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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간막후](18) '대학로 다작배우' 강진휘, 눈빛으로 연기하는 '햄릿 아바따'의 클로디어스 (인터뷰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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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간막후](18) '대학로 다작배우' 강진휘, 눈빛으로 연기하는 '햄릿 아바따'의 클로디어스 (인터뷰Q)
  • 김윤정 기자
  • 승인 2016.07.26 0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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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자 Tip!] 약 17년간 배우생활을 이어오며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해 온 배우 강진휘가 ‘햄릿 아바따(Hamlet Avataar)’를 통해 클로디어스 왕으로 변신한다. 굵고 진한 선을 가진 강진휘가 표현할 ‘강진휘의 클로디어스’는 분명 수많은 말을 하는 그의 눈빛만큼이나 희소성이 있을 것으로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스포츠Q(큐) 글 김윤정 · 사진 최대성 기자] 2016년은 세계 최고 극작가인 셰익스피어의 서거 400주년이 되는 해다. 이는 올해 우리나라 연극 무대에 유독 ‘햄릿’이 자주 오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극단 ‘서울공장’에서도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햄릿’을 오늘날의 시각으로 재해석해 제작한 연극 ‘햄릿 아바따’를 무대에 올린다.

그리고 ‘햄릿 아바따’에서 강진휘는 햄릿의 아버지를 살해하고 그의 어머니와 결혼한 삼촌인 클로디어스 왕 역을 맡았다. 클로디어스의 깊은 내면과 원숙한 여유로움을 보여줄 17년차 배우 강진휘를 극이 오르는 서울시 노원구에 위치한 노원문화예술회관에서 만났다.

▲ 배우 강진휘

◆ “‘햄릿 아바따’ 클로디어스, 야망 속 인간적 모습 있을 것”

서울공장은 고전적인 작품의 재해석 및 한국인의 정서에 맞는 연기 훈련법을 개발해 이를 바탕으로 한 공연 작업을 주로 진행한다. 고전임에도 불구하고 현시대를 얘기할 수 있는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재해석한 ‘햄릿 아바따’ 또한 지난 2014년 초연 이후 이듬해인 2015년엔 인도에서의 순회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강진휘는 이번 ‘햄릿 아바따’를 통해 서울공장의 작품에 처음 참여하게 됐다. 강진휘가 ‘햄릿 아바따’에서 맡은 클로디어스 역은 원작 ‘햄릿’에서도 주인공인 햄릿과 대립하는 중요한 인물로 그려진다.

강진휘가 참여했던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소재로 한 연극은 2014년 막을 올렸던 ‘줄리어스 시저’가 있었지만, ‘햄릿’을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강진휘는 클로디어스 역을 위해 일부러 수염도 기르고 헤어스타일도 새롭게 바꾸며 캐릭터를 점차 만들어갔다.

“아직 찾아가고 있는 중이에요. ‘인물을 어떻게 표현해야 될까’란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요. 어떻게 보면 야망을 위해서 형을 살해한 거잖아요. 그런데 일반적인 야망과 야욕을 가진 인물이 아니라, 그 안엔 분명 인간적인 모습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배우로서 그 역할을 해내기 위해서는 타당성을 찾아야 하거든요. 그래야 관객들을 이해시키니까요.”

‘햄릿 아바따’는 ‘상처받은 혼을 치유하는 광대 음악극’을 슬로건으로 내건다. 인도버전에서 한국버전으로 재구성한 이번 ‘햄릿 아바따’는 ‘현실 속 내 모습이 아닌 연극 속 아바따(아바타)를 통해 비로소 진실해지는 우리의 모습’을 아바따 신의 고향인 인도의 소리와 한국의 소리, 그리고 몸짓을 통해 그려나간다.

간결하지만 섬세한 조명과 의상, 광대들의 열기, 100%로 진행되는 라이브 연주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강렬한 시청각적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햄릿 아바따’는 배우들이 직접 음악에 참여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또한 볼거리다.

“배우들이 연기를 할뿐만 아니라 각자 소리도 내고, 움직이면서 악기도 연주해요. 왠지 스태프들이 내는 소리와 배우들이 내는 소리가 좀 다른 것 같아요. 배우들은 호흡을 하면서 정확하게 짚고 가는 경우가 있어서 그런지 미묘한 차이가 느껴져요.”

▲ 배우 강진휘

이 공연을 통해 관객과 배우들은 현실세계와 상상세계에 각각 존재하는 우리와, 우리의 아바따(아바타)를 만나게 된다. 상반되는 두 세계를 마주함으로써 공연은 실존의 고뇌를 부여안고 삶의 긍정적 의미를 찾으려는 우리 혼의 치료가 이루어질 수 있음을 실험한다. 강진휘 또한 ‘햄릿 아바따’가 ‘비극’으로 통하는 ‘햄릿’을 재해석한 작품이지만, 공연을 통해 관객들이 ‘치유’와 ‘희망’의 메시지를 가져갈 수 있기를 바란다.

