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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2016] (21) 부부 역사(力士) 윤진희-원정식, 리우 '우리'의 역사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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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2016] (21) 부부 역사(力士) 윤진희-원정식, 리우 '우리'의 역사가 시작됐다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6.07.18 11: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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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올림픽 은메달 윤진희, 남편 원정식 후원으로 복귀…원정식도 부상 딛고 2연속 올림픽 출전

[200자 Tips!] 현역으로 뛰는 운동선수에게 가장 무서운 적은 무엇일까. 수많은 답이 나오겠지만 부상과 그에 따른 장기간 공백도 그 답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부상을 당해 한동안 훈련을 하지 못하면 기량이 떨어지기도 하고 큰 부상일 경우에는 원치 않은 은퇴를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부상과 공백을 모두 이겨내고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출사표를 던진 '부부 역사(力士)'가 있다. 원정식(26·고양시청)과 윤진희(30·경북개발공사)는 나란히 남자 69kg급과 여자 53kg에 출전, 역도 부부로서 올림픽에서 건재함을 알리며 '우리'의 역사(歷史)를 쓰겠다는 결의로 손을 맞잡았다.

▲ '역도 부부' 윤진희(왼쪽)와 원정식은 나란히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12년 런던 올림픽에 출전한 경험이 있다. 원주 지역 선후배 사이로 결혼에 골인한 역도 부부는 이제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의기투합한다.

[태릉=스포츠Q(큐) 글 박상현·사진 최대성 기자] 원주는 한국 역도의 메카로 유명하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은메달과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을 따냈던 레전드 장미란도 원주 출신이다. 원정식, 윤진희 부부도 바로 강원도 원주에서 동고동락한 지역 선후배다. 지금은 부부가 됐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원정식은 네 살 많은 누나이자 대선배인 윤진희가 까마득하게 보였으리라.

올림픽 스타트는 윤진희가 먼저 끊었다. 윤진희는 8년 전 베이징 올림픽 여자 53kg급에서 은메달을 따내며 장미란과 함께 한국 여자역도의 자존심을 세웠다. 당시 귀엽게까지 느껴졌던 윤진희의 뽀글뽀글 머리는 이후 영화 '킹콩을 들다'에서 여자 주인공을 맡은 조안이 그대로 머리 스타일을 따라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대표팀에서 한솥밥을 먹은 이들 선후배는 이후 사랑이 싹텄다. 윤진희는 런던 올림픽을 몇 달 남지 않은 2012년 초 현역에서 물러난 뒤 원정식과 결혼해 두 아이의 엄마가 됐다.

런던 올림픽에는 원정식이 나갔다. 베이징 올림픽 때만 하더라도 고교생이었던 원정식은 남자 69kg급에 나서 아내 윤진희에 이어 부부 메달리스트를 기대했지만 인상과 용상에서 2, 3차 시기에 더 들어올리지 못하면서 합계 322kg으로 7위에 그쳤다.

이후 다시 4년의 시간이 흘렀다. 원정식과 윤진희는 나란히 부부 역사로서 올림픽에 새로운 역사를 만들러 리우데자네이루로 간다. 부상과 오랜 공백이라는 부담과 역경을 딛고 저마다 두 번째로 맞는 올림픽이기에 뭔가 특별하다.

▲ 윤진희(왼쪽)와 원정식은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부부 역사로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출사표를 던졌다. 윤진희는 8년 만에 올림픽에 복귀하게 됐고 원정식은 런던 올림픽 당시 아쉬움을 딛고 2회 연속 올림픽에 도전한다.

◆ 인천 아시안게임 당시 큰 부상, 재활 이겨낸 원정식의 두번째 올림픽

원정식은 런던 올림픽 당시 한국 역도의 '비밀병기'로 평가받았다. 2011년 세계선수권 당시 용상에서 동메달을 따낸데다 정상급 선수들이 올림픽에 대거 결장해 충분히 메달을 따낼 것으로 보였다. 기록도 향상됐기 때문에 가능성은 충분했다. 하지만 인상과 용상에서 2, 3차 시기를 놓친 것이 두고두고 아쉬웠다.

