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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자유의 언덕' 문소리의 광폭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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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자유의 언덕' 문소리의 광폭행보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09.22 10: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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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노민규기자] 올해 배우 문소리(40)가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조민수 엄정화와 공연한 영화 ‘관능의 법칙’을 시작으로 단편영화 ‘시계’(한국영상자료원 40주년 기념작 ‘아카이브의 유령들’), 다큐멘터리 영화 ‘만신’에 출연했다. 베니스 국제영화제 오리종티 부문에 초청된 홍상수 감독의 ‘자유의 언덕’(9월4일 개봉)으로 이달 초 베니스를 찾았다.

SBS 예능프로 ‘매직아이’ MC, 부산 국제영화제 개막식 사회자를 꿰찼다. 또 단편 연출작 ‘여배우’가 부산영화제 와이드앵글-단편 쇼케이스 부문, 조감독 참여작 ‘이사’는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부문에 초청받았다.

 

배우, 예능프로 진행자, 감독, 교수(건국대 예술학부 영화전공), 만학도(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연출제작과)로 숨 가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문소리를 북촌과 마주한 팔판동의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났다. 그가 착장한 옅은 브라운색 원피스엔 가을이 성큼 들어와 있었다.

◆ 신인여우상 안겨줬던 베니스 세번째 방문 “소박한 즐거움 만끽”

“조민수 선배가 어느 날인가 그러시더라고요. ‘넌 너무 부지런해! 이거 하고, 저거 하고, 애도 키우고…’. 하하. 아이를 낳고나서 땅을 갈아엎은 느낌이랄까. 재부팅을 제대로 해보고 싶었어요. 현재는 그러는 과정이죠. 좀 이상해요. 출산을 한 뒤 여유로움에 빠져들기보다 더 바짝 긴장하게 됐으니.”

지난 2002년 ‘오아시스’로 베니스영화제 신인여우상을 수상한 이후 ‘바람난 가족’(2003)에 이어 세 번째 베니스 나들이였다. 레드카펫 의상부터 남달랐다. 신체가 훤히 드러나는 화려한 드레스 대신 검은색 긴팔 티셔츠와 베이지색 스커트를 깔끔하게 매치한 수수한 모습으로 눈길을 끌었다. 단정하고 심플한 영화 ‘자유의 언덕’, 수수한 홍 감독과 맞추려는 의도였다. 비 내리는 베니스에서의 며칠은 단촐하지만 나름의 재미를 만끽한 순간이었다. 무엇보다 ‘자유의 언덕’을 본 관객들이 진심 어리고 친근한 반응을 쏟아내 흐뭇했다.

 

영화는 일본 남자 모리(카세 료)가 한국에 체류하던 당시 어학원 동료 강사였던 운명의 여인 권(서영화)를 만나기 위해 북촌의 게스트 하우스에서 묵는 며칠을 담아낸다. 시간이 멈춘 듯한 공간 북촌을 배경으로 과거, 현재, 미래라는 인과관계를 없앴을 때 사람은 어떤 경험을 하게 되는지를 보여준 ‘자유의 언덕’에서 문소리는 카페 여주인 영선 역을 맡아 모리와 특별한 관계를 맺는다.

“보통 홍 감독님이 아침에 그날 촬영분 대사를 주시는데 이번엔 ‘콜’도 아침에 주셨어요. 콜을 받으면 찰영장으로 나가고, 없으면 쉬는 식이었죠. 긴장과 집중이 필요한, 특별한 여행을 한 기분이에요. 촬영할 땐 익사이팅했고, 끝내고나니 꿈같은 여행 영화였죠.”

◆ ‘자유의 언덕’에서 사랑스러운 영선 역 맡으며 연기의 본질 고민

그동안 무겁고 어려운 연기를 해왔다.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영선은 가장 사랑스러운 캐릭터다. 야무지고 똑똑하며 건강하게 살아가는 여자다. 누구나 힘들 때 바보 같이 살 수 있듯 영선도 그렇다. 삶의 가장 공허했던 순간, 모리를 만나 좋은 경험을 하는 영선에게 연민과 애정이 갔다.

“인생이 그렇게 간단치 안잖아요. 타이밍의 문제일 수도 있고. 영선은 따뜻한 사람이에요. 다른 사람을 많이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죠. 그래서 누군가를 만나기도, 헤어지지 못하기도 하는 거겠죠. 모리가 금방 떠나갈 사람이라는 걸 알았겠지만, 복잡한 인생의 무언가를 해결해줬으니 고마워할 거예요.”

