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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2016] (28) 패럴림픽 유도 기대주 이정민, "'왕기춘 꺾은 사나이'는 잊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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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2016] (28) 패럴림픽 유도 기대주 이정민, "'왕기춘 꺾은 사나이'는 잊어주세요!"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6.09.05 13: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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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까지 비장애인 유도서 활동하다가 전격 전향…"힘들게 잡은 기회, 허무하게 보내지 않겠다"

[200자 Tips!]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한국 유도는 저조한 성적을 남겼다. 메달이 모든 것은 아니라고는 하지만 기대했던 금메달 후보들이 줄줄이 탈락하거나 정상에 오르지 못해 '노 골드'에 그쳤다. 하지만 8일 개회식을 시작으로 12일 동안 펼쳐질 리우 패럴림픽에서 금빛 메치기를 꿈꾸는 유도가가 있다. 남자 81kg급에 출전하는 이정민(26·양평군청)은 한국 선수단이 기대하는 금메달리스트다. 불과 2년까지만 하더라도 비장애인 유도선수였던 그는 자신의 장애를 인정하고 장애인 유도로 전향하면서 패럴림픽 금빛 메치기에 도전하게 됐다.

[이천=스포츠Q(큐) 글 박상현·사진 이상민 기자] 국제유도연맹(IJF)이 운영하는 '유도베이스'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이정민의 이름과 전적을 발견할 수 있다. 2014년 7월 27일 대만에서 열렸던 아시안오픈 81kg급에서 무라트 카바치로프(러시아)와 8강전을 제외한 나머지 3경기에서 모두 한판승을 거두며 정상에 올랐다. 이정민이 세계무대에서 거둔 기록의 전부다.

▲ 이정민은 2014년까지만 하더라도 비장애인 유도선수였다. 하지만 자신이 갖고 있는 장애를 인정하고 장애인 유도로 전향하면서 패럴림픽에 나갈 수 있는 길이 생겼다. 이제 이정민의 목표는 패럴림픽 금메달이다.

그런데 IJF는 비장애인 유도선수들을 대상으로 한다. IJF 데이터베이스에 이정민의 이름이 있다는 것은 그가 한때 비장애인 유도에서 활약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초등학교 4학년에 유도를 시작한 이정민은 2014년까지 비장애인 매트를 누볐다.

이정민이 시각장애 2급임에도 비장애인 유도를 했던 것은 자신이 지닌 병 자체를 부끄러워해 숨기고 살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정민은 자신이 갖고 있는 장애를 받아들이고 2014년 11월 장애인 유도로 전향했다.

포항 동지고 5년 선배인 김재범과 왕기춘 등 남자 81kg급에 너무나 쟁쟁한 스타들이 많아 올림픽에 나가고 싶어도 힘들다는 현실도 인정했다.

바늘구멍보다 더 좁은 비장애인 유도보다 선수층이 얇은 장애인 유도에서 자신의 길을 찾았다. 그리고 리우 패럴림픽에서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가 됐다.

◆ '왕기춘을 꺾은 사나이'가 아닌 유도가 이정민이고 싶다

이정민은 비장애인 유도 남자 81kg급 무한경쟁에서 살아 남아야만 했다. 그러나 그가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었다. 그럼에도 이정민은 한동안 비장애인 유도를 고집했다. 자신의 장애를 세상에 알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선천적으로 눈이 나빠서 유치원 시절부터 두꺼운 돋보기 안경을 썼죠. 그런데 가면 갈수록 시력이 떨어지는 거예요. 결국 고등학교 때 망막층간분리증이라는 진단을 받았어요. 의사 선생님이 불치병이라 수술 방법도 없다고 하더라구요. 그래도 저는 꿋꿋하게 비장애인 유도를 밀고 나갔어요. 불편하고 힘들었지만 안 보여도 보이는 척 하면서 견뎌왔던 거죠."

현재 이정민은 눈으로 사물의 형체만 희미하게 인식한다. 왼쪽 눈은 시력이 없고 오른쪽 눈으로만 1m 거리의 물체를 희미하게 볼 정도다. 이정민이 그럼에도 비장애인 유도에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감각이 탁월했기 때문이었다.

