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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락(樂) 개론] 지옥에서 천당? 배구가 '흐름의 스포츠'인 이유(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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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락(樂) 개론] 지옥에서 천당? 배구가 '흐름의 스포츠'인 이유(下)
  • 최문열
  • 승인 2016.09.22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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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최문열, 이세영 기자] 2016리우올림픽 배구 종목에서는 값진 기록이 추가됐다. 선수와 감독으로서 금메달을 목에 건 이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올림픽 배구 종목에선 처음 있는 개가였는데 그 주인공은 중국여자배구대표팀의 랑핑 감독(56)이다.

랑핑 감독은 84년 LA대회에서 선수로 금메달을 거머쥔 뒤 2016리우대회에서는 감독으로 금빛 스파이크를 맛보는 희열을 만끽했다. 그는 96애틀랜타, 2008베이징대회에서도 도전했으나 은메달에 그쳐 진한 아쉬움을 남긴 바 있다.

▲ 중국여자배구대표팀의 랑핑 감독은 선수로서는 84LA올림픽, 그리고 감독으로서는 2016리우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어 올림픽 배구 사상 처음으로 선수와 감독으로 챔피언에 오르는 개가를 올렸다. [사진 = 국제배구연앵 제공]

2016리우대회에서 랑핑과 함께 이 기록에 도전한 이는 또 있다. 미국여자배구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은 카크 키랄리다. 키랄리는 배구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84LA, 88서울올림픽에서 2연속 금메달을 딴 그는 96애틀랜타대회 비치발리볼에서 우승, 실내(indoor)와 실외(beach)를 최초로 동시 제패한 인물이다. 그는 이번 리우대회에서 감독으로 우승에 도전했으나 4강전에서 세르비아에 2-3의 일격을 당해 3~4위전으로 밀렸고 거기서 네덜란드를 3-1로 이겨 체면치레했다.

미국이 강호들이 즐비한 ‘지옥 조’에서 5전승을 거두고 조1위로 8강에 진출하는 등 잘 나가다 덜컥 했다면 중국은 같은 조에서 2승3패로 초반 부진하다 기사회생한 경우다.

조금 과장하면 랑핑은 지옥에서 천당으로 날았고, 카크 키랄리는 천당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셈이다. 그들의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린 이유는 무엇일까?

# 배구는 ‘선수 위주의 경기’(player-dominated game)다

국내 V리그를 TV로 시청하다보면 배구감독이 자기 팀 선수의 어이없는 실수를 보고 허허 웃음만 짓는 것을 간혹 볼 수 있다. 한마디로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다. 또 서브리시브와 토스 등 팀의 기본 능력이 난조에 빠질 때 작전타임을 불러 선수들에게 정신 차리라고 지적하거나 자기가 할 것을 잘 해주라는 식의 주문만 되풀이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왜냐하면 배구는 ‘선수 위주의 경기’(player-dominated game)의 성격이 짙기 때문이다. 감독이 경기를 치르는 동안 강력하고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감독 위주의 스포츠’들(coach-dominated games)과는 사뭇 다르다. 그것은 배구가 경기 중 감독의 제한적인 접촉만 허용한다는 이유도 있지만 조직력 중심의 스포츠여서 평소 훈련에서 모든 것을 준비하고 당일 시시각각 변하는 상대 전략은 선수들에게 맡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현역시절 올림픽 실내(indoor)와 실외(beach) 무대를 사상 첫 동시 제패한 카크 키랄리는 2016리우올림픽에서는 미국여자배구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감독으로 금메달에 도전했으나 초반 잘 나가다가 덜컥 하는 바람에 아쉽게 동메달에 그쳤다. [사진 = 국제배구연맹 제공]

배구는 조직력을 바탕으로 한 ‘약속된 플레이’를 갖고 경기에 임한다. 선수 전원이 그 약속된 플레이를 한 치의 오차 없이 펼치면 힘을 받는다. 그 이상을 해준다면 무서울 게 없다. 이와 반대로 약속된 플레이를, 한 선수가 아닌 두 명 또는 세 명 이상의 선수가 제몫을 하지 못한다면 그 때는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날마다 꾸준히 연습한 것이 안 될 때 심지어 평소 잘 하던 선수가 한순간에 리듬을 잃는다면 감독으로선 속수무책이 아닐 수 없다.

참고로 배구의 깊은 맛을 잘 알지 못하는 일부 팬들은 세트플레이가 너무 빤하다며 배구의 단조로움을 지적하곤 한다. 하지만 배구전문가들은 가동할 수 있는 공격자 및 블로커의 수와 위치, 그에 따른 수비영역 등 배구의 조합은 무한하다고 말한다. 강팀들은 상대팀의 전력과 그날의 경기 흐름에 따라 다양한 전술 전략의 변화를 꾀한다. 그것은 공격과 블로킹, 수비 전술의 변화를 망라하며 그만큼 유연해 상대를 혼선에 빠뜨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 오락가락 변덕스러운 기세 싸움 그리고 ‘멘탈’ 싸움

‘배구에서는 경기흐름의 기세(momentum)가 매우 중요하며, 경기흐름의 상승세는 한 팀에서 다른 팀으로 빠르고 쉽게 옮겨간다.’

