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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탑골공원, 민족의 결기와 안식이 고즈넉히 숨쉬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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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탑골공원, 민족의 결기와 안식이 고즈넉히 숨쉬는 곳
  • 유필립 기자
  • 승인 2014.09.19 18: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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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역사는 책에서나 보고 일부러 작정하지 않으면 만나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잠시 주위를 둘러보면 역사는 항상 우리와 마주하며 숨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평소 대중교통 수단으로 오가던 길, 또는 몇 백미터만 더 걸으면 닿을 수 있는 역사의 현장을 기회가 되는 대로 휴대폰 앵글에 담아 보고자 합니다. 굳이 전문가들에게 역사적 사실을 묻지 않아도 안내판이나 설명서만으로 우리는 꽤 많은 역사적 사실과 지혜, 교훈과 접할 수 있을 듯합니다.

[스포츠Q(큐) 유필립 기자] '불심(佛心) 궐기(蹶起) 안식(安息)' 부처님의 기운으로 탄생한 곳, 선조들의 독립 만세소리가 쟁쟁한 곳, 하지만 지금은 삶에 지친 몸과 정신에 여유를 주는 도심속의 휴식처….

역사와 문화적으로 세 가지의 성격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공원이 있다. 바로 서울시 종로구 종로2가에 위치한 탑골공원이다. 도심 한 가운데에 자리한 이 공원은 1만5700여 평의 공간에 희노애락의 역사를 조용히 증언하고 있다.

▲ 탑골공원의 정문인 '삼일문'. 자동차 행렬과 인파로 번잡한 종로에 면해 있다.

 

 
 

 

원각사 터...서울 최초의 근대식 공원이자 3·1독립운동의 점화지

▲ 3 1운동 기념탑. 독립선언서가 새겨져 있다.

 

 

사적 354호로 지정되어 있는 이 공원은 서울에 최초로 만들어진 근대식 공원이다. 조성 시기에 이견이 있지만 1890년대로 알려져 있다.

이 공원은 조선말 고종 연간 총세무사로 활약한 존 브라운(John Mcleavy Brown)의 건의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개장 당시에는 빈 땅에 울타리를 둘러 나무를 심고 의자를 놓은 정도였으나 1910년부터 점차 시설물을 늘렸으며 1913년부터는 매일 개방하기에 이르렀다.

▲ 의암 손병희 선생 동상.

탑골공원은 3.1독립운동의 점화지로 잘 알려져 있다. 1919년 3월 1일, 4~5천명에 이르는 학생들이 이곳에 모여 12시를 알리는 소리와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이곳의 팔각정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여기서 시작된 만세시위는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1979년 3.1독립운동 60주년을 맞아 공원을 정비해 넓혔다. '탑동공원' '파고다공원' 등으로 불리다가 1991년에 이름을 탑골공원으로 정했다.

이 일대는 조선 초기 세조 때 세운 원각사 터다. 현재 이곳에는 원각사지 10층석탑(국보 제2호)과 대원각사비(보물 제3호)가 남아 있다. 또 3·1운동 기념탑, 3·1운동 부조판, 민족대표 33인의 대표로 3·1운동을 주도한 의암 손병희 선생의 동상 등이 있다.

▲ 탑골공원 앞마당에는 소나무 세 그루가 의연하게 서 있다.

 

▲ '종로구 아름다운 나무'로 지정된 비술나무. 수령 약 150년. 높이 29m. 서문 옆에 서 있다.

 

 

▲ 탑골공원은 그리 넓지 않지만 가볍게 걸으며 도시 속의 여유를 맛볼 수 있다.

 

◆ 부처님의 상서로운 기운을 간직한 원각사지 10층석탑

▲ 원각사지 10층 석탑. 훼손을 막기 위해 유리 보호막으로 싸여 있다.

 

 

 

 

국보 제2호인 원각사지 10층석탑은 세조가 세운 원각사 터에 남아 있는 높이 12m의 10층석탑이다.

원각사는 1465년(세조11년)에 조계종의 본산이었던 흥복사(興福寺) 터를 확장하여 세운 사찰인데, 이 탑은 2년 뒤인 1467년에 완성됐다.

세조는 사리분신(舍利分身, 부처의 사리가 중생을 구하기 위해 곳곳에 나타나는 것)하는 경이로운 일을 겪은 뒤 원각사를 짓기로 결정하였는데, 공사 도중에도 사리분신하고 상서로운 기운이 나타났다고 전해진다.

 

 

 

 

 

亞자 모양의 기단은 세 겹인데, 아래에는 용과 연꽃 같은 무늬를 새겼고, 중간에는 삼장법사(三藏法師)와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일행이 인도에서 불법(佛法)을 구해 오는 과정이 새겨졌다.

위에는 부처님의 전생 설화와 일생을 조각하였고, 법회 장면을 새긴 탑의 몸체에는 현판, 용을 휘감는 기둥, 목조구조, 지붕를 두었다.

