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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포커스] '눈물의 아듀', 골프한류 열매 맺은 '큰 나무' 박세리 있어 우리는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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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포커스] '눈물의 아듀', 골프한류 열매 맺은 '큰 나무' 박세리 있어 우리는 행복했다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6.10.13 19: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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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GA 철수 직전 첫승 '할 수 있다' 개척자…'박세리 키즈' 열매 맺고 아름다운 은퇴식

[스포츠Q(큐) 박상현 기자] 한국 스포츠에는 수많은 도전자와 개척자, 전설이 있다. 야구에서는 박찬호가 있었기에 강정호, 김현수, 오승환 등이 미국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맹활약할 수 있었다.

또 차범근 감독이 있었기에 수많은 축구 선수들이 유럽 진출의 꿈을 가질 수 있었다. 첫 한국인 프리미어리거 박지성은 현재 수많은 선수들이 유럽 무대에서 활약하는데 마중물이 됐다. 불모지 피겨스케이팅에서는 김연아가 그 선구자 역할을 했다.

▲ 박세리가 13일 인천 영종도 스카이72 골프앤리조트에서 열린 2016 LPGA투어 KEB하나은행 챔피언십 1라운드가 끝난 뒤 열린 은퇴식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팬들에게 손을 들어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KLPGA 제공]

여자골프라면 역시 박세리(39·하나금융그룹)다. 박세리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의 '골프한류'도 불 수 있었다. 물론 다른 선수가 개척자가 될 수도 있었겠지만 역사는 이제 박세리를 '최강' 한국 여자골프의 개척자로 기록한다. 박세리가 없었다면 과연 박인비(28·KB금융그룹)의 커리어 그랜드슬램과 올림픽 제패가 있을 수 있었을까.

이제 개척자이자 전설이 화려하게 떠났다. 

◆ 18홀 내내 눈물 보인 박세리 피날레 라운딩, 박찬호 "세리와 나는 나무다"

박세리는 13일 인천 영종도 스카이72 골프앤리조트(파72, 6364야드)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KEB하나은행 챔피언십(총상금 200만 달러, 우승상금 30만 달러) 1라운드에서 버디 1개와 보기 9개를 엮어 8오버파 80타로 커리어 피날레 라운딩을 마쳤다.

1라운드가 끝난 뒤 박세리는 김효주(21·롯데)와 전인지, 양희영(28·PNS 창호) 등 '세리 키즈'들의 축하 속에 화려한 은퇴식을 가졌다. LPGA 무대를 누볐고 지금은 해설위원으로 변신한 박지은(37)도 박세리와 뜨거운 포옹으로 감격스러운 장면을 함께 했다.

▲ 골프여왕 박세리가 13일 은퇴식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다. [사진=KLPGA 제공]

골프꿈나무들이 도열한 가운데 진행된 은퇴식 내내 눈물을 쏟아낸 박세리는 공식 기자회견에서 "1번홀 티박스에 올라 '세리 사랑해'라고 적힌 수건을 흔드는 모습을 보면서 은퇴하는 실감이 났다"며 "울컥하고 코스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다. 18홀 내내 울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어 “18번홀에서 많은 분들이 계시고 응원해주고 바라봐주고 했던 것들이 우승했던 것보다 행복하고 최고의 순간이었다”며 “어느 누가 은퇴식을 저처럼 많은 사랑을 받아보며 했겠는가. 너무 많은 분들이 고생 많이 한 것 같다. 덕분에 너무 행복했다”고 감흥을 감추지 못했다.

LPGA 투어에서 활약하는 많은 '세리 키즈'에 대해 박세리는 "너무 든든하다. 만약 세리키즈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한국 골프도 없었을 것이다. 저로 시작했지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어서 선수들에게 고마움이 크다“며 ”세리키즈라고 불리지만 또 다른 어느 선수의 키즈가 나와 대한민국 골프를 이끌어 줬으면하는 바람이 있다"고 후배들의 앞날을 응원했다.

박세리는 “프로골퍼 박세리가 아닌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박세리로 배워가며 노력하겠다. 지금처럼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린다”고 마지막 인사를 잊지 않았다.

골프여왕이 정든 그린과 아듀를 고하는 현장엔 다른 종목 스포츠 스타들도 마지막을 함께 했다. '메이저리그 특급' 박찬호와 배구스타 김세진 OK저축은행 감독, '국보투수' 선동열(53) 전 감독이 참석했다.

뉴시스에 따르면 1990년대 말 박세리와 함께 미국에서 스포츠의 감동과 투혼을 보여주며 경제위기에 고단한 삶을 이어가던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었던 박찬호는 “세리와 나는 나무다. 열매였던 적이 없다. 나무가 자라서 열매가 열렸고, 많은 후배 선수들이 열매가 됐다"며 "은퇴도 용기가 필요하다. 이제는 다른 역할을 맡으며 즐겼으면 좋겠다"고 격려를 보냈다.

◆ IMF 시름을 덜어준 박세리,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긍정의 에너지 전파하다

박세리는 초등학생 시절 육상선수로 활약했지만 중학교부터 골프채를 쥐기 시작했다. 요즘 대부분 선수들이 초등학생 때부터 클럽을 잡는 것을 생각한다면 출발은 늦었던 셈이다. 그러나 중학교 3학년 때인 1992년 프로대회인 라일 앤드 스코트 오픈에서 쟁쟁한 프로선수들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하면서 '골프여왕'의 탄생을 알렸다.

4년 뒤인 1996년 프로에 데뷔한 박세리는 모든 출전대회에서 톱10에 들고 4승을 거뒀다. 데뷔 시즌에 상금왕을 거머쥐면서 국내에 더이상 적수가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결국 박세리는 1997년 LPGA 투어 퀄리파잉스쿨(Q스쿨)에 수석합격하면서 본격적으로 LPGA에 도전장을 던졌다.

