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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싱어](10) '솔개' 이태원, "포크 음악, 저항성과 철학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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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싱어](10) '솔개' 이태원, "포크 음악, 저항성과 철학 있어"
  • 연나경 기자
  • 승인 2016.07.19 10: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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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자 TIP!] '태초'의 의미는 크다. 누군가에겐 다른 계단을 밟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고, 한 시대를 풍미하는 문화의 새싹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태초의 중심에 서는 것은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며, 과거를 돌아봤을 때 꼭 한 시대를 풍미하던 그 시절을 추억하는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수 밖에 없다.

[스포츠Q(큐) 글 연나경 · 사진 이상민 기자] '솔개' '고니' '앵무새' 등 새를 소재로 하는 곡을 주로 부른 포크싱어 이태원은 한국 포크의 시조나 다름 없었다. 전언수와 함께 '쉐그린'으로 활동했던 그는 임창재, 이수영의 '어니언스', 박순진, 김태풍의 '4월과 5월' 등과 함께 포크 태동을 함께 시작했다. 최근 한국 포크 초기를 이끌던 이태원과 만나 포크 음악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 포크음악의 시작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가수, 이태원

▲ 포크싱어 이태원 [사진= 스포츠Q(큐) 이상민 기자]

이태원의 음악생활은 고등학교 졸업 이후 시작됐다. 그가 몸 담고 있었던 쉐그린은 5인조 그룹사운드로 시작됐으나, 2년 뒤 전언수와 함께 듀엣이 됐다. 당시 이태원이 불렀던 노래들은 주로 팝송이었다.

"우리는 미8군부대에서 음악 생활을 했어요. 가요보다는 팝송 위주의 팀으로 시작을 했죠. 군부대에만 있다 보니까 일반 한국사람들이랑 어울리기 시작한 건 80년대인데, 사실상 음악생활이 시작된 것은 미8군부대에서부터였어요."

명동에 위치했던 쉘부르는 유명 DJ였던 故 이종환이 운영했던 곳으로, 이태원은 쉘부르의 원년 멤버였다. 그는 쉘부르의 시작을 함께 했기에, 지금까지 만났던 '쉘부르' 출신 멤버들의 이야기보다 더 과거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73년에 오픈했어요. '통기타'로 묶인 한 사단이 시작된 거죠, 그 곳에서. 우리(쉐그린)를 포함해서 어니언스, 김정호, 채은옥, 권태수, 김세화 등을 시작으로 남궁옥분, 박강성, 최성수 그 친구들이 들어왔죠. 통기타 사단으로서는 상당한 영향력을 끼쳤어요.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려고 애썼죠. 많은 통기타 가수들이 배출된 곳이에요."

쉘부르라는 공간은 사실상 많은 통기타 가수들을 육성해 온 성지같은 곳이며, '라이브 카페'라는 문화를 대표하는 공간이었다. 이태원의 활동 주무대가 쉘부르였기에, 라이브 카페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을 법했다.

"본래 가수들의 노래를 들으면서 감정을 얻어 갔다면,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음악의 형태가 내가 듣는 음악에서 내가 노래를 하는 문화로 바뀌어 버렸어요. 가수들이 너무 힘들어지죠. 그렇지만 흐름이 바뀌는 것이고, 우리나라 생활 수준이 더욱 좋아졌다고 생각해요. 문화가 바뀌니까 살고 있는 사람들이 적응할 수 밖에 없는 거죠. 그런데 큰 공간에서 노래를 하는 가수도 있고, 우리처럼 작은 무대에서 노래를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

◆ 포크 음악의 두 갈래, 이태원의 포크엔 '저항성'이 있다

▲ 포크싱어 이태원 [사진= 스포츠Q(큐) 이상민 기자]

포크음악은 서정적인 가사와 어쿠스틱한 연주, 자유로운 발상을 기반으로 오랜 시간 모든 연령대를 관통하며 전 연령층의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은 음악이다. 하지만 포크 음악이 서정적인 면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대수는 미국 유학 뒤 첫 콘서트에서 박정희 대통령 시절 군사 정권의 삭막한 분위기를 비판했으며, '아침이슬'이 수록된 김민기의 데뷔앨범은 군부정권 안에서 금지음반이 됐다. 이태원의 성향은 서정성보다는 저항성에 있었다.

"통기타를 들고 한 쪽에서는 사랑이나 아름다운 이야기를 노래하는 가수도 있지만, 70·80년대의 군부정권이나 전두환 정권에 대해 노래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 사람들은 자신의 노래를 통해 사회 비판적이고 소외된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노래를 한 거죠."

이태원 역시 저항성을 드러내는 삶을 살았다. 그 때문에 자신의 자유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새'를 선택했다. 새 이름이 들어간 이태원의 곡들은 새가 인간에 비해 자유롭다는 이유에서부터 시작됐다.

"내 삶이 사랑을 노래하는 것보다 소외받는 것과 가까웠어요. 민주적이지 못했고, 자유롭지 않아 그런 마음들을 대변하고 표현하고 싶었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써 보고 싶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작은 무대를 찾아서 시민들과 만나서 내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거죠."

◆ 이태원이 생각하는 포크음악이란? "철학을 이야기하는 것"

▲ 포크싱어 이태원 [사진=스포츠Q(큐) 이상민 기자]

무언가에 대해 정의를 내릴 때, 사람들은 말하는 이의 생각을 엿보게 된다. 이태원은 자신의 무기인 '포크음악'에 대해 '철학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라는 철학적인 정의를 내렸다.

"나는 그룹사운드를 하다 통기타를 하게 됐잖아요. 공간의 변화를 겪었는데, 작은 공간에서 통기타 하나로만 음악을 하니까 철학을 논하고 노래로 대화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쉽게 소통이 가능하고, 화려한 것보다 진솔한 내면을 꺼내서 보여주고 평가받을 수 있더라고요. 그러면 사람들이 '이 가수는 이런 철학이 있구나'하고 알 수 있으니까 그게 포크음악의 장점이자 매력인 것 같아요."

사실상 '포크의 시작'인 이태원은 최근 포크 음악을 향유하는 세대들이 많아진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그는 포크의 변화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도 포크음악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처럼 통기타 하나만 들고 하는 사람들은 많이 없어졌고, 젋은 사람들은 밴드를 꾸리고 있잖아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포크는 향수를 느끼게 할 수 있는 흐름이 있는데, 그 흐름을 후배들이 자신의 스타일로 소화시키는 건 좋아보이는 것 같아요. 다만, 포크가 역사의 한 켠으로 가지 않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히트를 치고 1위를 한 번쯤 해줘야 해요. 통기타 장르를 추구하는 가수들 중 성공하는 사람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 사람들이 자신의 노래로 승부를 봐 줬으면 좋겠습니다."

◆ 이태원 소개

1967년 전언수와 함께 쉐그린으로 활동, 1981년 솔로로 전향.
'솔개' '고니' '타조' '까치' '앵무새' 등 발표
현재 8월 말 어니언스(임창재·이수영), 4월과 5월(박순진·김태풍), 쉐그린(이태원·전언수) 원년멤버와 함께 서울 공연을 시작으로 전국투어 공연을 앞두고 있음.

[취재후기]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었다. 대중들에게는 포크음악의 원조격이라고 하면 '쎄시봉'으로 알려져 있겠지만, 실상은 어니언스와 쉐그린이 포크 음악 시작의 선봉에 서 있었다. 다양한 음악 생활을 하다 솔로 포크 싱어로 정착한 이태원의 모습에서 진정한 포크 어른의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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