1980년 대 미국남자배구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덕 빌 감독의 말이다. 배구를 즐겨 보는 팬이라면 실로 공감할 수 있는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경기흐름을 어떻게 해야 가져올 수 있을까? 그것은 시너지효과를 낼 때 가능하다. 시너지란 쉽게 말해 1+1= 3이상의 효과를 말한다. 여럿이 합심해서 그 숫자 이상의 에너지를 발휘하는 것이다. 선수 전원이 단단한 팀워크를 발휘해 최상의 전력을 뽐낸다면 가능하다.

사실 코트에서 뛰는 선수는 누가 잘하고 누가 못했는지 매 순간 감지한다. 그것에 따라 힘이 나기도 하고 힘이 빠지기도 한다. 배구는 그 연속의 과정이다.

선수들이 힘이 날 때에는 언제일까? 절대 불리와 열세를 극복 할 때다.

▲ '이렇게 좋을 수가!' 중국여자배구대표팀이 2016리우올림픽 여자배구 챔피언에 오른 뒤 얼싸안고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예선에서 2승3패로 부진하다 극적으로 기사회생한 경우여서 그 감동을 더했다. [사진 = 국제배구연맹 제공]

일반적으로 배구 경기에서는 수비에 비해 공격이 우위라고 본다. 서브권을 쥐었을 때 상대가 공격에 성공해 서브권을 가져갈 확률이 높다. 왜냐하면 서브리시브만 잘 되면 공격수 숫자가 4명이나 돼 상대 블로커 3명을 따돌리는 것은 쉽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배구는 다른 종목과 달리 공격이 아닌 수비를 통해 득점을 얻는다. 수비에 의한 반격으로 득점을 하게 되면 상대팀의 1점을 막는 것과 함께 우리 팀이 1점을 더하기 때문에 2점의 효과를 볼 수 있다고 간주한다.

결정적인 서브에이스 한방에 다들 신이 나는 것은 그래서다. 상대의 득점 기회를 빼앗는 동시에 득점했으니 2점, 아니 그 이상의 효과를 본 셈이다. 2점 이상이라고 한 것은 상대의 서브리시브 라인을 더욱 불안케 해 또 다른 실수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블로킹 득점도 서브에이스 효과에 못잖다. 특히 1인 블로킹 득점일 때 그 짜릿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공격수가 1-1 원 블로커 상황에서는 해결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1인 블로커가 상대의 속공을 깔끔하게 막아냈다면 불리를 극복한 경우다. 만일 2인, 3인 세트 플레이 공격을 원 블로커로 잡아냈다면 그 쾌감은 갑절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의미에서 노 블로킹 상황의 스파이크를 걷어 올리는 멋진 디그도 우리 팀의 기를 팍팍 살린다. 공격수가 이단 토스 등의 나쁜 볼을, 상대의 2인 또는 3인의 견고한 벽에도 아랑 곳 없이 깔끔하게 해결해 준다면 이 또한 발을 가볍게 한다.

상대의 강서브가 상당히 위력적인데도 서브리시브 - 토스 – 스파이크로 연결되는 과정에서 볼 컨트롤이 살아나면서 정상적인 플레이를 하면 덩달아 흥이 솟는다.

이럴 경우 상대 팀은 정 반대로 입맛을 쩝쩝 다시게 된다.

이처럼 불리한 상황을 극복하고 득점할수록 힘이 솟는다. 하지만 간혹 우리도 잘 하는데 상대가 더 잘 할 때에는 ‘기 싸움’에서 밀리게도 된다. 그 경우의 수는 다양하다.

특히 배구 선수의 경우 상대 팀과 겨루기도 하거니와 자신의 플레이를 자체 평가한다. ‘자신이 할 것을 제대로 했는가?’라는 절대적인 평가다. 상대 팀과 무관하게 기술 수행의 성공여부를 면밀하게 점검한다. 모두가 자기 것을 잘하면 이기는 것은 어렵지 않은 까닭이다.

배구에서 남과의 싸움보다 자기 능력 발휘 등 자신과의 싸움을 중요하게 여기며 강한 정신력이나 심리상태를 기본 자질 중 하나로 꼽으며 강조 또 강조하는 것은 그래서다. 랠리포인트제 도입은 매 순간 선수 전원에게 고도의 집중력과 몰입을 요구하고 있다.

결국 오묘한 ‘배구 흐름 싸움’의 본질은 팀 전원이 벌이는 자신과의 싸움과 맥을 같이 한다.

 

*배구락(樂) 개론 다음 편에서는 ‘배구 선수들의 은밀한 몸’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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