“‘햄릿’이 고전의 비극이었다면 ‘햄릿 아바따’는 희망을 주는 느낌이 들어요. 극 말미에 햄릿이 새 시대를 이끌어갈 포틴브라스의 옷을 입고 나타나요. 이게 마치 희망찬 결말처럼 보이죠. ‘우리의 세대는 이렇게(힘겹게) 살았지만 다음 세대는 좋은 세대였으면 좋겠다’는 그런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아요.”

이번 공연은 아쉽게도 오는 28일부터 30일까지 단 3일 동안만 막이 오른다. 강진휘는 짧은 공연기간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남다른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공연이 짧은 것도 아쉽지만, 연습기간도 좀 짧아서 아쉬워요. 특히 이 작품에선 악기도 다뤄야 하고, 신도 되게 많아서 배우들과 연출들과의 호흡이 가장 중요해요. 어느 누구하나 믿지 않으면 어긋날 수 있는 거죠. 바람이 있다면 눈만 봐도 ‘딱’ 알 수 있을 정도가 됐으면 좋겠어요. ‘배우들끼리 한바탕 재밌게 놀았다’, ‘정말 미련 없이 한번 놀았다’란 생각이 들 수 있게끔 임하고 있어요.”

임준식, 구시연, 김지영, 강진휘, 김충근, 이미숙, 리아, 박신운, 백유진 등이 출연하는 ‘햄릿 아바따’는 오는 28일부터 30일까지 노원문화예술회관 대극장에서, 그리고 8월2일부터 3일까지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 밀양연극촌 성벽극장에서 열린다.

▲ 배우 강진휘

◆ “배우 꿈 위해 성경책, 아령만 들고 무작정 서울행, 나도 모르게 대학로에 스며들어…”

강진휘는 연극 ‘고래가 사는 어항’(2005), ‘자객열전’(2006), ‘라이어 1탄’(2008), ‘엄마를 부탁해’(2011), 영화 ‘바람 피기 좋은 날’(2007), ‘킬 미’(2009)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다. ‘다작배우’인 그는 시체부터 외국인, 심지어 개에 이르기까지 ‘다종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해 오며 연기의 폭을 넓혀왔다. 이처럼 ‘다종다양’한 배우인생을 걸어온 그의 시작에는 부친의 영향력이 존재했다.

“고등학교 2학년 시절 신상옥, 최은희 감독이 탈북했다고 했을 때 아버지께서 ‘나 옛날에 저 사람들이랑 영화했어’ 하시더라고요. 깜짝 놀랐죠. ‘거짓말 하지마’ 그랬는데, 엄마한테 물어봤더니 정말 그랬다고 하시더라고요. ‘가거라 38선’이란 영화를 찍으셨다고 하셨는데 확인할 길이 없으니 잘 모르겠지만(웃음), ‘아버지의 못 다한 꿈을 이루자’란 생각으로 한 손에는 성경책, 한 손에는 10kg짜리 아령 하나 들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어요.”

지방극단에 있던 강진휘는 연극 ‘내려다 본 세상’으로 배우로서 정식 데뷔했다. 1997년 아이엠에프(IMF) 경제 위기로 나라가 휘청거릴 때가 강진휘가 대학로로 향한 때였다. 그러나 배우가 되기 이전 강진휘는 모델계에 먼저 발을 들여놓기도 했다.

“슈퍼엘리트모델 2기였어요. 원래 배우가 하고 싶기도 했고, 모르겠어요. 그냥 저도 모르게 대학로에 스며든 것 같아요.”

▲ 배우 강진휘

특별한 계기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대학로 배우가 된 강진휘는 학교에 대한 갈망도 있었다. 당시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시험을 보고 싶었지만 응시료가 없어서 보지 못한 강진휘는 결국 무대 위에서 어깨너머로 연기를 배우게 됐다. 당시 가장 유명했던 극단 ‘목화’를 동경하며 배우의 길을 차근히 밟아 갔다.

“‘목화’가 꿈의 극단이었어요. 모든 감독과 언론매체도 그쪽에 집중돼 있었고요. 황정민, 박휘순이 있었죠. 전 연기 공부를 어깨너머로 하면서 ‘언제 저 사람들하고 같이 한번 해보지’라고 생각했었는데, 어느 순간 돌아봤더니 나란히 하고 있더라고요.(웃음)”

‘대학로 바닥’에서 강진휘란 배우를 부각시킬 수 있었던 작품은 2008년도 막을 올렸던 박상현 연출의 연극 ‘임차인’이었다. 1주년 기념공연에 2007년 참여했던 오달수가 스케줄상 함께 하지 못하면서 강진휘에게 기회가 넘어온 것이다.

“공연을 본 사람이 ‘팀워크가 정말 좋아 보인다’고 하더라고요. 그걸 느끼나 봐요. 술도 많이 먹고, 정말 열심히 했거든요. 작품이 끝나고 나서 캐스팅 제의뿐만 아니라 달라졌다는 게 느껴졌어요. 연기도 달라지고, 알게 모르게 ‘그 작품 좋았다’는 소리가 들렸으니까요. 그 이후로 바빠졌던 것 같아요. 고마운 작품이고, 박상현 연출님한테 고맙죠. 어떻게 보면 저한테 선생님 같고 큰 형 같은 분이에요.”

