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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 '속도보다는 방향', 휠체어농구 신생 실업팀 무궁화전자가 열어갈 더 많은 문(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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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 '속도보다는 방향', 휠체어농구 신생 실업팀 무궁화전자가 열어갈 더 많은 문(門)들
  • 안호근 기자
  • 승인 2016.09.12 11: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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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기업 최초 창단, 27일 리그 데뷔··· 고광엽 감독 "3,4번째 실업팀 나오도록 역할 다할 것"

[200자 Tips!] 장애인 기업 무궁화전자가 휠체어농구팀을 창단하면서 국내 휠체어농구리그도 활기를 띠게 됐다. 무궁화전자 농구단은 누구보다 큰 관심을 갖고 적극 지원을 아끼지 않은 대표이사 겸 단장, 국가대표 출신으로 대표팀을 맡고 있는 감독, 농구가 하고 싶다는 집념 하나만으로 힘든 시기를 버틴 선수들이 '3색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들의 어울림 속에 무궁화전자는 서울시청에 이어 두 번째 휠체어농구 실업팀으로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수원=스포츠Q(큐) 글 안호근‧사진 이상민 기자] 운동을 하면서 경제활동까지 할 수 있는 실업팀 또는 프로팀 입단은 모든 선수들의 꿈이자 최종 목표다. 하지만 장애인 스포츠는 실업팀 자체가 적다. 있다고 해도 주로 장애인체육회나 지방자치단체 위주다.

▲ 무궁화전자 농구단은 지난 7월말 창단했다. 서울시청에 이어 장애인 휠체어농구 2번째 실업팀이다. 서영동(왼쪽)과 김정수.

그러나 지난 7월 28일 장애인 기업 최초이자 국내 2번째 휠체어농구 실업팀으로 무궁화전자 농구팀이 창단됐다. 그동안 서울시청 팀이 있었지만 지방자치단체 팀이었고 무궁화전자는 민간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창단된 휠체어농구팀이다. 국가대표 출신으로 현 휠체어농구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고 있는 고광엽 감독이 사령탑을 맡았다.

현재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리고 있는 하계 패럴림픽에 하반신을 사용할 수 없는 장애인들의 종목인 휠체어농구가 포함돼 있지만 한국은 리우 열전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1984년 국내에 도입된 한국 휠체어농구 저변확대와 수준향상이 절실한 상황에서 무궁화전자 농구단 창단은 그 기폭제가 될 것으로 주목받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장애인 스포츠의 수준 향상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통한 선수들의 안정성 확보 등 기대효과가 크다”며 “공공기관, 지자체는 물론 민간 기업으로도 실업팀 창단이 점차 확산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기대감과 파급효과를 밝혔다.

본사가 있는 수원에 연고를 잡은 무궁화전자 농구단은 오는 27일부터 총 5개 팀이 참가하는 2016 한국휠체어농구연맹(KWBL) 휠체어농구리그 개막 준비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 장애인 복지 위한 무궁화전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탄생 배경

무궁화전자는 1994년 삼성전자가 사회복지사업의 일환으로 장애인 고용을 목적으로 설립한 직업재활시설이다. 전체 직원의 70% 이상이 장애인이고 이 가운데 60%는 중증 장애인이 일하고 있는 국내 최대 장애인 기업이다.

장애인 복지에 목적을 두고 있는 무궁화전자는 1996년 사내 동호회로 휠체어 농구단을 창단했다. 회사 사정으로 잠시 운영이 중단되기도 했지만 2004년 재창단 이후로는 지속적으로 운영돼 왔다.

▲ 장애인 기업 최초의 실업 휠체어농구팀 무궁화전자는 단장을 맡은 김기경 대표이사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오는 27일 개막하는 2016 KWBL 휠체어농구리그 준비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사진=무궁화전자 휠체어농구단 제공]

가볍게 공을 던지며 친목도모를 하는 수준은 결코 아니었다. SK텔레콤배, 우정사업본부장배, 전국장애인체육대회 등 각종 전국 대회에서 15차례나 우승을 차지했다. 국내 휠체어농구 역사와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소에도 휠체어농구에 관심이 많아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김기경 무궁화전자 대표이사는 본격적인 지원과 육성을 위해 실업팀 창단을 추진했다. 직접 단장을 맡으며 열정을 실었다.

