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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2016] (24) '트라이애슬론의 김연아' 꿈꾸는 17세 여고생 철인 정혜림, '도쿄'야 기다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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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2016] (24) '트라이애슬론의 김연아' 꿈꾸는 17세 여고생 철인 정혜림, '도쿄'야 기다려라!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6.08.08 0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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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리우 반대편에선...나이 어려 리우행 도전 못해, 4년 뒤 여자 첫 올림픽 출전 꿈꾸며 고비 즐긴다

[200자 Tip!] 리우데자네이루 하계 올림픽이 열전에 들어갔지만 아직까지 국가대표 선수촌에는 구슬땀을 흘리는 선수도 여럿이다. 이 가운데 한국 여자 트라이애슬론의 에이스로 발돋움한 정혜림(17·온양여고)은 리우 올림픽을 TV로 보며 4년 뒤 도쿄 올림피아드에 나설 자신을 상상한다. 아직 올림픽에 나갈 수 있는 나이가 되지 못해 리우에는 초대받지 못한 '여고생 철인'은 한국 트라이애슬론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에 출전하는 여자 선수가 되겠다며 앞으로 4년을 준비하고 있다.

[진천=스포츠Q(큐) 글 박상현·사진 이상민 기자] 정혜림이 처음부터 철인3종이라는 극한 스포츠 트라이애슬론을 한 것은 아니었다. 중학교 2학년이던 2013년까지만 해도 수영 선수였다. 그런데 달리기도 좋아해 운동장을 몇 바퀴씩 돌곤 했다. 이미 초등학교 때부터 육상부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있었지만 마다했다.

▲ 17세 여고생 철인 정혜림은 나이가 어려 리우 올림픽은 도전 기회조차 얻지 못했지만 4년 뒤 독쿄에서 올림피언으로 나서는 상상을 하며 2016년 여름 땀을 쏟고 있다.

그러나 정혜림은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다. 수영 선수일 때는 좀처럼 기량 발전이 이뤄지지 않아 "나는 겨우 여기까지야"라는 생각에 목표없이 그냥 물살만 헤쳤단다. 하지만 어느날 "혜림이는 달리기를 좋아하니 트라이애슬론을 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수영부 감독님의 전향 권유를 받았다.

수영이나 달리기는 해봤지만 사이클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그 처음이라는 것에 매료됐다. 매너리즘에 빠진 그의 눈을 번쩍 뜨게했다. 그리고 겨우 입문 8개월 만인 2014년 9월 인천 아시안게임 트라이애슬론 혼성종목에서 당당히 은메달을 따냈다.

지금은 여자 주니어에서 아시아 톱을 달리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진천선수촌에서 함께 구슬땀을 흘렸던 다른 종목의 언니, 오빠들이 올림픽에 나가는 것을 보며 4년 뒤를 벼르고 있다.

◆  입문 1년만에 아시아 톱, 아시아선수권 여자 주니어 2연패

"2014년 1월 처음 트라이애슬론을 시작했어요. 하지만 진천선수촌에 들어와서 본격적으로 훈련한 것이 5월이었으니 불과 3~4개월 만에 인천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거죠. 그런데 은메달을 땄으니 처음에는 얼떨떨했죠.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땄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어요. 그 다음날 '내가 어제 메달을 딴 것이 정말 맞나'하며 꼬집어봤을 정도였으니까요."

종목을 바꾸고 나서 정혜림처럼 단기간에 최고 반열에 오를 수가 있을까.

겨우 반년 조금 넘는 기간에 아시안게임에서 메달까지 딴 것은 기록이 아닌가 싶다. 물론 정혜림이 수영과 달리기에서 어느 정도 기본기가 다져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사이클은 어렵기만 하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 사이클이 약해요. 많이 힘들죠. 다른 선수들에 비해 부족한 것이 많아요."

▲ 입문 8개월 만에 은메달을 따냈던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사이클을 타는 정혜림. [시진=스포츠Q DB]

그러나 부족한 것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개선과 기량 향상의 여지가 있다는 의미도 된다. 아직 17세에 불과한 정혜림에게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한 셈이다. 게다가 사이클이 아직까지 경쟁자들에 비해 약한데도 불구하고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아시아선수권에서 여자 주니어 2연패를 달성했다. 입문 1년 만에 아시아 톱까지 오른 것이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수영도 많이 늘었고 사이클도 기술이나 힘도 많이 늘어난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아시아선수권에서 2연패를 달성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것보다 세계선수권에서 (주니어) 5위 안에 든 것이 더 기뻤어요. 물론 시니어에 올라가면 제 실력이 어느 정도가 될지 모르지만 같은 나이 또래에서 톱5에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으니까요."

지난해 미국 시카고에서 열렸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주니어 톱5에 든 정혜림은 리우 올림픽 대신 다음달 멕시코에서 열릴 세계선수권에 대비하고 있다. 아직 최소 연령 제한에 걸려 올림픽 출전기회가 없다. 하지만 정혜림에게 세계선수권은 더없이 중요한 무대다.

