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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과 시대](1) 모델 김동수, 런웨이에서 대학 강단까지…그녀가 '모델계의 대모'라 불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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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과 시대](1) 모델 김동수, 런웨이에서 대학 강단까지…그녀가 '모델계의 대모'라 불리는 이유
  • 주한별 기자
  • 승인 2016.07.21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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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모델들은 각 시대의 미(美)를 대변한다. 유행과 패션의 최첨단에 서있는 모델들은 시대가 원하는 미의 기준을 제시하는 표준이 되어 왔다. 따라서 모델계 역사의 흐름은 미의 흐름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스포츠Q는 김동수 연구소의 도움을 받아 그동안 한국 모델사를 이끌어 온, 혹은 앞으로 이끌어갈 모델들을 지속적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대한민국 모델계가 세계의 변방에서 벗어나 주목을 받기까지 남몰래 흘린 땀과 눈물은 물론 미래의 꿈과 희망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김동수는 대표적인 1세대 해외파 모델로, 현재 동덕여대 모델과 교수이자 모델학회장으로서 한국 모델계의 저변 확대와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스포츠Q(큐) 주한별 기자] '첫 번째 펭귄'이라는 말이 있다. 첫 번째 펭귄이라는 단어는 불확실하고 위험요소가 많은 도전을 용기 있게 시도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남극의 펭귄들은 천적에 대한 두려움으로 바다에 뛰어들기를 무서워하는데, 무리 중 한 마리가 용기를 내 뛰어들면 그 첫 번째 팽귄에게 용기를 얻은 다른 펭귄들도 바다에 몸을 던진다고 한다. 즉 첫 번째 펭귄이라는 말은 한 분야의 선구자나 개척자를 뜻한다.

국내 모델계에도 '첫 번째 펭귄'이 존재한다. 바로 모델 김동수다. 해외 여행 자율화가 되지 않았던 1980년대, 그녀는 미국 유학중 길거리에서 한 흑인 모델이 제안한 모델 일에 덜컥 'Yes'라고 대답한다.

모델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던 시절, 그녀는 해외 유수의 패션쇼 런웨이에 서는 등 동양인 모델로서 최고의 커리어를 쌓고 이후 국내 모델계의 세계화를 위해 앞서는 등 런웨이 안팎으로 한국 모델계의 발전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모델 김동수가 바라본 한국 모델계의 현재와 미래는 어떤 것일까?

◆ 한국과 다른 미국의 미(美)에 대한 관점, "미에 대한 정체성 혼란기 있었다"

▲ 김동수는 미국 유학 시절, 우연한 기회에 모델의 길에 들어섰지만 곧 모델로서의 잠재력과 정체성을 발견하고 외길 인생을 살아 왔다. [사진= 스포츠Q DB]

김동수는 미국 유학 시절, 우연한 길거리 캐스팅으로 모델의 세계에 입문하게 됐다. 모델이란 개념 조차도 그에게 낯설었지만, 미국 대학 재학 시절 교수님이 해준 "모델 같다"는 말에 끌려 길거리 캐스팅을 덜컥 받아들였다고 김동수는 회상한다.

"학교 앞에서 언니를 기다리고 있는데 한 흑인 모델이 저에게 "Are you model? 이라고 물었어요. 그래서 무작정 'Yes'라고 대답했죠. 당시 저는 정체성도 없었고 유학 생활에 적응도 못했죠."

김동수는 자신에게 '모델'이란 정체성을 심어준 건 대학 재학 당시 교수님의 용기를 주는 말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교수님이 종종 제 사진을 찍으셨죠. 당시 교수님이 저에게 '모델 같다'라고 해주셨고 그 말을 계기로 모델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당시 모델 대회에 나가서 3위에 입상했고, 부상으로 파리 패션쇼에서 데뷔를 하게 됐죠."

첫 모델 도전에서 3위 입상이라는 뛰어난 성적을 받은 김동수의 모델 재능은 남달랐다. 특히 80년대 서구 모델계에는 아시아 모델에 대한 관심이 커진 만큼 김동수의 모델로서의 재능도 꽃필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운이 좋았죠. 당시 미국 패션계에서는 헤어나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영향력이 컸어요. 당시 헤어와 메이크업 하시는 분들이 저를 좋아했어요. 키 크고 마르고 긴 생머리 동양인 모델인 저에게 많은 관심을 가지더라고요."

