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17:02 (금)
[SQ스페셜] 108년 염소-68년 와후추장 악령타파 월드시리즈 속 '저주의 스포츠심리학'
상태바
[SQ스페셜] 108년 염소-68년 와후추장 악령타파 월드시리즈 속 '저주의 스포츠심리학'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6.10.25 08: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카고 컵스 '염소의 저주'-클리블랜드 '와후추장의 저주' 중 하나는 소멸...강박감과의 전쟁

[스포츠Q(큐) 박상현 기자] 이런 스토리도 없다. 한쪽의 저주는 확실히 깨진다. 

108년 묵은 '염소의 저주'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시카고 컵스. 68년 동안 '와후 추장의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꿈엔들 잊혀지지도 않은 그 저주의 역사. 한 세기, 반 세기가 넘도록 질기디 질긴 악령이 도돌이표로 반복돼온 잔혹사를 털어낼 날만을 손꼽아 기다려온 두 팀의 대결은 월드시리즈의 빅뱅으로 제대로 성사됐다. 

백발이 성성한 올드팬들, 그 자식에, 그 손주들까지 저마다 두손 모은 그 간절한 비원이 과연 어느 쪽에서 이뤄질까.

'저주 타파'

내셔널리그(NL) 챔피언 시카고 컵스와 아메리칸리그(AL) 챔피언 클리블랜드는 26일(한국시간)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의 프로그레시브 필드에서 벌어지는 2016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월드시리즈 1차전을 시작으로 저마다 저주깨기에 도전한다.

시카고 컵스는 1908년 이후 무려 108년 만에 월드시리즈 패권에 도전한다. 클리블랜드 역시 1948년 이후 68년 만에 정상 정복에 나선다. 

MLB에서 가장 오랫동안 월드시리즈 우승을 경험하지 못한 1, 2위 팀의 맞대결이어서 이미 미국 대륙은 물론 지구촌이 뜨겁게 주목하고 있다.

메이저리그의 4대 저주 중에서 이 두 팀의 악령만이 퇴치되지 않았기에 더욱 그렇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밤비노 저주'와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블랙삭스 저주'는 각각 2004, 2005년 차례로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풀렸으니 이제는 '저주 타파 시즌3'만 완결될 뿐이다. 

관심거리 또 하나. 

바로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어깨동무하고 그 지긋지긋한 밤비노의 저주를 깨뜨렸던 '어제의 동지' 시오 엡스타인과 테리 프랑코나가 이제는 적으로 만난다는 점이다. 2004년 보스턴의 86년 저주를 깼던 젊은 엡스타인 단장은 지금 시카고 컵스 사장으로, 당시 보스턴 감독이었던 프랑코나는 현재 클리블랜드를 이끌고 월드시리즈에서 만났으니 이번엔 신묘한 손의 운명이 갈리게 됐다.

누구의 기가 셀지, 실로 궁금해진다.

◆ 젊은 엡스타인의 추진력, 보수적인 보스턴과 시카고 컵스를 깨우다

예일대와 샌디에이고 대학 로스쿨을 나온 엡스타인은 MLB 역사상 최연소로 보스턴 단장직을 맡은 뒤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끌어냈다. 1918년 이후 단 한 차례도 월드시리즈 정상에 오르지 못했던 보스턴은 2004년 드디어 86년 묵은 한을 풀었다. 이후 엡스타인은 2007년 한 차례 더 보스턴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끌며 더이상 '밤비노 저주'의 부존재 증명에 못을 박았다.

그런 그가 이제는 시카고 컵스의 108년 묵은 저주 풀기를 진두지휘한다. 컵스는 염소의 저주를 풀기 위해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해왔지만 좀처럼 월드시리즈와 인연이 없었다. 1945년 이후 단 한 차례도 월드시리즈에 오르지도 못했다. 그런만큼 엡스타인 사장에 대한 관심도는 그 어느 때보다도 뜨겁다.

MLB의 대표적인 베테랑 포수인 데이빗 로스도 월드시리즈에 진출한 뒤 "엡스타인 사장이 다시 한 번 저주를 깬다면 'MLB 명예의 전당'에 오를 것"이라고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사실 엡스타인이 보스턴 단장을 맡은 것은 '극적'이었다. 보스턴이 체질 개선을 위해 단장으로 영입하려 했던 인물은 아직까지도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를 이끌고 있는, '머니볼'로 유명한 빌리 빈 단장이었다. 하지만 빈 단장은 보스턴의 제의를 거절하고 오클랜드에 남았고 결국 아이비리그 출신의 엡스타인이 임명됐다.

엡스타인은 여러 면에서 주목을 끌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아이비리그 대학 출신 MLB 단장은 단 1명도 없었던 시절이다. 그러나 그가 단장으로 취임한 이후 많은 것이 변화했다.

