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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본색] (24) '범죄의 여왕' 이요섭 감독, '족구왕' 이은 '광화문 시네마'의 3번 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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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본색] (24) '범죄의 여왕' 이요섭 감독, '족구왕' 이은 '광화문 시네마'의 3번 타자
  • 원호성 기자
  • 승인 2016.08.24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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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자 Tip!] '범죄의 여왕',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영화가 8월 25일 극장을 통해 관객들과 만남을 가진다. 게다가 이 영화, 요즘 한국영화 좀 챙겨본다는 사람이라면 한 번 이름이라도 들어봤을 '광화문 시네마'가 '족구왕'에 이어 2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다. 이 영화, 벌써부터 '장르'의 냄새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스포츠Q 글 원호성·사진 최대성 기자] 2014년 개봉한 저예산 독립 장편영화 '족구왕'은 그야말로 한국영화계를 발칵 뒤집었다. '복학생'과 '족구'라는 너무나 평범해서 영화에 쓸 생각도 감히 나지 않는 소재를 가지고 현재를 살아가는 20대 청춘들의 이야기를 진솔하면서도 코믹하게 그려내며 주목을 받았다.

'족구왕'이 독립 장편영화로서 거둔 성과도 충분히 놀랍고 주목받을 가치가 있었지만, 사실 '족구왕'이 더욱 주목받은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바로 '족구왕'이라는 영화를 만든 '광화문 시네마'의 존재가 그것이다. '광화문 시네마'는 영상원 출신의 일곱 명이 모여서 만든 독립영화 제작집단으로 이미 자본의 논리가 상당 부분 잠식해 들어가는 한국영화계에 새로운 활력소로 자리잡고 있다.

8월 25일 개봉하는 이요섭 감독의 장편 데뷔작 '범죄의 여왕'은 '광화문 시네마'가 세 번째로 관객들에게 선보이는 작품이다. 최근 김혜수, 마동석 주연의 '굿바이 싱글'로 상업영화 신고식을 성공적으로 마친 김태곤 감독의 '1999, 면회'와 안재홍이라는 걸출한 스타를 부각시킨 우문기 감독의 '족구왕'에 이은 '광화문 시네마'의 3번 타자, 즉 클린업 트리오의 시작이다.

▲ 영화 '범죄의 여왕' 이요섭 감독 [사진 = 스포츠Q 최대성 기자]

◆ 제목부터 흥미로운 '범죄의 여왕', 장르의 세계를 엿보다

8월 25일 개봉하는 '범죄의 여왕'은 포스터와 줄거리만 봐도 뭔가 범상치 않은 영화일 것이라는 기대감이 꿈틀거린다. 낡은 아파트 풍경 사이로 레드카펫이 깔린 기묘한 티저 포스터부터, 박지영이 두 손을 허리에 얹고 복도 한 가운데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메인 포스터까지 도대체 이 영화의 정체가 무엇인지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한다.

이야기 역시 남다르다. 신림동 고시촌에서 사법고시 준비를 하던 아들에게 수도요금이 120만 원이 나왔다는 말에 화들짝 놀라 수도요금의 진실을 밝히려는 어머니의 이야기. 게다가 이 어머니는 지방에서 눈썹문신과 보톡스 등 일명 '야매' 미용시술을 하는 독특한 캐릭터란다. 야매 미용사와 신림동 고시촌의 고시생들. 그리고 수도요금 120만 원. '범죄의 여왕'은 이 기묘한 조합들을 가지고 장르의 냄새를 폴폴 풍기기 시작한다.

'범죄의 여왕'을 연출한 이요섭 감독은 2013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부천초이스 단편 부문과 미쟝센단편영화제에 초청된 단편 '더티 혜리'를 연출하기도 했다. 제목을 보면 알겠지만 '더티 혜리'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주연을 맡은 '더티 해리' 시리즈를 모티브로 해서 여고생들의 이야기로 풀어내는 독특한 발상이 돋보인다. 그리고 이런 이요섭 감독의 독특한 발상은 첫 장편 '범죄의 여왕'으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6년 전 정도에 굉장히 오래된 주상복합에 살았는데 당시 제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세 달 정도 집을 비웠더니 수도요금이 50만원 이상 나왔어요. 그래서 어머니가 같이 가서 이야기해 보자고 하셔서 관리사무소에 갔죠. 당시 관리인이 '범죄의 여왕'에 나오는 관리인처럼 조폭 비슷한 사람들이었는데, 어머니가 저보고 5분만 있다가 들어오라고 하셔서 5분 후에 들어가니 어머니가 그 사람들이랑 커피를 드시고 계시더라고요. 그때 어머니의 다른 면을 봤고, 그 이야기를 영화에 녹여 봤어요."

"'범죄의 여왕'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장르에 접근한다기보다, 장르적이지 않은 인물을 장르적인 상황 속으로 밀어넣으면서 이야기가 시작돼요. 하드 보일드한 장르의 세계가 있다면 그 세계에 직접 뛰어드는 대신 그 세계를 엿보면서 만들어 간다고 할까요?"

