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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현장] 아픔만 있었던 '2인자', 불모지 컴파운드에서 '1인자'로 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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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현장] 아픔만 있었던 '2인자', 불모지 컴파운드에서 '1인자'로 웃다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4.09.27 2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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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강세종목 리커브에 밀려 빛 못 봐…얇은 선수층 속에 일궈낸 금메달 2, 은메달 2

[인천=스포츠Q 박상현 기자] 누가 그랬던가. '2등은 패배자 가운데 1등인 사람일 뿐(Second place is the first loser)'이라고.

컴파운드 양궁이 2등도 얼마든지 1등으로 올라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소위 '루저(loser)'라고 일컬어졌던 선수들이 금메달을 차지하며 진정한 '위너(winner)'의 대열에 올라섰다.

최보민(30·청원군청)과 석지현(24·현대모비스), 김윤희(20·화이트진로)는 27일 인천계양아시아드 양궁장에서 열린 여자 양궁 컴파운드에서 단체전 결승전에서 대만의 추격을 229-226으로 따돌리고 처음으로 아시안게임에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양궁 컴파운드의 '제1호 금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이들은 경기가 끝난 뒤 부둥켜 안으며 첫 금메달의 기쁨과 감격을 함께 나눴다. 모두 하나 같이 사연이 있는 선수들이라 기쁨과 감동은 두 배였다. 또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들은 자신들을 위해 응원해준 관중들을 향해 큰 절을 올리며 감사를 전했다.

▲ [인천=스포츠Q 최대성 기자] 인천 아시안게임 양궁 여자 컴파운드에서 단체전에 이어 개인전까지 석권, 2관왕에 오른 최보민이 27일 인천 계양아시아드양궁장에서 관중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또 최보민은 김윤희와 치른 여자 개인전 결승전에서 후배 석지현에 144-143으로 이기며 2관왕에 올랐다.

정상에 오른 뒤 최보민은 "인천 선수촌에 들어오기 전에 복권 1등에 당첨되는 꿈을 꿨는데 그 날짜가 9월 27일이었다. '왜 9월 27일이지'하고 의아해하다가 잠에서 깼다"며 "알고보니 9월 27일이 개인전 결승이 열리는 날이었다. 뭔가 좋은 일이 있지 않을까 기대감이 있었는데 실제 금메달을 따서 만족한다"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여자부에서 금메달 2개와 은메달 1개를 수확한 사이 남자부 역시 단체전에서 은메달 하나를 보탰다. 개인전에서는 4강까지 오른 선수가 없어 입상에 실패했지만 최용희(30·현대제철)와 민리홍(23·현대제철), 양영호(19·중원대)가 나선 단체전에서 결승까지 올랐다. 비록 인도에 225-227로 아쉽게 졌지만 선전했다는 평가다.

컴파운드는 미국이나 유럽에서 널리 행해지고 있는 스포츠다. 활 시위를 끌깥지 당겼다가 놓는 탄력을 이용해 화살을 날리는 전통적인 양궁을 리커브라고 한다. 컴파운드는 활 시위를 당기는 것은 리커브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격발 버튼이 따로 있다.

한국 양궁이 세계 최강을 자랑한다고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 리커브 종목에 국한될 뿐이다. 컴파운드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뗐을 뿐이다. 선수층도 얇아 대표팀 때 선수 선발하기도 버겁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한국 양궁은 컴파운드에서 정상을 차지했다. 컴파운드 전문 선수가 없는 가운데 리커브에서 꽃을 피우지 못했던 선수들이 컴파운드에서 자신의 새로운 영광을 안으며 자신만의 길을 개척했다.

▲ [인천=스포츠Q 최대성 기자] 김윤희(왼쪽부터), 최보민, 석지현 등 한국 여자 양궁 컴파운드 선수들이 27일 인천 계양아시아드양궁장에서 열린 단체전 결승전에서 승리, 금메달을 따낸 뒤 시상식에서 관중들의 축하에 답례하고 있다.

◆ 아픔 있었던 선수, 컴파운드로 힐링하다

컴파운드 2관왕 최보민을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하면 2012년부터 기록이 나온다. 그 전 기록이 없다. 이름을 바꿨기 때문이다.

이전 이름은 최은영이다. 한때 그는 국내 양궁 1위로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세계무대를 주름잡은 양궁 스타였다. 2007년 독일 라이프치히 세계선수권 당시 박성현, 이특영과 함께 단체전 금메달을 이끌기도 했다.

하지만 최보민은 경쟁이 치열한 양궁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예선 탈락했다. 설상가상으로 오른쪽 어깨 인대와 연골이 손상돼 활을 들 수도, 시위를 당길 수도 없는 몸상태가 됐다. 활 시위를 당기면 느껴지는 통증은 일상생활도 어려울 정도로 엄청났다.

