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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생각] 유로2016 휩쓴 '변방 돌풍', 세계축구 팽창주의에 던지는 메시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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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생각] 유로2016 휩쓴 '변방 돌풍', 세계축구 팽창주의에 던지는 메시지는?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6.07.11 18: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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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박상현 기자] 앙리 들로네 트로피를 놓고 지난달 11일부터 한달 동안 프랑스를 뜨겁게 달궜던 유럽축구연맹(UEFA) 유럽선수권 유로2016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챔피언 독일과 이미 유로2008과 유로2012 등 2연패를 달성했던 스페인, '16년 주기설'을 앞세운 개최국 프랑스가 우승후보로 거론됐지만 줄줄이 패전의 쓴맛을 본채 포르투갈이 사상 처음으로 정상에서 환하게 웃었다.

포르투갈은 11일(한국시간) 프랑스 생드니의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벌어진 프랑스와 대회 결승전에서 연장 후반 4분 터진 에데르의 오른발 중거리 슛이 골망을 흔들어 1-0으로 승리, 사상 처음으로 앙리 들로네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포르투갈이 유로와 월드컵 등 메이저 대회에서 정상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포르투갈의 우승으로 마감된 유로 대회 이후 유럽은 물론 세계축구 판도가 크게 바뀔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이번 대회는 포르투갈 외에도 웨일스와 아이슬란드가 각각 4강과 8강까지 오르면서 '언더독의 대반란'으로 관심을 모았다. 북아일랜드와 슬로바키아까지 처음으로 유로 본선에 오른 다섯 팀 가운데 무려 네 팀이 16강에 진출했다. 변방으로 취급받으며 약체로 평가됐던 팀들이 이젠 대륙의 중심으로 옮겨오고 있다는 증거다.

◆ 언더독 반란 일어난 유로2016, 메이저대회 확대정책 물꼬 텄다

2012년까지 16개국으로 운영됐던 유로 대회가 24개국으로 확대 재편된 것은 이번 대회 가장 큰 이슈였다. 8개국이 늘어나면서 웨일스, 북아일랜드, 슬로바키아, 아이슬란드, 알바니아 등 그동안 유로 본선에 나오지 못했던 팀들이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각조 1, 2위 팀뿐 아니라 3위 가운데 상위 4개 팀까지 16강에 진출할 수 있게 된 것이 조별리그를 망친다는 이유였다. 3위 팀도 토너먼트 진출이 가능해지자 몇몇 팀들이 무승부 전략으로 맞서기도 했다.

이에 대해 독일 루카스 포돌스키는 프랑스 현지 방송과 인터뷰에서 "UEFA가 멍청한 짓을 해 조별리그가 이상해졌다"며 "조별리그 3차전 가운데 첫 2경기에서 지더라도 다음 라운드에서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몇몇 팀들은 16강전 상대를 확인하기 위해 사흘을 기다려야만 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4강에서 짐을 싼 월드컵 챔피언 독일 요하힘 뢰브 감독도 대회 내내 24강 확대의 역기능에 대해 지적했다.

약간의 혼란이 생긴 것은 사실이지만 결과적으로는 16강 녹아웃 스테이지가 재미있게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슬로바키아, 아일랜드, 북아일랜드는 비록 16강에서 행군을 멈췄지만 3무의 포르투갈이 와일드카드를 얻어 턱걸이로 16강에 오른 뒤 결승까지 한번도 지지 않으며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녹아웃 라운드 역시 8개 팀에서 16개 팀으로 늘어나면서 더욱 다채로운 매치업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UEFA는 이런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고 2024년부터 32개국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일단 유로2020는 24개팀 체제로 그대로 갈 예정이지만 테오도레 테오도리디스 UEFA 사무총장 대행은 지난 9일 프랑스 파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유럽내 경쟁력있는 팀들이 32개국 이상이라고 생각한다"며 "어떤 방식으로 대회를 확대할지는 고민해야 한다"는 말로 본선 진출팀을 오히려 늘릴 생각을 갖고 있다.

이는 다른 메이저대회의 월드컵 출전국 확대 정책에도 영향을 미친다. 지아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은 이미 2026년 또는 2030년 월드컵부터 본선진출팀을 40개국으로 늘리는 방안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는 말로 팽창주의를 예고하고 있다.

