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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메달에도 "후회는 없다", 수구 '짐승남'들의 희망 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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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메달에도 "후회는 없다", 수구 '짐승남'들의 희망 찬가
  • 민기홍 기자
  • 승인 2014.10.02 10:29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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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수 감독, "한국 수구 발전 확인, 국제 경험 갖추면 경쟁력 생긴다"

[인천=스포츠Q 글 민기홍·사진 이상민 기자] 메달은 없었지만 누구도 실망하지 않았다. 연이어 대패했지만 한국 수구는 밝은 미래를 꿈꿀 수 있었다.

안기수 감독이 이끄는 한국 수구대표팀은 지난 1일 인천 드림파크수영장에서 열린 제17회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 수구 동메달 결정전에서 중국에 6-14로 패해 4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한국은 전날 4강전에서 일본과 3피어리드까지 9-10으로 대등한 경기를 펼쳤으나 4피리어드에서 내리 7실점을 허용하며 3·4위전으로 밀려났다. 이날 경기에서도 전반까지는 3-4로 접전을 벌였으나 후반 스코어 3-10으로 무너지며 메달 꿈을 접어야만 했다.

▲ 한국 수구는 24년만의 메달 획득을 목표로 훈련해왔다. 그러나 중국, 일본, 카자흐스탄 3강 구도를 깨는데는 실패했다.

이번 대회에는 한국을 비롯해 카자흐스탄, 일본, 중국, 홍콩, 인도네시아, 우즈베키스탄, 이란, 필리핀, 태국, 싱가포르 등 10개국이 참가했다. 카자흐스탄, 일본, 중국 아시아 3강이 예상대로 준결승에 합류했다. 틈새를 노려 대이변을 연출하려던 한국은 준결승까지는 순조롭게 올라갔지만 또 다시 메달 꿈을 접어야만 했다.

세 나라의 벽은 여전히 높았다.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카자흐스탄에 12점차(6-18), 준결승에서 일본에 8점차(5-13), 이날 역시 8점차 패배를 당했다. 세 팀을 상대로 경기당 평균 9.3점차로 경 패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당당히 웃었다.

이유는 무엇일까.

◆ 24년, 그 처절한 도전사 

▲ 선방쇼를 벌인 이승훈은 이번이 첫 국제대회 경험이었다. 그는 "내년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는 더 나아진 모습을 벌일 것"이라고 다짐했다.

한국 수구는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처녀 출전해 은메달을, 1990년 베이징 대회에서 동메달을 따냈다. 이후부터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카자흐스탄의 등장과 복병 이란, 싱가포르에 점차 밀리기 시작했다. 간혹 아시아선수권 등에서 3위에 오르긴 했지만 아시안게임 메달은 멀기만 했다.

1994년 히로시마 대회에 1승4패로 6개 참가국 중 5위, 1998년에는 불참, 2002년 부산에서는 2패로 조별리그 탈락, 2006년 도하 대회 3승3패로 7위에 그쳤다. 2010년 광저우 대회에서는 아쉽게 4위에 그치며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이번 인천 대회 목표는 동메달이었다.

▲ 선수들이 경기를 앞두고 집합해 결의를 다지고 있다.

시스템이 없었던 한국 수구는 2011년 진천선수촌에 입촌하며 급격한 발전을 이뤄냈다. 안 감독은 어깨너머로 외국팀의 훈련 방법을 참고하고 책과 동영상을 모조리 뒤져 세계 수구 흐름을 학습했다.

모여서 우르르 헤엄치고 공을 주고받던 수준이던 대표팀은 안 감독의 절실함 속에 포지션별로 특화된 훈련을 받았다. 선수촌에 상주하는 전문 트레이너들의 관리까지 더해지자 무럭무럭 성장했다.

매일 8시간에 걸친 강훈련과 지난 4월 호주 전지훈련을 통해 자신감도 키웠다. 1~2년 전 호주 국가대표가 아닌 클럽팀에도 번번이 패하던 예전과는 달리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이며 승리하는 법을 알아갔다.

◆ 4년만의 첫 A매치,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

“조금 더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이 정도면 만족합니다.”

안 감독은 전혀 주눅들지 않았다. 잘 싸워준 선수들이 기특하다며 “이제부터가 한국 수구의 진짜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 정주화는 3골을 터뜨리며 분전했다. 그는 "일본과의 격차가 많이 줄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회"였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수구 1세대다. 30년 전의 짜릿했던 기억은 그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선수 시절인 1984년 제2회 아시아수영선수권대회에서 획득했던 금메달의 여운은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한국 수구의 부활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는 것이 그의 마음가짐이다.