그런 그에게 컴파운드는 재도약의 기회였다. 리커브와 컴파운드는 활 자체가 달랐기 때문이다.

리커브는 시위를 당기고 있다가 놓는 방식이기 때문에 어깨에 무리가 가지만 컴파운드는 시위를 당겨 고정한 뒤 격발 스위치를 누른다.

또 컴파운드는 시위를 꼬아서 당기기 때문에 안쪽 어깨 근육을 쓰는 리커브와 달리 바깥쪽 어깨 근육을 사용한다. 다행히 바깥쪽 어깨 근육은 손상되지 않았기 때문에 통증이 없었다.

▲ [인천=스포츠Q 최대성 기자] 최보민과 석지현이 인천 아시안게임 양궁 여자 컴파운드에서 개인전 결승을 마친 뒤 서로 안아주며 기쁨을 나누고 있다.

마침 청원군청에는 컴파운드의 '대부'인 고(故) 신현종 감독이 있었다. 어깨수술을 받은 뒤에도 리커브를 하면서 계속 통증이 사라지지 않으니까 컴파운드를 시켜달라고 매일 졸랐다. 사비를 들여 컴파운드 활까지 샀다. 18년 동안 해왔던 리커브를 포기하는 것은 너무나 아쉬운 일이었지만 그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최보민은 "시작하면서 어려움이 많았다. 리커브를 18년 동안 하면서 원만하게 슬럼프로 떨어지고 다시 상승세로 올라가곤 했지만 컴파운드는 시작한지 한 달만에 슬럼프가 오더라"며 "마음이 너무 불안해서 활을 다시 잡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감독님이 '너만 포기하지 않으면 나도 포기하지 않는다'고 말씀해주셔서 활을 잡을 수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는 남자부의 민리홍도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최보민처럼 리커브 선수였지만 중학생 시절부터 앓은 통풍 지병 때문에 은퇴 위기를 맞았다. 통증이 너무 심해 스스로 옷을 입을 수도 없었던 그가 활시위를 당기는 리커브를 도저히 할 수 없었다.

▲ [인천=스포츠Q 최대성 기자] 민리홍이 27일 인천 계양아시아드양궁장에서 열린 인천 아시안게임 양궁 남자 컴파운드 단체전 결승에서 시위를 당기고 있다.

컴파운드가 민리홍을 구원했다. 역시 격발 스위치를 눌러 화살을 쏘는 방식이 통증을 막아줬기 때문이었다. 2010년 컴파운드로 전향한 민리홍은 지난해 국가대표 선발전을 통과하면서 승승장구했고 약물치료까지 받으면서 통풍도 발병하지 않고 있다.

컴파운드는 최보민과 민리홍 모두에게 새로운 출발이자 기회였고 도전의 대상이 됐다. 그리고 이를 통해 마음의 상처까지 힐링했다.

민리홍은 "10년 동안 해왔던 리커브를 놓고 싶은 마음이 없었지만 어쩔 수 없이 컴파운드를 선택하게 됐다"며 "사실 나만 아픈 과거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지금 컴파운드를 하는 대부분의 선수가 컴파운드를 좋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리커브에서 성적이 나오지 않으니까 '컴파운드로 전향해볼래'라는 권유를 받고 시작한 경우"라고 설명했다.

◆ 컴파운드 발전을 위해 헌신한 지도자의 급작스런 별세

석지현과 김윤희 역시 어렸을 때는 리커브를 하다가 컴파운드로 전향했다. 그들 역시 리커브에서 치열한 경쟁을 이기지 못하고 컴파운드로 전향했다. 그런데 세계 양궁계를 주름잡는 리커브와 달리 컴파운드는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 '리커브는 되는데 컴파운드는 안된다'는 비아냥 섞인 평가가 나왔다. 그럴수록 사기와 정신력이 떨어졌다.

이처럼 아픔이 있는 선수들을 한데 어우러준 지도자가 바로 고 신현종 감독이었다.

최보민과 석지현을 컴파운드로 성공적으로 전향시킨 그는 이제 막 걸음마 단계에서 벗어나 성장하고 있는 한국 양궁 컴파운드의 산증인이다.

▲ [인천=스포츠Q 최대성 기자] 한국 여자 양궁 컴파운드 대표팀 선수들이 27일 인천 계양아시아드양궁장에서 열린 인천 아시안게임 단체전 금메달을 확정지은 뒤 기쁨을 나누고 있다.

인천 아시안게임에 양궁 컴파운드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후 선수들을 집중 조련하고 지도했던 그는 지난해 10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터키 안탈리아에서 열린 세계양궁선수권 여자 컴파운드 단체전 8강전을 지휘하다가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진 것.

