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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싱어](12) 신현대, 음악하는 돈키호테의 '산' 그리고 '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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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싱어](12) 신현대, 음악하는 돈키호테의 '산' 그리고 '포크'
  • 연나경 기자
  • 승인 2016.08.17 1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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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자 TIP!] 사람은 저마다 인생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것들을 가지고 있다. 그 ‘뗄 수 없는 것’은 사람 자체를 바꾸기도 하고, 인생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예술가들의 경우, 그 ‘뗄 수 없는 것’이 만드는 작품의 영감이 되고,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스포츠Q(큐) 글 연나경 · 사진 최대성 기자] 16년 전, 알래스카 매킨리봉 등정에 성공한 포크가수 신현대에게 기타와 산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였다. 그의 음악인생에서 산은 빠져서는 안됐다. 신현대의 말에 의하면, 산과 음악은 접점이 많았다. 지난 4일, 노원역 근처의 한 카페에서 산과 음악 이야기를 연결하는 신현대를 만났다.

◆ 특이했다고 생각한 기타, 이제는 기타와 산에 오르는 신현대

▲ 신현대 [사진=스포츠Q(큐) 최대성 기자]

신현대가 처음 기타를 접하게 된 계기는 평범했다. 다른 포크가수들이 기타를 잡게 된 계기처럼, 가족들이 가져온 기타를 만나면서였다. 하지만 그는 그 당시 기타 소리를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처음 기타를 접했을 때, 특이하다고 생각하고 이 악기를 다뤄 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형이 빌려 온 악기가 클래식 기타였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악기를 처음 접하고 몰래 만져서 혼나기도 했었는데 결론적으로 악기에 매력을 느껴서 돈을 삼천 원정도 모아 독학을 했죠. 가수가 될 DNA는 가지고 있었던 것 같고, 가족들의 반대에는 개의치 않았어요.”

소년이 어른이 된 뒤에는 기타와 함께 산에 올랐다. 신현대의 생각에 기타는 산과 가장 잘 어울리는 악기였다. 기타를 지고 산으로 올라간 신현대는 ‘돈키호테’를 연상케 했다.

“기타가 전기가 필요한 악기는 아니잖아요, 자연 친화적인 악기라고 생각을 해요. 2007년에 에베레스트 등반을 갔었는데, 노래를 하기 위해 작은 기타를 지고 8300m까지 올라간 적이 있어요. 정상까지 가지는 못했지만, 산에서 노래를 한다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었던 것 같아요.”

산 이야기를 꺼냈던 신현대는 네팔의 현재 풍경과 과거 라이브 카페의 풍경을 연결 지었다. 국내에서 라이브 카페가 흥했던 1960~70년대의 모습이 네팔의 모습과 닮아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한국에서 아날로그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낭만을 볼 수 없다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네팔을 갔을 때, 카트만두에서 우리나라 60~70년도 라이브 카페에서 했던 음악들을 들은 적이 있어요. 거리에서 버스커(busker)들이 연주를 하는 거죠. 경제 수준이 우리나라 60년대 초반 수준이 되는 곳인데, 60~70년대 팝을 연주하고 노래하고 있으니까 그때 생각이 더 많이 나더라고요. 디지털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해서 아날로그 감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노래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겨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 끊임없이 강조했던 ‘자연스러움’, 산과 음악을 관통하다

▲ 신현대 [사진=스포츠Q(큐) 최대성 기자]

신현대의 음악 이야기는 모두 산으로 귀결됐고, ‘자연스러움’이 이야기 전체를 관통했다. 그 결과 그의 산과 관련한 모든 행보는 적극적이었다. 2장의 산 앨범과 그가 준비 중인 세 번째 산 앨범이 증거였다.

“산하고 제 음악하고 반대일 것이라 생각하는데, 아니에요. 음악도 내가 만드는 것, 산도 내가 (길을) 개척해서 올라가는 것이기 때문에 연결고리는 확실하죠. 산과 관련해 내 음악으로 재능기부를 한 적도 있어요. 설악산 케이블카 반대 운동을 하는데, ‘산양의 노래’를 만들어 전해 줬거든요. 광화문에서 시위할 때 그 노래를 한 번 불러줬었는데, 음반과 음원으로 남기고 싶다고 해서 도움을 줬어요.”