런던 올림픽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 출전했지만 역시 아픔만 남았다. 원정식은 왼쪽 무릎 부상에 발목이 잡혔다. 당시 인상에서 143kg를 들어올렸지만 용상 경기를 펼치다가 왼쪽 무릎을 심하게 다치고 말았다. 당시 아내 윤진희도 관중석에서 남편의 부상을 지켜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무릎 때문에 한동안 훈련을 하지 못했죠. 지금은 왼쪽 무릎과 허벅지 부상을 모두 털고 컨디션을 끌어올리고 있어요. 아마 좋았을 때 경기력의 90~95%까지는 올라온 것 같아요. 올림픽 전까지 100%로 끌어올려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네요. 주위에서는 메달도 충분히 노려볼 수 있다고는 하지만 제 생각은 좀 달라요. 지금 현재로서는 10위권이 목표예요."

런던 올림픽에서 메달권에 근접했던 도전자으로서는 다소 자신없는 답변처럼 들린다. 하지만 한 차례 큰 부상을 겪었기 때문에 그만큼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원정식이다.

"부상 당하고 나서 재활을 하고 훈련을 재개하면서 너무 큰 욕심을 부려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이번에 아내와 함께 올림픽에 나가면서 잡은 첫 목표는 부상없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만 다하자는 것이죠. 메달이나 상위 입상은 다음 문제인 것 같아요. 물론 좋은 성적을 올려야겠죠."

▲ 런던 올림픽 당시 메달 유망주로 주목받았던 원정식은 인천 아시안게임 당시 무릎 부상으로 오랜 기간 재활에 매달렸다. 원정식은 부상 없이 리우 올림픽을 치르고 싶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아내 윤진희와 함께 하는 올림픽이기에 게을리할 수 없다.

◆ 남편 부상으로 다시 잡은 바벨, 운명처럼 다가온 윤진희의 두번째 올림픽

윤진희는 결혼 이후 첫 아이를 출산했을 때만 하더라도 그저 내조에 충실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상황이었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뒤 좀처럼 기량이 올라오지 않은 것에 실망을 느껴 미련없이 현역에서 물러났다.

"어린 나이에 베이징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고 나니 동기부여가 안된 측면이 있어요. 은메달을 따고 나면 보통은 금메달을 향해 더 노력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기 마련인데 그 때 당시 제 마음은 '내 실력으로 은메달도 잘한 것'이라고 생각했죠. 이후 '내가 앞으로 더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의욕이 사라진 거죠. 여기에 남편과 결혼하면서 운동을 그만두게 된 겁니다."

하지만 원정식이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부상을 당한 것이 역설적으로 윤진희가 현역에 복귀하는 촉매제가 됐다.

원정식이 수술을 받은 뒤 재활을 하면서 함께 운동하자고 제의한 것.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최고의 자리에서 명예롭게 은퇴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남편의 설득에 다시 바벨을 잡았다.

"아마 남편이 아시안게임에서 부상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역도를 다시 시작하지 않겠느냐는 제의도 없었을 것이고, 저 역시 복귀를 생각하지도 않았을 거예요. 어떻게 보면 남편의 부상이 결과적으로 현역 복귀로 이어진 셈이죠."

결국 윤진희도 남편 원정식이 재활을 시작하던 2014년 말부터 본격적인 훈련을 시작했다. 2년 넘게 현역으로 뛰지 않은 공백이 만만치 않았다. 벌써 두 아이의 엄마가 됐기 때문에 근육량도 베이징 올림픽 때만 못한 것도 사실이었다.

"저도 오랫동안 운동을 하지 않아서 재활하는 선수와 비슷한 훈련을 했어요. 어떻게 보면 남편과 저 모두 힘겨운 과정을 겪으면서 다시 올림픽을 향한 도전을 하게 됐고 의욕도 생긴 거죠."

▲ 결혼 이후 현역에서 물러났던 윤진희는 남편 원정식의 인천 아시안게임 부상 이후 다시 바벨을 잡았다. 남편과 함께 훈련을 하면서 다시 대표팀에 복귀했고 8년 만에 올림픽 출전 기회를 잡았다.

◆ 훈련 중에도 눈에 밟히는 아이들, 부끄럽지 않은 부모의 모습 보여주겠다

2014년부터 윤진희가 현역에 복귀하면서 자연스럽게 네 살 라임이와 두 살 라율이는 부모가 키우고 있다. 윤진희는 아이들의 얘기가 나오자 눈가가 촉촉해졌다.