하지만 '아름답다'는 말이 김동수에게 마냥 행복한 말은 아니었다. 한국과 다른 서양의 미(美)에 대한 관점에 김동수는 혼란을 느끼기도 했다.

"저는 한국에서는 평범하다거나 심지어는 못생겼다는 소리를 듣고 자랐어요. 그런데 미국에 가니 저를 미인으로 생각하더라구요. 그래서인지 미에 대한 정체성 혼란기가 있었어요. 유럽 7개국 런웨이를 다니며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동서양의 미의 기준이 다르다는 걸 깨달았죠. 스스로의 아름다움에 대해 새롭게 깨달을 수 있었던 시기였어요."

◆ 한국 모델계로의 귀환, 세계 모델계 추세와 다른 한국 모델계에 변혁을 꿈꿔

▲ 김동수의 미국 활동 시절 화보(위)와 김동수가 한국에 최초 도입한 컴포지트 카드(아래) [사진= 김동수 연구소 제공]

유럽 곳곳의 런웨이를 누비며 커리어를 쌓아가던 그가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의 기분은 어땠을까? 김동수는 자신의 귀국이 마냥 금의환향(錦衣還鄕)은 아니었다고 전했다. 한국 모델계와 서양 모델계의 분위기 차이는 그녀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

"한국 모델계로 돌아왔을 때 재밌었어요. 동서양 모델계가 전혀 다르니까요. 당시에는 해외여행 자율화가 되어 있지 않을 때였고 해외 패션계의 정보를 얻는 것이 쉽지 않았어요. 한국에도 톱 모델이 있었지만 개성을 추구하는 해외 모델계와는 달리 모델들은 작은 키에 우아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방향이었죠."

김동수가 해외에서의 모델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온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한국의 가을 하늘이 보고 싶어 무작정 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한국 모델계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기 시작했다.

"제가 한국에 돌아온 건 고향이 그리운 마음 때문이었어요. 한국의 가을 하늘이 보고 싶었거든요. 한국에 돌아와서는 서양 모델계와 한국 모델계의 스타일 차이에 놀랐죠. 한국에서 제 첫 번째 기사 제목이 '앗, 저렇게 못생긴 모델이 있었나? 저렇게 테크닉이 좋은 모델이 있었나?' 였어요. 한국 모델계에서 저는 획기적인 모델이었던 거죠."

이후 김동수는 한국 최초로 해외에서 사용하던 컴포지트 카드(모델의 키·스리 사이즈 등 신체정보를 영어와 이태리어로 기술한 카드)를 국내에 도입하는 등 국내 모델계의 세계화를 위해 노력했다.

"당시 국내 디자이너 분들 중에 저를 런웨이에 세우는 걸 선호하는 분들도 계셨지만 몇몇 분들은 제 개성이 너무 강해 옷이 죽는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었죠. 저는 제 스타일로 옷을 소화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그렇게 마인드 컨트롤을 해 나갔죠."

◆ 런웨이 밖, 대학·모델학회에서 한국 모델계의 지평 넓히기 위해 노력

▲ 김동수는 현재 동덕여대 모델과 교수이자 모델학회 회장으로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사진 = 스포츠Q DB]

현재 김동수는 동덕여대 모델과의 교수로 재직 중이다. 또한 그는 국내 최초 4년제 모델과를 만들었다. 그런 그에게 '좋은 모델'의 조건에 대해서 물었다.

"모델의 가장 중요한 철학은 자신이 선택한 직업을 사랑하고 왜 해야 하는지 아는 거예요. 내가 선택한 이상 끝까지 해보려는 의지가 있어야 하죠. 스스로의 직업을 사랑하고 왜 해야 하는지 알려고 노력해야 해요."

김동수는 모델과 교수로서 동덕여대 모델과의 교육 철학과 커리큘럼에 대해서 언급하기도 했다.