또 아시아축구연맹(AFC)은 이미 2019년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리는 아시안컵부터 본선진출팀을 24개국으로 늘렸다. 아시안컵 역시 이젠 조 3위도 16강에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8강이 아닌 16강부터 녹아웃 스테이지가 시작되면서 1경기가 더 늘어나 의외의 변수도 나올 수도 있다.

◆ 본선진출국 확대로 커진 파이, 수익도 잡고 재미도 잡은 '일거양득'

여기에 메이저대회 월드컵 출전국 확대는 막대한 부를 불러오기도 한다. 16개국이 출전했을 때는 31경기만 치러졌지만 24개국으로 늘어나니 51경기로 늘어났다. 3-4위전이 없는 것만 빼고는 월드컵 경기수와 다를 바 없다. 그만큼 입장권 수입이나 중계권 수입도 늘어난다는 뜻이다. 그만큼 본선 진출국에 돌아가는 '파이'도 커졌다.

실제로 UEFA는 지난 10일 발표를 통해 "유로2016을 개최해 벌어들인 수익이 유로2012때보다 34% 늘어난 19억3000만 유로(2조4456억 원)로 집계됐다"며 "TV 중계권으로 10억5000만 유로(1조3305억 원), 스폰서십과 라이선싱으로 4억8000만 유로(6082억 원), 티켓 판매 등으로 4억 유로(5069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고 전했다. 본선 진출국 확대로 파이가 크게 커졌음을 보여준다.

또 유로2012만 하더라도 각 팀에 돌아간 상금 총액이 1억9600만 유로(2484억 원)에 그쳤지만 이번 대회는 3억100만 유로(3814억 원)로 배 가까이 증가했다. 본선 진출국은 기본으로 800만 유로(101억 원)씩을 수령했으며 우승할 경우 받는 상금의 총액이 2700만 유로(342억 원)나 됐다. 스페인이 유로2012 우승 당시 받았던 상금 총액 2300만 유로(291억 원)보다 늘어났다.

물론 지지 않기 위한 수비축구가 득세했다는 비판도 피할 수는 없다. 실제로 유로2016에서는 모두 108골이 나와 경기 평균 2.12골을 기록했다. 유로2012 당시 76골로 경기 평균 2.45골보다 0.3골 정도 준 것이 사실이다. 아이슬란드, 웨일스 같은 새로운 '신데렐라'를 발견한 대가로 생각한다면 0.3골이 준 것은 충분히 수긍할만한 결과다.

◆ 뿌린대로 거둔다, 유소년 육성정책이 신데렐라를 만든다

유로2016은 '뿌린대로 거둔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한 대회가 되기도 했다. 유소년 육성정책이 얼마나 한 나라의 축구를 확 바꿔놓을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이번 대회에서 최고 인기팀으로 거듭난 포르투갈과 웨일스, 아이슬란드를 비롯해 벨기에와 독일이 그대로 보여줬다.

포르투갈은 전통적으로 유소년을 적극적으로 키운 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등 세계 최고의 리그로 선수들을 파는 전통적인 '셀러'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루이스 나니를 비롯해 최고의 영 플레이어로 선정된 헤나투 산체스 등이 단적인 예다. 포르투갈은 이미 1990년대부터 루이스 피구 등을 키워내 '골든 제너레이션'을 앞세워 세계 정상에 도전하기도 했다.

웨일스 역시 마찬가지. 사우스햄튼 유스팀을 거친 가레스 베일을 비롯해 웨일스 선수들은 전통적으로 EPL 유스팀을 통해 성장한다. 라이언 긱스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만 30년 이상 청춘을 바치는 등 웨일스의 전설적인 선수들은 대부분 EPL의 시스템에서 성장해 발전해왔다. 이번에 그 잠재력이 한꺼번에 폭발했다고 볼 수 있다.

아이슬란드 역시 유소년 육성정책으로 '신데렐라'가 된 경우다. 아이슬란드는 인구가 33만 명밖에 안되는 소국으로 프로리그 없이 세미프로리그만 운영된다. 그러나 아이슬란드축구협회는 2000년부터 본격적인 중장기 프로젝트를 가동, 인조잔디 구장과 실내 구장 등을 대규모 보급하며 전국을 축구 메카로 바꿔놨다. UEFA의 힘을 빌어 600명이나 되는 UEFA 자격증을 가진 지도자들이 유소년들에게 양질의 축구를 지도하고 있다.