보스턴 시절 엡스타인과 함께 일했던 구단 관계자는 최근 미국 시카고 트리뷴과 인터뷰에서 "엡스타인이 보스턴 단장으로 취임한 이후 많은 것이 바뀌었다"며 "나이가 얼마인지보다는 선수가 갖고 있는 기술에 더욱 초점을 맞췄던 것 같다. 엡스타인은 모든 구단 업무를 진두지휘하며 솔선수범했다"고 증언했다. 엡스타인의 의욕적인 업무 추진에 보스턴은 활기를 되찾고 밤비노 저주까지 풀 수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2005년 포트 마이어스의 보스턴 스프링캠프에서 취재할 당시 직접 만난 엡스타인은 매우 유쾌하면서도 진취적인 인물이었다. 

스프링캠프에서 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블랙베리 폰으로 이곳저곳에 전화를 걸었다. 그 통화 가운데에는 김병현의 이적 관련 얘기도 들어 있었다. 

엡스타인은 김병현의 이적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냥 일상적인 통화였을 뿐이다. 김병현의 이적과 관련해 아무 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며 "내 말을 믿어달라"고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스스럼없는 성격을 보여줬다.

시카고 컵스와 클리블랜드 가운데 어느 팀의 저주가 더 지독한지 지켜보는 것도 2016 월드시리즈의 관전포인트 가운데 하나다. 

컵스는 1945년 애완 염소를 데리고 리글리 필드에 입장하려던 농부를 제지하면서 저주에 걸렸다. 1945년 월드시리즈에서 패퇴한 이후 단 한 차례도 월드시리즈에 오르지 못했으니. 

이에 비해 클리블랜드는 그래도 1948년 월드시리즈 우승 이후 1954년과 1995년, 1997년 등 세 차례에 걸쳐 AL 챔피언에 등극했다. 이것만 놓고 보면 '염소의 저주' 쪽이 더 잔혹한 셈이다.

그래서 엡스타인 사장이 이끄는 컵스의 소원풀이에 더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저주의 역사도 클리블랜드보다 더욱 오래됐으니 말이다. '와후 추장의 저주'보다 더 지독한 '염소의 저주'가 깨진다면 이는 MLB 역사의 새로운 장이 될 것이다. 

또 엡스타인 사장의 시카고 컵스에서 마지막 계약 기간에 저주가 풀린다면 시카고 컵스에서 더욱 오랫동안 몸담을 수도 있다. 올 시즌을 끝으로 컵스와 계약이 끝나는 엡스타인 사장의 능력을 높이 사는 구단들의 러브콜도 이어질 전망이다.

◆ 선수들의 자신감을 불어넣는 프랑코나 리더십, 보스턴 이어 클리블랜드서도?

클리블랜드는 1951년 구단 로고를 바꾸는 과정에서 와후 추장의 얼굴을 붉게 만들면서 우스꽝스럽게 묘사했다. 그러나 이내 와후 추장 마스코트는 인종차별 논란에 시달렸다. 인디언의 얼굴을 빨갛게 해놓고 표정을 우습게 하면서 인디언 원주민들의 원성을 샀던 것이다.

마스코트를 빨갛게 만들어놓은 것이 무슨 대수냐고 하겠지만 최근 미식축구 북미프로풋볼(NFL) 워싱턴 레드스킨스의 사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레드스킨스 역시 인디언 원주민들을 차별하는 이름이다. 이 때문에 팀 이름을 바꿔야 한다는 논란이 일고 있지만 워싱턴 구단은 꿈쩍하지 않고 있다.

와후 추장의 저주에 단단히 걸린 클리블랜드에는 프랑코나 감독이 있다. 밤비노 저주를 깰 당시 엡스타인의 의욕적인 업무 추진에 보수적인 보스턴이 대변화를 겪었다면 프랑코나 감독은 실의에 빠진 선수들을 심리적으로 일깨웠다. 

2004년 AL 챔피언십시리즈 당시 보스턴은 라이벌 뉴욕 양키스에 3연패를 당하며 벼랑끝에 몰렸지만 이후 기적같은 역스윕에 성공하며 월드시리즈 진출을 이뤄냈으니 말이다.

AL 챔피언십 시리즈 당시 에이스 페드로 마르티네스는 "뉴욕 양키스는 마치 아버지 같다"는 말을 했다가 양키스 팬들로부터 '네 아버지가 누구니(Who's your daddy)'라는 조롱을 들어야만 했다. 그러나 프랑코나 감독은 선수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으며 4차전을 극적인 역전승으로 이끌어낸 뒤 5차전부터 7차전을 내리 잡는 지도력을 발휘했다.

선수단에 의욕을 불어넣은 것이 엡스타인이었다면 선수들에게 끊임없이 '넌 할 수 있다'는 말을 하며 자신감을 주입시켰던 것은 프랑코나였던 셈이다. 

