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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게임서 햇살받은 '그늘' 종목, 내일도 안녕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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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게임서 햇살받은 '그늘' 종목, 내일도 안녕하십니까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4.10.06 11: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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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 결산] 크리켓·카바디·체조 트램펄린 등 첫 출전…중장기 계획 없어 지속 여부 불투명

[스포츠Q 박상현 기자] 4일 한국의 5회 연속 종합2위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는 유난히 비인기 종목, 비활성화 종목의 분전이 두드러져 한국 스포츠에 또 다른 햇살을 던졌0다.

전통적인 효자종목과 구기종목에서 많은 금메달을 따기도 했지만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우슈나 카누, 복싱 등에서도 금메달이 나왔고 굳이 금메달이 아니더라도 공수도나 세팍타크로, 카바디, 수영 다이빙처럼 메달을 획득한 종목도 있었다.

또 인천 아시안게임을 통해 처음으로 국제무대에 발을 들여놓은 종목도 있었다. 야구와 비슷한 모습의 크리켓과 체조 트램펄린이 아시안게임에서 첫 선을 보였다.

데뷔전을 통해 가능성을 인정받았지만 안방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이어서 구색을 맞추기 위해 출전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대표팀 구성부터 주먹구구인 경우가 많았다. 문제는 앞으로 지속 여부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통해 첫 출전한 뒤 4년 전의 길을 되풀이한 여자 럭비도 마찬가지다.

또 양궁 컴파운드처럼 금메달을 획득하며 발전 가능성을 인정받았지만 전국체전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어 있지 않아 꾸준히 기량을 향상시킬 기회가 없는 종목도 있다.

▲ 여자 크리켓 대표팀은 아시안게임 개막 6개월 전에 선수들을 모아 훈련한 끝에 출전했다. 인천 아시안게임을 통해 처음 뿌리를 내렸지만 대표팀의 지속 여부를 아직 알 수 없다. [사진=스포츠Q DB]

◆ 대회 시작 6개월 앞두고 허겁지겁 대표팀 구성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통해 처음 정식종목에 들어갔던 크리켓은 인천 아시안게임을 위해 처음으로 대표팀을 꾸렸다.

이 가운데 남자대표팀은 전직 야구선수들이 모여 2012년 12월부터 훈련을 시작해 비교적 짜임새가 있었지만 여자 대표팀은 그렇지 못햇다. 남자의 경우 성균관대 팀이 있었지만 여자팀은 운동할 선수도, 장소도 없었다.

지난 3월 부랴부랴 선수들을 모집했고 소프트볼과 선수 출신, 합기도 사범 등이 모였다. 대표팀 소집부터 인천 아시안게임을 치르기까지 훈련 기간은 6개월에 불과했다.

급박하게 대표팀 선수를 모집하고 체계적인 훈련없이 출전하고도 가능성을 봤다는 평가가 나왔지만 문제는 그 이후다.

여자 크리켓 대표팀 주장 오인영(25)은 "훈련기간이 너무 짧은 것이 가장 아쉬웠고 처음이어서 훈련 체계가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훈련 장소도 제대로 준비되지 않아 밥 먹는 시간을 조정했을 정도"라며 "그러나 아시안게임 이후 계획을 알지 못한다. 계속 크리켓을 하게 될지 아니면 또 다른 것을 하게 될지 아직 모르겠다"고 말했다.

인천 아시안게임을 통해 얻은 시행착오와 경험들이 그대로 사장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 여자럭비는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통해 첫 출전했지만 당시 시행착오와 경험을 인천 아시안게임을 위한 준비로 활용되지 못했다. 여자럭비 대표팀이 계속 운영되고 경험을 쌓아야만 발전을 이룰 수 있다. [사진=스포츠Q DB]

이는 광저우 아시안게임 당시 여자럭비의 모습과 비슷하다. 여자럭비도 급박하게 선수들을 모집해 훈련을 통해 아시안게임에 나섰지만 연속성을 갖지 못했다. 인천 아시안게임을 통해서도 다시 선수들을 모집하는 시행착오를 겪었다.

물론 4년 전보다 여건을 호전되긴 했다. 수원여대에 팀이 있어 이들이 포함됐다. 전문 선수들과 모집 선수들의 조화를 이뤘다. 그 결과 라오스를 34-0으로 꺾고 아시안게임 11번째 경기만에 첫 승을 거뒀다.

그러나 이번 여자럭비 대표팀도 연속성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정식종목으로 되어 있지만 아시아 예선 통과는 현실적으로 힘든 상황이다.

