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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본색] (25) '최악의 하루' 김종관 감독, 연애의 민낯을 비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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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본색] (25) '최악의 하루' 김종관 감독, 연애의 민낯을 비추다
  • 오소영 기자
  • 승인 2016.08.31 12: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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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자 Tip!] 최근 영화를 보며 이렇게 편한 마음으로, 깔깔 소리내 웃었던 적이 있었나. 코미디라면서 실소조차 나오지 않았던 적이 여러 번이다. 그중 '최악의 하루'는 편안하고 유쾌하게 볼 수 있는 반가운 영화였다.

지난 25일 개봉한 '최악의 하루'는 배우 지망생 은희(한예리 분)가 일본 작가 료헤이(이와세 료 분)를 시작으로, 하루 동안 세 명의 남자를 만나는 이야기다. 남자친구인 현오(권율 분), 잠깐 만났던 '이혼남' 운철(이희준 분). 만나는 사람에 따라 연기를 하듯 제 모습을 바꿔가던 은희는, 결국 세 사람이 엮이며 곤란해진다.

'최악의 하루'는 찌질한 구석까지 파고들며, 연애의 민낯을 비춘다. 그럼에도 유머러스한 대사와 연기, 산뜻한 배경 등으로 찜찜하지 않고 오히려 행복하고 유쾌한 기분을 선사한다.

김종관 감독은 실제로 생활하는 서촌을 배경으로 영화를 찍었고, 걷고 차를 마시는 자신의 생활패턴을 기본 삼아 이야기를 써 나갔다. "영화는 일기장이 될 수는 없는 것 같다"면서도, 자신의 상당 부분을 투영했으니 직접 각본, 연출을 맡은 감독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지는 것도 당연했다.

[스포츠Q 글 오소영 · 사진 최대성 기자] 배우 정유미의 데뷔작 '폴라로이드 작동법'(2004)을 기억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폴라로이드 작동법'은 6분 가량의 단편영화로, 정유미의 감정표현과 아름다운 영상미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이 또한 김종관 감독의 영화다. 그는 '헤이, 톰' '올 가을의 트렌드' '길 잃은 시간' '영재를 기다리며' 등 단편들을 내놓으며 그만의 시선과 스타일로 주목받았다. 이후 에세이를 출판하고, 사진전을 여는 등 다양한 방면에서 창작활동을 해 왔다.  

장편영화는 옴니버스 '조금만 더 가까이'(2010) 이후 6년만이다. 스크린 위 현실적인 이야기를 그려내는 시선은 여전하지만, 보다 밝아졌고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을 듯한 작품이다.

▲ '최악의 하루'를 연출한 김종관 감독을 지난 26일, 서울 종로구 통인동에서 만났다.

'최악의 하루', 현실적인 영화도 재밌을 수 있다 

- 언론시사회 때 객석에서 웃음이 터지더라고요. 시사회는 좀 엄숙(?)한 분위기에서 진행되다 보니 그런 반응은 오랜만이었어요. 

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룬다고 하면 무겁거나 작가주의적 영화로 보는 경우가 많은데요. '최악의 하루'는 보다 기분 좋게 볼 수 있는 영화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우디 앨런의 영화처럼요. 못나고 치졸한 모습이 다 들어있지만 하나의 재밌는 꿈, 소동극처럼 흥겹게 지나가 버리잖아요. 다만 은유의 속성이 있길 바랐어요. 쉽고 재밌게 진행되지만 그 속에는 생각할 거리가 있도록.

- 은희 캐릭터에 많은 관객이 공감할 것 같아요. 현실적이고 캐릭터가 확실하다 보니, 실제 인물에서 따온 건 아닐까 싶기도 했어요.

실제 모델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사람의 속성에 대해 얘기해 보고 싶어서 캐릭터를 만들었어요. 누구나 그렇듯 제 안에도 이중적, 삼중적인 성격이 있죠. 저도 부모님을 대할 때, 친구를 대할 때 모습이 달라지니까요.

그렇다면 은희가 어떤 남자들과 만났을 때 충돌할까. 30대 초반의 여자가 좀 안 좋을 수 있는 연애는 어떤 걸까(운철), 20대의 투닥거리고 이기적인 연애(현오)는 어떨까, 이런 점에서 세 사람의 관계를 만들었죠.