김 대표는 창단식에서 “무궁화전자 휠체어농구단의 정식 창단으로 휠체어농구가 더욱 발전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유망선수를 발굴, 육성하기 위해 앞으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고광엽 감독은 “단장님이 매우 적극적이다. 훈련장에도 자주 찾아오셔서 격려를 해주셨다”며 “실업팀에서 농구만 하는 것이 소원인 선수들이 많았는데 좋은 기회가 생겼다”고 감사를 표했다.

◆ ‘국대 터줏대감’ 고광엽 감독의 팀 운영 철학 ‘속도보다는 방향’

15년간 선수로서 국가대표 생활을 했던 고광엽 감독은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서는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수년간 주장을 맡아 대표팀을 이끌기도 했다. 현재는 대표팀 사령탑을 맡고 있다.

무궁화전자와 연을 맺은 것은 2010년. 서울시청에서 플레잉 코치로 활약하던 그는 무궁화전자의 제안을 받고 팀을 옮겼다. 플레잉코치를 맡아 실질적인 감독 역할을 하며 팀의 수준을 끌어올렸다.

▲ 국가대표 생활 15년과 현 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있는 등 휠체어농구의 풍부한 경험을 자랑하는 고광엽 무궁화전자 농구단 감독은 "이제부터 해 나가는 게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창단식은 지난 7월 28일이었지만 이미 7월초부터 훈련을 시작했다. 당장 오는 27일부터 서울시청, 제주도, 대구시청, 고양시 홀트 휠체어농구팀과 함께 휠체어농구리그를 치른다. 3라운드로 각팀이 12경기씩 치르며 상위 2개팀이 챔피언결정전을 갖는다.

고광엽 감독은 “회사에서도 관심이 높다보니 관중에 대한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없고 특히 성적에 많은 신경이 쓰인다”며 “가장 잘하는 선수까지는 아니지만 팀 전력에 도움이 될 수 있는 3명을 다른 팀에서 데려왔다”고 밝혔다.

당장 가시적인 성과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실업팀으로서 성적에 대한 부담감이 따르지만 제대로된 방향을 잡겠다는 생각이다.

고 감독은 “실업팀이 됐기 때문에 무언가를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선수들의 마음가짐에도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며 “실업팀으로서는 2번째이자 장애인 기업에서는 최초의 실업팀이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우리가 얼마나 잘 하느냐에 따라 3번째, 4번째 팀이 창단될 수 있다”고 선구자 역할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오랜 전통이 있는 팀인 만큼 실업팀이 됐다고 어느 선수 하나 쉽게 내칠 수는 없었다. 고광엽 감독은 “실업팀이 됐다고 해서 선수들의 실력이 한 순간에 확 좋아질 수는 없다”며 “성적과 실력에 신경이 쓰이지만 선수들 앞에서 내색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 무궁화전자 농구단은 창단 2개월 만에 휠체어농구리그에 출전한다. 선수들은 코트에 모여 대회를 준비하는 데 여념이 없다.

이어 “기존 선수들을 중심으로 창단해 선수들을 끝까지 이끌며 최대한 잠재력을 끌어내주고 싶다”며 “다만 나쁜 습관을 줄이는데 중점을 두고 지도하고 있다. 형으로 대했던 사람이 한 순간 감독이 돼 선수들도 나를 대하기가 낯설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격을 어느 정도 두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고광엽 감독은 주장 유교식에게 지도자 연수를 받게 했다. 팀의 미래를 생각하는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부분. 그는 “당장 우승은 못해도 매 경기를 쉽게 내주지 않으려고 노력하겠다. 목표는 3위”라며 “한국 휠체어농구가 더 발전할 수 있게끔 새로운 선수들도 발굴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 ‘새 삶의 원동력’ 휠체어농구, 무궁화전자서 꽃피운다

실업팀 창단을 가장 반기는 쪽은 역시 선수들이다. 휠체어농구의 매력에 빠져서 동호인 팀에 들어왔던 이들은 직업 선수로 농구만 바라보며 살 수 있게 됐다.