시카고 컵스와 클리블랜드 모두 이번 월드시리즈에서 제대로 맞붙을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다.

▲ 시오 엡스타인 시카고 컵스 사장(왼쪽)은 취재진과도 스스럼없이 지내는 친화력의 소유자다. 활발하고 진취적인 성격으로 보스턴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고 이번에는 시카고 컵스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사진은 2005년 보스턴의 포트 마이어스 스프링캠프에서 기자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 엡스타인. [사진=스포츠Q(큐) DB]

그래서 와후 추장의 저주에 걸린 클리블랜드가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할 것이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결국 현장에서 선수들과 직접 소통하는 인물은 단장, 사장이 아닌 감독이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설득력을 갖는 대목이 아닐까.

■ 메이저리그의 '4대 저주' 

시카고 컵스 '염소의 저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와후 추장의 저주', 보스턴 레드삭스 '밤비노의 저주'와 더불이 시카고 화이트삭스 '블랙삭스의 저주'가 꼽힌다.

화이트삭스는 1919년 신시내티 레즈와 월드시리즈에서 주전 8명이 져주기에 연루되는 승부조작으로 '블랙삭스 스캔들'을 일으켜 이 같은 저주에 휩싸였다. 1917년 월드시리즈 우승을 마지막으로 무려 87년 동안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1919, 1959년 두 차례 월드시리즈에 오르고도 정상 문턱에서 분루를 삼킨 뒤 아지 기옌 감독이 이끌고 이만수 코치가 있었던 2005년 마침내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차지하며 악령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 저주가 뭐길래, 징크스가 뭐길래…전장에서 나가 싸우는 전사들의 심리는

그렇다면 과연 저주와 징크스가 스포츠 현장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이는 선수 개개인 그리고 선수단 전체의 심리와 큰 연관성이 있다.

승리하면 한없는 기쁨을 누리고, 패하면 끝없는 슬픔에 빠지는 스포츠 무대는 마치 전쟁터와 많이 닮아 있다. 죽고 사는 문제만 없을 뿐 전쟁과 다를 것이 뭐가 있으랴. 

스포츠 현장은 언제나 불안감이 존재한다. 여기에 저주나 징크스라는 또 다른 요소가 개입하면 가뜩이나 불안한 선수들의 심리는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한 예가 바로 시카고 컵스의 2003년 NL 챔피언십시리즈였다. 플로리다 말린스(현 마이애미 말린스)와 대결에서 시카고는 1차전을 지고도 2차전부터 4차전까지 내리 이기며 3승 1패로 크게 앞섰다. 1경기만 더 이기면 대망의 월드시리즈행 샴페인을 터뜨릴 수 있었다.

원정 5차전에서 0-4로 완패했지만 컵스의 월드시리즈 진출은 기정사실처럼 보였다. 6, 7차전 격전지가 모두 안방 리글리 필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6차전 8회초 당시 평범한 파울 플라이를 한 시카고 팬이 잡으려다 놓치면서 파울로 선언된 이후 거짓말처럼 컵스가 무너졌다. 8회초에만 대거 8실점하며 역전패했고 7차전까지 내주면서 월드시리즈 티켓이 날아갔으니 땅을 칠 노릇이었다.

당시 그 팬 이름이 스티브 바트먼이어서 '바트먼의 저주'라는 새로운 악령의 이름이 붙여졌다. 이에 대해 당시 파울 플라이를 잡으려다가 바트먼의 방해로 놓친 모이세스 알루는 2008년 AP통신과 인터뷰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은 사실 그 공은 어떻게 해서든 잡지 못했던 것이었다"고 회고했다.

이후 알루가 다시 "내가 그 얘기를 했었는 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만약 그랬다면 바트먼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 공은 100% 내가 잡을 수 있는 것이었다"고 말을 바꾸긴 했지만 논란이 됐던 것은 분명했다. 컵스 선수들의 심리에 큰 동요가 왔던 것도 사실이다.

저주에 휩싸인 컵스와 인디언스의 월드시리즈 매치업은 작은 것 하나하나에서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작은 실수 하나에 "역시 저주 때문인가"라는 생각이 주입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질 수도 있다. 

작은 실수 하나에 승패가 가려지는 큰 경기라면 더욱 그렇다. 결국 저주는 선수들이 반드시 깨야 하는 지상과제이자 두 어깨에 짊어진 부담이다.

그래도 하나는 확실하다. 저주 하나는 깨진다. 

그러나 강박감에서 출발하는 심리전의 변수가 어느 빅매치보다 큰 운명의 결전이기에 어느 쪽도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은 아니다.

▶ [SQ포커스] 스포츠세상의 '요지경 저주', 삼성-김성근부터 펠레-SI까지 를 보시려면.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

관련기사

주요기사
포토Q