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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열전] '학교 다녀오겠습니다'의 한 수, 저소득 아이돌 '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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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열전] '학교 다녀오겠습니다'의 한 수, 저소득 아이돌 '강남'
  • 오소영 기자
  • 승인 2014.09.29 11: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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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오소영 기자] “내가 한 달에 10만원 벌어. (간식)살게요. 근데 이것만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내가 한 달에 10만원 번다는 거.”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강남은 비밀 얘기를 하듯 속삭였다. 다른 연예인들은 학생들에게 간식을 쏘곤 하는데, 강남은 자신의 먹을 것만 사 오는 모습에 궁금해진 제작진이 이유를 묻자 그의 대답이었다. 강남은 ‘저소득 아이돌’이란 별명을 얻었다.

▲ JTBC '학교 다녀오겠습니다'에 출연중인 그룹 엠아이비의 강남.[사진=방송 캡처]

JTBC 예능 프로그램 ‘학교 다녀오겠습니다’에는 낯선 얼굴의 노란 머리 청년이 나온다. 4인조 힙합 그룹 ‘엠아이비(M.I.B)’의 강남이다. 이름 강남은 ‘강한 남자’에서 따 온 것. 이름만큼 거침없다. 한국인 어머니와 일본인 아버지 아래 자라 서툰 한국말에도 적극적인 의사표현을 하며 자유분방한 학교생활을 한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는 연예인들이 일주일간 학교에서 지내는 프로그램이다. 연예인들은 교복을 입고 학생들과 수업을 듣는다. 이미 학교를 졸업한 이들이 오랜만에 교복을 입고 수업이나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한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지만 거기까지다.

학교는 MBC의 ‘진짜 사나이’의 군대처럼 자유가 크게 억압된 곳도 아니고, 매번 촬영 학교가 바뀌어도 한국 학교 어디든 모습은 비슷하다. 따라서 재미를 끌어내는 건 출연자의 몫이다. 앞서 출연자 중 상당수는 별 존재감 없이 촬영을 마쳤다.

강남의 출연은 제작진의 '신의 한 수'로 기능했다. 강남은 첫 등장부터도 다른 출연진과 달랐다. 다들 매니지먼트 차량을 타고 등교하는 반면, 그는 숙소에서부터 학교까지 대중교통으로 가는 방법을 찾았다. 그에게 이 프로그램의 촬영은 건물에 들어가면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학생이 되는 자세에서부터 시작했다. 한국어가 익숙지 않아 가야 하는 곳이 ‘외국어고등학교’인지 ‘외국인 고등학교’인지조차 헷갈려 행인들에게 물어보면서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학교에 도착했다.

▲ 강남은 엉뚱한 행동과 붙임성있는 모습으로 반 분위기를 띄웠다.[사진=방송 캡처]

연예인들의 출연은 학생들에게 이벤트와도 같다. 매스컴에서 얼굴을 익히 봐 왔던 연예인들은 그 나잇대 학생들에게 관심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학생들과 섞여 지내도 그들의 존재는 튀기 마련이고 이들은 같은 학생이 아닌 어른의 존재다. 간식으로 한 턱을 내고, 생활에 대해 조언하는 식이다. 함께 어우러진 교실이지만 학생들 사이에 게스트가 껴 있는 조화되지 않은 풍경이었다.

이 점에서 강남은 학생들 속에 섞인 연예인이 아닌, 한 명의 ‘전입생’으로 기능했다. 반 배정을 받은 후 학생들은 강남이 누군지 못 알아봤다. 서운해 하는 기색도 없이 그는 학생들에게 먼저 “여자친구 있냐”고 물으며 친해졌다.

학교생활에서도 다른 연예인들이 소극적인 것과 달리 거침없었다. 아는 게 있으면 당당히 손을 들고, 잘 모르는 내용에는 “외국인이라 잘 모른다”고 한 발 물러난다. 몰라도 웃으며 “파이팅!”을 외친다. 음악시간에는 망설임없이 앞에 나가 ‘사랑은 아무나 하나’를 열창해 분위기를 띄우고, 반장 선거에는 손을 들고 “자기 자신을 추천해도 되냐”고 물었다.

▲ 한 달 수입 10만원이지만 학생들을 위해 외상까지 하며 음료를 사기도 했다.[사진=방송 캡처]

마냥 철없는 도련님같기만 한 건 아니다. 음식 반입이 금지된 기숙사에서 라면을 몰래 먹어 혼나게 되자 “(선생님 앞에서)웃지 말라”고 학생들에게 현실적인 꼼수도 알려주고 “형으로서 말리지 못한 제 잘못”이라고 부장 교사에게 사과하며 뇌물(?)로 딸기우유를 건넬 줄도 안다.

“돈이 없어 못 사준다”고 인터뷰를 했지만 그 다음에 매점에 가서는 제작진의 카드를 빌려 교실 전체에 큰 한 턱을 냈다. 6만원이 좀 넘는 금액이니 한 달 수입의 절반 이상을 쓴 거다. 강남은 흐뭇해하며 제작진에게 물었다. “8년 동안 할부로 갚아도 되죠?”

물론 다른 출연진들과 다를 바 없는 ‘그냥’ 한 턱이었을 리 없다. 간식을 먹는 학생들에게는 “반장 선거 있는 거 알지?” 생색내는 한 마디를 던졌다.

강남이 속한 그룹 엠아이비는 2011년 데뷔했지만 인지도가 높지 않다. 드렁큰타이거가 속해 있던 정글 엔터테인먼트 소속으로 데뷔 초반 잠깐 관심을 받았으나 앨범의 완성도나 실력에 비해 인지도가 없는 편이다.

평소 예능 프로그램 출연 기회가 잘 없는 아이돌들은 잡은 기회에 혼신의 힘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생계형 아이돌’들의 모습은 대견하지만 짠한 면도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강남이 보여준 건 짠함이 아닌 유쾌함이었다. 흔한 예능 출연 기회가 아님에도 본인의 인지도나 이미지 고착 작업이 아닌 그 장소와 배경, 함께하는 학생들에게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 올해 28살인 강남은 학생들과 환상 궁합을 보여줬다.[사진=방송 캡처]

이후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강남은 “학생들과 함께 있으면 내가 가수란 걸 잊어버린다”고 말했다. 섞여 생활하다 보니 나이와 직업을 잊고 함께 하게 된다는 것. 그는 스스로 그 이유를 찾아냈다.

“학생들도 순수하고, 강남이도 순수하니까”. 자기자신을 3인칭으로 칭해도 어색하거나 밉지 않은 것은 그의 말대로 스물 여덟의 그가 학생들처럼 순수하기 때문일 것이다.

덕분에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는 연예인 출연이라는 일회성 이벤트를 넘어 학교생활 자체가 될 수 있었다. 이 기세를 몰아 최근 강남은 MBC ‘나 혼자 산다’에 출연 예정이란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아직 못 떠서 한 달에 10~40만원을 번다”는 이 ‘저소득 아이돌’에게, 이 별명이 곧 과거가 돼 버릴 것 같다고 생각하면 너무 앞서가는 걸까?

ohsoy@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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