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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추홀에 울려퍼진 '대담한 막내'들의 희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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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추홀에 울려퍼진 '대담한 막내'들의 희망가
  • 이세영 기자
  • 승인 2014.09.26 12: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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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아시안게임을 빛낸 각 종목 막내들의 활약

[스포츠Q 이세영 기자] 한국 스포츠의 오랜 병폐 가운데 하나가 선후배의 위계질서가 너무 엄격하다는 것이다. 막내가 튀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고 선배들보다 좋은 성적을 내는 것도 눈치 보였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세대가 바뀌었고 막내들도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이들은 거침없는 힘을 발산하는가 하면 때로는 막내답지 않은 침착함을 보이며 선배들을 놀라게 한다. 이번 대회에서 막내들의 활약은 한국 스포츠의 달라진 풍토를 반영했다.

또 막내들의 선전은 2년 앞으로 다가온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과 2018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선수단의 기대를 불러 모으기에 충분했다.

◆ 사격 삼남매, 당찬 총성으로 '금빛 합창'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사격 대표팀 막내 선수들의 활약이 돋보였다. 이들은 단체전뿐만 아니라 개인전에서도 팀 선배들을 앞서며 위용을 과시했다.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 7개를 딴 한국 사격은 중국의 독주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국가임을 입증했다.

사격 대표팀의 막내들인 김청용(17·청주 흥덕고)과 김장미(22·우리은행), 김준홍(24·KB국민은행)은 막내답지 않은 대담한 경기 운영으로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김청용은 한국 선수단의 인천 아시안게임 첫 2관왕과 사격 최연소 금메달리스트 기록을 동시에 세우며 주목받았다. 김청용은 진종오(35·KT), 이대명(26·KB국민은행)과 함께 출전한 10m 공기권총 단체전에서 585점을 쏘며 한국 선수 중 가장 높은 점수를 획득했다. 김청용의 활약으로 한국은 이 종목에서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개인전에서도 201.2점 올린 김청용은 중국 팡웨이를 제치고 한국 선수단 첫 2관왕의 주인공이 됐다.

▲ 17세 고교생 총잡이 김청용이 21일 인천 옥련국제사격장에서 열린 인천 아시안게임 사격 남자 10m 공기권총 단체전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사진=스포츠Q DB]

사격 입문 3년만에 태극마크를 단 김청용은 집중력이 탁월하고 대범함까지 갖춰 진종오의 대를 이어 한국 사격을 이끌어갈 선두주자로 꼽힌다.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딴 뒤 김청용은 “(진)종오형과 함께 결선에 올라가지 못했다면 이런 결과는 없었을 것”이라며 “옆에서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 큰 힘이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출중한 실력에 겸손함까지 갖춘 김청용이다.

런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김장미도 25m 권총 대표팀의 막내지만 팀내 성적이 가장 좋다. 이정은(27·KB국민은행), 곽정혜(28·IBK기업은행)와 함께 여자 25m 권총 단체전에 출전한 김장미는 자신의 강점인 속사에서 높은 점수를 올리며 금메달에 기여했다. 한국은 중국에 1점 앞선 1748점으로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김장미는 팀내 에이스기 때문에 어깨가 올라갈 법도 하지만 팀워크가 무너질 수 있다는 이유로 무리하게 튀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김장미는 “언니들과 서로 친하게 지내고 있지만 개인의 활동으로 단체에 피해가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의젓하게 말했다.

김준홍 역시 한국에 24년만의 25m 속사권총 단체전 금메달을 안기는 등 막내로서 맹활약 했다.

그는 장대규(38·KB국민은행), 송종호(24·상무)와 함께 출전한 단체전에서 581점을 쏴 형들을 든든하게 받쳤다. 김준홍의 선전에 한국은 1747점으로 중국을 1점차로 제치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어진 개인전 결선에서는 자신보다 단체전 개인 점수가 높았던 형들보다 더 좋은 경기를 펼쳤다.

총 6명이 겨루는 결선에 4위로 진출한 김준홍은 형들이 한발씩 쏴 최하위 한 명을 떨어뜨리는 2차 경쟁에서 나란히 탈락했음에도 불구하고 혼자 끝까지 살아남아 중국 선수 3명과 상대했다.

이때부터 김준홍의 대담함이 빛을 발했다. 두 번째 발까지 후하오제와 19점으로 공동 2위였던 김준홍은 세 번째 발에서 5점 만점을 쏘며 24점으로 단숨에 선두로 올라섰고 리유에홍이 22점으로 떨어졌다.

이어 네 번째 발에서는 2점을 쏘는데 그친 후하오제가 떨어져 김준홍은 28-27로 장지안에 근소하게 앞선 상태에서 마지막 발을 발사했다.

마지막 발은 3점. 하지만 장지안 역시 3점을 맞혔고 김준홍의 극적인 우승으로 경기가 마무리됐다. 강심장 김준홍의 실력이 십분 발휘된 경기였다.