당시 현장의 증언에 의하면 바람이 거세게 부는 악조건 속에서도 신현종 감독은 선수들의 정중앙 조정을 위해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자신이 아끼는 애제자인 최보민이 10점을 쏘자 "텐"이라고 외친 뒤 그대로 쓰러졌다.

뇌출혈으로 판명난 신 감독은 현지에서 4시간여에 걸친 대수술을 성공적으로 받았지만 쓰러진지 2주만에 끝내 별세했다.

선수들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인천 아시안게임 전종목 석권을 목표로 하던 그들에게 신현종 감독은 감독 그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자부 양창훈(44) 코치와 여자부 신우철(39) 코치가 선수들을 다독거리며 아시안게임을 계속 준비했고 결국 여자 개인전과 단체전 금메달, 남자 단체전 은메달이라는 값진 성과를 얻어냈다.

▲ [인천=스포츠Q 최대성 기자] 최보민이 27일 인천 계양아시아드양궁장에서 열린 인천 아시안게임 양궁 여자 컴파운드 개인전 결승에서 활을 쏘고 있다.

특히 2관왕에 오른 최보민은 신현종 감독과 인연이 남달랐던지라 눈물을 쏟았다.

경기가 끝난 뒤 최보민은 "원래 이렇게 눈물이 많은 성격이 아닌데"라며 "대회를 준비하면서 이렇게 놓은 날이 올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는데 이렇게 금메달을 따게 돼 너무나 기쁘다. 하늘에서 지켜보고 계실 신현종 감독님이 잘했다고 너무 기뻐하시고 우리를 자랑스러워 할 것 같다"고 말했다.

◆ 얇은 선수층에 전국체전에도 없는 종목, 그래도 미래는 있다

아직까지 양궁 컴파운드는 리커브에 비해 환경이 너무나 열악하다.

일단 선수층이 너무 얇은 불모지다. 리커브의 경우 선수가 1500명이라면 컴파운드 선수는 200~300명 정도에 불과하다. 게다가 대부분이 동호회 선수들이고 정작 대표선수감은 15~20명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이 신우철 코치의 설명이다.

신 코치는 "얇은 선수층 때문에 사실상 15~20명 정도의 선수들 중에서 대표선수를 선발할 정도다. 게다가 역사도 짧다"며 "이런 열악한 상황을 이겨내고 금메달을 따준 선수들에게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이어 신 코치는 "컴파운드에 있는 선수들은 리커브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전향한 선수들이 대부분이어서 조금씩 마음의 응어리가 남아 있다"며 "그래서인지 컴파운드 선수들은 절박함이 있다. 그런 절박함이 긴장감과 집중력으로 이어져 좋은 성적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고 밝혔다.

컴파운드가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2개와 은메달 2개로 마무리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컴파운드는 올림픽은 물론이고 전국체육대회에도 없는 종목이다. 아시안게임 역시 인천 대회를 통해 처음으로 채택됐다.

▲ [인천=스포츠Q 최대성 기자] 한국 남자 양궁 컴파운드 대표팀 선수들이 27일 인천 계양아시아드양궁장에서 열린 인천 아시안게임 단체전 은메달을 딴 뒤 시상대 위에서 손을 흔들어보이고 있다.

민리홍은 단체전 은메달을 딴 뒤 인터뷰에서 "우리나라에 컴파운드라는 종목이 새롭게 조명을 받은 것이 기쁘다"며 "금메달을 목표로 했지만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은메달로도 충분히 평가받은 것"이라는 소감을 전했다.

이날 양궁장에는 정의선 대한양궁협회장도 함께 했다. 사상 첫 금메달을 획득한 컴파운드 선수를 격려하는 한편 우승 기념으로 국내외 취재진들에게 점심 도시락과 함께 인천 아시안게임 공식 마스코트인 3종 인형 세트를 돌리는 등 화끈하게 한턱을 쏘기도 했다.

실제로 정의선 회장은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컴파운드가 채택되자 이에 대한 적지 않은 투자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수들 모두 인사말을 통해 감사를 전하면서 정 회장을 언급했다.

앞으로 컴파운드는 올림픽에서도 채택될 가능성이 높다. 리커브에서 확고하게 자리하고 있는 한국 양궁을 견제하기 위해 아직 한국의 미개척 종목인 컴파운드 종목을 포함시키려는 움직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시안게임에 이미 정식종목으로 채택됐고 올림픽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있다면 한국 양궁계도 컴파운드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전국체육대회에도 정식종목으로 편입시킬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될 수 있다.

2014년 9월 27일. 불모지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고자 불모지에서 땀흘려온 또 다른 태극궁사 선구자들이 새로운 역사를 쓴 날이다.

코리아 컴파운드는 이제 시작이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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