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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싱어] (11) 홍삼트리오 홍승현, 그의 기타엔 '한'이 있다 (인터뷰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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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싱어] (11) 홍삼트리오 홍승현, 그의 기타엔 '한'이 있다 (인터뷰Q)
  • 연나경 기자
  • 승인 2016.08.02 09: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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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자 TIP!] 가수 이선희, 이상은, 장윤정의 공통점은 '강변가요제'를 통해 가수로 발돋움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강변가요제'는 1979년부터 사실상 가요계 부흥을 이끈 조상격의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대한민국의 음악 다양성을 넓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 강변 가요제는 포크음악의 부흥기인 1980년 본격적으로 사랑을 받으면서 포크음악의 부흥 역시 이끌었다.

[스포츠Q(큐) 글 연나경 · 사진 최대성 기자] 'MBC FM 강변축제'로 시작된 '강변가요제'의 첫 대상 수상자는 홍삼트리오였다. 대표곡 '기도'로 많은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던 홍삼트리오는 포크음악 부흥의 선봉에 섰다. 지난 28일 홍삼트리오의 멤버인 홍승현과 만나 포크 음악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 기타, 홍승현에겐 외로움을 해소하는 수단이었다

▲ 홍승현은 10남매 중 일곱째로, 외로움을 많이 탔다. 당시 기타는 그의 가장 친한 친구가 돼 줬다. [사진= 홍승현 제공]

홍승현의 형제는 10남매로, 그는 어린 시절 외로움을 품고 있었다. 그런 홍승현에게 군대에서 휴가를 나온 형이 건넨 기타는 그의 좋은 친구가 돼 줬다. 그는 과거 6단까지 승단하고 사범으로도 일했던 태권도와 현재 본업으로 삼고 있는 음악이 "좋아하는 것이 갈길을 정해줬다"고 말했다.

"모든 게 자연스러웠던 것 같아요. 운동을 했었지만, 음악을 하면서 시간이 줄어들어서 음악의 길로 가게 됐죠. 외롭고 쓸쓸할 때 기타를 시작했는데, 자연스럽게 남들 앞에 서게 됐고 노래 시범에도 참여하게 됐어요. 중학교 무렵에는 혼자 노력을 하고, 화성학에 대해 스스로 공부를 하고. 저도 모르게 계이름이 저절로 나오고 하는 것들이 음악의 길로 저를 이끈 거 같아요. 10남매의 일원으로 살면서 가지고 있었던 외로움과 쓸쓸함이 노래에 묻어나온 것도 역할을 했죠."

그런 그가 나갔던 '강변가요제'는 이제껏 홍승현이 경험해 온 무대와는 달랐다. 가수가 될 생각이 없다고 가수가 되지 않는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가수가 된 순간보다 그렇지 않았던 순간에 스스로가 더 열정적이었다고 전했다.

"가족들이 음악적 재능이 있었나 봐요. 형은 전국노래자랑에 단골로 출전해서 준우승을 많이 했고, 막내는 78년도 대학가요제 2회에 '고인돌'이라는 팀으로 동상을 받았어요. 그러다가 셋이 강변가요제에 나가게 됐는데, 어느샌가 그게 직업이 되면서 음악이 가져다 주는 부가 많지 않을 거고, 그 부를 거머쥐는 건 극소수라고 생각했어요. 취미로 할 때가 더 열정적이었어요."

그런 그에게 통기타, 그리고 포크음악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는 기타의 속성을 하나하나 들며 자신이 생각하는 포크음악의 정의를 내렸다.

"기타 속에 밴드가 있다고 생각해요. 굳이 말하면 원맨 밴드 오케스트라? 가장 손쉽게 한 곡, 3~4분의 예술을 기타로 표현할 수 있어요. 기타 하나만으로 여백을 채울 수 있는 게 매력이 아닌가 싶어요. 여섯줄만으로 많은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장점이 있죠. 간단한 악기지만 순수하고, 깊은 울림이 있다고 표현하고 싶어요."

◆ 보는 노래→하는 노래로의 변화, 안타까움 많아

 

포크음악에 부응에 일조한 것은 가요제도 있지만, 그 당시 흥하던 라이브 카페에도 있었다. 하지만 라이브 카페에서의 노래의 형태가 '보는 노래'에서 '하는 노래'로 변화하면서 포크가 제자리에 서지 못하게 됐다. 홍승현은 이 상황에 대해 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통기타 음악은 정서적으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자리를 잡았지만, 편하게 할 수 있는 반주기가 등장하면서 자극적인 음악을 소화하게 되니까 라이브 카페가 없어졌던 것 같아요. 부흥을 이끌었다는 것은 당연하고, 노래방 문화의 발전이 영향이 없진 않았을 거예요."

홍승현이 생각한 것은 '포크가수들의 상황이 왜 이렇게 됐나'였다. 그는 자신을 그 역사의 산 증인이라고 말하며 팬들이 가수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각을 제시했다.

"팬들이 자기 우상을 볼 때 두 가지 시선이 있어요. 존경하는 마음과 내가 그들을 깔아 뭉갰다는 마음. '하는 노래'로 변화하면서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사라졌잖아요, 가수에 대한 신비감도 없었고. 그래서 라이브 카페들이 많이 죽어갔던 것 같고 그렇게 시간이 흘렀어요."