"이번에도 목표는 톱5이에요. 하지만 지난해보다 순위는 조금 더 올라갔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주니어 마지막 시즌인 2017년에는 색깔에 관계없이 메달을 따고 싶어요. 아직 제 자신이 부족한만큼 조금씩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가고 싶어요."

▲ 아시아선수권 주니어 2연패를 이룬 정혜림은 다음달 세계선수권에 출전해 주니어부에서 톱 5 이상의 도약을 노린다.

◆ 아직은 꿈많은 여고생, 그래도 트라이애슬론할 때가 가장 즐거워요

우리 나이로는 '낭랑 18세'다. 꿈많은 여고생이다. 하지만 진천선수촌에서 훈련을 한 이후 학교에 제대로 가본 적이 없다. 학적은 온양여고에 두고 있지만 충북체고에서 위탁교육을 받는다. 그러다보니 친구를 사귀지 못한 것이 아쉽다.

"친구들이랑 놀러다니는 소소한 재미도 있는데 그것을 못해서 아쉽긴 하죠. 하지만 저는 트라이애슬론을 할 때가 즐거워요. 제가 지금 즐겁게 훈련을 받으면서 흘리는 땀을 나중에 모두 보상받을테니까 지금은 집중만 하고 있어요."

하지만 트라이애슬론 선수로서 따가운 햇볕을 쬐다보니 검어지는 피부는 어쩔 수 없다. 정혜림도 뽀얀 피부가 좋은데 훈련을 받느라 그럴 수가 없다.

"훈련할 때마다 방수 선크림을 바르기도 하지만 자꾸 피부가 타서 속상해요. 외출할 때 좀 예쁘게 꾸미고 싶은데 다리도 타서 반바지도 못입고…. 그래도 너무 뽀얀 아이들을 보면 '내가 그래도 건강하지'라는 우월감은 있는 것 같아요(웃음)."

정혜림은 트라이애슬론을 하면서 보람도 느낀다. 수영 선수로만 활약했을 때는 늘지 않는 기량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그러나 진천선수촌에서는 훈련을 거듭할수록 자신의 기량이 느는 것이 보이니 만족스러울 수밖에 없다. 전문 훈련을 받고 나서 불과 3개월 만에 아시안게임 은메달을 따고 입문 1년 만에 아시아를 제패했으니 그럴만도 하다.

"내가 열심히 한만큼 결과가 나오니까 행복해요. 트라이애슬론을 하는 것 자체가 행복이에요. 아시안게임 은메달을 딸 때는 얼떨떨한 기분이 강했지만 지금은 세계적인 선수로 발전하겠다는 목표로 즐겁게 훈련을 받고 있어요. 지난 2년을 뒤돌아보니 많은 것이 바뀐 것 같아요. 저 자신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은데 주위의 대우가 달라졌어요. 저를 보면서 '대단하다, 자랑스럽다'며 칭찬을 해주시곤 하죠. 그럴 때마다 더욱 힘이 돼요. 트라이애슬론이 즐거울 수밖에 없는 이유죠. 처음에 진천선수촌에 들어왔을 때는 집에 가고 싶었지만 지금은 집 같아요."

▲ 따가운 햇볕 아래 훈련하다보니 검어지는 피부에 속이 상한다는 정혜림. 하지만 트라이애슬론 훈련을 거듭할수록 기량이 느는 것을 확인하기 행복하단다. 천상 철인 기대주다.

◆ 도쿄야 기다려, '트라이애슬론의 김연아'가 될테니

정혜림은 리우 올림픽 얘기가 나오자 살짝 아쉬운 표정을 짓는다. 나이가 차지 않아 올림픽에 나가지 못하는 것이 아쉬워서다. 그런 만큼 2020년 도쿄 올림픽 출전에 대한 열망이 크다.

"앞으로 기회는 많아요. 내년까지 주니어 대회 졸업하고 시니어로 올라가서 세계적인 대회에 출전해 포인트도 많이 따야 하죠. 아직까지는 그럴만한 실력이 안되기 때문에 앞으로 4년은 도쿄 올림픽을 준비하는 기간이 될 것 같아요."

정혜림이 도쿄 올림픽을 욕심내는 것은 아시아선수권 주니어 부문에서 우승할 때마다 언제나 일본에서 경기를 했기 때문에 좋은 인연이 있어서이기도 하다. 도쿄에 가보진 못했지만 도쿄만을 거슬러 올라가는 4년 뒤 자신의 모습을 상상한다.

"진천선수촌에서 함께 훈련했던 언니, 오빠들이 리우로 떠나면서 4년 뒤의 저를 늘 떠올리곤 해요. 하지만 올림픽에 나가려면 지금 잘 해야 하잖아요. 나중은 생각하지 않고 오직 지금에만 충실하려고요. 아직 한국 여자선수가 올림픽 트라이애슬론에 출전한 경험이 없으니 제가 첫 주자가 되어야죠."

