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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욕망에 눈 뜬 남자, '마담 뺑덕' 정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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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욕망에 눈 뜬 남자, '마담 뺑덕' 정우성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09.26 1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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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노민규기자] 20대 시절 청춘의 아이콘이었다. 40대에 접어든 그에게서 희고 빳빳한 드레스셔츠의 촉감이 느껴진다.

배우 정우성(41)이 야해지고 독해졌다. 그의 신작 ‘마담 뺑덕’(10월2일 개봉)은 고전 ‘심청전’의 효의 텍스트를 욕망의 텍스트로 비튼 치정 멜로다. 쾌락과 욕망에 탐닉하는 대학 국문과 교수 심학규, 학규로 인해 소도시의 순진한 처녀에서 집착과 복수의 악녀로 변모하는 덕이(이솜), 자살한 어머니 때문에 아버지를 증오하다가 학규와 덕이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하는 딸 청이(박소영)의 이야기다.

하얀 벚꽃 비가 내리는 봄날, 캐리어를 끌고 지방 소도시에 도착한 정우성의 모습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중년의 여유, 중후함이 흩날리는 그 모습 그대로 삼청동의 인터뷰 장소에 나타났다.

 

◆ 쾌락과 욕망에 탐닉하는 심학규로 재탄생

“매력적인 시나리오였다. 학규는 술, 담배, 도박, 여자에 빠져 지내고 새로운 자극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인물이다. 욕망의 화신이며 본능에 철저한 사람이다. 어떤 면에선 한심하고 미워서 이걸 할 수 있겠나 싶었다. 학규의 그런 부분을 좀 덜어내고, 다른 부분을 강화한다면 재밌는 학규를 만들어낼 수 있겠구나 싶었다. 임필성 감독에게 요구했고, 수용해줬다.”

주어진 대로 연기만 하는 배우의 영역에 머무르진 않았다. 수술을 마친 덕이를 여관방에 놓고 나올 때 죄책감을 떨쳐내기 위해 떡볶이와 만두를 사다놓는 설정 대신 학규가 서울로 떠난 뒤 홀로 만두를 우걱우걱 먹어대는 덕이를 통해 측은함을 상승시켰다.

시력이 점점 희미해지는 질병을 의사로부터 통보받을 때 놀라는 설정 대신 “섹스는 할 수 있나요?”란 대사를 치게 한 것도 그의 생각이었다. 힘든 상황과 부딪혀 싸우며 그 와중에도 욕망에 몰두하는 사람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육체뿐만이 아니라 경제적 파산으로까지 추락하는 처지에서도 고귀한척 품위를 유지하려는 학규의 모습도 정우성의 직관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촬영을 앞두고 시각장애인협회 관계자들 인터뷰를 통해 눈동자 위치가 달라지는 디테일한 부분을 잡아내 연기했다.

 

“도전하는 요소가 있는 시나리오에 끌린다. 모든 캐릭터가 내게는 도전이다. 관객에게 보여줄 확신이 들면 작품을 선택한다. 학규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타협하지 말고 치열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 이솜과의 격정적 베드신 '감정' 전달에 주력

전작인 범죄 액션영화 ‘신의 한수’에선 남자배우들과 작업했다면 이번엔 새까만 후배 여배우들과 호흡을 맞췄다. 스크린 속 정우성은 연인 역 이솜, 사춘기 딸 역 박소영과 무난하게 어우러진다.

“이솜은 근성을 타고났다. 20대 초반 여배우로서 고민이 많았을 캐릭터인데 잘 만들어내는 걸 보고 기특했다. 촬영 내내 복잡한 심경이었을 거다. 굳건히 잘 이겨냈다. 우리 영화계의 소중한 자산이다. 소영이는 똑똑하고 테크닉이 아주 좋다. 신체연기가 아직은 자유롭지 못하나 힘 있는 연기를 해냈다.”

특히 신인 이솜과 극중 8년의 시간을 두고 사랑과 증오의 롤러코스터를 탄다. 정우성에 따르면 학규에게 덕이는 유혹이자 불장난이었다. 죄책감, 애증이 혼재하는 관계가 흥미로웠다. 많은 이들이 호기심을 가동할 베드신은 격정적이었다. 상상 이상으로 노출이나 성애의 수위는 셌다.