 

대사의 90%가 영어인 이 작품에서 영선이 구사하는 ELS 식 영어는 웃음을 자아낸다. 극중 모리와 와인을 마시는 장면에선 긴장과 설렘이 반짝반짝 빛난다. 실제 소주와 와인을 마시며 촬영한 이 장면에서 두 배우의 눈빛은 살아 있다.

“이번 작품에 임하며 연기에 대한 혹독한 고민에 빠져들었어요. ‘나는 누구인가’ ‘어떤 배우인가’ ‘연기가 무엇인가’ ‘어떻게 연기해야 하나’와 같은. 영어 대사를 소화해야 했기에 더욱 그랬어요. 행간의 의미, 강조해야 할 단어, 어투에 캐릭터를 묻혀내야 하는 부분 등 확신이 서지 않으니 불안했고, 연기의 기본에 대해 고민하게 됐죠.”

늘 연기에 집중하려고 하지만 그러지 못할 때도 있다. 함께 연기하는 배우와 호흡이 잘 맞지 않기도 하고, 작품 자체와 어우러지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유의 언덕'은 문소리에게 시간을 생각하게 했고, 과거를 돌아보게 했고, 연기와 영화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그래서 그에게 ‘자유의 언덕’은 남다르다. 특히 맑고 깊은 배우 카세 료, 배울 거 많은 스승과 같은 선배 홍상수 감독은 배우 문소리에게 엄청난 자기장을 행사했다.

◆ ‘매직아이’ 통해 인간 문소리 노출…“연출보다 연기하는 게 더 행복”

SBS 예능프로 ‘매직아이’에서 이효리, 홍진경, 김구라 등과 공동 MC를 맡고 있다. 허투루 이미지 소비하는 법 없이 연기에 ‘올인’하던 강단 있는 여배우의 예능 나들이는 의외였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이쯤에서 한번 해보는 것도 괜찮지 않겠니” 하면서 권유했다. 문소리 역시 자신의 웃는 모습,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 출연을 결정했다.

 

대학에서의 강의와 대학원생으로 단편영화 연출 역시 그가 더욱 성숙해지는 밑거름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한 가족의 이사가기 전날 밤 이야기인 ‘이사’에서는 여배우 류현경을 캐스팅해 현장에서 그야말로 모셨다. ‘여배우’는 여배우 문소리가 산행 이후 막걸리를 한 사발 먹은 뒤 집에 가는 이야기다.

“학생들과는 연기를 가르쳐준다기보다 연기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하는 과정이죠. 제가 어른들로부터 받은 게 많으니 후배들에게 베풀고 가야죠. 일종의 봉사활동이에요.(웃음) 대학원 강의를 들으며 연출을 하게 됐는데 감독이 되려는 건 아니고요. 하던 거나 제대로 해야죠. 정말로 이 이야기는 하고 싶은데 아무도 안하고 그런다면 연출에 나설 수도 있겠으나 아직까진 연기하는 게 훨씬 행복해요.”

◆ “트위터, 페북 노! 관객, 주위사람과 소통하며 나대로 살고파”

문소리를 수식하는 단어 중 하나가 ‘소셜테이너’다. 사회를 향한 목소리를 내는데 주저함이 없고, 한때 민주노동당 당원임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다른 스타 소셜테이너처럼 SNS를 통해 자신의 주의주장을 밝히는데 거침없을 것 같다.

“제가 한 짓(민노당 선거 지원, 광우병 사태, 스크린쿼터 투쟁 등)이 있으니 그런 낙인이 찍힌 거는 감수해야죠. 그렇다고 제가 늘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사람은 아니에요. 작품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고, 열심히 살아가면서 주위 소람들과 좋은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소통하는 데는 최선을 다해도 인간 문소리의 삶을 오픈하고 싶진 않아서 트위터, 페북 같은 것도 안 해요. 이번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영화인들의 동조 단식과 같이 전략적으로 필요할 때 가끔은 하겠으나 문소리의 삶은 문소리대로 살아가고 싶어요.”

 

[취재후기] 차분한 목소리로 할 말을 정확하게 골라 대답했다. 눈을 마주치다가도 잠시 고개를 숙이거나 옥상 너머 북촌을 향해 시선을 꽂았다. 어떨 땐 깃털처럼 한 없이 가볍고, 어떨 땐 천근만근 쇳덩어리처럼 무겁다. 지난 15년 동안 치열하게 살아온 이 배우의 본질에 대한 탐구가 꽤나 묵직하게 느껴졌다. 자유의 언덕으로 난 오솔길을 걷고 있는 그가 언제쯤이면 언덕 정상에 오를까. 궁금해졌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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