▲ 배우 강진휘

◆ “‘배우로서의 작품’ 만나고 싶어… 누 되지 않는 배우 됐으면”

강진휘는 일 년에 7~8개 정도의 작품을 하는 ‘다작배우’에 속한다. 끊임없는 작품 활동으로 매체작품을 놓친 경우도 많다. 함께 연기를 시작했지만 드라마와 영화로 이미 스타가 된 동료들에 대해 강진휘는 “어릴 때는 ‘오’ 그런 게 있었는데, 지금은 박수쳐줘요”라고 웃으며 대답했다.

“이번에도 ‘곡성’이란 영화를 보고 전배수에게 ‘형, 영화 잘 봤어’라고 문자를 보냈어요. 전화가 왔기에 ‘벼락 제대로 맞았던데’라고 했죠(웃음).”

오랜 기간 동안 배우생활을 해온 강진휘는 지금껏 맡아온 역들이 다 제각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역을 맡아왔다. 좀처럼 연기를 쉬지 않는 강진휘의 작품을 보기 위해 매번 공연장으로 달려와 주는 팬들은 그에게 늘 고마운 존재다.

“제 작품을 빠지지 않고 봐줘요. 몇 년 전부터는 송년회도 해요. 올해는 처음으로 신년회도 했어요. 공연 보러 오면 애들이 술은 못 먹어서 밥 먹고 헤어져요. 한 10년 됐는데 되게 고맙더라고요.”

팬들이나 공연을 본 누군가가 자신을 찾을 때 미안하면서도 감사한 감정을 느낀다는 강진휘는 “이럴 때 엉뚱한 생각을 가졌던 게 정말 미안하죠”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강진휘는 38살에 있었던 슬럼프 이후 올해 다시 잠시 일을 놓게 된 사연을 털어놨다.

“스트레스로 우울증까지 생겨서 4개월 동안 요리학원을 다녔어요. 생각을 많이 하게 됐죠. 기로에 섰던 것 같아요, 이 나이에. ‘이쪽으로 가는 게 맞나, 안 맞나’가 아니라 ‘이쪽으로 가는 게 옳은 길인가, 가야 되나’란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작품이 들어오면 닥치는 대로 했는데, 고른다기보다 ‘배우로서의 작품’을 만나고 싶었어요. 그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 배우 강진휘

다행히 또다시 한고비를 넘겼지만, ‘인간 강진휘’로서 갖는 고민도 당연히 존재한다. 건강과 결혼, 배우로서의 고민이 바로 그것이다.

“결혼하지 못한 건 좋은 쪽으로 생각해 보면 앞만 보고 달려왔기 때문도 있을 거예요. 그리고 엄마한테 많이 미안해요. 매번 공연을 하느라 주말에 잘 찾아가지 못했는데, 이제 ‘어떻게든 시간을 맞춰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이런 고민들은 그가 앞으로 이루고 싶은 바람들로 발전했다.

“시놉시스를 몇 개 써놓은 게 있는데 연출을 해보고 싶어요. 굳이 연출가가 되고 싶다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 배우로서 무대 안에 있었다면 밖에 나와서 큰 그림을 보고 싶은 거죠. 좀 더 넓은 시야를 갖고, 배우로서의 욕심인 거예요.”

“결혼도 하고 싶고, 좋은 작품도 만나고 싶어요. 기회가 된다면 매체 쪽으로도 하고 싶고, 해보지 않은 역할, 여러 가지로 좋은 작품들을 만나보고 싶어요. 특히 어떤 팀이 오느냐, 어떤 작품이 오느냐가 배우한텐 중요한 것 같아요.”

강진휘 배우는 유난히 묘한 눈빛을 가졌다. 얼핏 보면 그저 강하고 깊어 보이지만, 그의 눈을 계속 바라보고 있노라면 사람을 빠져들게 만드는 오묘한 매력을 자아낸다. ‘눈빛으로 연기하는 배우’ 강진휘 스스로 바라는 배우로서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건강한 배우, 여러 가지 면에서 누가 되지 않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어요. 말 그대로 누가 되지 않는 배우요.”

‘햄릿 아바따’가 끝나면 강진휘는 오는 10월에 막이 오르는 ‘12명의 성난 사람들’을 통해 다시 관객들을 만난다. 오랜 시간 쌓인 ‘연기내공’으로 ‘누’가 아닌 ‘득’이 될 배우 강진휘의 20년, 30년 후의 모습은 더욱 근엄하게 빛나고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배우 강진휘

[취재후기] 강진휘의 사진촬영은 배경도, 소품도 변변치 않았던 연극 연습실에서 진행됐다. 그런데도 의자 하나만을 두고 포즈를 ‘척척’ 취하는 모습에서 ‘역시 프로는 다르구나’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강진휘는 마지막으로 “‘햄릿’ 많이 사랑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강진휘 배우도 많이 사랑해 주셨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아무런 꾸밈없고 가식 없이 순수하고 솔직한 바람을 전한 강진휘에겐 20대의 멋진 외모와, 30대의 여유, 그리고 40대의 무게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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