- 실제 경험이 녹아 있는 부분을 말씀해 주신다면요. 

제가 눈치 없는 사람에 스트레스를 받는 편이거든요.(웃음) 운철은 눈치도 없고, 자기 자신은 좋은 모습으로 남으려 하면서 관계를 벗어나려는 치졸한 모습이 있어요.

료헤이를 만나는 출판사 대표에겐 악의는 없지만 한국적인 무례함이 있어요. '오랜만에 봤더니 늙었네요', '영화 언제 찍어요' 그런 말들은 친근한 인사치레지만 기분은 묘하게 나쁘죠. 모든 사람에게 있을 그런 무례함과 비겁함을 유머러스하게 풀었어요. 자기반영, 조롱, 애정이 섞인 캐릭터들이죠. 

▲ 25일 개봉한 영화 '최악의 하루'는 은희(한예리 분)가 하루 동안 세 남자 료헤이(이와세 료 분), 현오(권율 분), 운철(이희준 분)을 만나며 겪는 이야기다. [사진= 인디스토리 제공]

- 배우들의 캐스팅은 어떻게 이뤄졌나요?

은희는 굉장히 못돼 보일 수도 있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면도 있죠. 이런 모습을 한예리 배우가 조화롭게 잘 해줄 수 있을 것 같았죠.

권율 배우가 갖고 있는 긍정적이고 귀여운 느낌을 활용하고, 이희준 배우가 '유나의 거리' 같은 곳에서 보여준 호소력 있는 멜로 연기를 좀 비틀면 어떨까 싶었어요. 배우들이 말맛을 살려주고 자기화해서 포인트를 잘 살려준 것 같아요.

세 배우의 케미스트리도 좋았어요. 한예리-권율은 같은 소속사로 친한 사이고, 한예리-이희준은 이번이 세 번째 작품(전작 '환상속의 그대', '해무')이라 연기 호흡이 무척 잘 맞더라고요.

셋은 친한 상태에, 료헤이는 은희를 잘 모르지만 호의적인 인물이다 보니 이 정도의 거리감이 있는 게 어울릴 것 같았어요. 그 어색함에서 나오는 아름다움이 있죠. 배우들에 대한 만족도가 굉장히 커요.

- 일본 배우인 이와세 료와의 소통이 어렵진 않았나요. 

서로 영화를 잘 이해하고 있어서 눈빛이나 간단한 제스처만으로도 통했던 것 같아요. 극중에서 은희와 료헤이가 간단한 영어로 대화했던 것처럼요. 영화에서 은희와 영어로만 대화하면서도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하는 관계인데, 실제로도 그런 느낌이 있었어요.

◆ 김종관의 세계, 아름다운 영상미와 방황하는 청춘 

- 전작 '조금만 더 가까이'에도 현오(윤계상 분)와 은희(정유미 분)의 사랑 이야기가 나오죠. 무력한 남자, 할 말은 다 하는 여자를 보니 '최악의 하루'와 겹쳐 보이기도 했어요.

최근 몇 년 동안 제가 그런 힘의 밸런스가 있는 남녀의 얘기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무능력하고 뭔가를 놓치고 우유부단한 남자와, 어딘가 쓸쓸하면서도 능동적인, 자신의 길을 찾으려 방황하는 여자의 매력이 있더라고요.

- 은희, 운철, 현오라는 이름이 전작에서도 등장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이름 짓는 걸 워낙 싫어해서 돌려 쓰고 있어요.(웃음) '더 테이블'에서도 한예리씨가 은희로 나와요. 그런데 같은 이름을 가진 캐릭터들 간에 닮은점들이 형성되는 것도 같아요. '조금만 더 가까이', 최악의 하루', '더 테이블'에서의 은희는 모두 방황하는 인물들이거든요. 이름을 지을 땐, 뜻보단 어감을 신경 써요. 그리고 저의 현실세계에는 없는 이름들. 

▲ '최악의 하루' 김종관 감독

- 홍상수 감독의 영화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는 평도 있었어요. 서울의 곳곳을 담아내고, 현실적인, 어쩌면 치졸할 수 있는 감정의 밑바닥까지도 보여준다는 점에서.

