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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현장Q] 프로야구 승부조작, '무한책임'으로 엇나가는 야구문화부터 바로 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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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현장Q] 프로야구 승부조작, '무한책임'으로 엇나가는 야구문화부터 바로 잡자
  • 안호근 기자
  • 승인 2016.07.28 22: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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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승부조작 끝장토론'...선수 제명 등 임시방편에만 그치지 않고 책임의식과 방지 교육 필요

[스포츠Q(큐) 글‧사진 안호근 기자] 프로야구가 승부조작 사태로 떠들썩하다. 4년 전 한 차례 홍역을 앓고 선수들을 영구제명까지 시키며 재발 방지를 다짐했지만 변한 것은 없다.

프로야구계는 700만을 넘어 800만 관중 유치를 바라볼 정도로 국민 스포츠로 자리잡은 야구의 흥행 열기가 식을 것을 걱정한 나머지 숨기기에만 급급한 인상이다. 4년 전 승부조작 파문 이후 프로야구계와 관계기관의 대처는 여전히 늦고 선수들의 인식 개선은 이뤄지지 않았다.

스포츠문화연구소와 체육시민연대는 28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프로야구 승부조작 끝장토론’을 개최했다. 최동호 스포츠전문가가 좌장을 맡았고 박동희 엠스플뉴스 기자와 정희준 동아대 교수, 홍덕기 노던아이오와대 조교수, 박지훈 변호사가 패널로 나서 다양한 의견을 개진했다.

▲ 스포츠문화연구소와 체육시민연대가 28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프로야구 승부조작 끝장토론'을 열었다. 왼쪽부터 박동희 기자, 정희준 동아대 교수, 최동호 스포츠평론가, 홍덕기 노던아이오와대 조교수, 박지훈 변호사.

박동희 기자는 최근 일련의 프로야구 승부조작 사태에 대해 “최근 야구 팬들에게 메일을 많이 받는다. 주로 1회에 어떤 선수가 볼넷을 줬다며 승부조작에 가담한 것 같다는 내용”이라며 “팬들은 이처럼 매 순간 의심하게 될 것이다. 야구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린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2012년 박현준과 김성현이 승부조작으로 프로야구계를 발칵 뒤집어 놨지만 이번에는 오히려 규모가 더 커졌다. 이태양과 문우람이 승부조작에 가담한 사실이 밝혀졌고 유창식은 자진 신고를 했다. 하지만 이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 4년 전보다 더 심각해진 승부조작 사태, 악몽은 왜 되풀이 될까

한 번으로도 족할 범죄가 왜 다시 일어나게 됐을까. 전문가들은 다양한 측면에서 그 원인을 분석했다.

박동희 기자와 정희준 동아대 교수는 선수들에게 승부조작이라는 것이 어렸을 때부터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혀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박 기자는 “최근 야구 지도자들 혹은 은퇴한 선수들이 후배들을 비판하고 있는데 그들은 그럴 자격이 없다”며 “고등학교 야구만 보더라도 고의로 경기에 져주는 경우가 많다. 상대 감독과 친해서, 선수들에게 휴식을 주기 위해서라는 등 다양한 이유로 승부조작은 오래 전부터 벌어졌다”고 말했다.

▲ 박동희 기자는 28일 '프로야구 승부조작 끝장토론'에서 "승부조작이 야구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린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희준 교수는 “선수들, 부모들도 승부조작이 있다는 것을 다 알고 있다. 입시와 관련해서 승부조작이 많이 일어나기 때문에 오히려 이를 반기는 경우도 있다”며 “이해력이 떨어지는 초등학교 선수들에게는 ‘나가서 무조건 헛스윙을 해라’, ‘공을 원바운드로 던져라’ 등 구체적인 지시를 내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서로 진학을 도와줄 수 있다고 생각해 오히려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며 “어렸을 때부터 이런 문화를 겪으며 성장한 선수들은 이 행위가 나쁜 것이라고 판단하기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엘리트 체육의 그릇된 선수 육성 시스템 때문이라는 지적도 잇따랐다. 정 교수는 “사회성과 판단력 부족 또한 하나의 원인이다. 중고교 선수들은 어렸을 적부터 운동을 시작해 수업도 잘 들어가지 않아 비선수 친구들도 많지 않다”며 “윤리의식이 낮다기 보다 뭐가 잘못된 것인지 제대로 숙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홍덕기 노던아이오와대 조교수는 “스포츠는 참여하며 재미와 즐거움을 느껴야 하는데, 우리는 대학 입시수단 등으로 입문해서 군대 문화와 비슷한 생활을 하고 1등 지상주의 등을 겪으며 스포츠의 가치를 제대로 교육 받지 못하는 일도 많다”고 강조했다.

