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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싱어](9) '무정블루스' 강승모, 밴드 에버뉴와 말하는 "죽은 음악인의 사회" (인터뷰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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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싱어](9) '무정블루스' 강승모, 밴드 에버뉴와 말하는 "죽은 음악인의 사회" (인터뷰Q)
  • 연나경 기자
  • 승인 2016.07.05 12: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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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자 Tip!] 어느정도 궤도에 올랐을 때, 스스로 나서서 '총대'를 매는 것은 쉽지 않다. 이룬 것이 많기 때문에 얻을 것 보다 잃을 것을 더 많이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향력 있는 인물이 목소리를 높일 때, 세상은 조금이라도 변할 기미를 보인다.

[스포츠Q(큐) 글 연나경·사진 최대성 기자] '사랑아' '내 눈물 속의 그대' '무정블루스'를 부른 강승모가 지금의 음악 시장을 위해 총대를 맸다. 그는 조금이라도 지금의 상황이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인터뷰 자리에는 6월25일 강승모 밴드와 옥상 콘서트를 함께 한 어쿠스틱 밴드 에버뉴(Ever-new)의 베이시스트 김도윤, 키보디스트 장경문도 함께했다.

◆ 강승모, 후배들과 함께 작은 공간으로 돌아오다

▲ 강승모

강승모가 밴드 에버뉴와 합동 공연을 펼쳤던 '옥상 콘서트'는 6월 25일 서울 문래동 모처에서 개최됐다. 평소 강승모가 공연하던 500석 이상의 공연장이 아닌 100석 규모로, 강승모에게는 십수년 전을 생각나게 했다.

"궁금한 콘서트였어요. 사운드도 그랬고, 시내 한복판 옥상이었잖아요. 공간이 작아져서 팬들 반응도 어떨지 궁금했고. 처음 해 보는 것들이 많았어요." (강승모)

밴드 에버뉴에겐 남다른 의미였다. 강승모의 단독공연이 펼쳐진 공간은 에버뉴가 매주 정기공연을 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베이시스트 김도윤은 함께 공연을 한 선배 강승모를 치켜세웠다.

"밴드 멤버들이 각자 다른 밴드의 연주자로 활약하고 있지만, 자기 음악을 하기 위해 함께 음악을 하고 있어요. 저희로선 성공하신 선배님과 무대에 함께 서는 것 자체가 의미가 깊었죠. 게다가 공연이 바로 매진돼서, 선배님은 다르시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우린 언제 저렇게 되나, 싶었고요." (김도윤)

강승모는 명동 '쉘부르'에서 처음으로 음악을 시작한 가수다. 또 수십년 전 포크음악의 부흥으로 많은 라이브 카페가 자리했던 '미사리'에서도 노래를 부르며 많은 팬들을 거느렸던 인물이다. 미사리에서 문래동으로, 공간은 달라졌지만 작은 공간에 대한 열망과 더불어 불을 보면 뛰어드는 부나방같은 기질을 보였다.

"수십년 전에 미사리가 있었고, 그 공간이 참 좋았어요. 팬들과 소통하고, 가까이서 음악을 들을 수 있고. 그 공간에서의 공연을 소중한지 모르고 하다가 문화 공간이 없어졌잖아요. 그 이후에 화려한 것들에 현혹돼서 그렇게 했었는데, 과거 했던 공간들이 그리워지더라고요. 그리고 공연을 멈출 수는 없어요. 불을 보면 뛰어드는 부나방 같은 거죠."(강승모)

◆ 강승모가 말하는 지금의 음악시장은? "죽은 음악인의 사회"

▲ 강승모와 밴드 에버뉴(장경문, 김도윤)

강승모에게 음악이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임과 동시에 생업이었다. 그는 현재 음악시장의 모습을 정의할 때,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시인만 음악인으로 치환된 대답을 내놨다.

"직장을 다니거나 어딘가에 소속된 사람들은 파업을 할 수가 있잖아요. 하지만 음악인들은 그게 불가능해요. 모든 국가의 상황을 알 수 없어서 객관적이진 않지만, 적어도 제가 다녀본 나라들 중에 대한민국의 음악시장이 제일 이상해요. 음악하는 사람들은 파업도 데모도 할 수 없어요. 그 이유는 대상이 영세업자나 개인업자이기 때문이에요."

"열심히 음악을 해도 남은 결과물은 좋지 않아요. 어려운 상황이 많은데, 중요한 건 사람들은 '연예인'이라고 하면 돈이 많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이게 굉장히 아이러니하고, 겉과 속이 너무 다르다는 거죠. 음반을 내고 싶어도 레코드 회사가 없고, 음악 사회에 대한 환경이 와해돼 버렸어요."

하지만 강승모에게 음악은 의식주만큼이나 중요한 것이었다. 음악은 '마음의 공허함'을 채우는 수단이었다. 그는 경제논리에 얽혀 음악이 중요시되지 않는 상황에 대해 안타까움을 가졌다.

