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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리뷰] 황혼의 노부부 일상 응시한 '황금연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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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리뷰] 황혼의 노부부 일상 응시한 '황금연못'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09.30 15: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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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용원중기자] '홈 드라마' '안방극장 주말극' 타이틀을 단 막장과 자극적인 이야기가 쏟아지는 시대에 잔잔한 미소와 따스한 감동을 안겨주는 작품이 대학로에서 관객과 만나고 있다. 어니스트 톰슨의 연극 ‘황금연못’은 황혼에 접어든 노부부의 일상을 통해 진정한 가족애와 소통의 문제를 길어 올린다. 1979년 미국에서 연극으로 올려진 뒤 81년 헨리 폰다, 캐서린 헵번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져 국내 관객에도 친숙하다.

80세 생일을 앞둔 깐깐하고 독선적인 대학 영문과 명예교수 노먼, 묵묵히 내조하는 발랄하고 사랑스러운 아내 에셀, 오랜 세월 노만과 서먹서먹한 관계인 딸 첼시와 그의 연인인 치과의사 빌, 빌의 아들 빌리가 노먼의 여름 별장인 뉴잉글랜드의 황금연못 저택에서 엮어가는 갈등과 화해가 극을 이끌어 간다.

 

스멀스멀 치매기운이 찾아온 노먼은 입버릇처럼 죽음을 이야기한다. 아내의 성화에 딸기를 따러 나갔다와선 겁먹은 아이처럼 “수천 번 당신과 함께 걸었던 길인데 기억이 안나. 그래서 집으로 돌아왔어. 당신의 예쁜 얼굴을 볼 수 있는 안전한 곳으로”라며 하소연을 한다.

69세의 아내 에셀은 그런 노먼과 티격태격 다투면서도 따듯하게 감싸 안는다. 자식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컸던 아버지 탓에 어린 시절의 상처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딸 첼시는 이혼한 뒤 애 딸린 남자와 유럽여행을 떠나기 전 빌리를 잠시 맡기기 위해 별장을 찾는다. 노먼은 딸의 방문에 내심 반색하고, 유럽여행 도중 딸이 결혼식을 올렸다는 소식을 전하자 평생 입에 올리지 않았던 “축하한다”는 말까지 꺼내 놓는다. 심지어 피 한 방울 안 섞인 당돌한 빌리와 낚시를 다니는 등 살뜰하게 보살핀다.

극의 대부분은 황금연못 별장에 머무는 노부부의 일상으로 채워져 있다. 인생의 만년에 다다른 부부의 여유로움과 서로에 대한 이해는 대사 곳곳에 묻어나며 깊은 통찰과 위트에 주억거리게 한다. 아버지로서 완전하지 못했던 한 남자의 자식을 향한 화해의 손 내밀기, 세대를 초월한 노인과 소년의 교감은 핏줄로 엮이지 않았더라도 얼마든지 가족이 될 수 있음을, 역으로 피로 엮였더라도 가족보다 못한 남남으로 살아갈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한국의 대표적인 원로배우 이순재, 신구가 노먼 역을 맡아 엄청난 양의 대사를 쏟아내며 연기투혼을 불사른다. 중견 여배우 나문희와 성병숙이 소녀처럼 사랑스럽고, 든든한 버팀목 노릇을 하는 아내이자 엄마 에셀을 연기한다. 노배우들의 관록의 연기를 보는 재미는 각별하다. 이순재-나문희, 신구-성병숙 커플의 연기 느낌을 비교하는 맛도 클 듯싶다.

▲ '황금연못'의 신구와 나문희[사진=수현재씨어터 제공]

반면 단조로운 아쉬움은 있다. 드라마틱한 서사의 작품이 아닌 만큼 캐릭터의 다채로움이 드러나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기 때문이다. 과거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노배우 헨리 폰다와 특히 아내 역 캐서린 헵번이 보여줬던 다양하고 매력적인 얼굴이 자꾸 생각나지 않을까 싶다.

다소 밋밋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황금연못’의 보편적 인물과 설정이 함축한 가치는 훼손되지 않는다. 평균수명이 길어지고, 전통적 가족개념이 해체되며 비혼 및 1인가구가 급속도로 늘어가는 요즘 시대에 더욱 빛을 발하는 덕목이기 때문이다.

또 한 번의 여름이 가고, 첼시 가족과 전화통화를 마친 노부부는 황금연못을 떠나기 전 창가에 서서 호수 위의 물오리를 바라본다. 에셀은 나즉한 목소리로 “두 마리뿐이에요. 새끼들은 다 커서 날아가 버렸나 봐요”라고 말한다. 창밖을 응시하는 노먼과 에셀의 굽은 뒷모습과 함께 진한 여운을 남기며 연극은 막을 내린다.

11월 23일까지 서울 DCF 대명문화공장 1관 비발디파크홀. 문의: 02)766-6506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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