▲ 이정민(오른쪽)은 어렸을 때부터 달고 살았던 시력 장애를 받아들이기 싫었다.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장애를 인정하고 장애인 유도에서 최고가 되고자 구슬땀을 흘린다.

"비장애인 선수들과 유도하는 것은 힘들죠. 눈이 좋지 않아 상대의 도복을 놓치면 안되기 때문에 한 번 잡으면 절대 놓치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었다니까요."

이정민의 이름을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하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왕기춘을 꺾은 사나이'다. 2014년 전국실업유도 최강전에서 세계무대를 호령해온 왕기춘을 꺾고 우승을 차지한 전력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왕기춘을 꺾은 것도 '옛 추억'으로 묻어둔다. '왕기춘을 꺾은 사나이'라는 수식어도 잊어달라고 부탁한다.

"이젠 '유도가' 이정민이고 싶지, 장애가 있음에도 왕기춘을 꺾었다는 얘기로 계속 회자되고 싶진 않아요. 너무 자극적이기도 하고 사이도 서먹서먹해지고요. 이번 인터뷰를 끝으로 더이상 안나왔으면 좋겠어요. 상대 선수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니까요. 저는 장애인 유도에서 제 길을 갈 뿐입니다."

◆ 장애를 인정하니 길이 보였다, 올림픽 출전의 꿈도 이뤘다

이정민이 2014년에서야 장애인 유도로 돌아섰지만 이미 그 전부터 제의는 있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이정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존심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이미 대학교 때부터 장애인 유도 관계자들이 '같이 해보자'는 연락을 해왔어요. 하지만 장애인 유도로 가게 되면 제 장애를 만천하에 알리는 거잖아요. 또 비장애인 유도에서도 메달을 따고 있었기 때문에 구태여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현실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눈이 좋지 않은 것에 대한 불리함, 쟁쟁한 실력자들이 있는 81kg급이라는 점을 모두 인정하고 나서야 스스로 족쇄를 풀 수 있었다.

"비장애인 유도를 했을 때도 올림픽 출전은 제 꿈이었어요. 하지만 경쟁에서 불리하다는 것을 인정했죠. 벌써 제 나이가 스물여섯인데 도쿄까지 기다릴 수는 없잖아요. 어쩌면 리우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장애인 유도로 전향했죠. 그리고 곧바로 태극마크를 달았어요."

▲ 이정민은 장애인 유도로 전향한 뒤 헝가리 오픈을 시작으로 서울세계시각장애인경기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정민은 한때 세계랭킹 2위까지 올랐고 현재 세계 5위로 리우 패럴림픽 출전 자격을 따냈다.

자신의 장애를 인정하게 되니 그의 길도 함께 뚫렸다. 지난해 2월 헝가리 시각장애인 유도오픈에서 정상에 오른 뒤 서울세계시각장애인경기대회에서도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해 12월 세계랭킹 2위까지 올랐던 이정민은 현재 세계 5위로 리우 패럴림픽에 출전할 수 있게 됐다. 지난 3월에는 코카콜라체육대상 우수장애인선수상을 받기도 했다.

그토록 염원했던 패럴림픽 출전이지만 아쉽게도 이정민의 현재 컨디션은 100%가 아니다. 왼쪽 무릎 전방십자인대가 좋지 않다. 경기도 이천훈련원에서 구슬땀을 흘리면서 마지막까지 가장 신경을 썼던 것도 바로 왼쪽 다리에 대한 보강이었다.

"수술을 받을 상황이 아니어서 재활 치료를 통해서 보강만 했어요. 왼쪽 다리는 방어하는 쪽이기 때문에 상당히 부담스러워요. 게다가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으니까 중심 지탱하는 것도 불리하죠. 훈련하면서도 계속 불편함을 느꼈어요. 하지만 이번 패럴림픽이 제겐 두번 다시 없을 수도 있는 기회잖아요. 왼쪽 다리로 잘 버텨서 상대의 업어치기 공격에 당하지 않도록 주의해야죠."