"예술이라는 건 유행이 있을 수 없어요. 음악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공허함을 채우는 역할을 해요. 우리 생활에서 의식주만큼이나 필요한 것인데, 너무 경제논리에 치우치다 보니까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거예요. 음악하는 사람들이 교수가 된다는 상황이 말도 안돼요. 음악을 할 수 있는 상황을 계속해서 만들어줘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상황이기때문에 음악을 할 수 있는 공간은 꾸준히 남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 선배 강승모가 할 수 있는 일, 지금의 상황을 울부짖는 것

▲ 강승모

강승모는 삼십여 년이 넘게 음악생활을 해왔다. 많은 뮤지션들에게 그는 우러러볼 법한 선배다. 하지만 그가 음악 시장을 '죽은 음악인의 사회'라고 표현한 것처럼, 강승모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금의 상황을 알리는 것 뿐이었다.

"뭔가를 외치는 건 돈 들어가는 일이 아니니까. 당당하게 지금의 상황을 바로 잡아서 초심으로 돌아가고, 상황이 나아질 수 있도록 밑거름을 만들고 싶어요. 최소한의 마지막 발악이죠. 울부짖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성토를 할 거예요."

그는 능력있는 가수들을 한 공간으로 끌어오는 방법도 지금의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문래동'에서 콘서트가 열린 이유도 이에 속했다.

"환경을 바꾸는 노력이 필요해요. 될까? 안되겠지? 라는 생각을 많이 하겠지만 그 생각이 토착화 되는 것을 막아야죠. 선배로서 후배에게 환경이 바뀌는 것을 느끼게 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문래동은 희망적인 공간이죠. 내가 여기서 시작을 해서 다른 뮤지션들이 움직이게 된다면 이 공간은 지금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공간으로 탈바꿈 될 수 있는 것이니까요."

강승모는 음악인이기도 하지만 한 집안의 가장이다. 그는 여러 번 후배들에게 물려줘야 할 희망의 공간에 대해 강조했다.

"어느 때보다 대중음악이 사장됐고, 음악인들이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는 시대라고 생각해요. 누구를 돌볼 만한 상황은 아니지만, 알릴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계속해서 목소리를 높이려고 해요. 노래가 내 산업이니까,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최선을 다할 거예요. 제가 이렇게 꼬집는 것들이 도움이 돼서 음악인을 위한 사회가 죽은 것이 아닌, 살만한 사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 후배 뮤지션 에버뉴가 말하는 현실, 그리고 문래동

▲ 밴드 에버뉴 김도윤, 장경문

어쿠스틱 밴드 에버뉴는 2013년 결성된 뒤 2014년 tvN 드라마 '잉여공주'의 OST, 첫 싱글을 발표하는 등 점점 수면 위로 오르기 위해 각자의 역량을 발휘하고 있는 팀이다. 그들은 지금의 현실을 '비참하다'고 생각하기 보다, 원래 그랬던 것이었다.

"비참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시대의 흐름을 맞춰가야 하는데, 비즈니스적으로 그런 생각을 많이 못했어요. 음악을 좋아서 하는 사람들이니까.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선배님 같은 생각이 들기 시작하더라고요. 현실적으로 고려해야 할 부분도 많고, 돌파구를 찾아보려고 노력하게 됐어요."(김도윤)

문래동에서 정기공연을 하는 것 역시 에버뉴가 생각하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방식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하는데 신경을 곤두세웠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음악을 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매주 정기공연을 하고 있어요. 음악인으로서 움직임을 보이는 거죠. 저희에게 문래동이 더 소중한 이유는 홍대라는 공간이 가진 특수성 때문도 있어요. 홍대, 하면 젊은 음악의 거리지만 인디밴드에 속한 뮤지션들이 다 젊지는 않아요. 홍대에서 음악을 즐기기에 애매한 경향이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을 흡수하는 역할을 지금의 문래동이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공간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이야기에는 공감합니다."(김도윤)

◆ 강승모 소개

1983년 '무정블루스'로 데뷔
'내 눈물속의 그대' '사랑아' '눈물의 재회' '고독한 남자' 등 다수의 히트곡

◆ 밴드 에버뉴 소개

2013년 결성. 어쿠스틱 성향의 4인조 밴드
2014년 '잉여공주' OST '그 사람과의 마지막 대화', 'Ever-new 1st single' 발표

[취재 후기] '죽은 음악인의 사회'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내용이 머릿속에서 스쳐지나갔다. 강승모의 모습은 영화 속 아이들을 위해 총대를 맸던 존 키팅 선생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초심' '울부짖음' '희망의 공간' 등의 어휘에는 그의 음악에 대한 진정한 열정과 후배들에 대한 속 깊은 애정이 짙게 배어 있었다. 강승모가 생각하고 추구하는 음악 세계가 꽃을 피워 음악인을 위한 살만한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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