처음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좀처럼 LPGA에서 이렇다할 성적을 거두지 못하자 당시 후원사인 삼성에서는 박세리의 '조기 철수' 계획까지 세웠다. 그러나 1998년 5월 맥도널드 LPGA 챔피언십에서 데뷔 우승을 차지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불과 2개월 뒤에는 제니 추아시리폰과 연장 접전 끝에 메이저대회 US여자오픈 정상에 올랐다. 당시 박세리는 연장전에서 워터 해저드 근처에 공이 굴러가는 악조건 속에서도 양말을 벗고 러프샷을 날리는 투혼을 보여줬다. 양말을 벗는 순간 까맣게 그을린 종아리와 비교될 정도로 하얀 발이 골프팬들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박세리가 역경을 헤치고 정상에 오르는 모습에 IMF 외환위기로 시름에 빠져 있던 국민들은 큰 자신감을 얻었다. 이후 박세리가 양말을 벗고 러프샷을 날리는 장면은 여러 차례 방송을 타며 국민들에게 감동을 줬다. 이 장면 하나에 박세리가 '극복의 아이콘'으로 국민적인 영웅이 됐다.

▲ 박세리가 은퇴식에서 꽃다발을 받은 뒤 양손을 치켜들어 팬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KLPGA 제공]

◆ LPGA에 일으킨 '코리안 센세이션', 한국 선수 진출 물꼬를 텄다

박세리는 1998년에만 메이저 2승을 포함해 4승을 거두면서 대성공을 거뒀다. 이후 김미현 등이 잇따라 미국행을 택해 좋은 성적을 거뒀다. 박세리, 김미현, 장정 등이 LPGA 한국인 1세대라고 불리지만 엄밀히 따지면 박세리가 있었기에 1세대가 탄생할 수 있었다. 굳이 말하자면 박세리는 '0세대'였던 셈이다.

박세리는 박인비가 지난해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이루기 전까지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LPGA 골퍼가 됐다. 2001년까지 불과 3년 만에 13승을 거뒀다. 

특히 6차례 연장에서 단 1번도 지지 않는 '연장 불패' 신화까지 썼다. 박세리의 연장 불패에 희생이 됐던 선수 가운데는 호주의 전설적인 골퍼 카리 웹도 있었다. 웹은 박세리의 연장 불패에 무려 3번이나 우승을 놓쳤다.

또 박세리는 2000년대 초반 LPGA의 또 다른 전설인 안니카 소렌스탐과 쌍벽을 이뤘다. 물론 소렌스탐이 더 많은 승리를 거두긴 했지만 박세리 역시 뒤지지 않았다. 

▲ 박세리가 은퇴식에서 골프꿈나무들에 둘러싸여 그린의 마지막을 셀카로 담고 있다. [사진=KLPGA 제공]

소렌스탐과 박세리는 해와 달의 관계가 아니라 LPGA에 뜬 두 태양이었다. 통산 25승을 거둔 박세리는 여전히 한국인 LPGA 최다승 골퍼다.

박세리의 성공과 함께 한국 선수들의 진출이 물밀듯 이어졌다. 특히 박세리의 활약은 아시아 전체로 이어져 '아시아 선수들도 LPGA 무대에서 충분히 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했다. 코리안 센세이션이 아시아 헤게모니로 확대되면서 청야니(대만) 등 수많은 아시아 선수들이 LPGA에서 성공을 거뒀다.

초창기에는 LPGA 일각에서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 아시아 골퍼들이 LPGA를 망친다", "한국 선수들의 아버지들이 LPGA 무대를 혼란스럽게 한다"며 비난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전혀 이런 편견을 찾아볼 수 없다. 이런 모든 것을 박세리가 반듯하게 터를 닦아놓았기에 가능했다.

▲ 박세리가 은퇴식에서 후배와 뜨거운 포옹을 나누고 있다. [사진=KLPGA 제공]

◆ '박세리 키즈'의 성장, 양궁 못지 않은 한국 여성파워

박세리의 등장은 '박세리 키즈'를 양산했다. 지금 LPGA 무대를 주름잡는 박인비를 비롯해 김세영(23·미래에셋), 전인지(22·하이트진로) 등이 모두 박세리의 미국무대 성공을 보면서 꿈을 키운 세대들이다. 박세리가 없었다면 과연 이들이 LPGA 무대에서 성장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또 한국 여자골프의 위상도 그만큼 커졌다. LPGA가 아시아권으로 영역이 확대된 것 역시 박세리가 없었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KEB하나은행 챔피언십을 비롯해 현재 LPGA는 아시아권에서도 경기가 벌어지고 있다. 아시아 시장의 입김이 그만큼 세졌다는 뜻이다.

감독 박세리와 함께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일궈낸 박인비는 "나도 박세리 프로에게서 영감을 받은 '세리 키즈'다. 내가 박세리 프로를 보고 꿈을 키우며 지금의 내가 됐듯이 많은 친구들이 나를 보면서 꿈을 키워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박세리는 신인이던 1998년만 하더라도 유일한 한국인 LPGA 골퍼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 숫자가 엄청나게 불어났다. 올 시즌 상금을 단 1달러라도 따낸 선수가 무려 26명이나 된다. 또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에서 LPGA 진출을 노리는 수많은 선수들이 대기중이다.

박세리는 떠나지만 그가 한국 골프에 남긴 유산은 엄청나다. 그렇기에 박세리를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부른다. 

한국인 최초로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된 전설은 이제 골프선수가 아닌 또 다른 두번째 인생을 시작한다. 그리고 우리는 한국 스포츠 전설이 화려하게 퇴장하는 역사적인 장면을 행복하게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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