"사회에서 써 먹을 수 있는 게 중요해요. 첫 번째는 모델계 지도자를 양성하는 게 목표고 두 번째는 사회에 기여할 수 있고 의식 있는 모델들을 양성하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 이론 및 실기, 바디(Body) 세 가지를 가르치는 걸 중점으로 꼽죠. 워킹이나 그런 테크닉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워킹을 하기 위해 몸의 구조를 공부한다든지 운동법, 섭생 등을 아는 것도 중요해요. 모델과 패션의 역사와 미학에 대해서도 알아야 하죠."

동덕여대 모델과에 이어 현재 김동수가 몸을 담고 있는 모델학회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다. 김동수는 "학회라는 말이 들어가면 좀 딱딱한 이미지죠"라며 대중들에게 낯선 모델학회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말했다.

"모델에 대해서 포괄적으로 공부를 하는 거죠. 체형관리나 섭생, 전 세계적으로 동양 모델에 대한 인식 등을 가지고 학회를 열곤 해요. 또한 한국 모델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 해야하는 역할 연구를 하죠. 또한 한국 모델 역사 영상자료와 사진자료를 발굴하고 보관·기록하는 작업도 하고 있어요. 어떤 분야에서도 역사라는 게 중요하니까요."

◆ 김동수가 생각하는 한국 모델계의 가능성 "한국은 아시아 모델 종주국"

▲ 최근 모델학회 주체로 성료한 '아시아 모델 페스티벌' [사진= 김동수 연구소 제공]

김동수는 한국 모델계의 미래와 가능성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국 모델계의 역사가 서양에 비해 짧은 건 당연하죠. 서양 모델계의 역사는 족히 백년은 되니까요. 하지만 최근 수원에서 '아시아 모델 어워드'를 개최할 정도가 됐어요. 이제 한국은 아사아에서 모델 산업의 종주국이에요. 아시아 다양한 국가들과 패션·모델 분야에서 교류를 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최근 모델들은 연기와 예능, 음악 분야에서도 다채로운 재능을 뽐내며 '만능 엔터테이너'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김동수는 모델의 역할과 저변 확대에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과거에 모델은 너무 키가 커 앵글에 안 잡혀 시각적으로 어색하다고 그랬죠. 요새는 그런 단점을 감안하면서도 개성과 외형의 아름다음을 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어요. 연예계로 진출하는 것은 세계에 한국 모델을 알릴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죠."

김동수는 이날 인터뷰에서 모델에 대한 대중들의 오해에 대해 우려를 드러내기도 했다. 모델의 마른 몸을 무조건적으로 선망하는 사회 분위기는 좋지 않다는 시각 또한 드러냈다.

"현대 사회에서는 모델이 외형적으로 기준이 되고 있죠. 그러나 맹목적인 것은 우려할 만해요. 모델들은 선천적으로 마르고 키가 큰 유전자를 타고난 경우가 많아요. 골격이나 키도 타고나야 하죠. 모델과에서도 학생들에게 개성을 중요시하라고 가르치고 있어요. '너의 고유의 아름다움이 시대를 대표하는 미가 될 수 있다'고 얘기하죠. 최근의 논문을 보면 오히려 거식증에 걸린 모델은 없어요. 오히려 건강하게 몸을 유지하는 게 최근 모델 계의 화두죠."

◆ 故 앙드레 김과의 인연, 세계적 디자이너 칼 라커펠트와의 특별한 에피소드

▲ 김동수는 국내외 많은 유명 디자이너들과 친분을 맺어 왔다. 그중에서도 故 앙드레 김과의 인연은 가장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사진 = 스포츠Q DB]

김동수는 인터뷰에서 국내외 유명 디자이너들과의 인연에 대해서 말하기도 했다. 특히 故 앙드레 김 디자이너에 대해 김동수는 "많은 사람들이 배워야 할 디자이너"라고 존경을 표현했다.