◆ 펜싱·유도·체조 등 효자종목에서 금메달 이끈 막내들

펜싱과 유도, 체조, 승마 등 다른 종목에서도 막내 선수들이 두각을 드러내며 메달 획득에 앞장섰다.

펜싱 여자 사브르 단체전 결승에서 한국에 금메달을 안겼던 윤지수(21·동의대)도 막내다. 윤지수의 아버지는 선수시절 100완투를 기록했던 윤학길(53) 전 롯데 자이언츠 2군 감독이다. 윤지수는 아버지처럼 운동에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

그는 양운중학교 시절 처음으로 칼을 잡았다. 그런데 학교에 남자 펜싱팀 밖에 없어 윤지수는 아버지 윤학길과 함께 교장에게 가서 여자 펜싱팀을 개설해 줄 것을 부탁했다. 윤지수의 열정에 교장도 두 손을 들며 여자 펜싱부를 창단시켰다. 보통내기가 아니다.

이번 대회에서 김지연(26·익산시청), 이라진(24·인천중구청)과 함께 사브르 단체전에 출전한 윤지수는 막내다운 당찬 공격으로 중국의 아시안게임 4연패를 좌절시켰다. 그는 처음으로 나선 3라운드에서는 2-5로 밀렸지만 두 번째와 세 번째 경기에서 8-5, 5-4 승리를 거두며 한국이 45-41로 이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규원(25·용인대)은 적지 않은 나이지만 팀내에서 엄연한 막내였다. 그는 23일 유도 남자 단체전 때 예선전에서는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지만 준결승과 결승에서 모두 한판을 따내며 존재감을 높였다.

준결승에서 몽골 선수를 한판으로 제압한 이규원은 카자흐스탄과 결승에서 네 번째 선수로 나섰다. 한국이 2-1 역전을 시켜놓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규원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다. 이규원이 이긴다면 금메달이 확정되지만 진다면 분위기가 넘어가 재역전패를 당할 위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요한 경기였기 때문에 어깨가 무거울 법도 했지만 이규원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며 상대를 제압했다. 그는 티무르 보라트를 업어치기 한판으로 물리치고 한국에 금메달을 선사했다.

기계체조에서도 대표팀 막내 선수들이 일취월장한 기량을 선보이며 메달을 획득,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심어 줬다.

박민수(20·한양대)와 윤나래(17·대구체고)가 나란히 동메달을 획득하며 2년 뒤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과 2018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에서 선전을 예고했다.

박민수는 24일 열린 남자 안마 결선에서 난도 5.800점, 실시점수 8.900점, 합계 14.700점을 받아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2006년 도하 대회에서 김수면이 금메달을 딴 이후 8년만에 아시안게임 안마에서 한국 선수단에 메달을 안긴 박민수는 사흘 전에 치른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딴 데 이어 개인 두 번째 메달을 거머쥐었다.

윤나래는 이튿날 열린 여자 마루 결선에서 13.700점으로 야오진난, 샹춘송(이상 중국)에 이어 3위에 올라 동메달을 차지했다.

그는 난도 5.600점짜리 연기를 펼쳐 실시 8.100점을 더해 13.700점으로 13.966점을 받은 야오진난, 13.800점을 받은 샹춘송에 이어 3위에 이름을 올렸다.

▲ 박민수가 23일 인천 남동체육관에서 열린 인천 아시안게임 체조 남자 개인종합 결승에서 힘찬 안마 연기를 펼치고 있다. [사진=스포츠Q DB]

이밖에 마장마술 정유연(18·청담고)과 사이클 손제용(20·한국체대)도 막내로서 팀에 큰 공헌을 했다.

정유연은 20일 열린 승마 마장마술 단체전에서 김균섭(33·인천시체육회)에 이은 두 번째 주자로 나서 합계 69.658%를 기록, 승부를 뒤집는 데 앞장섰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 측근인 정윤회씨의 딸로 훈련 과정에서 특혜 의혹을 받았지만 성적으로 모든 논란을 잠재웠다.

정유연의 뒤를 이어 김동선(25·갤러리아)과 황영식(23·세마대)이 나란히 선전한 한국은 1998년 방콕 대회 이후 5회 연속 금메달을 따내는 위업을 달성했다.

손제용은 남자 사이클 단체 스프린트에서 강동진(27·울산시청)과 임채빈(23·상무)과 함께 출전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사이클 단체 스프린트는 3명의 선수가 동시에 출발해 가장 좋은 선수의 기록으로 순위를 정하는데 한국은 333.33m의 트랙 세 바퀴를 59초616으로 통과하며 59초960에 그친 중국에 앞섰다.

손제용은 “결승선을 통과할 때 아무 생각이 안 들었다. 경기 도중에 다쳐서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고 그저 내 할일만 했다. 나머지는 형들이 다 알아서 해줄 것이라 믿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syl015@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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