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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현장] '머나먼 1승' 여자 럭비, 그래도 미래를 '트라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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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현장] '머나먼 1승' 여자 럭비, 그래도 미래를 '트라이' 한다
  • 민기홍 기자
  • 승인 2014.09.30 19: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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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일본-중국에 연패 '0득점-133실점'...주장 서미지 "내일이 첫승하는 날"

[인천=스포츠Q 글 민기홍·사진 최대성 기자] 한국 럭비는 우수하다.

럭비가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이래 한국 럭비대표팀은 금메달 4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를 따냈다. 일본(금 2, 은 3)을 제치고 아시안게임 럭비 최다 메달을 획득한 국가가 바로 한국이다.

남자 럭비 이야기다. 하지만 여자의 상황은 너무나도 다르다.

현재 대표팀의 선수 중 다수가 휴학중인 대학생이다. 태권도, 핸드볼 등 다른 종목을 하다가 럭비로 전향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올해 6월까지만 해도 이들은 기초 체력이 부족해 전술 훈련은 꿈도 못 꾸던 선수들이었다. 이제 갓 룰을 익힌 선수도 있을 정도다.

▲ 한국 선수들은 월등한 기량차가 나는 일본에 덜 실점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제17회 인천 아시안게임 럭비(7인제)가 시작된 30일 인천 남동아시아드럭비경기장. 한국은 여자 A조 싱가포르를 상대로 첫 결전을 가졌다.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2관왕(15인제, 7인제) 출신의 용환명(42) 감독이 지휘하는 한국 럭비 여전사들은 그토록 염원했던 첫 승전고를 울리기 위해 힘차게 피치를 밟았다.

럭비는 2009년, 92년만에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널리 알려진 럭비는 15인제인데 반해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은 7인제 럭비다. 전,후반 7분과 휴식시간 2분으로 경기시간이 채 20분도 되지 않는다. 한 팀이 하루에 3경기까지씩 치른다. (15인제 럭비는 전,후반 40분, 휴식시간 10분이다)

10개국이 2개 조로 나뉘어 조별리그를 치르는 가운데 한국 여자 럭비대표팀은 이날 싱가포르, 일본, 중국을 상대로 차례로 3경기를 가졌다.

▲ 주장 서미지는 싱가포르전에서 투혼을 발휘하다 갈비뼈 부상을 당했다.

◆ 우여곡절, 처절한 도전 5년사

여자 럭비는 2010년 광저우 대회부터 정식종목으로 편입됐다.

대한럭비협회는 부랴부랴 공개모집을 통해 팀을 꾸렸다. 2010년 8월 기자, PD, 대학생 등로 구성된 ‘1기 대표팀’이 출범했다. 그들은 고작 3개월간 훈련 후 아시안게임이라는 큰 무대에 나섰다.

역사적인 첫 경기에서 중국에 0-51로 패한 한국은 태국에 0-48, 홍콩에 0-36으로 져 조별리그 전패를 당했다. 8강전에서 카자흐스탄을 상대로도 0-52로 완패했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결과였다.

4경기 동안 한 점도 뽑아내지 못한 한국은 5~8위 순위결정전인 싱가포르전에서 5-31로 졌지만 역사적인 첫 득점을 하는 쾌거를 이뤘다. 7~8위전에서는 인도에 10-21로 경기를 내줬다.

15점을 힘겹게 거두는 동안 내준 점수는 무려 239점이었다.

▲ 싱가포르전에서 후반 교체 투입된 서보희는 "준비했던 것을 다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꾸준히 노력한 결실은 이듬해 나타났다. 2011년 11월 인도 푸네서 열린 아시아 여자7인제럭비대회에서 라오스를 17-12로 꺾으며 공식 대회 사상 첫 승을 거뒀다.

그러나 해체와 소집이 반복되며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했다.

이번 대표팀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3월 대표 선발전을 통해 8명을 발탁했고 4월이 돼서야 상비군 18명이 소집됐다. 지난 4년간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춘 멤버가 없어 좀처럼 경기력이 올라올 수 없었다.

현재 여자 럭비 실업팀은 한 팀도 없다. 지난 3월 국내 최초로 수원여대가 럭비단을 창단해 그나마 숨통을 틔웠을 뿐이다. 12명의 대표 선수 중 수원여대 소속이 4명, 대한럭비협회 소속이 8명이다. 8명은 그냥 학생일 뿐이다.