이런 시스템의 영향으로 길피 시구르드손과 알프레드 핀보가손, 요한 베르그 구드문드손 등이 탄생했다. 이들이 해외 리그로 진출해 본격적으로 재능을 발휘하고 다시 아이슬란드의 이름으로 뭉쳐 잉글랜드까지 꺾고 8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벨기에도 이미 탄탄한 유스 시스템을 바탕으로 단번에 강팀으로 변모했다. FIFA 세계랭킹 2위로 오히려 8강은 기대 이하라는 평가가 나온다. 독일도 독일 분데스리가를 중심으로 한 유스 시스템으로 브라질 월드컵을 평정하고 이번 대회에서도 4강까지 올랐다. 뭐든지 풀뿌리, 새싹이 중요하고 이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가 한 나라의 축구를 강하게 만든다는 평범한 교훈은 이번 대회에서도 증명됐다.

◆ 우리는 하나다, 원맨팀에서 원팀으로 거듭난 포르투갈과 웨일스

우승에 성공한 포르투갈과 첫 유로 본선 출전에 4강이라는 업적을 남긴 웨일스 모두 '원맨팀'이라는 약점을 딛고 원팀으로 부활했다. 원팀이 원맨팀보다 강하다는 사실이 유로2016에서도 다시 한번 증명된 셈이다.

웨일스는 베일이라는 에이스가 있지만 베일은 자신을 구태여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베일은 조별리그에서 3연속골을 넣으며 에이스다운 모습을 보였지만 녹아웃 스테이지에서는 희생정신을 발휘하며 동료들의 득점을 돕고 수비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오히려 이런 희생정신은 베일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포르투갈은 호날두라는 '원맨'이 있었다. 실제로 포르투갈은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당시 호날두를 앞세워 조별리그 통과를 노렸지만 당시 부상으로 최고의 컨디션과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이런 전철은 유로2016에서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상돼 잘해야 8강 전력으로 평가됐다.

실제로 포르투갈은 조별리그에서 헝가리, 아이슬란드, 오스트리아와 비교적 쉬운 조에 묶이고도 3무승부를 기록하며 가까스로 16강에 올랐다. 녹아웃 스테이지에서도 90분 정규 시간 내에 승리한 것이 웨일스와 준결승뿐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프랑스와 결승전에서 호날두가 빠진 뒤 선수들이 똘똘 뭉쳐 원팀이 됐다. 호날두가 부상으로 빠진 것이 하나로 뭉치는 계기를 만든 셈이다.

8강까지 오른 아이슬란드도 특출한 에이스 없이 원팀으로 똘똘 뭉쳐 '신데렐라'로 거듭난 경우다. 아이슬란드는 조별리그에서 2위에 오른 뒤 잉글랜드까지 꺾고 8강까지 오르며 '얼음축구 신드롬'을 일으켰다. 전체 인구의 10%에 해당하는 팬들이 일제히 프랑스로 건너와 '바이킹 응원'을 보냈다. 아이슬란드의 '바이킹 환호'는 다른 팀으로도 전파돼 새로운 응원 트렌드가 됐다.

한 나라의 축구 수준은 단기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이슬란드가 15년 넘게 꾸준히 해왔던 것처럼 중장기 프로젝트를 통해 완성될 수 있는 것이다. 포르투갈도 황금세대를 통해 유럽의 중심으로 편입된 뒤 드디어 우승컵을 들어올렸고 메이저대회에 좀처럼 초대받지 못했던 변방 웨일스와 아이슬란드도 드디어 중심으로 이동했다.

축구 변방이 중심을 위협하는 세력으로 자라난 유럽처럼 이는 다른 나라로도 확대될 수 있다. 이미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등 2강 체제의 남미 지역에서는 칠레가 코파 아메리카에서 지난해와 올해 연속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변방이 급부상하는 변화의 물결은 아시아로도 몰아닥칠 수 있다. 한국, 일본, 호주, 이란 등 4대축으로 대표되는 아시아 축구도 동남아 등 변방이 중심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다.

변방의 득세는 메이저대회 본선진출국 확대와 맞물려 더욱 힘을 얻을 수 있다. 24개국 체제로 확대되는 2019년 아시안컵도 유로2016처럼 다크호스 또는 언더독의 대반란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또 유로2016은 아시아에서는 강국이지만 세계적으로는 변방인 한국이 세계축구의 중심세력으로 떠오를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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