"한국에서 그 분의 쇼에 섰던 건 딱 한 번이에요. 故 앙드레 김 선생님의 역할은 한국 토종 디자인의 인지도를 높였다는 거죠. 그분의 개성적인 스타일이 희화화되기도 했지만 한국 패션계에서 앙드레 김 선생님의 업적은 절대적이에요. 예전에 앙드레 김 선생님이 제가 입고 간 옷의 브랜드 택을 뒤집어 보시더라고요. 새로운 옷에 대한 호기심과 욕심이 대단하신 거죠. 무례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디자인에 대한 그분의 열정이 느껴졌어요."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로 꼽히는 칼 라커펠트와 있었던 에피소드도 김동수의 기억에 강렬하게 남아 있었다.

"로마에서 칼 라커펠트를 처음 만났어요. 저는 당시에는 그 분이 대단한지 몰랐죠. 제가 피팅을 하고 있는데 저를 보더니 즉석에서 스케치를 했어요. 저를 보고 영감을 받으셨던 것 같아요. 예술가의 즉흥성, 순발력을 느낄 수 있었죠. 저는 분위기에 압도돼 석고처럼 그저 서있던 기억이 있어요."

런웨이에서 수 많은 디자이너와 인연을 쌓았던 김동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디자이너를 묻는 질문에 그는 단번에 김영세 디자이너를 꼽았다.

"제가 늘 그분의 오프닝을 서요. 김영세 선생님은 제가 지팡이를 들고도 걸을 수만 있다고 메인 모델을 시키고 싶다고 하세요. 그 분의 쇼는 대한민국 최고의 쇼예요. 저도 그 분의 패션쇼에 설 수 있다는 걸 영광으로 생각해요."

◆ 모델·교수·학회장으로서 김동수의 목표는? "꾸준히 내 일을 하면서 역할을 찾아가고 싶다"

▲ 김동수는 앞으로도 하고 싶은 일이 아주 많다. 특히 보다 넓은 세상을 향해 후배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더욱 탄탄한 길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고민하고 있다. [사진= 스포츠Q DB]

김동수는 '대한민국 최초'라는 수식어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모델이다. 그런 만큼 그는 계속해서 남들이 걷지 않은 길에 대해 고민해야만 했다.

"제게는 본보기가 없었어요. 그래서인지 내 일을 사랑하면서 역할을 찾아가는 모델이 되고 싶어요. 시대에 어울리는, 나이 든 모델도 필요하니까요. 학교에서 교수로서는 제자들의 시야를 어떻게 넓게 해줄 수 있을지,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이 뭔지 고민을 하게 돼요. 학회는 전문가 집단이기 때문에 모델 계의 시야를 넓게 해 주고 모델계가 길을 찾게 해주는 데 역할을 할 수 있게 되길 바래요. 제가 가지고 가야 할 화두 중 하나인 것 같아요."

현재 수많은 후배들이 김동수가 간 길을 이어 한국 모델계를 견인하고 있다. 김동수는 "제자들과 후배들 덕분에 힘이 생겨요"라며 감사하는 마음을 드러냈다.

"저는 틀을 벗어나고 개척하는 입장이었어요. 그래서 외로웠죠. 이후 서서히 제 뒤를 따라 오는 후배들이 생기기 시작하니 의지가 되죠. 요새는 제가 헛세월 투자한 게 아니구나란 생각이 들어요. 서로 고민과 비전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게 기뻐요. 제가 은퇴를 할 때 좋은 제자를 배출했구나, 라는 소리를 듣는 게 가장 큰 소망이에요."

◆ 김동수 소개

現 동덕여자대학교 모델과 학과장
1999년 동덕여자대학교 국내최초 모델과 설립
現 제 1대 한국모델학회 학회장
2012년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국무총리 표창
모델론·모델학·모델 시대를 말하다 등 다수의 모델 관련 저서

[취재후기] 김동수와 인터뷰가 진행된 동덕여대 공연센터에는 수업을 듣기 위해 출석한 모델과 학생들이 가득했다. 재능과 열의가 넘치는 그들의 모습에서, 함께하는 후배들이 있어 든든하고 기쁘다는 김동수의 말이 떠올랐다.

김동수는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해요. 새로운 걸 받아들이는 마음이 필요합니다"라며 도전을 위해 자신이 노력하고 있는 점을 밝혔다. 모델, 교수, 학회장에 이어 김동수가 새롭게 도전하게 될 가치는 무엇일까? 그의 도전에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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