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4 00:35 (수)
[열정 2016] (32) '여자 3쿠션 아이콘' 이미래, 애증의 당구 정복한 역설
상태바
[열정 2016] (32) '여자 3쿠션 아이콘' 이미래, 애증의 당구 정복한 역설
  • 민기홍 기자
  • 승인 2016.10.13 10: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계선수권 결승, 세계랭킹 1위와 혈투..."김연아 존경, 여자당구 하면 떠오르고파"

[200자 Tips!]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은 “농구는 생계수단,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는 골프”라고 말했다. 이미래(21·한국체대)도 비슷하다. 그렇게 당구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직업의식, 사명감으로 임했더니 어느덧 여자 3쿠션의 대들보가 됐다. 큐를 처음 잡은 초등학교 6학년 이후 오직 당구장에서 살았던 그는 “학창시절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세계선수권 준우승자, 이미래를 성남 분당구 ‘미래당구클럽’에서 만났다.

[성남=스포츠Q 글 민기홍·사진 최대성 기자] 지난 8월 27일 구리시체육관. 이미래는 세계여자3쿠션선수권대회 결승에서 세계랭킹 1위 클롬펜아워 테레스(네덜란드)와 승부치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0-2로 져 준우승을 차지했다.

▲ 이미래는 한국 여자 3쿠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세계선수권에서 2위에 오른 그는 "앞날에 대한 가능성을 봐서 행복했다"고 결승전을 돌아봤다.

최성원, 김행직, 강동궁, 조재호, 허정한 등 남자 3쿠션 선수들이야 당구 수지를 조금이나마 올려보려는 남성들의 워너비가 된지 오래. 그런데 이제 갓 소녀티를 벗은 방년의 이미래가 ‘여자 3쿠션의 대명사’ 테레스를 상대로 당돌하게 스코어를 쌓으니 단숨에 시선이 집중됐다.

이미래는 지난해 KBSN스포츠 '죽방전설(당구꾼과 각 지역 고수간 맞대결 프로그램)', 올해 MBC '마이리틀텔레비전' 김구라의 트루스토리 당구편을 통해 이름을 알렸다. 그리고 한국 여자 3쿠션 사상 처음으로 세계선수권에서 입상권에 진입, 확실한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 미래를 본 이미래, 우승보다 행복한 준우승

“제 앞날에 대한 가능성을 봤어요. 정말 행복했어요. 지고 나서 아까운 건 한 순간이더라고요. 값진 준우승이라 더 겸손해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1등 했다면 해이해졌을 텐데. 더 올라갈 곳이 있다는 게 좋아요. 그만할 수 없다는 것이니까요. 다음에도 좋은 성적 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생애 처음으로 출전한 세계선수권이었다. 국내대회야 휩쓸다시피 하는 그였지만 국제대회 경험은 지난해 12월 일본 열린 한일 3쿠션 여성교류전이 전부였다. 이미래는 “너무 긴장돼서 어떻게 하나 싶더라. 큐를 잡고 첫 대회에 나갔던 어렸을 때 느낌이 났다”고 돌아봤다.

예선에서 긴장을 풀었다. 준결승까지 전승 행진을 달리니 자신감이 붙었다. 한국 선수(이신영, 김민아) 중 유일하게 4강에 올랐고 결승까지 거침없이 내달렸다. 이미래는 “컨디션이 워낙 좋아 공이 잘 맞았다”며 “클롬펜아워 테레스가 얼마나 대단한 선수인지 알았지만 후반부에 들어가니 해볼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결승 상황을 떠올렸다.

30-30. 결국 승부치기로 향했다. 먼저 친 테레스가 2점밖에 못내 ‘초대형사고’를 치는가 싶었다. 그런데 무득점으로 고개를 숙였다. 이미래는 “승부치기 2점이면 정말 적은 건데 초구가 너무 부담이 되더라”며 “후구라 그런지 긴장이 컸다”고 말했다.

▲ '당구 김연아'라는 말에 손사래를 치며 웃는 이미래. 생애 처음으로 출전한 세계선수권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이름을 알렸다.

구리 대회 시작 전까지만 해도 이미래의 세계랭킹은 24위였다. 점수 배정이 가장 높은 세계선수권에서 랭킹포인트 단숨에 81점을 획득한 그는 9월 1일 발표된 랭킹에서 테레스, 귈센 데게너(터키)에 이어 3위로 올라섰다. 국내랭킹은 394점으로 이신영(440점)에 이은 2위다. 이신영은 세계랭킹 7위다.

◆ 애증의 당구, 다시 태어나면 안 한다

세계에서 3번째로 3쿠션을 잘 치는데 이미래는 “다시 태어나면 당구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당촌초 6학년 때 큐를 잡았고 주변으로부터 “재능 있다”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스스로 부정했다고. “천재형이라면 이것보다 훨씬 더 잘 쳐야 한다”며 스스로를 한없이 낮춘다.

“시간을 되돌린다면 당구를 몰랐던 초등학교 저학년 쯤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너무 고생했거든요. 제 학창시절은 없었어요. 6년(보평중, 보평고)은 오로지 당구였어요. 너무 싫었어요. 다시 그런 생활하라면 하고 싶지 않아요. 수학여행, 졸업여행, 체험학습 같은 기억이 없죠. 주위에서 저를 ‘시간 없는 애, 바쁜 애’로 알았어요.”

▲ 분당 미래당구클럽. 이미래가 늘 연습하는 곳이다. 방학 중에는 하루 5시간씩 공을 친다.