"아무래도 엄마니까 아이들이 눈에 밟히죠. 남편은 고양시청, 저는 경북개발공사에서 뛰기 때문에 각자 소속팀에서 훈련한 뒤 외박을 나오면 그 중간지점인 원주에서 만나요. 그러다가 다시 각자 소속팀으로 돌아갈 때마다 큰 아이는 엄마, 아빠가 다시 떠난다며 슬퍼하죠."

결국 TV를 통해 리우 올림픽을 볼 두 아이를 위해서라도 원정식과 윤진희 모두 부끄럽지 않은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각오다. 메달도 좋고 좋은 성적을 올리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엄마, 아빠의 이름으로 올림피아드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부부의 목표다.

이처럼 부부의 역도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만큼 의견 대립도 심한 편이란다. 부부싸움을 하기도 하지만 주로 운동과 관련된 것이다. 운동에서는 대선배격인 윤진희는 결혼 전만 하더라도 남편이 말을 잘 듣더니 결혼 후에는 잔소리처럼 여긴다며 입을 삐죽거린다.

"남편과 훈련하는 것을 놓고 한번 의견 대립을 한 적이 있어요. 저는 제 경험대로 '그게 아니고 이렇게 해야 해'라고 했더니 그걸 한 귀로 듣고 흘려버리더라구요. 그런데 한 3, 4개월 지났나요. 내가 얘기했던 것을 그대로 내게 말해주는 거예요. '그래, 그 때 내가 말한 게 그거야'라고 웃었더니 남편은 머리를 긁적이며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나'하더군요. 서로 웃고 말았죠."

▲ 윤진희(왼쪽)와 원정식(오른쪽) 부부는 오빠, 형과 같은 이배영 대표팀 코치와 스스럼없는 사이다. 이배영 코치의 세심한 지도를 받으며 리우 올림픽을 통해 부활의 나래를 펴겠다는 각오다.

◆ 형-오빠나 다름없는 이배영 코치와 의기투합, 첫 올림픽 부부 역사의 리우 페스티발

이를 옆에서 몰래(?) 듣고 있던 원정식은 어깨를 툭 치며 "그런 일이 있었나?"하며 씩 웃는다. 윤진희는 손가락을 가리키며 "글쎄, 이런다니까요"하고 눈을 살짝 흘긴다. 운동에 있어서는 서로 양보없는 부부지만 살갑기 그지 없다.

원정식, 윤진희 모두 윤석천 대표팀 감독에게 감사함을 표시하면서 이배영 코치가 적지 않은 도움이 됐다고 털어놓는다. 윤석천 감독이 정신적인 지주라면 이배영 코치는 대표팀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형이나 오빠나 다름없는 사이다. 모두 이배영 코치와 농담을 주고 받고 어쩌다 하루 있는 휴일을 이용해 태릉선수촌 근처 낚시터에 함께 나가며 피로를 풀기도 한다.

사진을 찍기 위해 태릉선수촌 체육관 바깥으로 나간 부부는 외벽에 걸려 있는 베이징 올림픽 당시 윤진희의 사진을 배경으로 섰다. 윤진희는 살짝 부끄러워하며 사진을 가리키며 "어머, 이 분이 누구시더라"하고 웃는다. 원정식도 말없이 사진을 지켜보다가 바로 앞 아내를 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원정식은 "내가 그렇게 실력이 좋은 선수가 아닌데 아내 때문에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 같아 좀 쑥스럽다. 욕심 부리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하겠다"고 웃어보인다. 윤진희도 "긴 공백이 있었지만 어쩌면 득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계속 운동을 해왔던 선수들에 비해 그만큼 체력을 비축했기 때문에 나만 잘하면 더 잘하지 않을까하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부상과 공백이라는 큰 약점을 갖고 맞이하는 리우 올림픽이기에 어쩌면 더 부담이 없을지도 모른다.

원정식과 윤진희 모두 "알아보니까 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부부 역사'가 출전하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이미 새로운 기록을 만든만큼 한 번 제대로 해보겠다. 바닥부터 시작한만큼 잃을 것은 없다고 본다. 운동을 처음 시작했던 그 때 그 마음으로 돌아가 높은 곳을 바라보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부부 역사가 리우에서 펼쳐보일 '우리'의 역사는 이미 시작됐다.