▲ 홍덕기 조교수는 28일 토론회에서 승부조작의 재발 방지를 위한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 하나의 문제는 ‘꼬리 자르기식 처벌’이다. 박지훈 변호사는 “몇 년 전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총장을 만났을 때 다시는 이런 일(승부조작)이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며 “승부조작 사태가 재발했지만 KBO 차원에서 책임을 지겠다는 입장은 나온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올 초에 e스포츠에서 승부조작 사건이 터졌다. 대체적인 반응이 우선 최대한 덮자는 것이었다. 그게 힘들면 빨리 잘라내고 가자고 했다”며 “e스포츠를 예로 들었지만 대기업 위주로 운영되는 우리 프로스포츠 특성상 거의 모든 종목이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 KBO 책임감 있는 대처 강조, "모든 것 내려놓고 국민 앞에 무릎 꿇어야"

다양한 대책이 나왔지만 하나같이 입을 모은 것은 KBO와 구단의 책임 있는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정희준 교수는 “미국 조지아대학교는 운동부만 30개가 있을 정도로 스포츠에 관심이 지대한 곳이다. 스카우트 비리가 나왔을 때 총장과 부총장 등 관계자들 모두가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며 “일본프로야구(NPB) 요미우리 자이언츠 다카기 쿄스케는 승부조작도 아니고 자신의 팀 경기에 베팅을 한 것이 밝혀져 구단의 고문과 구단주, 회장이 모두 사임했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해당 선수만 제명하고 아주 강력한 조치를 취한 듯이 행동한다”며 “해당 구단은 전승을 거둬도 중위권 정도를 못 넘도록 하는 등 구단에 대한 제재도 필요하다. KBO의 대처를 잘 지켜봐야 한다. 이번에도 선수를 퇴출하는 데 그친다면 이 사태는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지도부의 책임감 있는 처신을 요구했다.

▲ 정희준 교수는 승부조작 사태와 관련해 KBO의 책임감 있는 행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박지훈 변호사도 “지도부가 책임지지 않는 문화가 문제다. 선수뿐 아니라 구단과 KBO가 함께 책임을 져야 한다”며 “모든 것을 내려놓고 국민 앞에 무릎을 꿇지 않으면 안 된다. 야구 인기가 식을까 억지로 덮으려고 하는데, 그래서는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토론자들은 한결같이 교육 시스템 개선의 중요성에 주목했다. 그 중 하나가 주말리그제의 완전한 정착이다. 박동희 기자는 “현장에서는 반대하는 의견도 있지만 주말리그제가 제대로 자리잡아야 한다”며 “그렇게 된다면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고 이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사고할 수 있는 선수들을 만들어 줄 것”이라고 말했다.

홍덕기 조교수도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재직 중인 노던아이오와대에서는 선수들이 경기로 인해 수업을 빠지면 반드시 보강을 한다. 학교는 지식뿐 아니라 교우관계와 사회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도자에 대한 교육도 필요하다”며 “프로야구에서도 시즌 중이라고 해도 KBO에서 전문가를 통해 구단별 순회교육 등은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라고 대안을 내놓았다.

홍 조교수는 “단기적으로는 책임자 소재를 명확히 해서 강한 처벌로 선례를 남겨야 한다”고 주장했고 박 기자는 “일이 벌어진 것 자체보다 어떻게 마무리를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KBO가 투명하게 일처리를 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 박지훈 변호사는 "승부조작은 법리상으로 보면 사기죄로 갈 수도 있다"며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라도 민사상 고발을 진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지훈 변호사는 “법리상으로 보면 사기죄로 갈 수 도 있다. 시간과 돈을 투자해 경기장을 찾은 팬들, 멋진 경기를 중계하기 위해 거액의 중계권료를 지불한 방송사, 시청자들, 합법적 스포츠토토에 베팅하는 사람들 모두가 피해자”라며 “많은 사람들에게 수많은 손해를 끼친 대단히 큰 범죄행위다. 배상금을 노린다기보다는 경각심을 주는 차원에서라도 민사상 고발을 진행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강경책을 내놓았다.

[취재후기] 급하게 마련된 자리였지만 스포츠에 애정을 지닌 패널들은 현 상황에 안타까움을 나타내며 다양한 생각을 나눴다. 프로야구가 흥행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진정한 야구의 발전을 위해 제 살을 도려내는 고통도 감수하려는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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