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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생각] '먹방' '쿡방'의 폐해가 단지 '푸드포르노'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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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생각] '먹방' '쿡방'의 폐해가 단지 '푸드포르노'뿐일까?
  • 최문열
  • 승인 2016.07.28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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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최문열 대표] 먹는 방송 ‘먹방’과 요리하는 방송 ‘쿡방’이 여전히 활황입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수그러들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먹방과 쿡방은 포맷에 변화를 꾀하면서 진화 중입니다. 젊음과 늙음을 막론하고 꿈이 실종되고 희망이 구조조정 되는 각박한 현실에서 맛난 것을 요리하고 맛있게 먹는 것을 보면서 큰 위안을 받기라도 하는 것일까요?

사실 먹방 쿡방에 대한 비판은 계속 돼 왔습니다. 주요 내용을 모아보면 이렇습니다.

영국의 언론인 로잘린 카워드(Rosalind Coward)가 1984년 '여성의 욕망'(Female Desire)이란 책에서 처음 사용한 ‘푸드 포르노’(Food Porno) 용어는 충격적입니다. 맛보다는 색감과 분위기 연출 등 시각적인 부분에 치중해 보는 사람의 식욕을 자극하고 대리 만족시키는 음식 관련 콘텐츠는 포르노와 다를 게 없다며 미식보다는 식탐을 부추긴다고 비판합니다.

▲ '먹방스타' 하니는 "먹방의 비결은 빠르게 많이 먹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때문일까? 하니는 장 트러블로 불편을 겪고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사진 = SBS 방송 캡처]

영국의 문화비평가 스티븐 풀은 2012년 저서 ‘미식 쇼쇼쇼’(원제 ‘당신은 당신이 먹은 음식이 아니다’)에서 ‘소비 지상주의의 극치’라면서 “삶의 의미를 엉뚱한 곳, 즉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접시’ 위에서 찾아 헤맨다.”고 목청을 돋웠습니다. 음식이 생존과 나눔의 수단이라기보다는 과시와 허세, 우월감의 도구로 변질됐다고 혀를 찹니다.

서울대 전상인 교수(사회학)는 한 칼럼에서 “미식으로 도피하고 포만에 위로받는 경향은 우리 사회의 각박한 인정, 표피적 유대 혹은 정신적 허기의 부재와 결코 무관해보이지 않는다”며 먹방 쿡방이 인기를 끄는 사회의 현주소를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그 밖에도 먹방 쿡방의 원인과 문제점 진단은 다각적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제가 오늘 여기서 짚어보고자 하는 것은 사회문화적인 비평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더 현실적인 이야기, 우리네 생활습관 병에 대한 건강 차원의 문제제기를 하고자 합니다.

먹방 쿡방을 보다보면 먹방 스타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음식을 맛나게 먹어, 보는 이들의 식욕을 더욱 부추기는 역할을 합니다. 그들이 맛있게 먹는 비결은 뭘까요? ‘빠르게 많이’입니다. 배우 서현진과 걸그룹 EXID 하니 등 먹방 스타들의 말입니다.

한마디로 폭풍흡입입니다. 이렇게 먹으면 ‘그림’이 살뿐만 아니라 시청자 반응도 ‘소탈하다’ ‘화끈하다’는 등 호감 상승입니다. 상황이 이러니 그 고충도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나인뮤지스의 민하는 한 입에 많이 먹기 위해 “보온병을 입에 넣어 연습한 적이 있다”고 하고 예정화는 “촬영 전날 변비약을 먹는다”고 하며 서현진은 "드라마를 찍을 때 소화제를 달고 살았다"고 털어놓아 안타까움을 자아냅니다.

하지만 문제의 심각성은 그 다음에 있습니다. 먹방 스타들은 일종의 폭풍 흡입 연기를 평상시에는 안하면 그만이지만 그들의 과장 연기에 탄성을 지른 이들은 빠르게 먹는 속식(速食)이나 단시간 내에 많이 먹어치우는 폭식(暴食)을 따라하며 습관화하기 때문입니다.

TV 채널을 돌리면 맛집 소개는 물론 먹방과 쿡방 화면에서 허겁지겁 먹는 이들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는데 그렇게 먹는 것이 ‘맛나게 먹는 것’의 표본으로 부각되는 분위기입니다.

▲ '먹방요정'으로 사랑받고 있는 배우 서현진. 그는 빠르게 많이 먹다보면 속이 불편해 소화제를 달고 산다고 밝혔다. [사진 = tvN 방송 캡처]

그것은 한국인의 ‘빨리빨리’ 병과 맞아떨어지며 상승작용을 일으킵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한국인 중 10분 안에 식사를 끝내는 사람은 52%에 이른다고 합니다. 빨리 먹는 것을 능력처럼, 천천히 먹으면 왠지 굼뜬 것처럼 여기는 시선도 없지 않습니다. 음식을 입에 물고 음미하며 천천히 먹으면 깨작거린다는 소리를 듣거나 “맛이 없냐?”는 물음이 들어옵니다.

사실 ‘속식’의 폐해는 무섭습니다. 오랫동안 누적되면 수많은 생활습관 병을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음식을 천천히 씹지 않고 넘기면 역류성 식도염을 비롯한 위장질환과 비만 그리고 당뇨 등 대사증후군, 치매를 불러온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속식 습관으로 인해 젊었을 때는 몰랐다가 나이 들어 고질병을 안고 사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먹방과 쿡방이 우리의 속식 폭식 문화를 부추기고 있는 것은 엄연한 현실입니다. ‘빠르게 많이’ 먹는 것으로 먹방 스타가 된 이들은 유아를 비롯해 아이돌까지 즐비합니다. 그들의 영향이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더 크다는 것을 고려하면 그 심각성은 더 커집니다. 속식 폭식 문화가 이대로 간다면 향후 개인은 물론 사회적 비용은 엄청나지 않을까요?

‘건강한 삶을 위해 ’속식‘과 ’폭식‘은 절대 따라하지 마십시오!’ 

먹방 화면 아래에 이런 경고 문구 자막을 넣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요? 당장의 위험은 아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각종 질병으로 한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무너뜨릴 수 있기에 그 어떤 묘기보다 더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폭풍흡입의 원초적인 모습보다는 언어의 맛깔스런 표현 등 다른 방식을 찾아내야 하는 것은 아닌지요?

물론 시청자들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일부 먹방 스타는 ‘속식’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속식’이 자신의 몸을 천천히 망가뜨린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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