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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 프로야구 편파방송이 주는 '소통'과 '공감'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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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 프로야구 편파방송이 주는 '소통'과 '공감'의 미학
  • 이세영 기자
  • 승인 2016.07.25 1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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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도' 부산의 대표 편파방송 KNN라디오와 자이언츠TV…정감가는 해설-차별화 콘텐츠로 팬심몰이

[200자 Tip!] 1950년부터 무려 67년 동안 LA 다저스 전문 캐스터로 활동하고 있는 빈 스컬리(89)는 스포츠 중계를 업으로 하는 이들로부터 레전드로 불린다. 그런데 한국에도 스컬리만큼 오랫동안 한 팀만을 맡아 마이크를 잡은 이가 있다. 바로 이성득(63) KNN 해설위원. 1998년 7월 11일 사직 해태전을 시작으로 롯데 자이언츠의 전 경기를 중계해오고 있다. 19년째 한 자리를 지킨 이 위원은 지난 14일 2500회 중계라는 의미 있는 기록을 달성했다. “초창기 ‘우리 롯데’라는 말을 쓰면서 자연스레 편파방송이 됐다”고 털어놓은 그는 “혼자가 아닌 ‘우리’라는 울타리를 만들어낸다”는 말로 편파방송의 순기능을 역설했다. 팬심을 더 견고하게 함은 물론, 라이트 팬을 열성팬으로 만들 수 있는 게이트가 바로 편파방송이라는 것이다.

[부산=스포츠Q(큐) 이세영 기자] “고마워요. G.G. 동욱! 고마워요. G.G. 동욱!”

지난 20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롯데와 KIA의 프로야구 경기에서 결정적인 순간 KIA 선수가 송구실책을 범하자 ‘자이언츠 TV’ 중계방송 캐스터가 이렇게 외쳤다. 한일전으로 펼쳐진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준결승전에서 일본 외야수 G.G. 사토가 잡기 쉬운 뜬공을 놓쳤을 때 허구연 해설위원이 “고마워요 G.G. 사토”라고 말한 장면을 재치 있게 패러디한 것.

▲ 이성득 KNN 해설위원은 1998년 이후 18년 동안 롯데 자이언츠 '편파중계'를 맡고 있다. [사진=이성득 해설위원 제공]

이처럼 편파방송은 일반 중계방송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부분이 용인된다. 지난 시즌부터 2년째 롯데 자이언츠의 구단 전용채널인 자이언츠 TV에서 진행을 맡고 있는 허형범(29) 캐스터는 “상대팀 선수를 비하하는 건 안 좋겠지만, 상대를 조금 낮추고 우리를 높일 수 있다”며 “두 선수의 실력이 비슷해도 상대팀 선수의 능력치를 소개할 땐 10중에 1정도만 이야기한다. 팬들이 야구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끼게끔 재미있게 풀어내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중립중계에서 전체 100 중에 50의 힘으로 롯데가 이긴 것을 이야기한다면, 난 150의 힘으로 롯데가 이겼다는 것을 외칠 수 있다. 이것이 편파방송의 묘미가 아닌가 생각된다”고 덧붙였다.

부산은 예로부터 ‘구도’라고 불릴 정도로 야구에 애정이 많은 도시다. 특히 야구가 일상인 골수팬들이 많기 때문에 이들을 만족시킬만한 콘텐츠가 요구돼 왔지만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이런 역할을 해줄 미디어가 턱없이 부족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1998년 라디오 중계방송이 생기면서 ‘내 팀’이라는 인식이 강한 롯데 팬들에게 ‘편파’라는 콘텐츠가 거부감 없이 다가왔고 지금까지도 잘 유지되고 있다.

▲ 박기량 치어리더(왼쪽)와 인터뷰하고 있는 허형범 캐스터. [사진=자이언츠 TV 영상 캡처]

◆ '우리'가 주는 울타리의 힘

“해설을 처음 맡았을 때 ‘우리 롯데’라는 말을 많이 썼어요. ‘우리’라는 말이 들어갈 정도면 이미 한쪽으로 기울었다고 볼 수 있는 거잖아요.”

다른 해설가들은 균형 잡힌 해설을 신경 써야 하지만 이성득 위원은 항상 롯데를 중심으로 한 편파해설을 한다. 이는 부산, 경남 지역방송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 위원은 “‘우리’라는 두 글자가 유대감을 높인다. 누군가가 내가 응원하는 팀의 편을 들어주면 다 좋아할 것”이라며 “친구 네 명이 있을 때 한두 명이 내 편을 들어주면 매우 기분이 좋을 것”이라고 말한다.

유독 ‘우리’라는 말이 입에 잘 붙었던 이유도 있었다. 1982년 창단 멤버로 롯데 유니폼을 입었던 이 위원은 부상 때문에 1년 만에 선수생활을 끝냈지만 코치, 구단 프런트를 모두 거쳤다. 자이언츠에 대한 애정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하루 3시간 이상 중계를 해야 하기 때문에 목을 보호해야 하는 이 위원이지만 롯데가 점수를 뽑았을 땐 고래고래 소리를 높인다. 일명 ‘샤우팅 해설’로 팬들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고 있다. 팬심이 담긴 해설로 친근감을 더하고 있는 이성득 위원이다.

반면 롯데가 2000년대 초반 ‘8888577(2001년부터 7년간 순위)’ 비밀번호를 찍으며 고개 숙였을 때는 이성득 위원의 마음도 같이 아팠다. 이 위원은 “시즌이 끝나고 위 내시경을 받으면 의사가 깜짝 놀란 눈으로 ‘대체 무슨 일을 하시기에 안이 불바다냐’라며 물었다”고 전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자이언츠를 뼛속까지 사랑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허형범 캐스터는 ‘SNL 코리아’의 ‘극한직업’을 패러디한 영상물로 팬들의 많은 호응을 얻었다. 중계방송을 할 땐 팀이 져도 아무렇지 않은 척 하다가 돌아서서 눈물을 훔치거나 소주를 마시는 그의 모습을 보며 많은 팬들이 공감했다.

