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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Q리뷰] '부산행' 좀비영화 클리셰 깨고 거침없이 내달리는 재미와 작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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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Q리뷰] '부산행' 좀비영화 클리셰 깨고 거침없이 내달리는 재미와 작품성
  • 원호성 기자
  • 승인 2016.07.2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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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원호성 기자] 한국에서 좀비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아니 좀비영화가 만들여저서 천만 관객을 노려봄직한 상황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상상이나 해봤을까? 어쩌면 연상호 감독의 첫 실사영화 '부산행'이 그 어려운 일을 해낼지도 모르겠다.

20일 개봉하는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은 한국에서 최초로 시도되는 좀비를 소재로 한 블록버스터 영화다. 대한민국 전역에 원인불명의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가운데, 서울을 출발해 부산으로 향하는 KTX 기차 안에서 좀비들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부산행'은 기존에 잘 알려진 좀비영화들의 장점을 보기 좋게 취합해낸다. 영화의 배경을 이동조차 쉽지 않은 KTX 기차로 제한한 것은 '부산행'의 재미를 끌어올리는 신의 한 수가 됐다. '좀비영화'라고 쉽게 말하지만 저예산 인디영화부터 '월드워Z'와 같은 블록버스터까지 다양한 영역에 걸쳐 있는 좀비영화의 영역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완성도나 논란의 여지를 빚을 수 있는 사건의 해결에 골몰하기보다 철저하게 '생존'이라는 점에 키워드를 맞출 수 있게 된 것이다.

▲ 영화 '부산행' 스틸이미지

'부산행'은 KTX 기차와 기차역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좀비와 인간의 대결 역시 활동무대를 극히 제약하면서 기존 좀비영화에서 보여주던 움직임의 양상과는 크게 달라진다. 좁은 통로에서 포효하며 뛰어다니는 좀비들과 좌우의 선택 없이 오로지 앞만 보고 전진해야 하는 인간들의 지극히 제한된 이동성은 인물들에게 뚜렷한 목표를 제시함과 동시에 극적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요소가 된다.

물론 공간이 제한됐다고 해서 스크린을 압도하는 대규모 좀비신이 없는 것도 아니다. '부산행'은 KTX 기차라는 공간이 가지는 장점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면서, 한정된 공간으로 인해 생기는 스케일의 제한을 대전역과 동대구역이라는 기차역을 이용해 풀어낸다. 특히 대전역에서 좀비를 방어하기 위해 주둔하던 군대가 단체로 좀비에 감염되어 덤벼드는 장면은 상당한 긴장감으로 절로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그러면서 '부산행'은 좀비영화들의 클리셰를 재치있게 비켜가기도 한다. 많은 좀비영화에서는 주인공들이 총을 비롯해 다양한 무기로 좀비와 겨루는 모습이 등장하지만, '부산행'에는 그런 멋진 인간과 좀비의 활극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는 '부산행'을 '영화'가 아닌 '현실'의 영역에 보다 가깝게 끌어들이며 관객들의 공감을 자아내는 요소가 된다.

또한 '부산행'은 좀비영화들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사건의 전개와 해결을 다루기보다 '생존'의 문제로 귀결시키며 두 시간 짜리 오락영화로 잠시의 쉴 틈 없는 질주를 선보인다. 한국의 첫 좀비 블록버스터가 지나치게 사건의 현장에만 초점을 맞췄다는 아쉬움은 있을 수 있지만, 관객을 상대로 한 오락영화라는 점에서 '부산행'의 이런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부산행'의 더욱 긍정적인 선택은 좀비영화 뿐 아니라 재난영화, 특히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에서는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신파적 코드와 정치적인 문제를 최대한 제한해낸다는 점이다. 석우(공유 분)가 어린 딸 수안(김수안 분)을 구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모습처럼, 사람들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해 좀비로부터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려는 모습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연상호 감독은 이 장면들에서 쓸데없이 늘어지는 모습을 깔끔하게 쳐내며 감정과잉의 신파로 흐르는 길을 차단한다.

▲ 영화 '부산행' 스틸이미지

정치적인 문제 역시 좀비사태를 전국적인 폭력시위 발생으로 치환하거나, 대규모 좀비사태의 발생 앞에 무기력한 모습으로 간접적인 암시를 하긴 하지만 많은 한국형 재난 블록버스터에서 보여준 것처럼 이런 이야기들을 노골적으로 영화의 중심으로 끌고 들어오지 않는다. 대신 이 문제는 KTX 기차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사이의 갈등으로 인간관계에 대한 문제를 풀어내며 긴장감을 조성하는데 한 몫을 한다.

물론 '부산행'이 흠잡을 곳이 없는 완전무결한 영화는 물론 아니다. KTX 기차를 중심으로 한 사건의 진행은 잘 보여주지만 좀비사태의 전개와 해결에 대해서 지나치게 설명이 부족하기도 하고, 뒤로 갈수록 인간 사이의 갈등이 부각되면서 좀비영화의 클리셰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다.

하지만 한국에서 최초로 시도된 좀비 블록버스터가 이 정도의 완성도와 재미를 보장해준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굳이 좀비영화라서가 아니라 '재난'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서도 '해운대' 등 수많은 재난 블록버스터들이 빠졌던 신파와 어설픈 사회적 접근으로 생기는 이야기의 괴리감 등을 '부산행'은 현명하게 돌파해낸다. 좀비영화다보니 잔인한 수위의 묘사가 필수적으로 등장한다는 점이 천만관객으로 향하는 흐름에 결정적인 장애물이 될 수는 있지만, 이 정도의 완성도와 재미라면 천만관객도 굳이 불가능한 꿈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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