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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분의 기적' 36년전 못가린 남북 축구전쟁, 남이 최후의 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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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분의 기적' 36년전 못가린 남북 축구전쟁, 남이 최후의 승자
  • 이세영 기자
  • 승인 2014.10.02 23: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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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리거' 임창우, 연장 후반 추가시간 극적 결승골…아시안게임 28년만에 우승

[인천=스포츠Q 이세영 기자] 치열하고 뜨거웠다. 한국과 북한의 남자축구 결승전은 단순한 한 경기가 아니었다. '전쟁'이었다. 그리고 그 전쟁에서 한국이 이겼다. 28년만에 아시안게임 금메달이었다.

이광종 감독이 이끄는 한국 아시안게임 축구대표팀은 2일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열린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결승전에서 연장 후반 추가시간 35초에 터진 임창우(22·대전)의 천금 선제 결승골로 1-0으로 이겼다.

난적 북한을 꺾은 한국은 1970년 방콕 대회와 1978년 방콕 대회(이상 공동우승), 1986년 서울 대회 이후 28년 만에 통산 4번째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단독 우승으로는 1986년 서울 대회 이후 두 번째다.

또 한국은 1978년 방콕 대회에서 북한과 공동우승을 차지한 이후 36년 만에 맞붙은 아시안게임 결승에서 승리하는 기쁨을 맛봤다.

한국은 예선부터 치른 7경기에서 13골을 넣는 동안 단 한 골도 허용하지 않으며 '퍼펙트 우승'을 달성했다. 1951년 뉴델리 대회 이후 63년 만에 나온 대기록이다.

▲ [인천=스포츠Q 최대성 기자] 한국 이종호(오른쪽)가 2일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열린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북한과 결승전 후반 슛을 시도하려는 순간 북한 심현진(13번)이 머리로 걷어내고 있다.

한국과 북한의 축구는 단순한 경기가 아니었다. 비단 이날 경기 뿐이 아니었다. 역대 남북한 축구 맞대결이 그랬다.

1978년 방콕 아시안게임 당시 공동 우승을 차지했을 때 사이좋게 시상대에 올라가 손을 맞잡을 법도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서로 시상대 자리를 잡겠다며 몸싸움을 벌였다. 그라운드가 아니라 시상대에서도 양보가 없었다.

한국이 세계 무대에서 승승장구하고 북한이 점점 세계의 흐름에서 벗어나고 있을 때도 한국은 좀처럼 북한을 쉽게 이겨보지 못했다. 몸을 던지고 거칠게 몰아붙이는 북한에 적응하지 못한 탓이었다. 아시안게임 결승전도 마찬가지였고 한국은 볼 점유율을 높게 가져가면서도 북한을 쉽사리 요리하지 못했다.

이날 한국은 김신욱(26·울산 현대)이 부상을 당한 이후 계속해서 최전방 공격수로 나섰던 이용재(23·V바렌 나가사키)가 다시 원톱에 섰다. 김승대(23·포항)가 이용재의 뒤를 받치며 좌우 공격수로는 이재성(22·전북 현대)과 이종호(22·전남)가 지원했다.

미드필더에는 박주호(27·마인츠)와 손준호(22·포항)가 호흡을 맞췄고 수비 라인은 김진수(22·호펜하임)와 장현수(23·광저우 부리), 김민혁(22·사간 도스), 임창우가 나섰다. 골문은 김승규(24·울산)가 지켰다.

이에 맞선 북한은 공격수에 리혁철과 박광룡이 배치됐고 중원에는 윤일광과 리용직, 서경진, 서현욱이 들어섰으며 수비수에는 김철범, 장성혁, 장국철, 심현진이 들어갔다. 골키퍼 장갑은 리명국이 꼈다.

초반부터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졌다. 한국과 북한은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몸싸움을 벌였고 그 과정에서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전쟁의 시작이었다.