큐를 잡은 이유는 특별히 없다. 당구를 연구했던 아버지 이학표(61) 씨를 따라다닌 게 입문기랄까. “담배 냄새 나는 당구장은 싫어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 어느 날 넓고 쾌적한 당구아카데미에 갔더니 자연스레 뛰어 놀게 됐다”고 기억을 더듬는다. 

평범한 직장인이던 아버지는 훗날 성남시당구연맹 부회장이 됐고 2012년 1월 분당에 미래당구클럽을 오픈했다.

이미래에게 당구는 ‘애증’이다.

“주위에서 어떻게 그렇게 사냐고 하죠. 그렇게 싫은데 어떻게 잘 하냐고. 그런데 할 땐 해요. 잘 하고 싶으니까. 좋아하는 것과 잘 하는 건 다르잖아요. 하기 싫어했던 건 사실이지만 지금은 또 재미나게 잘해보고 싶어요. 이건 직업이니까 잘 할 수 있어요 전. 당구선수로서의 마음과 21세 이미래의 마음이 좀 다른 것 같네요.”

◆ 즐기지 못했지만, 오직 승부욕으로 일군 성과들

예능인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농구 레전드 서장훈은 힐링캠프에서 “즐긴다는 말을 개인적으로 정말 싫어한다”며 “승패를 내는 스포츠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 '즐긴다'? 난 이걸 용납할 수 없었다”고 했다.

이미래도 마찬가지. 당구를 즐기지 못했지만 정복하려 애썼다. 승부욕 하나는 끝내준다.

이미래는 지난해 한국체대 사회체육학과에 입학했다. 입시를 앞두고 마침 당구 특기자 전형이 생겼는데 입학 정원이 남녀 구분 없이 포켓볼 또는 3쿠션 1명씩이었다. 이미래는 오직 실력으로 남자 수험생들을 모두 제쳤다.

▲ 이미래는 학창시절 6년간 큐만 잡아서 다시 태어난다면 "당구는 절대 하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본인의 실력, 당구 종목의 위상에 대한 갈증을 말할 때도 강한 의지가 묻어나왔다.

“제 실전 에버리지는 0.8, 3쿠션 시작 이후 전부 기록한 걸로는 0.75 정도 돼요. 남자와는 비교도 안 되죠. 세계선수권 이후에 2주간 너무 잘 맞는 겁니다. 스트로크 연습을 조금 소홀히 했더니 또 안 맞는 거 있죠. 쉬고 싶다고 자꾸 말하는데 진짜 휴식이 필요해서라기보다는 억압돼 있어서 그냥 버릇처럼 쉬고 싶다 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어요. 제가 좀 게을러요. 정신 차려야 합니다. (웃음)”

대한당구연맹에 따르면 2006년 전국 1만8639곳이던 당구장은 지난해 말 기준 2만2456곳으로 20.5% 증가했다. 3쿠션, 포켓볼, 예술구를 총칭하는 큐스포츠는 스포츠 케이블 채널의 효자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단일 종목으로 채널이 있는 건 골프와 당구뿐. 그래도 갈 길이 멀다는 게 이미래의 생각이다.

“당구가 아직도 완전한 스포츠로 인식되지 않는 게 조금은 속상해요. 그래서 여자 당구에는 서포트도 적고요. 아직 열악해요. 올림픽,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도 아니고. 그런데 나가서 메달 딸 기회가 생기면 참 좋을 텐데 말이죠.”

▲ '당구 김연아'라는 말에 손사래를 치며 웃는 이미래. 생애 처음으로 출전한 세계선수권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이름을 알렸다.

◆ 김연아를 우러러, 당구 아이콘을 향해

국내무대 제패, 방송 출연, 세계선수권 준우승으로 인해 이미래를 알아보는 사람이 늘었다.

“한번은 엘리베이터 백화점에서 절 알아봐주시더라고요. 잠시 나온 게 전부인데 제 얼굴이 보이다니. 섬뜩하죠. 신기해요. 클럽에도 전화와서 이미래 있냐고 물어보시고 일부러 찾아왔다며 한 게임 치자고 하는 손님도 계시고. 저를 보러 오셨으니 다 쳐드려야 되는 건데 사실 쉽지는 않네요. (웃음)”

이어 “하기 싫어했던 운동을 해서 늘 부모님과 갈등이 있었고 올 초에는 멘탈이 완전히 나가버린 적도 있다”면서도 “생각해보면 지금의 이미래가 있는 건 부모님의 서포트”라고 강조하며 깔깔거린다. 

이미래의 꿈은 여자 3쿠션의 대명사, 아이콘이 되는 것이다.

▲ 이미래의 꿈은 여자 3쿠션의 아이콘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피겨 하면 떠오르는 김연아를 존경한다.

“여자 포켓볼 하면 누가 떠오르세요? 김가영, 차유람 언니죠. 3쿠션 하면 이미래가 떠올라야 하지 않을까요. 역사까지는 몰라도 그 정도만 되면 최고겠어요. 그래서 김연아 선수를 존경해요. 운동을 하면 할수록 어마어마한 분이라 생각해요. 가끔 ‘당구계 김연아’라고 해주시더라고요. 그런 소리를 듣는 만큼 열심히 해서 더 닮고 싶어요!”

김연아가 목표라니, 조만간 정상에 오른 이미래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취재 후기]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가 진리는 아닌 것 같다. 이미래는 방학이면 5시간을, 학기 중에는 1시간을 온전히 하루 훈련에 할애한다. 상대와 함께 치는 시간을 제외하고 말이다. 오직 큐대만 붙잡고 사느라 사춘기도 없었다니. 세계 최고 레벨의 스포츠선수가 뚝딱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새삼 확인했다. 치열하게 살아온, 또 살아갈 이미래를 응원한다.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

관련기사

주요기사
포토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