◆ 열악한 훈련 여건, 선수 양성·저변 확대 급선무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이어 두번째로 출전한 카바디 역시 여전히 훈련 여건이 열악하다.

여자 카바디 대표 조현아(26)는 "훈련장이 있지만 비좁아 학교 유도장에 태권도 매트를 깔아 훈련하기도 했다"며 "한달 합숙훈련을 위해 하던 일을 그만두고 왔는데 훈련이 취소돼 아르바이트를 했던 적도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대표팀 선수 대부분이 광저우 아시안게임 때부터 아는 동생, 친구들로 시작했다"며 "대표 선발전이 있긴 하지만 참여 선수가 적어 의미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 여자 카바디는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통해 첫 출전했지만 여전히 훈련여건이 열악하다. [사진=스포츠Q DB]

특히 조현아는 "인터넷 검색을 해도 대표팀에 대한 정보가 없어 무관심에 서운함을 느꼈다"며 "항상 큰 대회가 끝나면 카바디를 그만두는 선수가 많다. 인천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고 보급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체조 트램펄린도 본격 시작한지 3개월만에 이민우(18)가 결선에 오르는 성과를 거두긴 했지만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마루운동을 하다가 트램펄린으로 전향한 차상엽(22)과 이민우는 지난 2월부터 시작했지만 본격적으로 훈련하고 기술을 습득한 것은 7월부터였다. 중국에서 2주 동안 전지훈련을 하면서 10가지 기술을 모두 습득했고 중국 선수들의 훈련 모습을 모조리 영상으로 담아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이를 보면서 기술을 익혔다.

우리나라에는 아직까지 전문 트램펄린 지도자가 없다. 이들은 앞으로 선수로 더욱 경험을 쌓으면서 전문 지도자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차상엽은 "앞으로 4년을 더 생각하고 있다. 기술도 더욱 키우고 기본기 자세도 더 다듬어야 한다"며 "가능하다면 세계체조선수권과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2018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까지 바라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트램펄린 역시 한치 앞 미래를 바라보기 힘들다. 2주의 중국 전지훈련비를 제외하고는 모두 선수들의 사비로 훈련이 진행됐다. 대한체조협회의 예산에 잡혀있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제 막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트램펄린이 계속 발전하려면 당장 예산 편성부터 이뤄지고 선수들을 대거 발굴하고 저변을 확대해 경쟁체계를 갖추는 일이 급선무다.

▲ 체조 트램펄린 종목 역시 인천 아시안게임을 통해 처음으로 국제무대 데뷔전을 가졌다. 전문 지도자 없이 2주의 중국 전지훈련에서 기술을 익히고 중국 선수들의 훈련 장면을 영상에 담아 기술을 습득했다. [사진=스포츠Q DB]

◆ 금메달 따낸 양궁 컴파운드, 현실은 암담

한국 양궁이 세계 최강의 자리에 있긴 하지만 이젠 그 등식이 꼭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을 견제하기 위해 총점제 대신 세트제를 도입했고 그 여파는 이번 인천 아시안게임을 통해서도 증명됐다. 여기에 전통 강세인 리커브 외에 컴파운드를 신설했다.

양궁 컴파운드는 이미 양궁 월드컵 등에서는 열리고 있지만 아직까지 올림픽에서는 정식종목이 아니다. 리우 올림픽에서도 정식종목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인천 아시안게임을 통해 처음으로 정식종목이 된 양궁 컴파운드에서는 최보민(30·청원군청)이 여자 개인전과 단체전 2관왕에 오르는 등 성과가 있었다. 경쟁이 너무나 치열해 리커브에서 밀려난 선수 또는 부상을 당해 더이상 리커브를 할 수 없는 선수들이 모여 이뤄낸 쾌거였다.

그러나 현실은 아직 암담하다. 올림픽은 물론 전국체육대회에서도 양궁 컴파운드는 정식종목이 아니다.

최보민은 "인천 아시안게임을 통해 컴파운드가 관심을 받았지만 앞으로도 지속적인 사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양창훈(44) 코치는 "컴파운드가 이번 대회를 통해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여전히 여건은 열악하다"며 "리커브처럼 탄탄한 선수층을 갖추기 위해서는 전국체육대회 정식종목 채택 등 제도적인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 양궁 컴파운드에서는 여자 개인전과 단체전 등 금메달 2개가 나왔지만 올림픽은 물론이고 전국체육대회에도 정식종목으로 들어가 있지 않아 지속적인 기량 발전이 힘든 상황이다. [사진=스포츠Q DB]

◆ 핸드볼이 오히려 부러운 종목들, TV 중계조차 외면

야구와 축구, 농구, 배구 등 인기 프로종목은 언제나 경기가 있기 때문에 꾸준히 미디어의 관심을 받는다. TV 중계가 있고 미디어 기사도 많이 나온다. 계속 대중에 노출이 되기 때문에 선순환 구조가 이뤄져 인기를 계속 유지한다. 그러나 미디어의 관심에서 밀려나는 순간 급락하는 것은 순식간이다.