▲ 영화 '범죄의 여왕' 이요섭 감독 [사진 = 스포츠Q 최대성 기자]

'범죄의 여왕'을 굳이 장르로 설명하자면 느와르 영화에 가깝다. 하지만 보통의 느와르 영화와는 다르게 '범죄의 여왕'에는 마피아나 형사가 등장하지 않고 고시생들과 고시촌을 관리하는 의문의 어깨들, 그리고 야매 미용사를 하고 있는 열혈 어머니가 대신 등장한다. 분명 풍기는 분위기는 장르지만, 어딘지 모르게 장르적이지 않은 영화. 굳이 말하자면 '범죄의 여왕'은 신림동 고시촌의 이면을 그려낸 '느와르 영화'이지만, 정확하게는 '일상 느와르'라 부를 수 있다.

"제 주변에는 고시를 준비하는 친구가 없지만 자료를 조사하다 보니 고시를 준비하는 것이 영화를 준비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공부를 한다는 이유로 주변 사람들도 안 만나고 자기만의 세계에 틀어박혀 지내고, 일상에서 어떤 일이 생겨도 미뤄 놓고. 그런데 이게 또 고시제도의 아이러니이기도 해요. 사법고시를 준비한다는 것은 결국 판검사나 변호사를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사회의 정의구현에 관여하는 일인데, 정작 고시생들은 자신의 옆에서 살인사건이 터져도 내가 공부를 해야 하니 쉽게 외면해 버려요. 이런 고시제도의 아이러니도 담아내고 싶었죠."

'범죄의 여왕'이라는 제목은 '1999, 면회'와 '굿바이 싱글'을 연출한 김태곤 감독의 조언에서 나왔다. 단편 '더티 혜리'가 영화 '더티 해리'의 이미지에서 시작된 것처럼 이요섭 감독은 원래 영화의 제목을 정하고 시나리오를 시작하는 성격이지만, 이번만큼은 정말 제목이 떠오르지 않아 먼저 시나리오부터 시작했었다고.

"'범죄의 여왕'은 결국 어머니에 대한 영화이기도 한데, 그 특성을 살리는 제목을 짓기가 쉽지 않았어요. 근데 김태곤 감독과 부산 여행을 가서 달맞이 고개의 추리문학관을 갔는데, 그 곳에서 김태곤 감독이 '범죄의 여왕'이라는 제목을 제안했죠. 아가사 크리스티가 '추리소설의 여왕'이기도 하고, 또 의외로 '범죄의 여왕'이라는 제목이 흔할 줄 알았는데 같은 제목이 없더라고요."

▲ 영화 '범죄의 여왕' 박지영

◆ '난방열사' 김부선 대신 박지영을 선택한 이유는?

'범죄의 여왕'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역시 야매 미용사이자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아들 익수(김대현 분)를 끔찍하게 아끼는 어머니 '미경'이다. 그녀 자신도 '야매 미용사'라는 어찌보면 당당하지 못한 직업이지만, 120만 원이라는 수도요금을 받아들자 부들부들 떨며 그릇된 수도요금을 바로잡기 위해 투쟁에 나서는 이율배반적인 면을 간직한 인물이다.

"야매로 눈썹문신해 주고 보톡스 주사 놓고 하는 미경의 행동은 불법이지만, 미경은 그것이 불법이라고는 생각을 안 하는 인물이죠. 오히려 나로 인해 시골 아줌마들이 저렴한 가격에 미용시술을 받으니 오히려 이득아니냐고 생각해요. 미경이라는 인물의 이런 이율배반적인 면을 통해 저는 '자기만의 선과 정의'가 있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야매 미용시술은 괜찮지만, 120만 원의 수도요금은 참을 수가 없는 거죠."

고시공부를 하는 장성한 아들을 둔 40대 여인, 그러면서 동시에 평범한 아줌마가 아닌 위험한 냄새를 풍기는 팜므파탈적인 요소까지 갖추고 있어야 하는 여인. 이요섭 감독은 캐스팅이 쉽지 않은 '미경'이라는 역할에 박지영 배우를 선택했다.

"40대 중후반의 나이지만 실제 나이보다 젊어 보이면서 한 작품을 이끌어 나갈 역량이 되는 배우가 필요했어요. 그래서 박지영 선배를 선택했죠. 개인적으로는 박지영 선배는 TV드라마보다도 영화 '후궁'과 '하녀'에서의 이미지가 더 강했어요. 강한 여자. 얼마든지 악한 선택도 할 수 있는 여자."

"처음 박지영 선배를 만날 때는 강한 여자라는 편견을 가지고 만났는데, 만나보니 제가 생각한 이미지와는 너무나 다르더라고요. 강하면서도 쾌활하고 시원한 면도 있고. 그리고 청춘스타로 시작해 지금까지 배우로 활발하게 활동하면서도 '바다 쪽으로, 한 뼘 더' 같은 작은 규모의 영화에도 기까이 출연하시는 점에서 오버나 언더를 굳이 가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고요."