◆ 패럴림픽에 나오니 쟁쟁한 실력자들과 맞대결 "이겨내야죠"

"이겨내야죠. 이번 기회를 놓칠 수는 없잖아요."

이정민의 눈동자는 더욱 반짝거린다. 왼쪽 무릎이 정상은 아니지만 12명이 겨루는 녹다운 라운드에서만 이겨낸다면 자신의 숙원인 패럴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 수도 있다.

그러나 너무나 쟁쟁한 경쟁자들이 많다. 에두아르도 아비야 산체스(멕시코)와 할리 아루다(브라질), 올렉산드르 코시노프(우크라이나), 시릴 조나르(프랑스) 등이 이정민이 넘어야 할 산이다. 지난해 서울시각장애인경기대회 우승 당시 결승전에서 맞붙었던 샤리프 카릴로프(우즈베키스탄)도 설욕을 벼르고 있기에 만만치 않다.

▲ 이정민은 패럴림픽에 나가는 꿈을 이뤘지만 목표는 더 높은 곳에 있다.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시상대 꼭대기에 서는 것이다. 한국 선수단도 이정민을 유력한 금메달리스트 후보로 올려놓고 있다.

"아비야 산체스는 현재 세계랭킹 1위이고 코시노프나 조나르 등도 만만치 않아요. 게다가 아비야 산체스는 제가 한판패로 져본 기억이 있어서 가장 조심해야 할, 까다로운 상대죠. 패럴림픽이 만만치는 않을 것 같아요."

이번 패럴림픽에서 한국 선수단은 금메달 11개와 은메달 9개, 동메달 13개를 예상하고 있다. 이 가운데 이정민은 11개의 금메달을 따낼 후보 가운데 1명으로 올라 있다. 그런만큼 이정민에게 거는 기대도 크다.

"올림픽에 나가는 꿈 하나를 이뤘으니 또 하나의 꿈을 이뤄내야죠. 부상도 있고 컨디션도 100%가 아니지만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아요. 리우에서 당당하게 시상대 꼭대기에 올라가고 싶어요. 금메달 후보라는 것이 부담스럽긴 하지만 그 부담 역시 제가 극복해야죠."

이정민은 특유의 사람좋은 웃음을 지으며 다시 한번 도복을 고쳐맨다. 그는 리우에 입성해 9일 첫 결전에 대비해 마지막 담금질에 땀을 쏟고 있다.

▲ 이정민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리우데자네이루 패럴림픽에서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한다. 왼쪽 무릎 전방 십자인대 부상으로 컨디션이 100%가 아니지만 어렵게 잡은 패럴림픽 출전 기회를 헛되이 보내고 싶지 않기에 경기 당일까지 메치기로 구슬땀을 흘린다.

■ 이정민 프로필

△ 생년월일 = 1990년 11월 13일
△ 체격 = 180cm, 81kg
△ 출신학교 = 대구태현초-대구교동중-포항동지고-동아대
△ 주요 경력
- 2013년~2014년 용인시청
- 2015년~ 양평군청
- 2015년 헝가리 월드컵 장애인 유도 국가대표, 세게시각장애인경기대회 유도 국가대표
△ 수상 경력
- 2014년 전국실업유도최강전 81kg급 금메달
- 2014년 아시안오픈 81kg급 금메달
- 2015년 헝가리 월드컵 81kg급 금메달
- 2015년 세계시각장애인경기대회 81kg급 금메달
- 2015년 전국장애인체육대회 81kg급 금메달

[취재후기] 한자성어에 유지경성(有志竟成)이란 말이 있다. 이루고자 하는 뜻이 있으면 결국은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이정민 역시 올림픽 출전에 대한 열망이 강했기에 부끄럽게만 생각했던 자신의 장애를 당당하게 밝히고 패럴림픽 출전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이제 이정민에게 어울리는 한자성어는 지성감천(至誠感天)이 될 것 같다. 리우 출정을 앞두고 이천훈련원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지극한 정성을 다한 그를 보노라면 이젠 하늘이 감동할 차례인 듯 싶다. 지성감천이 맞는 말이라면 패럴림픽 금메달은 이정민의 것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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