▲ 윤진희(왼쪽), 원정식 부부가 태릉선수촌 역도 체육관 앞에 걸려있는 윤진희의 베이징 올림픽 당시 경기 장면이 담긴 대형 사진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 윤진희 프로필
△ 생년월일 = 1986년 8월 4일
△ 체격 = 160cm, 58kg
△ 출신학교 = 원주여중-원주여고-한국체대
△ 주요 경력
-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여자 역도 국가대표
-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국가대표
- 2009년 원주시청 입단
- 2011년 세계선수권 국가대표
- 2015년 경상북도개발공사 입단
- 2016년 런던 올림픽 국가대표
△ 수상 경력
- 2004년 전국체육대회 여고부 58kg급 인상-용상-합계 금메달
- 2004년 대한역도연맹 신인선수상
- 2005년 전국 춘계여자대회 대학부 58kg급 금메달
- 2005년 전국체육대회 여일반부 58kg급 인상-용상-합계 금메달
- 2006년 한중일 국제초청대회 58kg급 금메달
- 2006년 전국체육대회 여일반부 58kg급 인상 금메달, 합계 은메달
- 2007년 세계선수권 53kg급 인상 금메달, 용상-합계 동메달
- 2007년 전국체육대회 여일반부 58kg급 인상-용상-합계 금메달
- 2008년 베이징 올림픽 53kg급 은메달
- 2009년 전국체육대회 여일반부 58kg급 인상-용상-합계 금메달
- 2009년 세계선수권 53kg급 인상 은메달, 용상-합계 동메달
- 2011년 전국체육대회 여일반부 53kg급 인상-용상-합계 금메달
- 2015년 전국체육대회 여일반부 53kg급 인상-용상-합계 금메달

 

▲ 원정식(왼쪽)-윤진희 역도 부부가 태릉선수촌 훈련장에서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원정식 프로필
△ 생년월일 = 1990년 12월 9일
△ 체격 = 163cm, 70kg
△ 출신학교 = 원주 치악중-원주고-한국체대
△ 주요 경력
-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남자 역도 국가대표
- 2012년 런던 올림픽 국가대표
- 2013년 고양시청 입단
-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 2016년 런던 올림픽 국가대표
△ 수상 경력
- 2007년 전국체육대회 남고부 62kg급 용상 금메달, 인상-합계 은메달
- 2008년 전국체육대회 남고부 69kg급 인상-용상-합계 금메달
- 2010년 전국체육대회 남일반부 69kg급 용상-합계 금메달, 인상 동메달
- 2011년 전국체육대회 남일반부 69kg급 인상-용상-합계 금메달
- 2011년 전국춘계대학생선수권 69kg급 인상-용상-합계 금메달
- 2011년 하계유니버시아드 69kg급 은메달
- 2011년 세계선수권 69kg급 용상 동메달
- 2012년 전국체육대회 남일반부 69kg급 인상-용상-합계 금메달
- 2012년 아시아선수권 69kg급 인상 은메달
- 2013년 전국체육대회 남일반부 69kg급 인상-용상-합계 금메달
- 2015년 전국체육대회 남일반부 69kg급 인상 금메달, 합계 은메달

[취재후기]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는 유독 '패밀리 올림피언'이 많다. 1988년 서울 올림픽 탁구에서 메달을 획득했던 안재형-자오즈민 부부의 아들인 안병훈이 남자 골프 종목에 출전하고 역시 서울 올림픽에서 여자배구 대표팀에서 세터로 활약했던 김경희 씨의 뒤를 이어 이재영이 한국 여자배구 40년 만의 메달에 도전한다. 여기에 '부부 역사'까지 출전하니 그야말로 가문의 영광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원정식, 윤진희 부부는 아빠, 엄마의 이름을 걸고 두 딸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벼르고 있다. 아빠, 엄마가 남자, 여자보다 강하다면 이들의 두 번째 올림픽 도전도 기대해봐도 좋지 않을까. 여기에 '사랑의 힘'까지 더해진다면? 독자 여러분들의 뜨거운 응원이 이들 부부가 새 역사를 쓰는데도 큰 힘이 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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