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6 23:00 (화)
[무비Q리뷰] '밀정' 속 녹슨 송곳같은 인간
상태바
[무비Q리뷰] '밀정' 속 녹슨 송곳같은 인간
  • 오소영 기자
  • 승인 2016.09.07 17: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포츠Q(큐) 오소영 기자] 만약 일제강점기를 살았다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독립투사의 길을 걸었을까, 혹은 일제의 편에 섰을까. 누구나 한번쯤은 해 봤을 상상이지만, 쉽사리 답하기는 힘든 질문이다. 

7일 개봉한 영화 '밀정'(감독 김지운)은 그 선택지 사이에 있었던 인물 이정출(송강호 분)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정출은 한때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일했던 사람이지만, 변절해 일본 경찰이 됐다. 뛰어난 능력으로 출세했고, 상부에서도 믿음을 얻는 존재다. 

그러나 이정출은 똑같이 조선인 출신인, 독립투사들을 잡아들이는 데 혈안이 돼 있는 하시모토(엄태구 분)와는 다르다. 이정출은 일본 경찰이지만 조선의 이름을 지킨 상태고, 옛 동료가 위기에 처하자 다소 안쓰러워하는 듯한 모습도 보인다.  

▲ '밀정' 이정출(송강호 분)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좀더 수월한 체포를 위해 일본 경찰로서 하는 일들인지, 혹은 옛 동료들을 정말 도와주는 것인지, 관객은 그의 알듯말듯한 행동을 쉽게 읽어낼 수 없다.

의열단장 정채산(이병헌 분)이 모종의 거래를 제안하며,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밀정'은 1923년 '황옥 경부 폭탄 사건'을 모티프로 한다. 독립운동 진영에 속했으나 변절해 일본 경부가 된 황옥이 그랬듯, 이정출은 폭탄을 경성으로 들이는 것을 도와달라는 의열단의 요구를 쉽게 거절할 수 없게 된다. 

황옥이 진심으로 의열단을 도운 것인지, 일제가 심었던 밀정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어쨌든 이정출은 인간적인 고뇌를 거치며 의열단을 돕게 된다.

아쉬운 점은 이정출이 의열단에 동조하게 된 이유가 설득력있게 그려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공감과 이해도 면에서는 아쉽지만, 이는 동시에 관객의 몫으로 남아있게 됐다. 많은 위험을 감수하고 '밀정'이 될 수밖에 없었던 조선인 이정출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며 남는 여운이다. 그가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무엇일까. 

▲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고뇌와 희생을 뛰어넘는 것은 흐릿한 양심일지도, 옛 동료에 대한 인간애일지도, 혹은 다시 찾은 나라와 민족에 대한 의무감일 수도 있다. 이 때문일까, 이정출을 보고 있자면 일제강점기와는 동떨어진 얘기지만, 웹툰 '송곳'의 대사가 떠오른다. '송곳'은 불합리한 처우를 당하고도 늘 피해자가 돼야만 했던 '우리'를 위해 용기를 내는 이야기였다. "다음 한발이 절벽일지도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도" "분명 하나쯤은 뚫고 나온다"던 송곳같은 인간. 그 모습이 자신의 밥줄을 위해 일제에 붙었던 이정출의 모습에서 어렴풋이 읽히기도 한다.

'밀정'의 영화적 시도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많은 스파이 영화가 신분 위장과 거짓말을 중심으로 긴장감을 부여했다면, '밀정'은 처음부터 서로의 존재를 까발린 후 시작되는 게임이기 때문에 그 맛이 색다르다. 느릿한 속도감 아래 진행되는 심리전과, 예상치 못한 일들을 맞닥뜨리며 복잡미묘한 감정을 겪는 송강호의 연기는 '밀정'만의 개성을 더해준다. 회색빛 고문 장면들에 들어간 밝고 경쾌한 재즈 음악의 아이러니, 영화의 시작을 책임진 배우 박희순의 연기는 인상깊다.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


주요기사
포토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