구력이 10년이 넘은 베테랑 센터 서영동(36)의 결의는 남다르다. 중학교 시절 야구선수를 했을 만큼 운동을 좋아했고 운동신경도 탁월했던 서영동은 고교 1학년 때 교통사고로 장애를 입고 20세 때 처음 휠체어농구를 접했다.

보는 것과 달리 숨을 헐떡거리게 만들 정도로 격렬한 휠체어농구에 큰 매력을 느꼈다. 2004년 전문적으로 휠체어농구를 하기 위해 무궁화전자에 입사했다. 농구만 보고 선택한 결정이었다.

휠체어농구는 그에게 삶의 일부분 그 이상이다. 서영동은 “휠체어농구가 인생에 큰 변화를 가져다 줬다”며 “사고를 당하고 사람을 마주하는 게 불편했지만 농구를 하면서 사회성과 자신감이 커졌다”고 밝혔다.

▲ 베테랑 서영동은 지난해 어깨 수술 후 재활에 전념했다. 그는 어렵게 복귀한 만큼 '서영동이 돌아왔구나'라는 말을 들을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근무를 마치고 운동을 해야 했던 그에게 실업팀 전환은 그 무엇보다 커다란 기회였다. 그는 “운동량이 부족했는데 훈련량이 많아져 좋다”며 웃었다.

하지만 부담감도 따른다. “새로 들어온 선수들과 아직 손발을 맞춰가는 단계다. 기대와 부담이 공존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는 성적이 목표가 돼야 한다. 올해는 리그 첫 참여지만 좋은 성적으로 기대에 부응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서영동은 지난해 어깨 회전 근개 파열로 인대 접합수술을 받아 재활로 한해를 보냈다. 그는 “어렵게 복귀한 만큼 ‘서영동이 돌아왔구나’라는 말을 들을 수 있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평균 연령이 30세를 훌쩍 넘고 구력이 10년 넘는 선수들도 많은 팀에서 단연 도드라져 보이는 선수가 있다. 팀 창단을 앞두고 고양시 홀트에서 이적한 가드 정영준(23)이다.

서영동이 많은 활동량을 바탕으로 득점에 주력하는 자원이라면 정영준은 이를 위해 스크린 등 궂은 일을 담당한다.

▲ 무궁화전자 농구단의 막내 정영준(왼쪽)은 "팀에 도움이 되는 선수가 되고 싶다"며 "2번째 목표는 국가대표 12명 안에 드는 것"이라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고등학교 3학년 때 교통사고를 당한 이후 한 달 동안 매일 울었다는 정영준은 사회복귀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서울시청을 방문했던 게 휠체어농구를 시작한 계기가 됐다. 서울시청과 홀트에서 선수로서 실력을 끌어올렸다.

나이와 가능성을 보고 뽑힌 것이라고 겸손히 밝히는 그는 “생계 등 다른 걱정 없이 운동만 할 수 있어 좋다”며 “홀트는 조용조용한 분위기인데 무궁화전자는 오래도록 함께 뛴 선수들이 많아서 그런지 대화도 많고 파이팅이 좋다”고 새 팀에 대한 만족감을 나타냈다.

그는 “목표는 팀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선수가 되는 것이다. 2번째로는 국가대표에 뽑히고 싶다”며 “이번에는 상비군으로 발탁돼 다른 선수들의 부상으로 함께 훈련을 하고 있는데 다음에는 꼭 12명 안에 들고 싶다”고 밝혔다.

■ 무궁화전자 휠체어농구단

△ 단장 = 김기경
△ 감독 = 고광엽
△ 코치 = 홍순민
△ 주무 = 이은주, 이승학, 김지윤
△ 선수 = 유교식, 김정수, 한민수, 최호성, 방세훈, 정영준(이상 가드), 최신수(포워드), 서영동, 조현석, 한희석, 지창근(이상 센터)

[취재 후기] 한눈에 봐도 고된 훈련을 하는 선수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취미로만 즐겼던 휠체어농구를 업으로 삼을 수 있게 된 기쁨이 미소에 묻어나왔다. 하지만 그만큼 책임감이 뒤따르는 것이 현실. 서영동의 말처럼 앞으로는 성과로서 보여줘야 한다. 다만 그것이 여타 프로스포츠와 다를 것 없이 성적에만 얽매는 것이 아닌 휠체어농구의 발전을 위해 선구자적 역할을 하는 길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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