저보다 훨씬 과감한 실험을 하는 감독님이시고 영화를 담는 그릇은 다른데요, 사람들 사이의 사소한 관계, 모순을 탐구하는 부분에 대해선 자극을 받고 좋아하는 감독님이예요. 감독님의 영화가 차가운 시선이 있다면, 저는 그보다 연민이 더 강한 것 같아요.

- 감독님의 작품에는 영상미에 대한 호평이 따르는데요. '최악의 하루' 역시도 서촌 곳곳의 아름다운 풍경을 담아냈죠. 시끄럽고 뜨거운 서울에만 익숙해 있다 보니, 이런 모습이 낯설기도 했어요. (*'최악의 하루'는 남산, 김종관 감독이 생활하는 서촌을 배경으로 한다)

한국 사람들이 갖고 있는 여러 속성을 다루는데, 아름다운 공간에 현실적인 사람들의 모습이 담길 때 나오는 충돌이 재밌을 것 같았어요.

또, 도시의 랜드마크와 사람들이 실제 일상에서 접하는 공간은 다르잖아요. 매일 접하다 보니 잊게 되는 공간이 새롭게, 비현실적인 공간처럼 보였으면 싶었고요. 

사실대로 비춰야지, 왜 미화해 재생산하느냐는 시선들도 있지만 전 영화 자체가 미화 아닐까 생각하는 편이에요.

▲ '최악의 하루' 김종관 감독

◆ 창작 욕구와 피드백에 대한 갈증 사이에서 견디는 '의미있는 고단함'  

- 어떤 작품들을 보고 영화에 대한 꿈을 꿨는지 궁금해요.

'백 투더 퓨처'(1985), '인디아나 존스'(1981), '구니스'(1985) 같은 영화를 보며 자랐어요. 내가 사는 삶과는 다르다 보니 어떤 탈출구 같았죠.

자라서는 제가 가졌던 슬픔이나 고통을 영화 속에서 확인하는 즐거움이 있더라고요. 그러면서 영화를 하고 싶단 생각을 하게 됐어요.

- 앞으로의 활동 계획에 대해 말씀해 주신다면요.

임수정, 정유미, 한예리, 정은채, 연우진 등 배우들이 나오는 '지나가는 마음들: 더 테이블'을 편집 중이고 내년 초에 개봉할 것 같아요. 또 다음 영화를 찍어야죠. 글쓰기도 계속 하고요.

- 이번 작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될까요? 

아직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저예산 영화의 재미가 있지만, 저를 좀 더 넓히기 위해 상업영화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있어요. 상업영화를 하더라도 제가 갖고 있는 것 안에서 했으면 좋겠는데….

- 영화 외에도 글을 써 책을 내고, 사진전을 열기도 하는데요. 다양한 방면의 창작을 통해, 소모되는 느낌이 들진 않나요?

아직까진 성취의 즐거움보다는 피드백이 없다는 점에서의 갈증이 있어요. 하지만 큰 성과를 이루진 않아도 조금씩은 발전되고 있다고 느껴요. 나중에 큰 의미가 되기까지, 그때까지 이 의미 있는 고단함을 견디며 살아남느냐의 문제인 것 같아요. '최악의 하루'가 그 목마름을 해소시켜 줬으면 해요.

[취재후기] 관객의 입장이 돼 궁금했던 점들을 묻고 답했던, 간만에 신나는 인터뷰였다. "꼭 전하고 싶은 말"을 묻자 김종관 감독은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어요"라고 진심어린 목소리로 답했다. 앞으로도 '현실의 결을 살린 멜로'를 찍고 싶다는 그의 다음 작품이 벌써 기다려진다.

"요즘은 판타지성 짙은 작품들이 많이 나오다 보니 현실적인 멜로가 잘 없는 것 같아요. 이런 상황에서 '최악의 하루'가 의미 있게 자리잡는다면, 다음 영화도 이 색깔을 살려 찍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극장에 오셔서 '최악의 하루'의 친구가 돼 주시고, 곧 제 친구도 돼 주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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