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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Q] '밀정' 송강호, "좌파배우? 그런 정치적 잣대로 영화 선택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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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Q] '밀정' 송강호, "좌파배우? 그런 정치적 잣대로 영화 선택하지 않아"
  • 원호성 기자
  • 승인 2016.09.30 07: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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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자 Tip!] '국민배우'라는 호칭은 한 때 한 시대를 풍미한 대배우 안성기를 지칭하는 트레이드마크였다. 그렇다면 안성기의 뒤를 이어 '국민배우'의 타이틀을 가져갈 배우는 누가 있을까? 2000년대 이후 한석규, 최민식, 설경구, 황정민 등 여러 배우들이 '국민배우'로 거론되기도 했지만, 지금 시점에서 '국민배우'라고 불릴 수 있는 단 한 명의 배우가 있다면 역시 송강호가 아닐까?

[스포츠Q(큐) 원호성 기자] 송강호에게 봉준호 감독의 '괴물' 이후 두 번째 '천만영화'의 타이틀을 안겨준 양우석 감독의 '변호인'이 그랬듯이, 김지운 감독의 '밀정'은 '변호인' 이후 '국민배우'라는 타이틀을 확고하게 굳혀 나가는 송강호에게도 의미 있는 작품이었다.

김지운 감독의 '밀정'은 일제강점기 시절 중 의열단에 의한 항일 무장독립투쟁이 활발하게 이어지던 1920년대를 배경으로, '황옥 경부 폭탄 사건'에서 그 모티브를 가져온 작품이다. 사건의 주인공이기도 한 황옥 경부는 영화 '밀정'에서 송강호가 연기한 '이정출'처럼 일본경찰의 신분이지만, 공유가 연기한 '김우진'의 모티브가 된 의열단원 김시현과 만나며 독립운동에 가담하게 되는 인물이다.

영화 '밀정' 송강호 [사진 = 워너브라더스 제공]

송강호에게 '밀정'이 의미가 있는 작품이란 것은 바로 조선인이면서 일본경찰로 활동하는, 즉 매국노라고 해도 할 말이 없는 인물인 '이정출'이 결국 조국의 독립을 위해 투신하는 이런 모습을 통해 시대적 대의를 강조하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비단 '변호인'만이 아니라 '살인의 추억', '괴물', '설국열차', '관상' 등 지금의 우리 사회에 전하는 메시지가 진한 영화들에 출연해왔던 송강호의 필모그라피를 생각하면 참 잘 어울리는 영화다.

◆ "밀정이 누구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밀정이 존재할 수 밖에 없었던 시대가 중요해"

일제강점기를 그린 영화들은 대부분 '조국광복'이라는 시대적 염원을 그대로 스크린에 옮겨내며 뜨겁게 불타오르는 경우가 많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면서 일제의 폭압과 횡포를 그리기보다 순수하게 그 시대를 살아간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백하게 그려낸 몇몇 영화들도 있었지만, 이런 영화들의 대부분은 '친일영화'라는 논란을 일으키며 지탄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김지운 감독의 '밀정' 역시 보고나면 그렇게 가슴이 뜨겁게 달궈지는 영화는 아니다. 2015년 개봉한 최동훈 감독의 '암살'이 일제강점기 시절 항일무장독립투쟁에 나선 이야기를 뜨거운 가슴으로 그려낸다면, 김지운 감독의 '밀정'은 의열단의 종로경찰서 폭탄투척사건과 황옥경부 폭탄사건이라는 뜨거운 사건들을 열기의 중심에서 한 발 비켜서서 차갑고 냉정하게 바라본다.