북한이 먼저 기회를 잡았다. 북한은 전반 9분 소현욱이 한국 진영 정면에서 강력한 왼발 슛을 때렸으나 김승대 골키퍼에게 막혔다. 8분 뒤 리혁철이 머리로 골을 노려봤지만 이번에도 김승대 골키퍼의 선방에 걸렸다.

결국 북한의 거친 플레이가 부상을 불렀다. 이재성이 북한의 거친 플레이에 부상을 당하면서 김영욱(23·전남)이 대신 들어갔다. 전반 내내 중원에서 치열한 볼 다툼이 있었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양 팀은 0-0 무승부로 전반을 마무리했다.

▲ [인천=스포츠Q 최대성 기자] 한국 이용재(가운데)가 2일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열린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북한과 결승전에서 전반 헤딩슛을 시도하고 있다.

후반 들어 한국은 김승대를 이용한 공격으로 북한의 골문을 노렸다. 김승대는 후반 2분 헤딩슛, 6분 뒤 오른발 슛으로 북한 골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상대 골키퍼와 수비에 막혀 골로 연결되지 않았다.

한국에 주도권을 내주며 공격의 실마리를 풀지 못한 북한은 림광혁의 슛으로 공격의 실마리를 풀었다. 림광혁은 후반 27분 회심의 오른발 슛으로 분위기를 바꿨다.

이어진 코너킥 상황에서는 186㎝의 장신 공격수 박광룡이 헤딩슛을 시도했으나 크로스바를 맞췄다. 한국 입장에서 가슴이 철렁했던 순간이었다.

위기에서 벗어난 한국은 체력이 떨어진 북한을 계속적으로 몰아붙였다. 하지만 후반 종료를 알리는 주심의 휘슬이 울려 소득이 없었다.

북한은 연장을 시작하면서 미드필더 림광혁을 빼고 수비수 정광석을 투입, 골문을 걸어 잠그는 데 초점을 맞췄다. 승부차기를 염두에 둔 선수 교체였다.

한국은 연장 전반 7분 먼저 기회를 잡았다. 프리킥 상황에서 이종호에게 기회가 왔지만 이종호가 때린 오른발 슛은 골문 위를 크게 벗어났다. 5분 뒤에는 손준호가 오른발 슛을 날려봤으나 골문을 넘기고 말았다.

▲ [인천=스포츠Q 최대성 기자] 한국 골키퍼 김승규(오른쪽)가 2일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열린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북한과 결승전에서 전반 펀칭으로 막아내고 있다.

양 팀은 연장 전반이 끝날 때까지 득점이 없었고 연장 후반 1분 북한의 파상공세를 넘긴 한국은 2분 뒤 이종호가 빠지고 김신욱이 들어가 공격에 변화를 줬다.

한국은 김신욱을 이용한 공격을 펼쳤다. 연장 후반 6분 김승대 골키퍼가 길게 찬 공을 김신욱이 머리로 떨어뜨렸고 이를 이용재가 마무리하려 했지만 상대 수비가 먼저 걷어냈다. 연장 후반 막판에는 김진수가 북한 진영 페널티박스 안쪽에서 연거푸 왼발 슛을 시도했지만 무위에 그쳤다.

연장 후반 추가시간이 적용되면서 경기가 승부차기로 접어들 것으로 예상될 무렵 임창우가 일을 냈다. 코너킥 상황에서 김승대가 띄워준 공을 이용재가 왼발 슛으로 연결했지만 수비수에 막혔고 이를 임창우가 재차 슛으로 연결하며 북한 골망을 갈랐다.

120분간의 혈투는 한국의 극적인 승리로 마무리됐다. 경기가 끝나자 한국 선수들은 28년만에 아시안게임 우승을 이뤄냈다는 기쁨과 감격에 환호했고 북한 선수들은 마지막 순간 실점에 고개를 떨구고 그라운드에 머리를 박아 흐느꼈다. 인천 전쟁은 그렇게 마무리됐다.

syl015@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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