탑을 만든 재료는 흔치 않은 대리석이며, 독특한 형태와 조각 솜씨는 조선시대 석탑의 백미로 꼽힌다. 현재 탑에는 훼손을 막기 위해 유리 보호막이 감싸고 있다.

 

거북이가 받치고 있는 원각사비

▲ 팔각정에서 가는 길에 원각사비를 지키고 있는 비각이 보인다.

 

 

 

▲ 원각사비. 기단의 거북이 모습이 묵직한 불변의 진리를 전해주는 듯하다.

 

 

원각사비(圓覺寺碑)는 보물 제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1471년(성종 2년)에 세조가 원각사를 창건한 경위를 적어 세운 비석이다.

불심이 돈독했던 세조는 양주 회암사에서 분신(分身)한 사리를 보고 감동하여 1465년(세조11) 흥복사 터에다 원각사를 지었다고 한다. 1467년 석탑이 완성되자 연등회를 열고 낙성식을 거행하였으며 그 전후사정을 적은 비석을 조성하게 하였다.

▲ 앙부일구 대석. 해시계인 앙부일구를 놓았던 받침돌이다. 원각사비와 동문 사이에 있다.

 

▲ 원각사비 뒤 쪽에 있는 연못.

거북이 모양의 받침돌을 만들고 그 등 위에 연잎을 새겨 비석 몸돌을 세울 자리를 만들었다. 비석의 전체 높이는 494cm이며, 거북은 화강암으로, 몸돌과 머릿돌은 대리석으로 만들었다.

당대 문장과 글씨로 이름난 사람들이 비문을 맡았다. 김수온이 앞면의 글을 짓고, 성임이 그 글을 썼으며, 서거정이 뒷면의 글을 짓고, 정난종이 그 글을 썼다고 한다.

연산군 때 궁궐에 인접한 민가를 철거하면서 원각사는 빈 절이 되었다. 근대에 들어 공원으로 변모한 이곳에는 10층석탑과 이 비석만 남아 원각사의 옛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 만해 한용운 당대 선사비.

 

3·1운동의 만세소리가 울려퍼졌던 결기의 팔각정

 

 

▲ 팔각정. 3·1독립운동 당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곳이다.

 

 

 

 

 

 

팔각정은 1902년(광무 6)에 탑골공원 안에 지은 팔각형 정자다. 서울시 유평문화재 제73호로 지정되어 있는 이곳은 1919년 3월1일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곳이다.

팔각정은 장대석 기단 위에 둥근기둥을 세우고 기둥머리 부분은 물익공(처마 밑 받침 장식)을 짠 후 기와지붕을 덮었다. 전통과 근대의 건축기술을 두루 사용햇던 건축가 심의석(1854~1924)이 주도하여 공사를 진행하였다고 한다.

▲ 탑골공원 사적비.

 

▲ 3 1운동 기념부조. 탑골공원 뒤편에는 10개의 기념부조가 설치되어 있다. 3 1운동 당시 전국방방곡에서 일제의 총칼에 굴하지 않고 만세를 외쳤던 선조들의 절절한 충정이 가슴으로 다가온다.

 

 

 

 

 

 

 

 

 

 

 

 

 

 

 

 

 

 

 

 

3·1운동 당시 학생들과 시민이 팔각정에 모여 학생대표의 독립선언문 낭독에 이어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고 시위 행진을 벌였다. 이런 이유로 일제 강점시대에는 시민들이 울적해진 심정을 달래기 위하여 이곳을 많이 찾았다고 한다.

 

◆ 역사와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삼일문' 

▲ 탑골공원의 석재 유구.

탑골공원은 종로 3가역 1번 출구로 나가 잠시만 걸으면 쉽게 만날 수 있다. 개방형 공원이라 입장료도 없다. 예전에는 비둘기가 많았으나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조용한 분위기였다. 젊은 사람들보다는 나이 지긋하신 분들의 쉼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인상이 들었다. 간간이 삼일문에 들어서는 외국인들은 팔각정 앞에서 셔터를 누르고 10층석탑에 큰 관심을 보였다.

▲공원 안에서 바라본 삼일문.

여전히 위안부 문제와 독도 영유권 문제 등 일본 정부의 생떼 주장은 계속되고 있다. 공원을 돌고 삼일문을 나서려니 9월 중순의 태양도 하루의 끝을 향해 달렸다.

95년전 이곳에서 목숨 걸고 외쳤던 선조들의 독립 만세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그 불굴의 결기를 우리는 지금 잊고 사는 것은 아닐까?

▲ 삼일문 문살로 바라본 공원 안 모습. 역사를 들여다 보는 느낌이 든다.

 

▲ 삼일문 문지방이 번득인다. 무수히 많이 오간 사람들의 자취다.

삼일문을 나서니 인도에는 사람이, 도로에는 자동차가 끊임없이 다닌다. 현실과 역사를 가르는 문같았다. 세상이 힘겨울 때 삼일문에 들어서 팔각정의 소리없는 외침과 대면해 보는 것은 어떨까?

 

philip@sportsq.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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