'의 이재동 PD는 2007년 에이즈에 걸린 딸과 함께 살아가는 여자와 세상에 마음을 닫은 남자가 만나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인 ‘고맙습니다’를 연출한 바 있다. 당시 ‘힐링’이란 개념은 지금처럼 유행하지 않았으나 시청자들은 간만에 보는 따뜻한 드라마라고 평했다.

▲ 11일 종영한 SBS '괜찮아, 사랑이야'는 두 남녀 주인공이 서로가 갖고 있는 결핍을 사랑으로 치유해 가는 과정을 보여줬다. [사진=SBS제공]

◆ 불완전한 캐릭터로 시청자들의 공감 얻어…‘누구나 상처를 안고 있다’

드라마를 통해 시청자가 얻는 만족감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이 ‘대리만족’ 혹은 ‘공감’이다. ‘대리만족’은 실현할 수 없는 장면이나 판타지를 드라마로 접하며 대신 만족을 느끼는 경우다. ‘공감’은 드라마 속 상황에 자신의 이야기인 듯 공감하는 경우다.

보통 드라마 속 캐릭터들은 현실감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걱정이 없어보이거나 경제적 조건이 따라주지 않더라도 꿈을 잃지 않고 밝게 사는 캔디 캐릭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들 힐링 드라마의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속에는 상처가 있는’ 불완전한 캐릭터들은 시청자들에게 보다 공감을 얻을 수 있다.

물론 이들 드라마의 인물들처럼 극단적인 설정과 환경에 처해 있는 건 아니지만 우리 모두는 결핍적인 부분을 안고 있다.

‘아이언맨’의 제작발표회에서 김용수 PD는 “‘아이언맨’은 힐링에 포인트를 뒀다. 개인사나 사회적인 이유로 상처받은 사람에게 밝고 유쾌한 드라마로 조금이나마 위안을 드리고 싶다”고 기획 의도를 밝히기도 했다. 이 점에서 ‘힐링’ 드라마들은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얻고 위로를 전하는 데 효과적이다.

▲ MBC '내 생애 봄날'은 새 심장을 얻어 새 삶을 살게 된 과거 시한부였던 여자와 아내를 잃은 남자의 사랑 이야기다. [사진=MBC 제공]

◆ ‘막장 드라마’와 ‘차가운 사회 분위기’에 지친 이들에게 전하는 위로

한때는 ‘막장 드라마’가 유행하던 때도 있었다. 현실감 없고 말도 안 되는 설정들과 시청률이 비례했다. 가장 흔히 등장하는 소재는 ‘복수’였다. 전문가들은 대중이 평소 억누르고 있는 분노나 스트레스를 막장 드라마의 복수 장면을 보고 푼다고 해석했다.

‘힐링 드라마’에는 그러한 자극적인 장면이나 굉장한 악역은 없다. 대신 잔잔한 장면과 전개로 위로를 전한다. 지금의 대중들은 분노를 시원하게 풀기보단 따뜻한 위로를 받고 싶어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여기엔 뒤숭숭한 사회 분위기도 한몫하고 있다. 지난 2월 신입생 OT를 떠났던 대학생들이 리조트 체육관이 붕괴되며 인명 사고를 당했다. 이를 시작으로 수많은 청소년들이 목숨을 잃은 세월호 침몰참사, 임병장 총기난사를 비롯한 군대 사망사고 등 올해에는 대형 사고들이 유난히 자주 일어났다.

사고는 언제나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대중들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더 불안에 떨고 있다. 사고의 규모들이 여느 때보다 크다는 점과, 연령대가 어린 무고한 이들에게 참사가 잇따르고 있다는 사실이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개인의 사회생활에서 생긴 분노와 스트레스와는 다른 차원의 충격이다. 이런 이유로 좀더 따뜻하고 밝은 드라마를 통해 현실에서 오는 불안을 해소하려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고 풀이된다.

자극이 있어야 시청자 반응이 나온다는 막장 드라마와는 달리 이들 작품은 잔잔한 전개에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괜찮아, 사랑이야’는 12.9%(닐슨코리아 기준)로 11일 종영했고 “‘괜사’를 보며 위로받았다”는 시청자들도 많았다.

10일 첫 회를 시작한 다른 두 드라마의 경우도 아직 평가를 내리기에는 이르지만 긍정적인 반응으로 출발했다. 특히 ‘내 생애 봄날’은 ‘억지 감동’을 자극할 수 있는 소재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너무 포커스를 맞추지 않으면서 담담하게 풀어내 1, 2회가 호평 받았다.

‘괜사’에 출연했던 공효진은 “‘괜사’는 스스로 힐링할 수 있었던 작품”이라고 종영 소감을 전했다. 연기자 본인까지 치유받을 수 있는 ‘힐링 드라마’들은 대중을 웃고 울리고 궁극적으로는 위로해 주는 드라마의 역할을 더욱 충실히 해내고 있다.

ohsoy@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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