발전의 길을 걷고 인기를 얻기 위해서는 '노출'이 중요하다. 미디어를 통해 계속 보여져야만 팬들이 관심을 갖고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종목들은 그나마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이 있을 때 관심을 받는 종목들이 부럽기만 하다. 핸드볼이 올림픽, 아시안게임 때만 주목받는 '한데볼'이라고 하지만 아예 관심 밖으로 밀려난 종목들은 핸드볼의 현실조차 부럽기만 하다. 이들에게 핸드볼은 그늘이 아닌 햇살을 받는 종목이다.

카바디나 크리켓, 우슈, 세팍타크로, 공수도, 정구 등은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TV 중계가 제대로 되지 않아 대중들에 대한 노출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종목들이다.

이 가운데 세팍타크로는 화려한 기술의 향연과 함께 족구과 비슷하다는 장점 때문에 제한적으로 TV 중계가 이뤄졌고 대회 후반부로 가면서 체육관을 찾은 관중들이 늘어나긴 했지만 아직까지 부족한 실정이다.

▲ 정구는 7개 전종목 석권이라는 대기록을 썼지만 TV 중계가 되지 않아 시청자들이 이 모습을 지켜보지 못했다. 정구 외에도 적지 않은 비인기 종목이 미디어와 팬들의 관심 밖에 있었다. [사진=스포츠Q DB]

또 정구는 7개의 금메달을 모두 가져왔음에도 이런 모습을 TV 중계를 통해 지켜본 시청자는 없다. 중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자농구가 극적으로 이란을 꺾고 남자축구가 북한을 상대로 후반 추가시간 역전 결승골을 넣는 모습에 환호하던 때 정구 7개 전종목 석권에는 눈을 돌리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그냥 묵묵히 운동을 하는 것만으로 되진 않는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힘겹게 작품을 만들어놓고도 그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하면 속이 상하듯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묵묵히 땀을 흘리고 태극마크를 달고 아시안게임에 출전했는데 축구, 야구, 농구, 배구 등의 화려함에 밀려 비인기를 넘어 무관심의 수준으로 가면 이들의 마음은 찢어질 듯 아프다. 어쩌면 패배보다 더한 아픔일 수 있다.

여자 세팍타크로 레구 종목에서 최고성적인 은메달을 따낸 주역인 이진희(27)는 "인터넷 기사들을 찾아봤는데 댓글에 모두 '중계방송이 없다'는 불평이 많았다"며 "TV에서 많이 방송을 해줘야 국민들이 많이 보고 인지도가 올라간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자 공수도 동메달리스트 장소영(25)도 "비인기 종목이다보니 지원도 없고 숙소도 그냥 원룸이다. 경기장도 작고 시설도 열악하다. 관심 가져주고 응원만 해주시는 것만 바란다"고 아쉬워했다. 남자 공수도에서 동메달을 따낸 장민수(24) 역시 "우리 같은 종목은 금메달이 절실하다. 금메달이 있어야 관심을 받는데 아쉽다"고 밝혔다.

스포츠도 투자다.

기량 발전이 이뤄지려면 선수들을 발굴해서 육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국제대회에 나가서 경험을 쌓고 나아가서 좋은 성적을 올려 자신감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꾸준함이 필요하다. 아시안게임에 출전하기 위해 이에 급급해 대표팀을 만드는 수준이 되어선 곤란하다. 아시안게임이라는 큰 대회의 경험을 갖고 있는 선수들을 기본으로 연속성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대회 출전을 위해 모였다가 다시 흩어지는 것을 되풀이한다면 결코 기량 발전을 이룰 수 없다.

또 중장기 계획을 갖고 집중 투자가 이뤄져야만 한다. 선수들의 가능성만을 믿고 투자가 이뤄질 수는 없다. 선수들의 가능성도 필수요소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해당 협회의 '마스터 플랜'이다. 대한체육회도 아시안게임에만 맞춘 지원이 아니라 경기력 향상을 위한 지원을 늘려나가야 한다.

여기에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팬들과 잦은 소통이 필요하다. 대중들에 많이 알려지고 관심을 받기 위해 미디어의 도움도 필요하다. 언론을 통한 소통 뿐 아니라 블로그나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SNS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한 홍보전략도 요구된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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