안 감독은 “뒷심이 부족해 일본과 중국의 벽에 막혔지만 경기력이 많이 올라왔음을 확인했다”며 “어려운 여건 속에서 강팀을 상대로 준결승과 오늘 경기를 잘 치러준 선수들에게 고맙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 대표팀의 맏형 김원민은 "오늘 경기를 마음 속에 기억하고 운동에 임할 것"이라는 소감을 밝혔다.

한국은 2010년 광저우 대회 결선에서 중국에 9-22로, 일본에 5-19로 패했다. 13점차, 14점차가 각각 8점차로 줄어든 것이다. 4년 새 놀라운 발전이다. 전날 일본을 상대로는 전반까지 5-4로 앞서며 잠시나마 대이변 연출의 기대를 품게끔 했다.

안 감독은 “전반은 잘 치르고도 3,4피리어드만 가면 체력적인 문제로 시야가 좁아진다. 경기가 진행될수록 실전 경험이 부족한 것이 드러난다”며 “이는 경험이 없어 생기는 어쩔 수 없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안 감독은 “경기장을 찾아 직접 관람하신 분들은 수구의 매력이 무엇인지를 아실 것”이라며 “수구는 남자답고 와일드한 매력이 넘치는 스포츠다. 국민들께서 관심을 갖고 지켜봐주신다면 더욱 도약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 “할 만큼 했다, 후회는 없다” 한목소리

대표팀의 유일한 유부남인 주장 김원민(31·강원수영연맹)은 “13명 모두가 최선 다했다. 결과에 대해 부족함을 인정한다”며 “기회는 또 온다. 두고두고 오늘 경기를 생각하면서 운동하겠다. 내가 안되면 제자를 키워서라도 일본 한 번 이겨보겠다”며 웃었다.

▲ 한국 수구대표팀 선수들이 경기를 위해 한꺼번에 물 속으로 뛰어들고 있다.

홀로 3골을 터뜨리며 분전한 정주화(29·경북수영연맹)는 “후회 없이 잘 싸웠다. 체력이 부족해 무너졌다”고 경기를 돌아봤다. 일본 클럽 브루봉 워터폴에서 활약중인 그는 “우수한 선수들과 함께 뛰어 우리 선수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잘 안다. 일본전을 통해 2~3년새 한국 수구가 급격히 발전한 것을 느꼈다”고 전했다.

중국의 파상공세를 수차례 막아낸 골키퍼 이승훈(26·경기도체육회)은 “선수들이 하나 되어 준비를 잘 했다. 성적에 대한 아쉬움이 없진 않지만 내용에 만족한다”며 “아시안게임이라는 큰 대회를 통해 좋은 공부를 했다. 내년 개최되는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를 향해 달려가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이선욱(27·경기도체육회)은 “생각보다 잘한 것 같다. 예전보다 월등히 성장했음을 느낀 대회”라며 “20점 넘게 허용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는데 격차가 많이 줄었다. 경기 내용은 더욱 좋았다”고 설명했다.

◆ 마지막 퍼즐은 ‘실전 경험’, 희망이 보인다 

▲ 안기수 감독은 "국제대회 경험이 턱없이 부족한 우리가 일본, 중국을 상대로 잘 싸웠다"고 대회를 총평했다.

현재 국내 수구팀은 고교부에 8개, 대학일반부에 6개가 있다.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종목이며 전국체전에서도 굳건히 정식종목으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다.

한국 수구 발전의 마지막 퍼즐 한 조각은 ‘국제대회 경험’이다.

선수들은 “실전 경기수가 부족해서 열심히 한다고 해도 후반으로 갈수록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며 “국제경기에 나가서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중국, 일본은 매년 월드리그를 비롯한 해외 대회에 출전하는데 반해 한국은 3,4년에 한 번 꼴로 국제대회를 치를 뿐이다. 마지막 힘에 부쳤던 것도 경험의 문제였다. 한국은 4년만에 처음으로 A매치를 치렀다.

안 감독의 말에 따르면 경기장을 찾은 이기흥 대한수영연맹 회장이 한국 수구의 발전을 위해 1년에 한 번꼴로 국제 경험을 쌓아보자며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대학생 선수들은 벌써 내년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를 바라보며 희망을 품고 있다.

▲ 한국 선수들이 경기에 앞서 어깨동무를 하고 필승을 다짐하고 있다.

대표팀 선수들은 “우리보다 한 클래스 위의 선수들인 일본과 카자흐스탄 경기를 보고 공부해야 한다”며 수영장 3층 스탠드에 자리를 잡고 날카로운 눈으로 결승전을 주시했다. 혈투 끝에 카자흐스탄이 일본을 7-6으로 잡고 대회 2연패에 성공했다.

‘짐승남’들은 이제 각자 소속팀으로 흩어져 다음달 제주특별자치도에서 개최되는 전국체육대회 준비에 나선다.

▲ 한국 수구 '짐승남'들은 하나같이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sportsfactory@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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