신현대에게 산, 그리고 음악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하는 것’이었다. 생계의 수단이었지만, 그 이상의 의미가 더 컸으며, ‘마음공부’를 돕는 매개체였다. 자연스러움도 강조됐고, 이는 곧 포크음악의 매력으로 연결됐다.

“지나치게 꾸미는 것은 별로예요, 자연스러운 게 최고죠. 전에 매일 3000m 고개를 하나씩 넘으면서 인공적으로 꾸미지 않은 것을 보고 감탄을 했던 적이 있어요. 그거랑 연결해서 생각했을 때 나를 감탄하게 하고, 상대방 가슴에 종소리를 울리면 노래를 잘한다고 생각했어요. 진행이나 기교가 좋더라도 깊이나 자연스러운 게 없으면 마음을 움직일 수 없어요.”

“저는 작사 작곡을 할 때, 구음으로 흥얼대다가 자리가 잡히면 곡을 써 내려가는 편이에요. 멜로디와 가사 모두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억지로 하는 건 부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어요. 포크음악은 노래하는 사람들의 인성이 스며든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하는 포크 음악 속에는 사람의 인생이 들어가 있고, 자연이 들어가 있어요.”

◆ 신현대의 조언 “투자는 필수적”

▲ 신현대 [사진=스포츠Q(큐) 최대성 기자]

신현대는 현재 싱어송라이터협회의 수석부회장으로, ‘포크 음악’과 가장 맞닿아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포크 음악의 전성기와 융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LP의 재등장과 자연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시간이 걸렸지만, LP를 찍는 시대도 왔어요. 포크음악의 전성기 역시 찾아오지 않을까요. 앞서 가는 사람들의 행보가 뒷사람들에게는 거름이 될 거고, 뒷사람들은 꽃이 될 거예요. 나를 위해 누군가가 고생을 하고, 내가 누군가를 위해 고생을 한다면 포크음악의 전성기는 올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이어 ‘포크페스티벌’ 등 포크와 관련된 행사들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개최되는 포크페스티벌의 대다수는 짧은 무대만을 보여줄 수 있는 형태를 하고 있으며, 한국대중음악상이 다루는 포크의 범위는 한정적이다. 신현대는 두 행사의 취지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반응이었으나, ‘보이는 음악’에 대해서는 단호함을 드러냈다.

“한국대중음악상에 포크분야가 신설됐다는 것도 알고 있는데, 그것 역시 개인적으로는 일부분의 포크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사람들의 몇몇의 추천만 받아서는 안된다고 봐요. 그래서 싱어송라이터협회에서 포크 페스티벌이나 포크의 융성을 가져올 수 있는 행사들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 자리를 만들어 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해서 지금 수년째 개최되고 있는 포크페스티벌에 대한 생각이 나쁘다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보이는 음악’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에요. 대표곡 한두 곡을 하기보다, 페스티벌이라도 단독공연처럼 그 사람의 깊이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그런 무대가 이전 우리의 무대들처럼 스스럼이 없었으면 해요. 무대를 준비하는 것이 ‘상품’도, ‘보이는 음악’도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신현대의 조언은 후배들에게도 이어졌다. 조언에는 그의 인생이 묻어났다. 또한 산으로 여행을 다니는 이유와 결부됐다. 그의 조언은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그 자체였다.

“노래하는 친구들 중에 고민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후배들이 고민 상담을 해 오면, ‘네 가슴속에서 원하면 아무 생각 없이 가라. 이 길이 너에게 물질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만들더라도, 다른 게 분명히 있을 거다’라고 말해요. 그리고 산 이야기를 하면서 ‘목숨 걸고 치열하게 살아본 적 있느냐’고 물어요, 그리고 ‘해보고 얘기하라’고 하죠. 저런 이야기들이 사실 다 배가 불러서 나오는 이야기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안테나’가 깨어 있다면, 분명 좋은 게 나올거예요.”

◆ 신현대 소개

1988년 노래 '난 바람, 넌 눈물'로 데뷔

'저 산 넘어' '산행가' '한계령' 등 대표곡

[취재후기] 신현대는 올 가을 문래동에서 옥상 콘서트를 계획하고 있으며, 또 한 번 네팔 지진 어린이 돕기 공연을 계획 중이다. 신현대는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음악’과 ‘산’이라는 재산을 얻은 듯 했고, 누구에게나 당당하게 그것들을 자신의 재산이라고 말할 수 있는 듯 보였다. 삶과 바로바로 연결할 수 있는 재산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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