 

“베드신 촬영에 들어가기 전 솜이를 세트장 밖으로 데리고 나와 ‘괜찮아’ 하고 위로해줬다. 베드신을 할 때는 망가져가는 학규의 감정을 딜리버리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노출을 위해 몸 관리를 따로 하진 않았다. 행위가 센데 근육까지 나와 있으면 본질에 접근하는데 방해가 될 것 같았다. 운동을 하지 않으니 몸무게가 늘더라. 그런 상태에서 촬영에 임했다. 학규의 심정을 더 세게, 끝까지 밀어붙이면서 시각적, 심리적으로 표출하자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 20대 청춘 아이콘에서 배우 감독 제작자로 폭넓은 변신

20대 청춘 아이콘의 등장을 알린 영화 ‘비트’ 이후 젠틀 가이로 이미지를 구축했던 그가 지난해 ‘감시자들’의 킬러에 이어 나쁜 남자로 출연했다. 과거와 달라진 점이다.

“‘비트’는 내가 선택했다기 보다 주어진 아이콘이었다. 좋은 캐릭터는 그 자체로 강건하기에 결이 단순하다. 반면 나쁜 역은 자기합리화를 해야 하므로 표현의 결이 여러 겹으로 쌓인다. 그런 면에서 표현의 재미는 악역이 더 크다. 거기서 오는 쾌감이 만만치 않다. 내가 젊었다면 ‘마담 뺑덕’을 이해하지 못했을 거다. ‘덕이와 청이 스토리 아니야?’ 했겠지. 여백 사이에 학규가 채워야할 게 보이니까 지금 나이 대에 한 게 적절했다. 30대의 나라면 나를 더 잘 보이게 하는데 치중했을 것 같다.”

서울노인영화제 출품작인 단편영화 ‘킬러 앞에 노인’의 각본과 연출을 맡아 감독 데뷔했다. 자신의 아버지를 죽여달라는 제안을 뿌리치는 킬러 이야기다. 여배우 김하늘과 함께 주연한 ‘나를 잊지 말아요’는 제작까지 맡았다. 장편영화 한 편은 시나리오 2고 작업까지 마친 상태다.

 

“배우 활동이 연출과 제작에 도움이 된다. 감독이나 제작자의 장점은 내가 늘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협화음을 조정할 수 있고, 폭넓게 케어할 수 있어서 좋다. 두 번째 영화 시나리오는 사랑 이야기다. 사랑이 남긴 상처의 기억을 쫓아가는, 사랑의 아픔과 정면충돌하는 이야기다. 투자자들이 좋아할 만한 시나리오는 아니지만 늘 새로운 거에 신나하고 즐긴다. 보통 액션, 멜로 등 전에 했던 것을 반복 생산하는데 어떻게 새롭게 풀고, 그 새로움을 잘 전달할까가 관건이다. 완전히 다르면 이질감을 느낄 테니.”

◆ “내게 배우 심은하와 이정재는?”

신작의 여주인공 캐스팅으로 ‘본 투 킬’에서 호흡을 맞추고 절친한 사이였던 여배우 심은하는 어떠냐고 묻자 “그러기에 은하는 너무 멀리 가버렸다”며 씩 웃는다. 동갑내기 베스트 프렌드이자 동료 이정재와 20대 청춘스타 시절을 거쳐 중년의 나이로 접어든 현재 맹렬하게 활동하고 있다.

“정재도 나도 서로를 끌어당겨준다. 자극도 되고. 정재를 만나면 영화 얘기, 연기 얘기만 한다. 내 곁에 누구를 두느냐도 내 일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더라. 내가 ‘하녀’를 봤을 때 ‘어? 이런 거 했네. 내가 해야 하는데 아깝다’ 그랬듯이 정재도 ‘마담 뺑덕’을 보면 똑같은 반응을 내놓을 거다. 하하.”

정우성은 20년 전 배우인생의 서막을 ‘구미호’로 열었다면 ‘마담 뺑덕’은 향후 20년 연기인생의 서막을 올리는 작품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취재후기] 지독한 사랑 영화를 찍은 정우성에게 흔한 질문 하나를 꺼내 들었다. 사랑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면? 단 1초의 주저함도 없이 “받아들임”이라고 짧게 대답했다. 상대방의 모습을 온전히 수용하는 것이라고. 심학규는 욕망으로 인해 눈이 멀었지만, 배우 정우성은 건강한 욕망으로 눈을 크게 뜬 것만 같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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