'밀정'이 뜨겁게 달궈지지 않고 차갑게 느껴지는 것은 송강호가 연기한 주인공 '이정출'의 캐릭터가 큰 역할을 한다. 이정출 자신이 조선인이면서 일본경찰이고, 일본경찰이면서 의열단원이라는 애매한 포지션에 서 있게 되면서 '조국광복'이라는 대의(大義)에 불타는 뜨거운 인물이 아닌, 양쪽을 모두 냉정하게 바라보는 어느 정도는 중립적인 인물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정출은 모호한 인물이죠. 색으로 치면 회색을 지닌 인물이라고 할까? 그 점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와닿았어요. 그 시대의 인물들이라고 하면 불타는 붉은색이나 시대에 절망한 좌절을 의미하는 검은색이 주로 그려졌는데, 회색이라는 점이 강하게 와닿았죠."

영화 '밀정' 송강호 [사진 = 워너브라더스 제공]

"이정출이라는 인물은 임시정부에서 잠시 일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일본경찰로 일본의 앞잡이가 된 사람이에요. 그리고 조선인이면서 일본경찰로 독립군과 의열단을 추적하고 하는 일을 하며 본인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갈등을 여러 단계로 겪게 되죠. 이정출이라는 인물이 마지막에 '김우진'을 돕는 것에 대해 개연성이 아쉽다는 말도 들었어요. 그런데 '밀정'에서 이정출의 변심에 대한 개연성을 주는 것은 영화의 이야기를 작게 만드는 결과가 되지 않았을까요? 이정출에게는 임정활동을 하던 동료의 죽음을 눈앞에서 보게 되며 생긴 마음의 빚도 있었을테고. 이정출의 개연성은 그렇게 영화를 통해 겹겹이 쌓여가며 완성되는 것이지, 특정 사건이 계기가 되어 변하면 영화의 스케일을 작게 만든다고 봤어요."

송강호의 이야기처럼 '밀정'은 '이정출'이라는 인물이 '어떻게' 독립운동을 하게 됐느냐가 아니라 '왜' 독립운동을 하게 됐느냐에 이야기의 초점을 맞춘다. 만일 김지운 감독이 '왜'가 아닌 '어떻게'에 중점을 뒀다면 송강호가 연기한 '이정출'이라는 인물의 이름도 '이정출'이 아닌 실존인물인 '황옥'이 되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김지운 감독은 '밀정'의 주인공으로 '황옥'이나 '김시현'처럼 실존인물이 아닌 '이정출'과 '김우진'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선택한다.

"'밀정'은 실제 인물, 실제 사건을 모델로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황옥'이라는 실제 인물의 일대기를 그리는 영화가 아니에요. '이정출'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일제강점기를 살아간 수많은 회색빛 인물들을 이야기하며 시대의 아픔을 그리는 영화죠."

"'밀정'은 영화의 이야기가 이분법적이지 않다는 점도 좋았어요. 우리는 그 시대를 친일(親日) 혹은 항일(抗日)로 뚜렷하게 구분하지만, 실제로는 친일과 항일 중 명백하게 한 노선을 택하지 않고 중간에서 갈등하고 고뇌하는 사람이 많았겠죠. '밀정'은 그 시대의 수많은 혼돈과 혼란을 배경으로 해서 역설적으로 아픈 역사를 말해주는 영화예요. 그래서 '밀정'에서 중요한 것은 밀정이 누구냐가 아니라 밀정이라는 아픔이 존재할 수 밖에 없었던 시대라는 것이죠."

영화 '밀정' 송강호 [사진 = 워너브라더스 제공]

◆ "내가 좌파배우? 작품으로 선택하는 것이지, 좌파냐 우파냐를 생각하고 선택한 적은 없어"

2013년 영화 '변호인'이 개봉하고 난 후 송강호는 한동안 '좌파배우'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영화 '변호인'이 1981년 벌어진 대표적인 용공조작사건인 '부림사건'을 영화의 주된 사건으로 그리고 있고, 송강호가 연기한 변호사 '송우석'이 부림사건을 통해 인권변호사의 길로 접어들게 된 故 노무현 前 대통령을 모티브로 하고 있는 인물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게다가 송강호가 '좌파배우'라는 의혹은 마침 2013년의 절묘한 시대적 배경이 겹쳐지며 더욱 큰 논란으로 다가왔다. 당시 대표적인 우파 경향의 한 사이트가 온라인에서 영향력을 키워가던 시기라 송강호가 좌파배우라는 논란을 더욱 부채질했다. 