◆ 머나먼 첫승, 여전히 높은 벽 

20분이 쏜살같이 흘렀다.

그들은 서럽게 울면서 그라운드를 빠져나와야만 했다. 여전히 국제무대의 벽은 높았다. 대표팀 막내 이주연(18)은 “평소에 장난치며 밝게 웃던 언니들이 서로 잘못했다고 하며 속상해하는 걸 보니 정말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 김동리가 30일 인천 남동아시아드 럭비경기장에서 열린 일본전에서 상대 수비수의 강력한 태클을  돌파하려 하고 있다.

한국은 싱가포르전 전반에만 2번의 트라이를 허용하며 0-19로 패했다. 꼭 이겨야겠다는 부담감 때문인지 몸이 무거워보였다. 후반 들어 반격을 다짐했지만 좀처럼 상대 수비를 뚫지 못했다. 내심 싱가포르는 해볼만한 상대로 생각했기에 돌아온 실망감이 컸다.

후반 교체 출전해 죽을 힘을 다해 싸웠다는 서보희(22)는 “첫 경기라 긴장을 많이 했다. 싱가포르를 잡는 것이 목표였다”며 “우리가 하려던 것, 연습했던 플레이를 다 못 했다. 무엇보다 득점을 못해서 아쉽다”고 밝혔다.

서미지(23)는 “싱가포르 선수들에게 키나 몸무게나 신체적으로 뒤질 것이 없어서 해보자고 자신있게 갔는데 노련미에서 졌다”며 “차라리 싱가포르전이 나중에 잡혔다면 양상이 달라지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3시간 휴식 후 그들은 2차전을 치렀다. 상대는 광저우 대회에서 4승2패를 기록한 강호로 언제든 메달권에 들 수 있는 실력을 갖춘 일본이었다.

역부족이었다. 초반부터 일본의 거센 공격에 당황한 한국은 하프라인조차 넘지 못했다. 일본의 조직력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전반을 0-17로 뒤진 태극낭자들은 후반 들어 33점을 더 내주며 0-50으로 패했다.

광저우 대회 준우승국 중국도 한국에는 높은 벽이었다. 전반전 31점, 후반전 33점을 내주며 0-64로 졌다.

◆ 첫승은 내일입니다! 지켜봐주세요! 

일본전 대패 후에도 ‘캡틴’ 서미지는 당당했다. 싱가포르전에서 입은 갈비뼈 부상으로 일본전을 건너뛴 그는 “주장까지 울게 되면 다른 선수들이 더 속상해한다”며 “우리들은 잘 싸웠다. 다음이 있기 때문에 기죽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서미지는 “작년에 싱가포르와 붙어 30점차 넘게 대패했는데 오늘 격차를 반으로 줄였다”고 귀띔하며 “불과 몇 개월 새 이야기다. 열심히 훈련해 이런 결과를 낸 것을 보면 한국 여자 럭비가 가능성이 있다는 것 아니겠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김동리(가운데)가 일본 공격진에 강한 태클을 가하고 있다.

연패를 기록한 여자팀과는 달리 남자팀은 레바논에 38-7, 대만에 35-12로 연승을 거뒀다.

서미지는 오빠들의 경기를 보며 “주변에서 모두들 한국 여자 럭비가 뒤지는 것은 신체적, 정신적인 부분이 아니라 환경이 문제라는 이야기를 하신다”며 “지속적으로 훈련할 수 있는 여건만 마련된다면 4년 후 우리도 다른 나라를 잡을 수 있다‘고 자신감을 내보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기자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우리 우즈벡한테 이길 겁니다. 첫승은 내일입니다. 꼭 써주세요!”

승부의 결과와 관계없이 서미지와 대표팀 선수들의 투혼과 열정만큼은 승리보다도 값져 보였다.

우즈베키스탄은 4년 전 아시안게임에 출전하지 않았다. 한국이 충분히 해볼만한 상대다. 서미지가 바라는대로 여자 럭비대표팀이 30일 예선 마지막 경기 우즈베키스탄전에서 염워하던 1승을 거둘 수 있을까. 1일 오전 그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sportsfactory@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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