'철인 3종'으로 불리는 트라이애슬론은 만만한 종목이 아니다. 수영을 한 뒤 사이클과 달리기가 계속 이어진다. 또 수영을 할 때면 경쟁 선수들과 몸싸움도 비일비재하고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일반 수영장에서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국내에서는 선수층도 얇다. 트라이애슬론이 2000년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된 뒤 2012년에야 허민호가 22세에 남자부에 출전해 54위로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해야 했다. 2006년 도입된 아시아게임에서도 2014년 신설종목인 혼성릴레이에서 15세 정혜림이 그 허민호 등과 호흡을 맞춰 은메달을 따낸 게 최고성적이다. 그래서 기대주 정혜림의 고속성장이 더욱 반가운 한국 트라이애슬론이다.

▲ 15세 막내로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 나선 정혜림이 혼성릴레이 은메달을 따낸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지환, 김규리, 정혜림, 허민호.

"수영에서 사이클, 그리고 사이클에서 달리기로 전환할 때가 가장 힘들어요. 쓰는 근육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호흡이 가빠오죠. 하지만 오히려 이 고비를 넘기고 나면 편안해져요. 종목을 바꿀 때 어떻게 고비를 넘기느냐에 따라 순위가 달라지는 것 같아요. 이를 위해서는 더욱 체력을 키워야할 것 같아요."

정혜림의 워너비는 김연아(26)다. 수영선수로 뛰었을 때부터 김연아를 동경했다. 자신도 '트라이애슬론의 김연아'가 되고 싶다는 꿈이 간절하다.

"연아 언니는 열심히 훈련해서 피겨스케이팅으로 성공했잖아요. 또 많이 번 돈을 봉사활동을 위해 쓰니까 더욱 존경스러워요. 또 피겨를 인기 종목으로 만든 것도 연아 언니잖아요. 저 역시 트라이애슬론으로 성공하고 싶고 봉사활동에도 적극 참여하고 싶어요. 트라이애슬론을 더욱 많이 알리고 싶기도 하고요."

남자들도 하기 힘든 트라이애슬론을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정혜림을 보면 김연아나 손연재처럼 한국을 빛낼 또 다른 유망주로 커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피겨스케이팅하면 김연아, 리듬체조하면 손연재가 떠오르듯 앞으로 몇년 뒤 트라이애슬론하면 정혜림이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 수영에서 사이클, 그리고 사이클에서 달리기로 전환할 때가 가장 힘들다는 정혜림. 호흡이 가빠오는 그 고비를 넘기는 만큼 도약도 빨라진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 정혜림 프로필
△ 생년월일 = 1999년 9월 17일
△ 체격 = 164cm, 48kg
△ 출신학교 = 온양용화중-온양여고
△ 주요 경력
-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여자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 수상 경력
- 2014년 전국소년체육대회 여자부 개인전 2위
- 2014년 백야김좌진장군배 전국O2트라이애슬론대회 여중부 1위
- 2014년 전국트라이애슬론선수권 여중부 1위
- 2014년 창원 두산 어린이 청소년 트라이애슬론대회 여중부 1위
-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트라이애슬론 혼성릴레이 은메달
- 2015년 대구시장배 전국트라이애슬론대회 여자 주니어 1위
- 2015년 국민안전처장관배 송도 트라이애슬론대회 여고부 1위
- 2015년 아시아 트라이애슬론선수권 여자 주니어 금메달, 혼성 팀릴레이 은메달
- 2015년 여수해양스포츠제전 겸 전남도지사배 여수 트라이애슬론대회 혼성 팀릴레이 동메달
- 2015년 전국체육대회 여자부 개인전 금메달, 단체전 은메달
- 2015년 전국트라이애슬론선수권 여자 엘리트 금메달
- 2016년 아시아 트라이애슬론선수권 여자 주니어, 혼성릴레이 금메달
- 2016년 백야김좌진장군배 전국트라이애슬론대회 여고부 금메달
- 2016년 설악 전국트라이애슬론대회 겸 국가대표 선발전 여고부 금메달

 

▲ 집처럼 지내는 진천선수촌에 걸린 캐치프레이즈. 정혜림은 4년 뒤 도쿄만을 거슬러 올라가는 즐거운 상상을 하면서도 '평범한 노력'에 그치지 않고 '트라이애슬론의 김연아'가 되고 싶다는 의지를 보였다.

[취재후기] 취재를 통해 만나본 정혜림은 정말 평범한 여고생이었다. 친구들과 떡볶이 먹으러 다니는 것을 좋아하고 수다 떨기를 좋아하는 그런 학생이었다. 그러나 정혜림은 트라이애슬론을 통해 또 다른 꿈을 향해 달려나가고 있는 중이다. 자신의 꿈을 이뤄내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느끼며 물살을 가르고 뛰고 또 달린다. 아직 한국 트라이애슬론이 세계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땀은 결코 배반하지 않는다는 신념을 갖고 도쿄 올림픽을 바라본다. 정혜림은 'Dreams come true'라는 신념을 갖고 뜨거운 여름보다 더욱 뜨거운 청춘을 불태우고 있다.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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