게다가 송강호 역시 8월에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 9월에 개봉한 한재림 감독의 '관상'이 연이어 900만 관객을 돌파하고, 12월에 개봉한 '변호인'이 천만영화의 반열에 오르며 세 편을 합쳐 3000만에 육박하는 경이적인 흥행을 기록하며 배우로서 최절정의 시기를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차기작의 출연이 빨리 결정되지 않자 외압설이 나돌기도 했다. '변호인'에서 故 노무현 대통령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를 연기한 것으로 인해 정권의 역린(逆鱗)을 건드렸고, 이로 인해 영화 출연에 제약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제가 좌파배우냐고요? 작품 하나를 보고 편견을 가지고 일부의 분들이 절 공격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 부분을 신경쓰고 싶진 않아요. 그렇게 절 공격하시는 일부의 극소수의 분들이야 있을 수도 있죠."

송강호는 '밀정' 이후 벌써 두 편의 영화에 새로 캐스팅됐다. 한 편은 '의형제'에서 이미 한 차례 호흡을 맞췄던 장훈 감독의 신작인 '택시운전사'이고, 다른 한 편은 '구타유발자들'과 '세븐 데이즈', '용의자'를 연출한 원신연 감독의 신작 '제5열'이다.

영화 '밀정' 송강호 [사진 = 워너브라더스 제공]

공교롭게도 이 두 편의 영화는 모두 정치적인 색채에서 좌파냐, 우파냐를 두고 따진다면 '좌파영화'에 가까운 작품이다. '택시운전사'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취재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독일기자(토마스 크레취만 분)를 우연히 태우고 공권력에 의한 잔혹한 학살이 벌어지는 광주에 가게 된 택시운전사 '만섭'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송강호는 바로 독일인 기자를 태우고 광주에 내려가는 택시기사 '만섭'을 연기한다. 

'제5열'은 미스터리한 사건에 얽힌 군 수사관이 거대한 음모와 마주하는 과정을 그린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로, 송강호는 전역을 불과 보름 앞두고 맡은 마지막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국방부 수사관을 연기한다. '제5열'은 얼핏 보기에 정치적 색채가 강해 보이는 영화는 아니지만, 군 의문사와 국방비리 등 외부와 고립된 군대 내부의 진실을 밝히려는 '내부고발자'를 연기하게 되는 셈이다.

"전 정치적인 잣대로 영화를 선택하지 않아요. 시나리오를 보고 작품이 좋고, 캐릭터가 좋아서 제 마음에 들어오면 선택하는 것이지, 한 번도 좌파냐 우파냐를 생각해서 작품을 선택한 적은 없어요. 이것은 '변호인'도 마찬가지고, 지금 촬영 중인 '택시운전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취재후기] 송강호는 '밀정'에서 그가 연기한 '이정출'을 제외하고 가장 욕심이 나는 캐릭터로 공유가 연기한 '김우진'을 꼽았다. '이정출'처럼 혼돈의 시대인 일제강점기에 이 쪽에도, 저 쪽에도 속하지 못한 채 망설이던 '회색빛'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도 배우로서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경험이었지만, '김우진'처럼 '조국광복'이라는 뚜렷한 신념을 가지고 그 신념을 향해 달려가는 캐릭터 역시 송강호에게는 매력적이었다.

송강호를 '좌파배우'라고 부를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변호인'의 변호사 송우석이 그랬고, '설국열차'의 '남궁민수'도, '관상'의 '내경'도, 그리고 지금 촬영하고 있는 '택시운전사'의 '만섭'도 모두 송강호에게는 같은 캐릭터라고 볼 수 있다. 사회의 잘못된 면을 직시하고 나약한 힘이나마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 이것은 '좌파'냐 '우파'냐의 문제가 아닌, 인간으로서 해야 할 당연한 것을 '하느냐', 혹은 '하지 않고 외면하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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