"여러 가지로 지금 많이 변질이 된 상황이에요. 열린음악회에도 많이 출연했고, 콘서트 7080도 여전히 있지만 무대에 서는 사람들이 바뀌고, 횟수도 줄면서 포크가수들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어요. 그런데 이건 방송국과 음악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 가수 모두의 잘못이에요."

홍승현이 거슬러 올라간 지점은 포크음악이 무너졌던 시점이었다. 포크음악은 70년대 태동, 80년대 전성기를 거쳤으나 90년대 댄스음악의 등장으로 가요계 한 켠에만 남아있게 됐다.

"이전이랑 스케일이 달라졌어요. 오디션 프로그램에 기타를 들고 나오는 가수들, 기타 연주를 하는 아티스트들이 나오는 음악 영화 같은 것들, 기가막히잖아요. 흐름을 보면서 지금의 제작자들이 스타를 만들어내는 것에만 치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 사람들은 음악을 편식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포크가수들의 음악은 상대적으로 빈곤하죠. 극명하게 갈린 거죠."

◆ 지금의 가요 시장 꼬집다 "모두의 책임이에요"

 

홍승현은 앞서 댄스 음악의 등장으로 포크 음악이 침체를 겪게 됐다는 말을 했다. 댄스 음악이 부흥하는 과정에서 음반 제작자와 방송 관계자 등이 소홀히 한 책임 부분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서로 너무도 자기중심적이었다는 말이었다.

"일본의 경우는 음악의 다양성을 보존하려는 체계들이 잘 돼 있다고 생각하는데, 우리나라는 우선 문화, 음악 측면의 역사가 짧잖아요. 문화대통령이었던 서태지의 음악이 잘 되고, 온통 그런 음악을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 내보내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포크음악이 도태됐어요. 그 당시에 만약 혼자서만 살아남으려고 하지 않고, 방송에서도 제작자들도 포크음악까지 같이 끌어주는 미덕을 발휘했다면 지금 한국 음악 시장도 일본처럼 갈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그 당시에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혀서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포기한 사람들도 있는 것 같아요."

"쎄시봉의 주목도 같은 맥락인데, 그들만 주목하고 나설 게 아니라 그 이상으로 다른 가수들도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면 더욱 좋았을 거예요. 흐름을 생각하고 조명을 해야죠. 아쉬움이 많아요."

최근 포크 음악은 다양한 모습으로 선보여지고 있다. 가수들이 자신의 음악을 '포크'라고 정의하지 않아도, '포크'의 느낌을 살리고 연주하는 아티스트들이 있으며 그들 역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특출난 스타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만약, 서태지처럼 포크 계에도 스타가 나오면 상황은 달라질까?

"콘서트 7080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콘서트 7080이 포크 음악 부흥기에 덕을 굉장히 많이 봤어요. 그걸 생각했을 때, 포크계에서 스타가 터지면 좋죠. 그런데 빵 터지지는 않을 것 같아요. 만약에 터지면 그 스타를 시작으로 후발주자가 나올 거고, 그 사람들이 포크계를 무너지지 않게 하겠죠. 스타가 터지기 위해서는 결국 포크음악을 하고 있는 우리가 분발을 해서 작업물을 만들어야 해요."

◆ 포크 살리려는 노력? "권위 높여야"

 

대한민국 대중음악 시상식 중 하나인 한국대중음악상은 12회 시상식(2015년)부터 포크 음반·아티스트 분야를 신설해 시상했고, 파주에서는 2011년부터 '파주포크페스티벌'이라는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홍승현은 포크를 살리려는 노력에 대해 호기심을 보이면서도, 인지도가 부족하다는 점에 대해 아쉬워했다.

"포크 음악계 전체를 아우르려면 포크와 관련된 모든 분들에게 알려주고, 그들을 고문이나 원로로 초청해서 하게 되면 권위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지금의 상황은 '그들만의 리그'같고요. 좋은 취지이고, 발전할 수 있는 씨앗이 될 수 있지만 많은 분들이 알면 지금보다 활성화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럼 분명 힘도 생기지 않을까 추측하고요."

"이것도 공존의 한 맥락인데, 활동 당시 함께 했었던 동생들이랑 순회 공연을 기획하고 있어요. 공유를 하면서 발전시키는 데 일원이 되고 싶어요. 혼자 공연하는 것 보다 여러 팀이 함께 조인트 공연을 하면서 공연을 다니는 게 더 낫겠다 싶더라고요."

◆ 홍삼트리오 홍승현 소개

1979년 강변가요제 대상 '기도'로 데뷔
'기도' '어디쯤 가고 있을까' '내 사랑' '순이생각' 등

[취재후기] 홍승현은 과거부터 지금까지의 가요계 상황을 제대로 꼬집고 있었다. 그는 포크에 국한해 현재의 음악 방송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말했으나, 음악 방송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모든 뮤지션의 상황을 대변하는 듯했다. 그 이후로 굳어진 기자의 홍승현에 관한 이미지는 '대변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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