'범죄의 여왕'은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은근히 화제를 모으고 있다. '범죄의 여왕'의 주소재인 '수도요금'이 최근 거론되는 전기요금 누진세 논란과도 은근히 맥이 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난방열사'로 유명한 김부선 배우가 주인공을 했어야 한다는 의견도 종종 눈에 띈다.

"'족구왕'이 끝나고 바로 '범죄의 여왕'을 준비할 때 김부선 선배님의 '난방열사' 사건이 화제가 되면서 주변에서도 김부선 선배님을 캐스팅해도 좋지 않냐는 말이 실제로도 있었어요. 그런데 김부선 선배님의 그런 이미지를 제가 가볍게 영화에 활용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죠. 김부선 선배님은 내 자식한테 이런 불합리함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며 굉장히 치열하게 싸우는데, 제가 그걸 가볍게 희화화한다는 느낌을 주기 싫었어요. 그리고 '범죄의 여왕'의 주제의식 역시 김부선 선배님이 투쟁하는 이유와 맞닿아있기도 하고요."

▲ 영화 '범죄의 여왕' 이요섭 감독 [사진 = 스포츠Q 최대성 기자]

◆ 광화문 시네마의 3번 타자로서 목표는? "다음 작품에 힘을 실어줄 수 있기를"

이요섭 감독이 속한 '광화문 시네마'는 김태곤 감독, 우문기 감독, 이요섭 감독, 전고운 감독, 권오광 감독 등 다섯 명의 감독에 김지훈 프로듀서와 김보희 프로듀서까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전문사 13기 동기들 일곱 명으로 구성된 영화창작집단이다.

광화문 시네마는 2013년 김태곤 감독의 '1999, 면회'를, 2014년 우문기 감독의 '족구왕'을 선보였고, 세 번째로 이요섭 감독의 '범죄의 여왕'을 선보이게 됐다. 광화문 시네마의 일곱 멤버는 서로의 영화에 기획, 제작, 각본 등 다양한 방식으로 품앗이를 하며 각자 한 편씩 영화를 연출하는 것이 1차 목표다.

그런 의미에서 '광화문 시네마'의 이름으로 세 번째 영화를 선보이는 이요섭 감독의 부담은 실로 적지 않다. 바로 이전에 개봉한 우문기 감독의 '족구왕'이 독립 장편영화로는 상당히 준수한 4만 6540명의 관객을 동원했기에 그 부담도 적지 않고, 앞선 '광화문 시네마'의 영화들에 비하면 순제작비가 나름 블록버스터급인 4억 원이 투입되어 손익분기점이 20만 정도라는 점도 적지 않은 부담이다.

"광화문 시네마의 멤버들은 흥행에 대해서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아요. '족구왕'이 진짜 예외인 거죠. 스코어보다 우리가 재미나게 만들고 재미나게 봤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관객이 얼마나 들지 그런 것을 기대할 필요는 없다고 해줘요."

▲ 영화 '범죄의 여왕' 이요섭 감독 [사진 = 스포츠Q 최대성 기자]

"그래도 당연히 부담은 되죠. '족구왕'이 나오고 나서 저도 '족구왕'처럼 청춘의 싱그럽고 밝은 느낌을 그려볼까 했었는데, 결국 그런 고민을 하다가 포기했어요. 부담스럽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전 그렇게 영화를 만들지 못할 테니까요. 대신 아직은 멀었지만 그래도 최대한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을 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어요. "

세 번째 영화 '범죄의 여왕'의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광화문 시네마'의 시선은 벌써부터 네 번째 영화에 맞춰져 있다. 전고운 감독이 연출할 '소공녀'가 그 주인공이다. 영화 미자믹에는 다음 '광화문 시네마'의 쿠키영상을 삽입하는 전통에 따라 '범죄의 여왕'에서 '소공녀'의 짧은 쿠키영상이 들어가 있다. '소공녀'는 동화적인 제목과 달리 담배가격이 오르자 집을 포기하고 친구 집을 전전하는 현대판 거지여성의 이야기가 담긴다.

"처음에는 관객들이 좋아해 주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족구왕'처럼 우리가 다음 작품을 만들 수 있게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영화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가장 앞에 있어요. '족구왕'을 좋아해 준 분들이 '범죄의 여왕'을 보고, 또 '범죄의 여왕'을 관심있게 본 팬들이 우리를 기억해 줘서 우리의 다음 영화를 반가워해 주고. 그렇게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취재후기] '광화문 시네마'는 한국영화에 새 바람을 불러오고 있다. 이들은 독립영화지만 독립영화라는 것에 구애받지 않으며, 권오광 감독이 '돌연변이'를, 김태곤 감독이 '굿바이 싱글'을 연출한 것처럼 창작활동의 영역을 '광화문 시네마'로 한정 짓지 않고 기회가 되면 외부작업에도 기꺼이 참여하며 '광화문 시네마'의 외연을 확장시키고 있다. 아직은 소자본의 저예산 영화에 그치고 있지만, 언젠가는 '광화문 시네마'가 테리 길리엄 등이 속했던 영국의 유명 영화·코미디 창작집단인 '몬티 파이튼'처럼 하나의 브랜드로 확고하게 한국영화계에 자리잡을 날이 멀지 않았다는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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