허 캐스터는 “중계방송을 할 때 팬들이 나보고 극한직업이라고 해서 거기에 아이디어를 얻어 영상물을 찍게 됐다. 프로듀싱과 작가, 연출, 출연 등 1인 6역을 해서 힘들었는데, 의외로 팬들의 호응이 뜨거워 힘이 됐다. 영상 내용에 많이 공감하신 것 같았다”고 웃어보였다.

중계할 때 경기가 지루해지면 실시간 댓글로 올라오는 팬들의 사연을 읽어주는 라디오 방송으로 변신한다. 허 캐스터는 “자이언츠 TV는 팬들이 만들어가는 방송이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셔서 방송에 빈틈이 없다”고 만족해했다.

▲ 허형범 캐스터가 1인 6역을 한 '극한직업' 패러디 영상물. [사진=자이언츠 TV 영상 캡처]

◆ 뉴미디어 시대, 편파방송 플랫폼의 다양화 도래

이런 편파방송을 전달하는 수단인 미디어 플랫폼은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발전을 거듭했다. 뉴 미디어를 접하는 연령대가 낮아지면서 이들을 만족시킬만한 플랫폼을 찾아야 했다.

라디오 중계방송 이후 가장 먼저 발 빠르게 나선 미디어가 바로 인터넷 방송인 ‘아프리카 TV’다. 2009년 프로야구에 대한 ‘온라인 동영상 중계권’을 확보한 아프리카 TV는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으로 편파중계를 볼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

프로야구의 인기가 날로 높아지면서 어플리케이션 편파중계 시장도 커지고 있다. 특히 이름이 알려진 BJ가 운영하는 방송국은 경기할 때 동시 접속자수가 수천 명에 달한다. 방송을 보는 팬들은 시청료 개념으로 별풍선을 선물하는데, 이것이 일정 비율로 아프리카 TV와 BJ에게 나눠 지급된다.

팬들의 열렬한 반응에 힘입어 일부 BJ들은 아프리카 TV 스튜디오를 빌려 정기적으로 공개방송을 갖기도 한다. 온라인에서만 보던 팬들은 같은 유니폼을 입고 응원하며 유대감을 더욱 단단하게 쌓는다.

◆ '킬러 콘텐츠'로 야구팬 오감 자극한다

편파방송이 생중계로만 이뤄진 건 아니다.

롯데 자이언츠와 SPOTV가 협약을 맺고 콘텐츠를 제작하는 자이언츠 TV의 경우에는 캐스터를 비롯해 기획, 기술, 영상 촬영, 영상 편집 등 5~6명의 인력이 필요한데, 이들이 아이디어를 짜내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자이언츠 TV 유튜브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중계 풀영상을 비롯해 현장 카메라로 명장면을 생생하게 촬영한 ‘사직동 930번지’, 시구자와 치어리더, 응원단장과 인터뷰하는 영상이 담긴 ‘자이언츠 토크’, 한주 간 롯데의 경기를 짧은 영상으로 감상할 수 있는 ‘위클리 자이언츠’ 등 팬들이 흥미를 가질만한 콘텐츠들이 가득 준비돼 있다.

아프리카 TV도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콘텐츠들이 많다. 야구가 없는 월요일엔 야구 전문기자를 스튜디오로 초대해 응원팀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거나 프로야구 전반적인 이슈를 다루기도 한다. 아무도 중계를 하지 않는 시간에 야구 콘텐츠를 다룸으로써 틈새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 허형범 캐스터는 "너무 멀리 보는 것보다는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려 한다. 그러다 보면 팬들이 좋아해 주실 거라 생각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사진=허형범 캐스터 제공]

◆ 편파방송이 지속되기 위한 전제조건은?

팬들과 함께 호흡하며 만들어나가는 편파방송이지만 진행자들 나름의 고민도 있다.

‘이런 저런 이유로 갑자기 방송이 사라지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감이 마음 한쪽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성득 위원은 “롯데의 성적이 좋지 않으면 듣는 사람이 줄어들 테니, 중계방송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3000경기를 중계하는 것이 목표인데, 그 전까지는 폐지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허형범 캐스터는 “자이언츠 TV와 구단 간의 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며 “구단에서 자이언츠 TV가 팬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없어질 수도 있다. 내가 프로그램의 존폐를 결정하는 게 아니다”라면서도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면 머리만 복잡해지더라. 그냥 주어진 과제 하나하나에 집중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러다 보면 팬들께서 꾸준히 좋아해 주실 거라 생각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취재후기] 허형범 캐스터는 “롯데 중계는 내가 제일 잘한다는 자신감이 있다. 롯데 중계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편파중계를 하는 팀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롯데 팬이었던 허 캐스터는 오로지 롯데의 경기를 중계하기 위해 아나운서 시험에 뛰어들었고 비교적 일찍 기회를 잡을 수 있게 됐다. 방송을 피드백하며 ‘왜 내가 더 완벽하게 하지 못했을까’ 자책한다는 허 캐스터. 방송에 대한 고민이 거듭될수록 더 좋은 콘텐츠가 나올 것이라 확신한다. 독자 여러분도 저녁엔 일반 중계방송 대신 인터넷을 접속해 보는 건 어떨지.

▲ 롯데 선수 출신인 조성환(오른쪽) KBS N 스포츠 해설위원과 허형범 캐스터. [사진=허형범 캐스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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